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 배틀 (2) >
“천마라... 진성에서 이를 갈았군.”
에이플의 대표는 기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진성 전자에서는 이번 광고 모델로 천마를 발탁했다며 연신 기사를 때리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벌써 몇 개나 본 지 모르겠다.
심지어 진성 전자의 대표인 김재범이 직접 천마를 언급하며 차기 제품을 기대하라는 말까지 꺼냈다.
덕분에 신제품의 광고도 나오지 않았건만, 연신 화제 몰이를 하고 있었다.
“쯧쯧. 진성은 이번에도 똑같은 전략을 쓰는군.”
사실 놀라울 것도 없다.
언제나 진성이 하던 유명 아티스트를 이용한 마케팅이니까.
세계적으로 보면 점유율에 있어서는, 진성과 에이플의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진성 전자가 중저가 보급형 라인업이 많고, 덕분에 점유율에 있어서는 엇비슷하다.
하지만 프리미엄 라인은 다르다.
에이플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포지션을 잡고 있는 상황.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브랜드의 이미지부터 쌓아 놓은 헤리티지까지.
이런 건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뻔하디뻔한 진성의 전략인 만큼 평소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최근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지난 시리즈에서 진성 전자는 일본에서 천마신교의 아티스트들을 이용해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고, 에이플은 처음으로 일본 시장에서 진성 전자에게 조금이나마 점유율을 내주었다.
아직까지는 큰 차이로 벌어져 있지만, 처음으로 진성 쪽의 프리미엄 라인 점유율이 높아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에이플의 대표는 입안이 썼다.
‘진성의 전략이 보기 좋게 먹혀들어 가는군.’
더욱이 이번 시리즈에는 단단히 스펙업을 했다는 말이 돌고 있고, 여기에 천마라는 글로벌 스타를 내세워 이쪽과 제대로 해보려는 모양이다.
한두 번의 스펙업으로 벌어진 성능 차이를 쉽게 좁히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방심해선 안된다.
특히 에이플의 대표는 기사를 보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거라는 그런 직감이.
‘특히 천마가 신경 쓰인단 말이지.’
에이플에서도 천마를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천마의 노래도 좋을뿐더러, 천마가 가진 팬덤과 영향력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에이플의 전략팀에서도 천마가 가진 광고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를 진성 전자에서 먼저 채간 만큼, 새로운 광고 모델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진성이 저렇게 날뛰는데, 이쪽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때 에이플의 눈에 들어온 건.
“유니트론.”
헌트 뮤직그룹에서 키워낸 천재 아티스트.
핫샷 데뷔를 한 음악가.
유니트론이 가진 ‘천재’ ‘일류’ ‘엘리트’라는 이미지는, 에이플을 대변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며칠 전 유니트론은 천마를 저격하는 듯한 인터뷰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SNS에서는 아직도 두 아티스트의 팬덤이 치고받고 싸우는 중이다.
천마와 유니트론.
진성 전자와 에이플.
대결 구도가 잡힌 사람끼리 손을 잡고 한판 붙는다?
에이플의 대표는 미소지었다.
“제대로 불타오르겠군.”
확실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세계 최고인지.
*
에이플의 광고 제안을 수락한 유니트론.
그러자 에이플 측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프레젠테이션을 송출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특별할 게 없었다.
메타버스니 블록체인이니 하는 온갖 테크놀로지에 대한 의논이 있었는데, 으래 평소에 하던 기업의 비전을 보여주는 그런 영상이었다.
다만 영상 말미에, 모든 사람이 궁금해할 새로 출시될 사과폰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에이플 대표: 우리는 항상 ‘이유(WHY)’에 주목해왔습니다. 왜 에이플이여야만 하는가.]
[진행자: A+이니까요.]
[에이플 대표: 그렇죠. A+, 우월함, 차별적인 독창성. 이건 우리 제품을 단순한 고려 대상을 넘어 필수로 만들어 줍니다.]
[에이플 대표: 유니트론을 저희 광고 모델로 발탁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바로 유니트론을 대놓고 언급한 것이다.
에이플이 자사의 광고 모델을 언급한다?
의례적이지 않았지만, 의도적인 발언이었다.
진성 전자와 에이플은 유명한 경쟁 관계였으며, 천마가 진성 전자의 광고 모델로 발탁된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유니트론도 경쟁사의 모델이 됐네?
사람들은 ‘팝콘!’을 외쳤다.
- 엌ㅋㅋ 개꿀잼 매치가 여기 있었네
시기가 참 묘했다.
때마침 천마가 빌보드에서 1위를 하던 걸, 유니트론이 뺏어가는 모양새가 되면서 은은한 라이벌리가 형성되었고.
또한 유니트론이 빌보드 1등을 하고 나서 했던, 천마를 저격하는(?) 인터뷰가 아직까지 화제였다.
그런 상황에서 에이플이 유니트론을 기용하며 불을 붙였으니, 사람들은 신이 났다.
- 진성이랑 에이플 싸움이 문제가 아니었네ㅋㅋㅋ
이제 상황은 단순히 진정 대 에이플이 아니게 되었다.
천마와 유니트론.
두 사람의 자존심이 걸린 승부로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보며, 유니트론은 당혹스러워했다.
유니트론은 미팅을 위해 에이플 본사에 와 있었다.
“흐음. 이해가 가질 않는군.”
커다란 회의실에서 홍보팀을 기다리는 중.
유니트론은 뉴튜브를 보고 있었다.
그 밑에 달린 수만 개의 댓글을 읽으며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천마를 저격했다고? 그저 천마의 음악이 더 발전할 방법을 설명해준 것뿐인데. 어째서 라이벌이라는 거지?”
“.......”
옆에 있던 매니저는 혼잣말을 하는 유니트론은 보며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그딴 식으로 말하면 천마가 퍽이나 고맙다고 하겠다. 그러게 내가 말 좀 조심하라고 했잖냐. 아오, 하필이면 그날 헌트 뮤직 대표님이 따라간다고 하셔서는.”
얼마 전 빌보드 1위 축하 파티 때 유니트론이 했던 인터뷰.
매니저인 그가 따라갔다면 어찌어찌 말릴 수 있었겠지만, 헌트 뮤직의 대표는 말리기는커녕 부추겼다.
그때만 생각하면 말하면서도 절로 한숨이 푹 나온다.
“그런 식으로 적을 만들고 다녀서 나중에는 어쩌려고 그러냐.”
덕분에 유니트론의 SNS를 관리하는 회사에서는 며칠 동안 죽을 맛이었다.
천마의 팬들이 남기는 댓글과 태그, 메시지가 분당 수백 수천 개는 쏟아졌다.
매니저의 말에도 유니트론은 뚱하게 대답했다.
“그런 게 중요한가?”
“어이구. 내가 말을 말자 말아.”
어차피 벌어진 일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대결 구도가 잡혀버렸다.
그리고 대결 구도가 잡혔다는 말인즉슨,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승자가 되고 한 명은 패자가 된다는 말이다.
물론 정식으로 차트에서 붙는 게 아닌, 각자 맡은 기업의 광고를 하는 거지만.
중요한 건 승리다.
대중들이 승리라고 느낄 수 있을 만한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천마, 천마라. 쉽지 않은 상대군.”
미국 내에서 팬덤도 강력한 편이고, 바로 얼마 전까지 빌보드에서 3주 연속으로 1위를 하던 가수다. 매니저도 아직까지 종종 천마의 노래를 듣곤 한다.
하지만 매니저의 표정에서는 걱정이라곤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때?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매니저는 알고 있다.
유니트론은 천재라는 것을.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천재니 하는 게 아닌.
진짜 ‘천재’.
패배?
옆에서 몇 년간 유니트론을 봐 온 매니저는, 그가 음악성으로 누군가에게 밀린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매니저의 물음에 유니트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이야기를.”
매니저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황도 나쁘지는 않았다.
‘어그로 하나는 확실히 끌리는군.’
벌써부터 SNS에서 누가 더 낫냐느니 하며 난리다.
본격적으로 광고가 시작되면 기존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사이였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죠?”
에이플의 홍보팀 사람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매니저는 얼른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이쪽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매니저는 홍보팀장과 명함을 주고받았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빌보드 1등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도 아주 화끈하시던데요?”
“아하하하······.”
잠깐의 아이스 브레이킹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광고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렇게 유니트론 님을 직접 오시라고 한 부분에 대해 양해 말씀 올립니다. 혹시나 모를 유출 때문에 직접 모시게 되었습니다.”
매니저는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홍보팀의 직원은 리모컨을 조작하여 만들어진 광고의 콘티를 보여주었다.
“먼저 이번 광고에 대해 설명해드리자면, 저희는 지금까지 카메라, 영상을 강조해왔죠. 이번 제품은 그게 극대화될 겁니다. 단순한 동영상을 넘어 영화가 되는, 그런 생생한 밀도를 담아내는 게 목적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오스카상을 수상하신 감독님을 모셨죠.”
에이플의 홍보팀장은 강조하며 말했다.
“그만큼 감각적인 음악이 필요합니다. 우리 에이플의 광고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감성’이라는 건 아시죠?”
그 말을 들은 유니트론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감성.
그에게 음악은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세계였다.
“감성이라.”
와닿지 않는 어떤 단어를 들은 것처럼.
*
유니트론이 에이플의 광고음악 디렉팅을 담당하는 것과 동시에,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는 소식은 한국에도 전해졌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차선우에게도 소식이 전해졌다.
“후우, 또 이 새끼야?”
차선우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내뱉었다.
사옥 건설에, 팬미팅 투어 준비부터, ‘천마의 음악방송’ MC까지.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유니트론이 이상한 인터뷰를 한 탓에 팬덤까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 아쉬운 점이ㅋ 많다네요ㅋ
- 유니트론이 천마랑 비교할 급이 됌?
ㄴ됌이 아니라 됨
- 그래 너는 1등 몇 주나 하는지 보자ㅎㅎㅎ
근래 엄청나게 덩치가 커진 천마의 팬덤이다.
여기에 타이슨과의 디스전을 하면서 응집력까지 갖춰버렸다.
그런데 유니트론이 여기에 불을 질렀네?
SNS와 팬클럽은 활활 불타올랐다.
그리고 그걸 관리해야 하는 건 우리의 강여름이다.
옆에 있던 강여름은 입이 댓발 나와 중얼거렸다.
“확 저 새끼 잡아다가 가둬놓고 피자만 먹이면서 하루종일 반성문 쓰게 하고 싶다···.”
공사가 다망한 탓에 당장 대응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가락 하는 놈이니 언젠가는 한번 붙을 일이 있겠지.’
차선우가 음악 활동을 재개하면 분명 차트 꼭대기에서 붙을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럼 그때가서 승부를 가리면 된다.
그런데 그 ‘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적당히 넘어가려던 차선우는, 진성 전자와 광고 미팅을 하던 도중 유니트론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감독과 담당자와 함께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미국에서 날아온 소식에 담당자는 난색을 표했다.
“휴우··· 에이플 대표가 맞불을 질렀네요.”
옆에 감독이 있어서 담당자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 동네 광고 감독은 ‘오스카상 수상자’다. 그쪽 광고에 붙어 있는 팀도 한가락 하는 놈들이란다.
거기에 이미 천마와 라이벌리가 생긴 유니트론까지 등장했다.
담당자의 한숨에서 그의 불안한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차선우가 담당자에게 물었다.
“왜요. 자신 없어요?”
“아니, 자신이 없다는 게 아니라. 음.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네요.”
진짜 대결 구도가 되어버렸다.
애매한 무승부?
여기에 그런 건 없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온 두 기업인 만큼, 추락은 더욱 뼈아프다.
만약 진성 전자가 ‘루저’가 된다면, 이미지 타격은 막심할 것이다.
수십 년간 쌓아온 최고의 이미지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리겠지.
담당자는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최악을 대비해서 차라리 지금 짜인 대결 구도를 조금 완화하는 게 좋으려나? 그럼 에이플에서도 분위기를 식히려나? 아니야. 놈들이 그럴 리가 없지. 그럼 너무 밑지고 들어가는···.’
바쁘게 머리를 굴리던 담당자는 문득 차선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
그리고 놀랐다.
차선우의 입가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네?”
차선우는 그저 미소지었다.
그 로봇 같은 놈이 ‘감성’ 광고를 해?
아이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 광고 배틀 (2) > 끝
ⓒ 연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