< 광고 배틀 (1) >
화요일 아침.
차선우는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가볍게 수련을 마치고 샤워를 하기 전.
차선우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들었다.
화요일은 빌보드 차트가 업데이트되는 날이다.
차선우는 차트를 확인해보았다.
[3위. 천마, 토비]
“......?”
어?
순위가 뭔가 이상하다.
차선우는 다시 한번 차트를 확인해봤다.
[3위. 천마, 토비 - Don’t Kill the Rage]
어제까지는 분명 1등이었는데.
오늘은···3등?
1등도 아니고, 2등 아니고.
3드으으응?
차선우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차트를 노려봤다.
“흐으음······.”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모인 차트에서 3주 동안 1등을 했으면, 객관적으로 봐도 잘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쓰읍. 조금 아쉬운데?”
아니, 아쉽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다.
조금 더 저 자리에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분명 모든 지표가 성장하고 있었는데.
'뺏겼네.”
이건 이견의 여지가 없이 빼앗긴 거다.
누구한테 뺏겨본 게 얼마 만이던가?
차선우는 마음속에서 작게 요동치는 감정을 느꼈다.
많은 일을 겪으며 깎여나가고, 늘 부동심을 유지하는 고요한 마음에 변화가 일었다.
아쉬움에서 한발짝 더 나간 감정.
짜증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지?”
차선우는 자신을 밀어내고 그 위에 오른 놈이 누군지 궁금했다.
그래서 곧바로 확인해보았다.
“유니트론? 뭐야 이놈은?”
어디 트랜스포머에 나올법한 로보틱한 네임을 가진 이놈은, 처음 들어본 가수였다.
그러나 이 시장은 넓고, 듣도보도 못한 천재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는 법이다.
차선우는 유니트론이 부른 노래를 틀어보았다.
가장 먼저 들려오는 건 귀를 사로잡는 매혹적인 음색.
‘목소리가 트렌디하네.’
최신 유행의 집합체 같은 창법과 목소리다.
그래서인지 도입부부터 바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
이지리스닝 팝이지만, 레트로의 느낌이 물씬 나는 코러스는 기성세대들도 친숙함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다양한 장르에서 괜찮은 요소를 쏙쏙 뽑아내서 잘 짜올렸다. 그 덕분에 독특하면서도 듣기 좋은 멜로디가 탄생했다.
“좋네.”
차선우의 평가였다.
좋은 노래다.
그런데.
분명 노래는 좋은데··· 흠.
어딘가 괴리감이 느껴진다.
차선우는 다시 들어보았다.
한번.
두번.
몇 번을 더 들어봐도 이상하다.
어딘가 본질에서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이랄까?
아!
차선우는 유니트론의 노래를 표현할 좋은 단어를 떠올렸다.
“이거 딱 그거네. 빛 좋은 개살구.”
아니면 앙꼬 없는 찐빵도 괜찮고.
유니트론의 노래는 잘 ‘짜여져’만 있었다.
힙합, 트랩, 락, 컨트리 등의 장르는 서로를 구분 짓는 박자나 사운드 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르를 근본적으로 구분 짓는 건, 그 장르를 즐기는 사람들 특유의 감성이다.
그런데 유니트론의 노래에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여러 장르의 장점을 쏙쏙 뽑아서 기계처럼 엮은 느낌이다.
그런데 엮는 과정을 너무 잘하다 보니 노래가 좋아 보인다.
일반적인 리스너들이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유니트론의 노래를 들은 차선우는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놈의 노래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을.
이런 듣기만 좋은 노래를 만들어서 자신을 밀어낸 놈이 누군지.
차선우는 유니트론이라는 녀석에 대해 조금 더 궁금해졌다.
차선우는 곧장 뉴튜브에 유니트론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가장 상단에, 바로 한 시간 전에 올라온 유니트론의 인터뷰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호오? 파티도 했어?”
공교롭게도 차선우를 밀어내고 빌보드 1등을 한 걸 벌써부터 축하한 모양이다.
차선우는 지체하지 않고 영상을 재생해보았다.
기자가 파티장으로 들어가는 유니트론에게 질문을 하는 것으로 영상은 시작했다.
- 기자 : 유니트론 씨! 빌보드 1등 축하드립니다. 이번 빌보드 1등을 한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그리고 질문을 받은 유니트론은 뚱하게 고개를 갸웃하더니 되물었다.
- 유니트론 : 소감이요?
- 기자: 네.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유니트론 : 소감이라 할 게 있나요?
- 기자: 네?
기자들의 눈빛이 빛났다.
반문하는 유니트론의 뉘앙스에서 특종의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 유니트론 : 빌보드 1등은···당연한 거죠. 당연한 일을 가지고 소감을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말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누가 있죠?
“.......”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영상이 조회수가 이상하게 높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대담한 발언에, 주변에서는 연신 환호성을 날렸다.
기자들은 눈을 빛내며 조금이라도 이 장면을 더 담기 위해 아우성을 쳤다.
그리고,
빠직-
차선우의 머리에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저 새끼가··· 은근히 사람 속을 긁네?”
말하는 게 묘하게 싸가지가 없다.
뭐? 자신 말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없어?
씁-하. 씁-하.
심호흡을 한 차선우는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은 더욱 자극적으로 변했다.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한 기자들은 연신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유니트론은 특유의 뚱한 얼굴로 연신 떡밥을 던지며, 기자들의 표정을 밝게 만들어줬다.
그렇게 영상이 끝나갈 무렵, 문제의 질문이 나왔다.
- 기자 : 마지막으로 하나 질문드릴게요. 이전에 빌보드 1등은 천마와 토비의 곡이었는데, 그 두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질문에 유니트론은 잠시 고민했다.
기자들은 호기심을 드러내며 기대했다.
일반적인 가수들이라면 적당히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자기애 강해 보이는 천재는 뭐라고 대답할까?
- 유니트론 : 일단 힙합은 제가 다루는 장르가 아니니 보류하도록 하죠.
기자들은 김이 샜다. ‘일반적인’ 가수들과 영 다를 바 없는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유니트론은 평소와 같은 톤으로, 변함없는 얼굴로 폭탄을 날렸다.
- 유니트론 : 천마의 노래는. 뭐, 좋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많아요···.
유니트론은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천마의 이번 노래가 어떤 부분에서 아쉬웠는지 따지고 들었다.
- 유니트론 : 어쨌든. 이것만 해결할 수 있다면 천마도 좋은 가수가 될 수 있겠네요.
그 발언을 들은 기자들의 눈이 돌아간 건 당연한 일이다.
- 기자1 : 잠깐만요! 그 말 다시 한번 해주실 수 있나요?
- 기자2 : 그럼 본인이 천마보다 훨씬 낫다고 인정하시는 건가요?
- 기자3 : 어어어? 밀지 말라고! 천마에 관해서 한 말씀만 더 해주세요!
개떼처럼 몰려드는 기자들을 밀어내며, 헌트 뮤직의 대표가 유니트론을 데리고 파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
차선우의 머리에 다시 한번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감히 천마가 어쩌고 어째?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성질 같아서는 그냥 콱!
무림이었다면 저 새끼 대가리를 팍 깨버리고, 그게 아물 때쯤 가서 한 번 더 깨줬을 거다.
차선우는 오랜만에 불타오르는 걸 느꼈다.
“빌보드에서 박살 내주지.”
그런데 그 전에 기회가 찾아왔다.
*
유니트론과 헌트 뮤직의 대표는 기자들의 무리를 뚫고 파티장 안으로 들어왔다.
세계 3대 유통사인 헌트 뮤직의 대표는 유니트론의 어깨를 두드리며 큰 소리로 웃었다.
“껄껄껄, 빌보드 1등 축하하네. 아무리 그래도 핫샷을 할 줄이야. 그것도 천마를 밀어내고 말야. 대단하구만!”
천마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1주, 2주 차에 이어 3주 차까지.
계속해서 지표가 성장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언젠가는 유니트론이 빌보드 1등을 할 거라곤 생각했었지만,
‘첫 주에 바로 목표를 달성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는데.’
헌트 뮤직에서 푸시 해줬다고는 해도 이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칭찬에도 유니트론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이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 말투와 표정에서 진짜로 천마를 밀어내고 빌보드 1등을 한 일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느껴진다. 헌트의 대표는 유니트론의 그런 모습도 마음에 쏙 들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파티장 안으로 걸음을 옮기던 헌트 뮤직의 대표는 유니트론에게 물었다.
“그래. 이제 빌보드 1등도 했고. 이제 뭘 할 생각인가? 특별히 이비자에 있는 내 별장을 빌려줄 수도 있네.”
하지만 그 말에 유니트론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휴식을 취할 때가 아닙니다.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쉬지 않고 곡을 만들 겁니다. 이미 다음 앨범도 구상은 끝났어요. 곡도 몇 개 뽑아놨고요.”
소속 가수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선언에 헌트 뮤직 대표의 마음은 더욱 기꺼워졌다.
“오? 그래? 대단하구만.”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앨범을 발매하고 고작 일주일 동안 곡을 썼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물어봤다.
“만든 곡이 있으면 나도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잠시 고민하던 유니트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만요.”
유니트론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가 들려줄 노래는 바로 오늘 아침, 피아노를 치다 만든 노래다.
시작은 피아노와 목소리로 구성된 멜로디.
거기에 ‘four on the floor’ 드럼 패턴이 얹어졌다.
그런데 킥의 강약 조절이 기가 막혀 그것만으로 그루브가 느껴진다.
헌트 뮤직의 대표는 감탄했다.
‘하여튼 기계 같은 놈일세. 앨범을 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노래를 뽑아낸 거지.’
대단한 노래는 앞 소절만 들어도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유니트론이 들려주는 노래에서는 그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유니트론이 갑자기 재생을 멈췄다.
“......?”
그러더니 스마트폰의 미디 어플을 이용해 기존의 비트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비트를··· 변주가··· 박자를 빠르게···.”
중얼거리며 말하는 단어들로 유추하건대, 무언가 영감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5분이나 지났을까?
작업을 마친 유니트론은 다시 한번 이전의 곡을 재생했다.
“!?”
노래가 달라졌다.
이전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기존에는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메인이었다면, 지금은 흥겨움까지 한 스푼 추가되었다.
그런데 그 흥겨움이 주는 질감이, 저 멀리서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파티장의 노래와 비슷하다.
‘...음? 이건 설마?’
상황을 파악한 헌트 뮤직의 대표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미쳤군! 이놈은 물건이야.’
눈앞에서 봤지만 도통 믿기지가 않는다.
노래를 듣고, 즉석에서 그 노래의 정수를 뽑아내어 기존의 것에 더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던가.
헌트 대표가 아는 한 단시간에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게 가능한 사람은 없었다.
아, 하나 있다.
‘천마. 그러고 보니 그 사람과 닮았군.’
즉석에서 좋은 곡들을 뽑아내는 능력이며, 왕성한 활동량과 천재성까지.
몇 년 전 로페즈에게 천마의 곡 유통권을 빼앗겨서 배가 아팠는데.
‘껄껄껄. 이런 놈이 밑으로 들어오다니. 운이 좋군.’
헌트 뮤직의 대표는 흡족했다.
밀어준 보람이 확실한 녀석이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던 헌트 뮤직의 대표는 이참에 유니트론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는 것도 괜찮다는 판단이 들었다.
헌트 뮤직의 대표는 은근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아, 그런데 말이야. 이번에 에이플에서 우리 쪽에 광고 의뢰를 했거든. 혹시 해볼 의향이 있나?”
헌트 뮤직 대표의 말을 들은 유니트론은 걸음을 멈췄다.
“에이플이요?”
그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고민의 빛이 스쳐 갔다.
*
진성 전자와 차선우는 전격적으로 광고 계약을 맺었다.
차선우를 모델로 내세우는 데 더해, 진성 측에서는 차선우가 직접 광고 음악을 만들어주는 내용이었다.
‘광고 음악이라.’
처음 해보는 작업이다.
30초가량의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들을 후킹하고 제품의 특징까지 담아내야 한다.
차선우가 보내온 콘티를 보면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강여름이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다.
“천마 님! 이것 좀 보세요! 이번에 에이플에서 유니트론을 광고 모델로 사용한다는데요?”
차선우와 유니트론.
두 사람의 만남이 앞당겨졌다.
< 광고 배틀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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