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61화 (161/191)

< 우리 건축가가 이상해요 (1) >

에이플 대표가 ‘유니트론으로 밀고 나가자!’라며 밀어붙이려던 그 시각.

유니트론은 토크쇼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유니트론은 지난 리드 싱글을 내면서 준비했던 곡들로 곧바로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이번 토크쇼는 정규앨범 활동의 일환이었다.

헌트 뮤직의 푸쉬로 미국 내에서도 인지도 있는 토크쇼에 나올 수 있었고, 말주변이 없는 유니트론을 위해서 토크쇼 측에선 특별히 대본까지 준비해주었다.

대기실 안.

특별히 준비한 대본은 저기 테이블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유니트론은 대본이 아닌 SNS에 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 발렸네

ㄴ 발렸군

ㄴ 발렸어

- 나는 유니트론이 아가리 털 때 당연히 천마는 이긴다고 생각했어ㅋㅋㅋㅋㅋ

ㄴ 근데 발렸죠?

ㄴ 개 발렸죠?

“음······.”

유니트론은 평소 SNS 모니터링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남들이 하는 말에 신경을 쓰는 편도 아니고, 그 시간에 음악에 몰두하기도 바쁘니까.

하지만 최근,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광고 사건이 있고 나서 상황은 더 심해졌다.

회사에서도, 광고주도, 스탭들도, 주변 지인까지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힐끔거리며 ‘누가 이겼네’, ‘누가 졌네’ 따위의 말을 내뱉고는 했다.

그 말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은근히 신경이 거슬렸다.

‘어렵군.’

유니트론은 난감했다.

데뷔하기 전만 해도 그냥 음악에만 몰두하면 끝이었다.

그저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만 하면 되었는데.

하지만 데뷔하고 나니 상황은 유니트론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 유니트론 노래는 좋은데 여러 번 듣다 보니까 좀 질리네

내 음악에 대해서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알아야 했고,

- 유니트론은 왜 말을 저딴 식으로 하지? 걍 입 좀 다물고 있으면 안 되나?

내 행동에 대해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고려해야 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건 유니트론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유니트론은 이번에도 제일 잘하는 걸 하기로 했다.

분석.

유니트론은 어째서 사람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그 데이터를 쌓기 위해 계속해서 반응을 찾아보았다.

유니트론은 닥치는 대로 댓글들을 읽었다.

선플이건, 악플이건 가리지 않고.

유니트론이 거의 빠져들 것처럼 SNS에 몰입하고 있을 때였다.

대기실에 들어오던 매니저는 황급히 유니트론에게서 스마트폰을 뺏었다.

“이건 당분간 압수다.”

유니트론은 어딘가 퀭해진 눈으로 되물었다.

“왜?”

“말이라고 해? 너 천마 광고가 나온 이후부터 계속 폰만 들여다보고 있잖아. 지금 너 SNS 중독이라고.”

매니저는 인상을 쓰며 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천마 광고가 그렇게 신경 쓰이는 거냐? 네가 잘 못한 거 같아서?”

“신경 쓰이기는 하지.”

“음?”

유니트론이 천마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에, 매니저는 조금 당황했다.

음악에 관해서는 언제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놈이, SNS 댓글을 보고는 의기소침해졌나 싶기도 했고.

하지만 유니트론은 매니저의 걱정에서 약간 핀트가 벗어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니트론은 천마의 광고음악을 떠올렸다.

댓글에서 봤던 터무니없는 비난에 매몰되지 않고,

천마 광고를 봤을 때 그 순간 순수하게 느꼈던 감상을 떠올렸다.

“아름다웠어.”

“뭐?”

광고에는 회사에서 정해준 방향이 있고, 감독이 원하는 그림이 있었다.

그 안에서 유니트론은 그저 역할에 맞게 음악을 짜 맞추었다.

그래서 유니트론은 거기에 필요한 감성을 학습했고,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걸 최적화시킨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마치 주어진 틀 안에서 롤 플레잉을 하듯이.

그 안에는 음악의 기준이 되어야 할 유니트론 ‘자신’이 없었다.

즉 이번에도 천마의 말대로 텅 비어버린 노래를 뽑아낸 것이다.

그런데 천마는 달랐다. 광고조차 ‘천마화’하는 건···.

“...새로웠지. 색다른 공식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매니저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유니트론이 진짜로 천마가 잘했다고 생각하든 말든.

그건 개인의 생각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건 다른 일이었다.

어쨌거나 유니트론은 에이플의 모델이었으니까.

매니저는 진지한 표정으로 유니트론에게 말했다.

“야, 너 어디 가서 천마가 낫다느니 하는 그런 얘기는 절대 하지 마라.”

이미 에이플이 진성에서 밀렸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유니트론이 진짜 이런 말을 해버린다면···.

‘에이플 쪽 타격이 엄청나겠지.’

패배를 인정해버리는 꼴이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대기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오늘 참여할 토크쇼인 ‘미드나잇 쇼’의 호스트였다.

예전에 천마는 어느 토크쇼를 하나 날려버린 적이 있다.

미드나잇 쇼는 그때 경쟁 토크쇼가 사라지면서 수혜를 입은 곳으로, 그 일 덕분에 최근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천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미드나잇 쇼의 호스트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얼핏 천마의 이름이 들려오자 눈을 반짝였다.

“무슨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겁니까?”

하지만 매니저는 딱 잘라 말했다.

“아닙니다. 개인적인 얘기에요. 무슨 일이죠?”

“별거 아닙니다. 인사 나누려고 왔죠. 오늘 한번 잘해봐요.”

호스트는 마치 먹잇감을 보는 눈빛으로 유니트론을 훑고는, 쇼의 전반사항에 대해서 이야기한 후 나갔다.

호스트가 나가자마자 매니저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오늘 진짜, 무조건 입조심 해. 아무래도 저 사람 뭔가 눈치챈 거 같으니까.”

유니트론은 토크쇼에서 가끔 톡톡 튀는 솔직한 발언으로 4차원의 이미지를 얻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이미지가 편집에 따라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솔직함과 무례는 한 끗 차이니까.

지금까지는 유쾌한 편집을 이용해서 ‘솔직한 4차원 천재’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지만, 시기가 시기다. 이럴 때는 조금 몸을 사릴 필요도 있었다.

심지어 이 토크쇼 호스트는 천마와 친분관계가 있었다.

아니, 천마에게 호감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지금의 유니트론은 누가 봐도 먹음직스러운 먹이다.

‘방송에서 저 폭탄 주둥이가 터진다면?’

매니저는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유니트론의 입을 단단히 단속할 필요를 느꼈다.

매니저는 유니트론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유니트론, 이거 하나만 확실하게 기억해. 만약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무조건 모르겠다고 대답해.”

“알았어.”

“무조건이야.”

“알았다니까 그러네.”

유니트론이 사회성이 부족하지만, 바보는 아니다.

오히려 자기 객관화는 확실하게 되어있는 편이기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녹화 현장.

쇼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호스트의 능숙한 진행으로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미드나잇 쇼의 호스트가 질문을 던졌다.

“아까 제가 대기실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천마가 본인보다 훨씬 낫다고 하셨잖아요.”

“네?”

“시침 떼시기는. 아까 분명히 들었거든요. 그럼 질문을 바꿔서 물어보죠. 정말로 본인의 광고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까?”

유니트론은 호스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는 천마가 이번 광고음악을 자신보다 더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매니저는 이렇게 대답을 하면 안된다고 말했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대답을 내기는 싫은데.

적당한 대답이 뭐가 있을까?

“.......”

생각하느라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유니트론이 망설이는 모습을 본 호스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건수를 잡았다는 걸!

그는 유니트론이 고민한 시간조차 없게 곧바로 추가 질문을 던졌다.

“아니면 최근 본인의 음악이 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건 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니트론이 고민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대답이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매니저에게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래서 유니트론은 아까 매니저가 말해준 대로 대답하기로 결정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아쉽게도 오답이었다.

*

유니트론이 소속된 헌트 뮤직그룹에서는 해당 내용을 편집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미드나잇 쇼가 이런 흥미진진한 떡밥을 놓칠 리가 없었다.

미드나잇 쇼는 오히려 유니트론의 대답을 강조해서 편집했다.

물론 유니트론에게 안좋은 쪽으로.

악마의 편집을 가미하니, 유니트론이 천마가 자신보다 낫다는 걸 인정하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해당 방송분은 금세 논란이 되었다.

특히 에이플 유저들 사이에서 유니트론은 역적이 되었다.

- 내가 더 잘났다는 말 하기가 그렇게 어렵냐. 지난 인터뷰에서는 잘만 하더니.

- 존나 비싸게 구네

- 진짜 저 새끼 병신 아니냐? 본인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이해하기는 하는 건가?

평소라면 ‘잘 모르겠다’라는 발언은 그냥 넘어갈 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에이플이 밀리는 상황이고, 그런 상황에서 에이플 모델이 옹호하기는커녕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넘어가려니 문제가 될 수밖에.

그렇지 않아도 답답했는데, 광고 모델이라는 놈이 저런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니 복장이 터졌다.

- 이건 좀 쉴드 불가인 듯;;;

- 유니트론 노래는 좋았는데 사람은 좀 그렇다. 에이플 유저들이 빡치는 것도 이해가 돼. 뭐, 나는 그래서 천마 에디션 쓰고 있지만!

- 에이플은 무슨 죄냐ㅋㅋㅋ 돈은 돈대로 쓰고 모델이라는 놈은 뒤통수나 때리고 앉아있네

- 꼴도 보기 싫네. 에이플은 뭐하냐? 저딴 놈 걍 계약 해지나 해버리지

유니트론은 태도 논란에 휩싸였고, 하필 정규앨범 막 시작하던 차라 활동에 적신호가 울렸다.

그리고 차선우는 일련의 과정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지난번 인터뷰를 할 때부터 말하는 꼬라지가 아슬아슬하더니.

언제고 이 사달을 일으킬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하필 지금이라니.

차선우는 얼마 전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해보았다.

[미드나잇 쇼 : 잘 지내시죠? 이번에 방송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한 건 했습니다. 언제 한번 우리 쇼에도 놀러 오시죠!]

차선우를 의식한 미드나잇 쇼에서 편집에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었는데.

“그래도 고맙네.”

원래도 이긴 싸움이지만 확실히 종지부가 찍힌 느낌이다.

에이플과 그쪽 이용자의 심기를 제대로 거스른 유니트론은, 아마 당분간 보기 힘들지 않을까?

“이게 다 자기 업보지.”

더는 유니트론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는 이렇게 마무리 짓고.

“건축가를 만나러 가볼까.”

차선우는 천마 타운 건설 건으로 영국에 방문했다.

프랭크 리는 환갑을 훌쩍 넘은 노장이다.

요즘 시대에 환갑이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역만큼 왕성하게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하지만 김소현 이사장이 직접 프랭크 리를 설득하러 갔기에 별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장 천마 타운의 조감도를 볼 기대를 하고 갔는데.

“으히히히힉!”

“.......”

이 노인네는 또 뭐지?

< 우리 건축가가 이상해요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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