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 배틀 (4) >
어느 늦은 밤.
직장인은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뒹굴뒹굴하던 직장인은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니, 퇴근하고 한 것도 없는데 벌써 11시야?”
퇴근길 지옥철을 겨우겨우 뚫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씻고 간단하게 집정리를 끝내고,
이제야 침대에 누워서 취미생활을 좀 즐겨볼까 하는데.
근데 뭐?
벌써 11시라고?
“내가 진짜 이놈의 직장을 관두든가 해야지.”
그녀의 마음 한켠에 품고 있던 사직서가 오늘도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갚아야 할 카드 할부와, 매달 나가는 공과금, 여기에 어마무시한 전세 이자까지.
꿀꺽-
아무래도 퇴사는 무리인 것 같다.
그녀는 마음속에 떠올랐던 사직서를 다시 고이 밀어 넣었다.
“에휴 내 인생. 그래도 오늘 그거는 꼭 보고 자야지.”
마치 월드컵 축구를 챙겨보듯이, 그녀가 기다리는 건 바로.
천마의 첫 광고!
한국 시각으로 새벽 3시에 언패킹 행사를 스트리밍해준다고 한다.
새벽 3시에 시작하는 언패킹 행사를 보고 다음 날 출근한다?
“...그건 불가능하지.”
고등학생, 아니면 대학생만 되었더라도 시도해 볼 만 했지만, 지금 이 비루한 운동 부족의 몸뚱어리로는 안 된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법정공휴일이라는 아주 훌륭한 제도가 있었다.
내일은 다름 아닌 한글날이었고, 덕분에 직장인은 늦게까지 마음 놓고 뒹굴거릴 수 있었다.
“살다 살다 내가 이런 걸 챙겨볼 줄이야.”
평소 전자기기라고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직장인이다.
스마트폰 그까짓 거.
그냥 남들이 쓰는 거, 적당히 쓸만하고, 적당히 저렴한 걸로 샀지.
새벽 3시에 최신의 스마트폰을 홍보하는 행사를 챙겨볼 거라고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스마트폰이 아니라고.’
겨우 진성의 스마트폰 같은 단어로 수식할 수 없다.
바로 천마의 첫 광고이자, 공식(?) 굿즈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직장인이 구매하려는 굿즈 가장 비싼 굿즈이기도 하고.
“아니, 천마 에디션을 따로 판매하는 건 반칙 아니냐고.”
다른 거라면 몰라도, 천마 에디션을 판다?
그것도 한정판으로?
이건 못 참지!
아무튼.
아직 새벽 3시까지는 시간이 남은고로 직장인은 현생을 살며 놓쳤던 피드를 복습하며 뒹굴거렸다.
최근 천마의 채널에 올라오는 스포츠 종목별 <도장 깨러 갑니다>도 정주행을 끝냈고, 천마가 스페셜 MC로 나오는 <천마의 음악방송>도 다 챙겨봤다.
그랬는데.
“엥? 이제 겨우 2시라고?”
언패킹 행사 스트리밍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 순간 알고리즘이 그녀에게 새로운 동영상 하나를 추천해주었다.
“어? 이건?”
그건 바로 며칠 전 올라온 에이플의 새 사과폰 광고였다.
유니트론이 광고음악을 만들고, 유니트론이 홍보하는 바로 그 광고이다.
“에잇, 이놈 얼굴은 꼴도 보기 싫네.”
공교롭게도 유니트론도 빌보드 1위를 딱 3주하고 내려왔다.
천마도 빌보드 1위 자리에 3주 동안 머물러 있었기에 ‘무승부’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번 광고 대결을 진검승부라고 보았다.
천마의 진성 스마트폰 광고.
유니트론의 에이플 스마트폰 광고.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직장인이 망설이는 사이 사과폰 광고는 자동 재생되었다.
♪♬♩♩♩♬♪-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된 카메라 성능, 여러 가지 모드를 이용하여 일상을 찍는데 그게 한 편의 영화가 된다.
일상 속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스토리.
[Make Your World Hollywood]
[당신의 세상을 할리우드로]
이번에 오스카상 수상 감독이 찍었다더니.
영상미는 영화 뺨을 후려갈겼으며, 유니트론의 노래는 에이플이 늘 추구했던 감성을 잘 드러냈다.
직장인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잘 만들었네.”
에이플의 광고가 늘 그렇듯 이번에도 좋았다.
하지만 딱 그정도.
그냥 평소의 사과폰 광고였다.
감성 충만하고, 영상미가 넘치고, 음악은 듣기 좋은 그런 광고.
특별함?
그런 건 없었다.
이번에 나온 게 사과폰의 14번째 모델이다.
그 말인즉슨, 이것과 비슷한 광고가 13개는 더 있었다는 거다.
이전부터 잘 만들었던 퀄리티가 여전히 ‘유지’됐다는 느낌이랄까?
댓글 반응도 직장인과 비슷했다.
몇몇 에이플의 신봉자들은 열광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에이플이 에이플했네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렇게 라이벌의 광고를 보다 보니 새벽 3시가 다 되어 간다.
“오오, 드디어 시작이다!”
에이플의 광고는 저 멀리 집어 던지고, 직장인은 본격적으로 천마가 나오는 언패킹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
천마를 모델로 한 진성 스마트폰 광고.
길이는 짧았다.
고작 45초짜리 광고다.
거실에 있는 대형 TV 화면으로 광고가 나오는 순간, 직장인은 기함을 토했다.
“그래! 이거지!”
슈트다 슈트!
맙소사, 천마가 슈트를 입었다니!
천마가 지금까지 슈트를 입은 건 손에 꼽는다.
평소에는 한결같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콘서트에서는 한결같이 동양풍 옷을 입은 천마다.
물론 그런 옷도 마음에 들지만,
“역시. 남자는 슈트지. 진성에서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 좀 아는구만.”
슈트를 입은 천마의 모습은 눈 돌아가게 멋있었다.
매트한 블랙에 고급스러운 골드로 포인트를 준 슈트.
그 아래 얼핏 보이는 숨길 수 없는 탄탄한 근육과 넓은 어깨.
워킹을 할 때마다 유려하게 움직이는 팔다리.
슈트를 입은 천마가 있는 곳은 어느 회사 사무실이었다.
그래.
이번 광고의 컨셉은 다름 아닌 ‘직장인 천마’였다.
직장인이라니.
‘아···. 새벽 3시까지 잘 기다렸다.’
그거 하나만으로 동질감을 느낀 직장인은 속에서 뿌듯함이 쫘악 올라왔다.
천마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장면으로 광고는 시작했다.
약간 지루해 보이는 얼굴. 뒤로 깔리는 잔잔한 음악은 나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무드는 얼마 가지 않았다.
둥! 둥!
베이스로 만든 비트와 함께 음악이 변주된다.
천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불현듯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창밖으로 던졌다.
“헙!”
갑작스런 변화에 직장인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쨍그랑!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전환되고,
둥- 둥- 둥- 둥-
어딘가 가슴을 두방망이질 치는 비트가 깔리기 시작한다.
휘이이이익
깊음이 깊음을 부르며, 어느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 듯한 감각을 선사하는 노래가 깔린다.
떨어지던 스마트폰이 허공에 멈춰선다.
그 뒤로 다른 스마트폰이 도미노처럼 촤르르륵 나타나기 시작했다.
열이 맞춰진 그 모습은 과녁과도 같았다.
음악의 템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의 지루함은 거짓말이라는 듯.
곧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듯 분위기를 고조되는 음악.
동시에 반대편으로 화면이 전환된다.
양복을 입은 채, 활시위를 당시는 천마.
활대는 끊어질 듯 팽팽해지고,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순간.
—————.
소리가 멈춘다.
콰-과-과-과-각!
그리고 부서진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목표를 정확하게 꿰뚫으며, 화살 깃만 보일 정도로 관통한 화살과,
무너져 내리는 과녁들.
그 순간, 새로운 음악이 시작된다.
동시에 화살촉 끝에서 파문이 일며, 그 중심에서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타났다.
매트한 블랙 컬러, 엣지에는 고급스러운 금색 테두리가 있고.
화살이 꿰뚫은 정중앙에는 일렁이는 파문 문양이 그대로 남은.
[ZERO]
[Renovation, New Ecology]
바로 진성의 새로운 시리즈, ‘ZERO’였다.
.
.
.
광고는 끝났다.
스턴이라도 걸린 듯 멍하니 화면을 보던 직장인은,
3
2
1
!
“우와아앗악!”
비명을 질렀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세상에.
첫 광고라 기대하고는 있었는데!
우리 천마가 사람 홀리려고 아주 작정을 했네?
천마 광고를 봤으니 언패킹 행사는 이제 아웃 오브 안중이다.
직장인은 얼른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이 기분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역시나 천마 게시판에는 새벽 3시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던 동지들이 사진과 정보를 날라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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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자본의 맛이라는 건가
(캡처)
대기업 자본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나 원래 사과쪽인데 천마가 모델하는 거 보고 바꿀까 심각하게 고민중ㅜㅜㅜㅜㅜㅜ
(캡처) (캡처) (캡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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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밑으로 댓글이 난리났다.
- 내가 이걸 위해서 지난주에 액정을 깼다ㅎㅎㅎㅎ
ㄴ 나도 광고보면서 액정 깨버림ㅋㅋㅋ
ㄴ 이거 미친놈들인가
- 이번 천마 에디션에 포카랑 천마가 직접 디자인에 참여한 가죽 케이스 들어간다던데
ㄴㅇㅋ 통장깬다
- 그런데 천마 에디션 왜 한정판임? 진성 빨리 일해라.
광고는 호평이었다.
‘솔직히 천마가 캐리했지.’
적절하게 전환되며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음악.
천마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활쏘기’ 퍼포먼스.
이를 통해 혁신이라는 메시지의 전달까지.
‘조합이 완전 미쳤잖아.’
솔직히 에이플 광고보다 좋았다. 에이플은 ‘원래 잘했던 거 잘한’ 느낌이라면, 진성전자는 진짜 칼 갈고 뭔가 보여준다는 게 제대로 느껴졌다.
기대감.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기대감은 구매욕을 상승시켰다.
물론 광고가 어떻든 직장인의 구매계획은 변함이 없었겠지만.
직장인은 실실 웃으면서 댓글들에 모두 좋아요를 누른 다음, 사전 예약 정보를 찾으러 다녔다.
그때 새로운 정보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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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 CG 아니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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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뭔 소리야?
*
진성전자는 이번 ZERO 시리즈에 칼을 갈고, 이를 갈고, 아무튼 갈 수 있는 거는 다 갈고 나왔다.
천마의 방송에 1억 후원을 날리며 화제성을 불러일으켰고, 에이플과 정면 대결을 하며 판을 키웠다.
덕분에 팬들이나 폰을 바꾸려고 기웃거리는 소비층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관심에 방점을 찍은 건, ‘메이킹 필름 영상 공개’였다.
[당신 진짜 사람 맞아요? ㅣ 천마의 메이킹필름 대공개]
보정 하나 없이 현장감 가득한 곳에서, 천마가 화살 한 대로 스마트폰 10대를 ‘진짜로’ 꿰뚫는 순간.
- ?????
- 와···뭐지? 내가 뭘 본거지????
- 저건 뭐하는 새끼냐??
- 한국 양궁 국대 뭐하냐? 얼른 천마 모셔가야지
ㄴ 양궁 국대팀이 천마 방송에서 후원 날릴 때까지 숨 참습니다
일반 대중들까지 환호했다.
특히 이 장면은 사람들이 가지고 놀기 좋은, ‘숏폼 콘텐츠’에 적합했다.
천마의 퍼포먼스도 퍼포먼스지만, 음악도 한몫했다.
이른바 ‘변신 스타일’을 보여주는 음악이랄까.
숏폼에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음악이 반전되면서 스타일이 확 바뀌는 영상이 나오는 콘텐츠가 많다.
그리고 천마가 만든 음악은 이 스타일에 딱 맞았다.
자극적인 보컬 없는 느린 템포. 그저 일상의 배경 같은 음악.
그 속에 있던 평범한 직장인이,
이후 이어지는 통통 튀는 비트,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느낌이 나는 코러스와 함께,
활을 쏘며 모조리 박살 내버리는 모습이라니.
이건 숏폼에서 가지고 놀기 딱 좋았다.
덕분에 뜻하지 않은 숏폼 프로모션에도 성공한 것이다.
- 에이플도 잘하기는 했는데, 진성은 진짜 반전이네;;;;
- 솔직히 누가와도 이 임팩트는 못이길듯
모두의 이목을 끌어모은 채, 두 기업은 사전 예약을 시작했다.
그리고 에이플과 유니트론은 실책을 저질렀다.
천마 앞에서, 그저 잘하는 걸 ‘유지’만 했으면 안 되었다.
< 광고 배틀 (4)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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