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락 스피릿 어게인 (1) >
런던의 한 프라이빗한 카페.
김소현은 차선우와 마주하고 있었다.
‘왜 갑자기 직접 만나자고 한 거지?’
피차 바쁜데 얼굴까지 볼 이유는 없다.
드래곤플라이와의 만남은 그냥 이쪽에 오케이 사인만 보내면 알아서 진행하면 되는데.
차선우의 얼굴을 보던 김소현은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다.
‘설마···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건가?’
하긴, 생각해보면 차선우가 그냥 만나자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차선우와의 만남은 언제나 놀라운 일들로 이어졌다는 걸 떠올렸다.
처음 방송국에서 만났을 때부터, 전시회와 광고, 얼마 전 프랭크 리의 정신을 돌아오게 한 일까지.
그 사실을 깨닫자 김소현은 괜히 들뜬 기분이 되었다.
‘과연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그리고 차선우에게서 ‘그 제안’을 듣는 순간, 김소현의 감정은 단순히 들뜨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기겁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찻잔을 내려놓는 손끝이 살짝 떨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김소현은 혹시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해서 되물었다.
“그러니까, 천마타운을 한국 대중문화의 메카로 만들어 보겠다고요?”
그에 반해 거대한 폭탄을 던진 당사자인 차선우는 시종일관 여유롭기만 했다.
차선우는 여유롭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들으신 대로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생각하냐고?
천마타운을 한국 대중문화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대담하다.
아니, 대담한 걸 넘어서 파격적이다.
한 나라의 대중문화를 상징해 보이겠다는 계획이 어디 쉽게 나올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문제는,
“흐음··· 이거 그럴듯한데요?”
김소현이 차선우의 제안에 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차선우의 계획을 들은 김소현은 20여 년 전 유럽에서 있었던 한 일화가 떠올랐다.
‘빌바오 효과!’
한 도시의 건축물이 그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나 현상을 말한다.
35만 명의 인구를 가진 쇠락한 도시 빌바오.
빌바오는 도시 재생의 핵심을 문화 관광도시로의 전환이라고 생각했고, 구겐하임 박물관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 건축을 맡은 게 바로 프랭크 리였다.
그리고 빌바오의 계획은 대성공을 거뒀다.
프랭크 리의 실험적인 디자인은 구겐하임 박물관은 미술관 건축양식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걸 보기 위해 매년 100만 명의 관광객이 빌바오를 방문했다.
그리고 매년 수천억 원을 벌어들이며 개관 3년 만에 박물관을 지을 때 빌린 금액을 모두 갚으며 흑자 전환에 성공하였다. 구겐하임 박물관이 빌바오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건 당연한 말이었다.
차선우의 이야기를 들어보건대, 이걸 한국에 도입해보겠다는 것 같았다.
김소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어. 일단 관광객은 충분히 확보가 되었으니까.’
천마 타운은 프랭크 리의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천마신교의 팬들도 꾸준히 천마타운을 방문하겠지.
천마와 천마신교의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이 관광객의 수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날 것이다.
천마타운을 채울 콘텐츠도 확실하다.
‘여기에 홍대 인근에 밀집해있는 버스킹 장이나 소공연장 시설을 정비, 확충하면 그쪽에 있는 뮤지션들도 쉽게 끌어올 수 있겠지.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도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찾아올 거고.’
그렇게 몰린 아티스트들은 천마타운을 중심으로 공연을 한다.
아티스트가 많아질수록 대중들은 점점 더 천마타운을 보러 오겠지.
몇 년 정도 이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으면 천마신교와 천마타운은 정말로 대중문화의 메카가 될 것이다.
‘경제적인 효과도 엄청나겠는데?’
구겐하임 미술관이 개관한 이후, 근처에 있는 호텔은 10배나 증가했다.
일자리만 수천 개가 늘어난 건 덤이다.
천마타운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구겐하임의 반만 따라간다 해도 돈을 쓸어 담겠지.
그리고,
‘정치권에서 이걸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텐데.’
관광 효과로 인한 수백억의 세수부터, 수천 개의 일자리 창출까지.
천마타운에 숟가락만 걸칠 수 있다면 다음 선거는 따놓은 당상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구 단위가 아니라 서울시에서 나서서 편의를 봐줄 수도 있겠는데?’
아마 차선우와 어떻게든 연줄을 대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이 줄을 설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김소현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대단하다는 말 말고는 차선우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후원해 볼 만한 젊은 아티스트’였던 차선우는, 이제 진성 문화재단과 동등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야기할 수 있는 파트너의 위치까지 올라왔다.
차선우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생각은 좀 정리가 되셨는지?”
김소현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이건 기회였다.
진성을 더욱 키울 수 있는 기회.
여기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기업인이라고 할 수 없지.
“더 생각할 게 있나요. 필요한 게 있다면 진성에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김소현의 취향은 확고하다.
클래식 리사이틀, 오페라, 뮤지컬, 미술 전시회 등.
그리고 그녀의 취향을 뒷받침하는 게 바로 진성 문화재단이다.
김소현은 예전에는 대중문화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차선우를 만나면서 대중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느끼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진성의 문화예술재단이 대중문화 부문에서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무조건 남는 장사다.
김소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안서를 보내주시면 저희도 거기에 맞춰 새로운 사업을 검토해 보죠. 아, 그리고 정치권과의 자리는 이쪽에서 마련해드리면 되겠죠?”
차선우도 마주 웃었다.
‘확실히 김소현은 말이 잘 통해서 좋단 말이지.’
한마디를 하면 이쪽이 뭘 필요로 하는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그것에 맞춰서 준비를 한다.
꽤 괜찮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받을 건 받아야지.
“그럼 이제 소개해주신다는 드래곤플라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
1990년대 영국의 국민밴드라고도 불렸던 드래곤플라이.
사실 드래곤플라이는 해체했다고 해도 무방한 밴드였다.
그 주된 이유는 바로 게럴드 형제의 싸움이었다.
드래곤플라이의 송 라이팅을 담당하는 형과 보컬인 동생은 거의 원수나 다름없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대판 싸운 두 사람은 이후 개인 활동만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김소현이 한곳에 모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콘서트를 앞두고 오랜만에 합주를 하기 위해 모인 게럴드 형제는 싸움을 시작했다.
발단은 동생 게럴드가 만들어놓은 꿀, 레몬, 사과 식초 따위를 섞어놓은 음료를 형이 마시는 것이었다.
음료를 들이킨 형 게럴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욱, 이거 뭐야 시발. 아직도 병신같은 음료수 먹고 있냐? 그렇다고 맛탱이 간 목소리가 돌아오는 것도 아닐 텐데.”
동생 게럴드도 당연히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뭐래 쓰레기 새끼가. 내 목이 맛탱이 간 건 다 너 때문이잖아. 니가 병신같이 기타 볼륨을 900까지 올리지만 않았어도 내 목은 멀쩡했을 거다.”
“그게 왜 나 때문이지? 다 니가 목 관리를 좆같이 해서 그런거 아니야? 그 나이 먹고 아직도 핑계를 대니까 니가 그 모양 그 꼴인 거야.”
이내 몸싸움으로 번지는 다툼을 중재하던 기타리스트는 생각했다.
‘어떻게 저 둘을 다시 붙여놓은 거지? 김소현도 대단하긴 하군.’
게럴드 형제를 함께 콘서트장에 세울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이었다.
제안을 들은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 한국? 하하, 거기 떼창은 진짜 미쳤지. 한국 애들은 다 정신 나간 것처럼 논다니까.
처음 내한 공연을 했을 때 한국 팬들이 드래곤플라이의 노래를 따라 부른 걸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모국어도 아닌 가사를 모조리 외우며 무대 위의 가수보다 더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관객.
그건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물론 그것 외에도 진성의 제안을 수락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드래곤플라이 멤버들은 활동을 제대로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밴드를 내팽개친 일이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깔끔하게 정리하고 털어버리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게럴드 형제가 저딴 식으로 싸우는 꼴을 보니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 기타리스트였다.
‘그냥 계속 마음의 짐으로 남겨둘 걸 그랬나?’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놈들이 별것도 아닌 이유로 싸우는 걸 보고 있자니 이쪽이 먼저 고혈압으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기타리스트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았다.
그래도 마침 두 사람의 싸움을 멈출 수 있는 소식이 하나 있었다.
기타리스트는 얼마 전 김소현이 했던 제안을 떠올렸다.
“이봐 게럴드들. 너네 천마를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
그러자 열심히 싸워대던 형제가 우뚝 멈췄다.
“천마? 이번에 토비 무어랑 같이 빌보드 1위 한 걔?”
“천마라면 나도 알지. 자기 방송에서 배틀 붙이는 애지? 걔도 참 재미있게 살던데.”
뜻밖에 두 사람은 차선우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쪽과 장르는 다르지만, 뉴튜브에 올라오는 작업 방식이 재미있어 보여서 한 번쯤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천마 하면 또 축구지!”
게럴드 형제는 엄청난 축덕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응원하는 팀은 다르지만, 축구에 진심인 두 사람이다.
당연히 그들도 차선우의 자선경기 영상을 보았고, 감명받았다.
두 사람은 싸움을 멈추고 차선우의 자선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크, 천마가 축구는 또 기깔나게 하지.”
“천마 축구 잘하는 건 인정. 내가 본 아티스트 중에서 축구는 천마가 최고다.”
“베컴이 인정한 거 보면 말 다 했지.”
아, 두 사람은 응원하는 팀이 다르다.
맨체스터 출신인 두 사람은 같은 연고지에 있는 다른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베컴? 맨유 엠버서더 따위가 뭘 안다고 인정을 하고 말고 나발이지.”
“뭐? 어디 근본도 없는 팀이나 응원하는 주제에 아가리를 놀리지? 나 같으면 쪽팔려서 아가리 닫고 있겠다.”
“응. 그래봤자 우리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주제에.”
“그거 기름 묻은 돈으로 산 거 아니야?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병신이.”
“응. 니네가 기름 쓸 때마다 우리한테 돈 들어옴.”
“...이 개쓰레기 같은 새끼가. 어디 다시 한번 지껄여봐!”
방금 전까지 천마를 주제로 이야기하던 두 사람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기타리스트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오늘만 벌써 이 장면을 3번은 본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합주를 끝내고 싶은 기타리스트가 말했다.
“그래서, 만날 거야 안 만날 거야?”
“당연히 만나야지!”
두 형제의 의견이 처음으로 맞아떨어졌다.
*
나는 드래곤플라이를 만나러 갔다.
무림에 가기 전.
그러니까 내가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그때 드래곤플라이의 노래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사람들 노래에는 낭만이 있었지.”
이 시대의 마지막 록스타라고 불리는 레전드 밴드이다.
그만큼 사건사고도 많고 기행도 많았지만, 그들의 터프한 행동에는 낭만이 있었다.
“앨범 하나 정도는 더 내줬으면 했는데.”
이제와서 그건 불가능하겠지.
게럴드 형제의 관계는 험악하다.
언론에서는 김소현이 두 사람을 같은 무대에 올린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찬양했다.
만약에 그걸 넘어서, 드래곤플라이가 새로운 앨범이라도 내게 만든다면···.
“그 정도면 락 팬들한테 영웅 취급 받을 수 있겠는데?”
하지만 그걸 누가 할 수 있으리.
그냥 이 사람들이 완전체로 모인 걸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게 최선이다.
살짝 기대되는 마음으로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
나는 개판을 보았다.
< 락 스피릿 어게인 (1) > 끝
ⓒ 연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