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60화 (160/191)

< 광고 배틀 (5) >

차선우는 요즘 계속 한국에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바빴다.

진성전자 광고는 진작에 끝났지만, 진성은 진성이고 천마신교는 천마신교다.

그 뒤로도 줄줄이 이어지는 스케줄이 차선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천마신교 소속 아티스트의 관리도 있었고, 그 아티스트 중에는 길성진도 있었다.

올해 2년 차 가수가 되는 길성진.

데뷔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길성진의 폼은 요즘 물이 올랐다.

오늘도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본 길성진은 댓글들을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남성 보컬리스트의 계보를 이을 유망주’라니!

몇 년 전 천마에게 패배하고 좌절하던 모습이 오버랩되며, 괜스레 가슴 한구석이 뿌듯해졌다.

“어쩌면 지난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닐까.”

길성진의 혼잣말을 듣고 옆에 있던 차선우가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지금의 너가 있는 건 내 덕분이지. 정신 안 차리고 똑바로 연습 안 할래?”

“아 진짜! 쉬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십 분밖에 안 지났다고요! 그리고 이만하면 제 실력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차선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뭐? 실력이 좀 괜찮아?”

뭐라고 대답하려던 길성진은 차선우의 눈을 보았다.

“.......”

차선우는 진심으로 한심하고, 어이없어하는 눈빛으로 길성진을 쏘아보고 있었다.

꿀꺽-

그 시선에 길성진이 살짝 쫄았다.

“아니··· 뭐. 천마 님의 기준에는 못 미치겠지만, 지난 강호행 이후에 저도 엄청 늘었다고요. 지난 앨범도 잘 팔렸고, 이번에 가면가왕에 나가서도 세번이나 연속으로 우승했고···.”

길성진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건 사실이었다.

차선우가 봤을 때도 ‘무림에서 스승님이 봤다면 제자로 들였을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길성진이니까.

거기에 더해 천마의 지도 아래 특별 트레이닝도 받았고, 미국에 가서 여러 아티스트와 어울리며 공부도 하고 왔다.

천마신교 내에서는 천마를 제외하고는, 길성진을 뛰어넘을 사람이 없다.

오죽하면 미니롱도 길성진의 재능을 내심 부러워했겠는가.

아직 한국에만 머물러 있긴 하지만, 길성진은 분명한 천재였다.

하지만, 부족했다.

그것도 많이.

‘어째서 그 재능을 가지고 아직 저것밖에 못 하는 거지?’

저 좋은 재능을 가지고?

더 나아질 여지가 분명한데?

실력은 언제나 성장하는 게 아니다.

노력에도 때가 있다.

지금은 실력에 자신감을 가질 때가 아니라, 더 노력해서 실력을 갈고닦는 게 중요한 때이다.

이미 그 길을 지나 본 차선우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재능만 믿고 있다가 도태된 놈들만 해도 한 트럭이지.’

이미 한 식구가 된 길성진이다.

차선우는 길성진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랐다.

적어도 천마신교에 들어온 녀석들은 만족하면 안 되지.

끊임없이 치고 올라가 최고를 찍어야지.

근데 뭐?

실력이 좀 괜찮아?

차선우는 부글거리는 마음을 속으로 삼켰다.

‘어디 저 새끼 좀 자극할 만한 놈 안 나타나나.’

이럴 때는 라이벌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쭉 늘어나는데.

하지만 이런 차선우의 속도 모르는 길성진은······.

“아무튼. 이제 저도 어디 가서 노래 좀 한다는 말은 듣는다고요.”

틱-

차선우의 머릿속에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

안되겠다.

오늘 좀 맞자.

“이 새끼가 좀 잘나간다고”

퍽!

“허파에 바람이 들어서.”

퍼억!

“세상에 노래 잘 부르고 곡 잘 쓰는 천재가 얼마나 많은데”

퍼어억!

“실력이 어쩌고 어째?”

퍼어어억!

“이 악마!”

“천마다 이 새끼야!”

길성진이 반항한답시고 몸을 뒤틀었다.

물론 어림도 없었지만.

그리고 문 뒤에서 이 광경을 황망히 쳐다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진성그룹 회장인 김재범.

“.......”

그는 지금 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

김재범은 직접 천마신교를 방문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차 안에서 그는 이번 ZERO 시리즈의 반응을 검토했다.

제일 먼저 확인한 건 광고평론가의 비평이었다.

[천마의 첫 광고다. 처음이 주는 신선함, 퍼포먼스의 파격은 대중의 주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또한 영리하게 음악을 사용하여 숏폼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는 젊은 층에도 매력을 어필···.]

김재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흠흠, 역시. 천마를 모델로 내세운 건 좋은 선택이었군.”

그는 내친김에 에이플의 광고 평론도 찾아보았다.

노골적으로 타 기업과 비교하는 건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보는 눈도 없겠다, 김재범은 태블릿을 조작하여 재빠르게 에이플의 광고평론을 찾았다.

전반적으로는 평점이 높았다.

창의성 3.3점

예술성 (청각) 3.6점

두 분야만큼은 아쉬운 평점을 받았다.

[역동적이면서도 세련된 영상미는 어째서 에이플이 광고의 명가라고 하는지 증명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에이플의 오랜 전략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훗!”

좋게 표현했지만 풀어보자면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는 거다.

김재범이 물밑 반응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이 광고 때문에 에이플 유저 사이에서 유니트론은 대차게 까이고 있었다.

- 왜 에이플은 이거밖에 못함?

- 유니트론 천재라며? 근데 만든게 걍 똑같은거네?

- 천재는 무슨ㅋㅋㅋㅋ 유니트론이 아니라 천마를 데려왔어야 했음

ㄴ ㅇㅈㅇㅈ 꼴에 천마에게 고나리질했다가 개털렸네

ㄴ 진짜 천재는 천마고, 유니트론은 천재호소인 쯤 되는거냐?

아무튼 평론뿐만 아니라 대중 반응, 그리고 어제 집계한 사전 판매 성적까지.

모든 게 좋았다.

김재범은 전율했다.

에이플을 이기다니!

그것도 에이플이 제일 잘한다는 광고로!

‘이게 바로 천마 이펙트인가···!’

여동생인 김소현이 천마 방송에서 1억을 날릴 때만 해도, ‘쟤가 저게 많이 하고 싶었나 보다’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당연히 이게 이만큼의 효과를 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방송에서 쓴 1억?

아니면 천마에게 해준 국대 최고의 대우?

천마가 벌어다 준 돈에 비하면 거기 들어간 돈은 우습다.

그래서 이번에 감사 인사도 전하고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맺자는 의미에서 천마신교를 직접 찾아왔는데.

퍽 퍽 퍽 퍽 퍽!

보이는 건 구타 현장이었다.

“크, 크흠.”

김재범은 헛기침을 하면서 존재를 알렸다. 맞고 있던 길성진이 김재범을 보고 놀라서 튀어 올랐다.

“헐 김재범 회장님? 어떻게 이렇게 누추ㅎ-읍읍”

그리고 헛소리가 튀어나오려는 순간, 차선우가 길성진의 아혈을 점하고 쫓아냈다.

“가서 얌.전.히. 있어라.”

“으븝븝”

약하게 점혈했으니 시간이 조금 지나면 바로 풀릴 것이다.

차선우는 터덜거리며 돌아가는 길성진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길성진은 다시 시간을 내서 잘 타이르기로 하고, 차선우는 김재범과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김재범이 먼저 수행비서를 통해 들고 온 선물을 전달했다.

“[ZERO] 50대입니다. 약소하지만 선물입니다. 지인분들과 직원들에게 나눠주면 좋을 거 같아서요.”

50대만 해도 거진 일억 원이다.

차선우는 감사히 받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다.”

“제가 감사드려야죠. 이번에 새로운 사옥으로 이전한다고 하셨죠? 진성에서 데스크톱과 노트북도 새로운 라인을 개발하고 있는데 한번 이용해보시죠.”

···이거 혹시 신종 판매전략인가?

이 상황에도 영업을 하다니, 진성그룹 회장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들은 이후로도 진성 모델 계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 마지막 안건인 ‘건축가’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차선우가 말했다.

“김소현 이사장이 프랭크 리를 소개해준다고 했는데 말이죠.”

“그렇지 않아도 김 이사장은 지금 영국으로 넘어가서, 프랭크 리를 직접 만나서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김 이사장 대신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됐지요.”

“오. 김소현 이사장이 직접요?”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차선우는 이때만 해도 몰랐다.

김소현 이사장이 직접 나섰다는 건, 그만한 ‘문제’가 터졌기 때문이었다는 걸.

*

캘리포니아에 있는 예술적인 건물의 맨 꼭대기.

에이플의 대표는 복잡한 숫자들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는 서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서류 가장 하단에, 굵은 글씨체로 강조된 숫자 하나가 눈에 띈다.

5,108,299대.

지난 일주일간 에이플이 사전 예약으로 팔아치운 사과폰의 수량이다.

대표는 서류의 뒷장을 넘겨보았다.

그 뒤에도 빼곡한 숫자들과 하단에 강조되어있는 숫자가 보인다.

2,201,520대.

진성의 새 시리즈인 ZERO가 일주일 동안 사전판매로 팔아치운 수량이다.

지표는 2배를 넘어서 거의 300만에 가까운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압도적인 수치로 에이플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고작 삼백만밖에 차이가 안 난다라···. 완전히 당했군. 전작 대비 사전 판매는 얼마나 떨어진거지?”

옆에 바짝 긴장한 자세로 서 있던 실장이 보고했다.

“죄송합니다. 15%가량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전 판매 기준이라 첫날 개통량은···.”

대표가 말을 자르고 물었다.

“진성 ZERO는?”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신작 ‘ZERO.’

“전작의 사전 판매는 100만 대였습니다. 이번 모델에서 판매율이 230%가량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에이플이 전작 대비 15%가 떨어진 데에 비해, 진성은 2배 넘게 늘었다.

세부적인 지표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텃밭이던 일본에서는 무서운 속도로 격차가 줄어들고 있었고, 왠진 모르겠지만 중국 시장에서도 진성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표면적인 판매량이 잘 나왔다고 해서, 그저 진성보다 300만 대를 더 팔아치웠다고 해서.

절대 잘했다고 칭찬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회의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 가운데 실장이 보고를 계속 이어갔다.

“진성 측의 광고가 이번 사태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판명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광고가 이 정도의 영향을 준 적이 없는 까닭에, 우리 쪽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광고가 중요하기는 하다.

그런데 그 광고가 기존의 스펙 차이를 뒤집을 만큼 영향력을 보인 적은 없었다.

진성 ZERO가 아무리 성능 업그레이드를 했다고 해도, 에이플을 따라오기에는 아직 한 끗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마의 광고는 모든 판을 뒤집어버렸다.

“진성 측에서는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게 숏폼 콘텐츠로도 유행하면서 젊은 층을 공략했습니다.”

새로운 아이덴티티의 확립.

그게 에이플을 주 소비층이었던 2030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그리고 에이플은 거기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는 것.

뼈아픈 실책이었다.

실책은 그것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에이플 대표가 말했다.

“천마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너무 컸어.”

진성전자에서 천마를 모델로 기용하는 순간, 천마 팬들 중 일부는 그쪽으로 넘어갈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라고 생각했다. 그 팬들도 천마 에디션이니 뭐니 하는 한철 유행이 지나면, 결국 사과폰으로 돌아올 여지가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에이플이 유니트론을 쓰면서 그 여지를 없애버렸다.

천마 팬들이 유니트론에 대해 가진 적개심이, 에이플에 대한 비호감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 응, 대가리 깨져도 에이플껀 안산다

- 에이플은 평생 유니트론이랑 짝짜꿍 하세요~

거기에 이번에 에이플이 졌다는 게 확실시되면서, 에이플에 루저 이미지까지 붙어버렸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번 승부 하나로 잃은 게 너무 많았다.

에이플의 대표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골치 아프군.”

하지만 이미 일은 일어났다.

여기서 내부적으로 니탓이니, 내탓이니 하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우리 모델은 어차피 유니트론이다.”

이제와서 모델과 광고를 바꿀 수도 없다.

그건 그냥 패배를 인정해버리는 꼴이다.

이럴 때일수록 아무렇지 않은 척, 지금의 기조를 밀고 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유니트론의 주둥아리가, 이번에는 에이플 안에서 터지리라는 걸.

< 광고 배틀 (5)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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