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락 스피릿 어게인 (2) >
후회.
돌이켜보면 드래곤플라이로 활동하는 동안 후회되는 일들이 참 많았다.
마지막 앨범을 녹음하는 날에도 다들 약에 쩔어서 엉망진창이었고,
마지막 공연 전날에는 술을 마시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했었다.
‘활동 중단마저도 그냥 싸우다가 홧김에 해버렸지.’
기타리스트는 드래곤플라이의 마지막을 회상했다.
아무런 합의도 없이, 그냥 평소처럼 싸우다가 이럴거면 그냥 갈라지자는 게럴드 형제의 말에 드래곤플라이의 활동은 끝이 나버렸다.
그러고 10년이 지났다.
감정은 희석됐지만, 그 일은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 되어 개인 활동을 하는 내내 마음속을 쿡쿡 찔렀다.
‘아마 다들 마찬가지겠지.’
어떤 방식이 되었든, 멤버들은 방치하고 외면한 활동을 매듭지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김소현이 직접 멤버들을 설득하러 왔을 때, 못 이기는 척 그 제안을 받아들였던 거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10년 만에 모여 공연 준비를 하고 있지만······.
“넌 아직도 노래 실력에 발전이 없냐? 사과식초를 먹는 게 아니라 트레이닝을 받지 그래?”
“니 새끼 정신분열증도 아직 그대로인데? 기타가 거기서 튀어나오면 어떡하냐 정신병자 새끼야.”
“.......”
10년 전에도 되지 않았던 게, 10년이 지났다고 될 리가 있나.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게럴드 형제는 으르렁거렸다.
이전부터 각자의 음악적 지향점이 달랐기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현상이 강했다. 10년 동안 개인 활동을 하면서 그 지향점은 극단적으로 달라져 버렸다.
10년 전에도 중재를 담당하던 기타리스트가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오랜만에 합을 맞춰서 익숙하지 않은 것 같군. 진정하고 다시 해보자고.”
겨우 흥분을 가라앉힌 드래곤플라이는 이내 그들의 대표곡인 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가 듣더라도, 이 노래가 그 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건 차선우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또 뭔 개판이야?’
지금 연습실에서 나오는 소리는 차마 제대로 된 음악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아마추어 고등학생의 공연도 이것보단 낫다.
‘고등학교 밴드부도 서로 맞추려는 노력 정도는 하지.’
합주를 하고 있는데 다들 그냥 자기 내키는 대로 연주하고 있었다.
베이스와 기타와 보컬이 완전히 따로따로 날뛰고 있다.
엉망진창이다.
차선우는 소리에 굉장히 예민하다. 불협화음이 귀를 계속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 상황을 보다 못한 차선우는 목소리에 내공을 가득 담아서 소리쳤다.
“그만!”
*
기타리스트는 지난 10년 동안 그룹 내에서 조율자 역할을 했다.
게럴드 형제 사이에 싸움이 발생하면 중재를 하느라고 위장약을 달고 살았었는데.
그는 오늘 처음으로 희망을 보았다.
차선우가 온 첫째 날.
처음 본 손님 앞에서, 부끄러움은 저 멀리 치워버린 게럴드 형제는 일관성 있게 싸움을 시작했다.
발단은 콘서트 세트 리스트의 작성이었다.
형 게럴드가 세트 리스트 하단에 노래 하나를 쓱쓱 적어넣었다.
“는 당연히 엔딩이지.”
“맨날 엔딩으로 하면 지겹지도 않냐? 꼰대 새끼 하여간 꽉 막혀가지고.”
“뭐라고?”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나 치고받으려는 순간, 가만히 지켜보던 천마가 조용히 말했다.
“그만.”
목소리에 담긴 기묘한 힘 때문일까? 두 사람은 곧바로 진정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10번 정도 더 진정을 시켜야 했지만, 어쨌든 세트 리스트는 결국 완성되었다.
단 하루 만에.
그것도 아무런 싸움 없이.
기타리스트는 천마를 보며 감탄했다.
‘...대단하군.’
이건 드래곤플라이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둘째 날.
게럴드 형제는 역시나 싸움을 시작했다.
이번 싸움의 원인은 마지막 앨범 리마스터링이었다.
리마스터링 이야기가 나온 ‘그 앨범’은 바로 드래곤플라이에게 후회를 남겨준 아픈 손가락이었다.
기타리스트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는 진짜 아수라장이었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녹음실에 있던 모든 멤버들은 술과 마약에 쩔어있었다.
거기에 극에 달한 형제간의 갈등까지.
일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당연히 퀄리티도 최악이었다.
동생 게럴드가 말했다.
“이번 콘서트에서 그 앨범 노래 3곡을 부르기로 했잖아. 근데 그거 사운드 구리더라. 손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형 게럴드는 곱게 넘어가지 않았다.
“지랄. 지가 약 빨고서 병신처럼 녹음한 주제에. 이제와서 다시 하자고? 양심이라는 게 없나 보지?”
“양심? 누가 녹음할 때 스튜디오에 없어서 개판으로 녹음된 건 기억 못 하나 보네?”
“.......”
다시 시작된 싸움에 기타리스트는 차선우를 흘깃 보았다.
어제처럼 나서줬으면 했지만······.
차선우는 그저 흥미로운 눈으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형이 기타로 동생의 대가리를 깨버리려는 대형 사고가 나기 직전에야 입을 열었다.
“그만.”
개같이 싸우던 형제가 얌전해졌다.
기타리스트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셋째 날.
이번에는 편곡 문제가 터졌다.
그리고 제일 해결하기 까다로운 문제였다.
두 형제의 음악관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중간에 기타 솔로가 너무 길지 않아? 그리고 노래는 또 왜 이렇게 팝스러워진거야?”
또 싸움이 시작되었다. 기타리스트는 PTSD가 왔다.
“.......”
그는 본능적으로 천마를 바라봤지만, 차선우는 이번에도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동생이 형의 입에 3,000만 원짜리 마이크를 쑤셔 넣기 직전, 그제서야 움직였다.
"그만."
싸움은 멈췄다. 하지만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언제까지 천마가 옆에서 일일이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기타리스트는 생각했다.
‘저 새끼들은 언제까지 싸우는 걸까?’
아마 콘서트가 끝나기 전까지 매일 저 지랄을 봐야 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기타리스트는 현타가 세게 왔다.
“진짜 못해먹겠네! 그래 씨발. 다 때려치우자고!”
원래 조용한 사람이 화가 나면 더 무서운 법이다.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집어 던지자 게럴드 형제는 싸움을 멈추고 눈치를 봤다.
기타리스트는 소파에 주저앉은 채 머리를 잡아 뜯었다.
‘우린 애초에 다시 모여서는 안 됐어.’
이제 밴드 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들었다.
한참 땅굴을 파고 들어가던 기타리스트는 문득 김소현이 천마를 소개해주겠다며 한 말을 떠올렸다.
- 천마 님에게는 통찰력이 있어요. 아마 그게 당신을 도와줄지도요.
천마가 도움이 되었다는 건 확실했다.
그가 없었다면 아마 아직까지 세트 리스트로 싸우고 있었을 게 뻔하다.
‘하지만 아무리 천마라도 저 두 새끼의 문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거야.’
어쩌면 제대로 된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타리스트의 희망은, 고작 사흘 만에 사라졌다.
‘그래. 그냥 여기서 끝내는 게 맞아.’
결국 기타리스트가 단념하는 순간.
가만히 있던 천마가 나섰다.
*
하루.
이틀.
사흘.
차선우는 드래곤플라이를 ‘지켜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재미있네.’
두 형제의 싸움에 저기 기타리스트는 고통을 받는 모양이지만.
원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아닌가.
그런데,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못 하겠는데?’
콘서트는커녕, 드래곤플라이가 원하는 '제대로 된 마무리'는 요원해 보였다.
차선우는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했다.
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차선우는 방관했다.
‘지금 같은 때 괜히 어설프게 화해하면 더 골치 아파지는 법이지.’
싸움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는 중간중간 개입하기도 했지만, 그는 철저하게 방관자의 위치를 고수했다.
차선우는 기다렸다.
이들이 다시 한번 파국을 맞이할 때까지.
드래곤플라이는 기형적이다.
그들은 시작부터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고, 애초에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야 했을 운명이었다.
너무나도 다른 두 형제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고,
기타리스트와 나머지 멤버는 그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건 올바르지 않고,
또 존속될 수도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과거에 남아있던 미련이 그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했고,
과거에 어떤 일이 평행선의 각도를 비틀었다.
비틀린 선은 언젠가 교차하게 되어있다.
그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이유.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 다 때려치우라고!
마지막으로 희망을 붙들고 있던 기타리스트조차 체념한 순간.
방관자로 있던 천마가 노래를 불렀다.
드래곤플라이가 완전히 망쳐버렸던, 마지막 앨범의 노래를.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
.
.
갑작스럽게 시작된 노래였다.
반주도 없고, 그저 목소리뿐이었지만.
차선우의 노래가 가진 마력은, 그들이 외면하고 있던 일을 마음 깊은 곳에서 끄집어냈다.
[옛날엔 괜찮았었지, 라고 말하지 마.
겉으로만 반짝였다는 거 알고있잖아.]
차선우의 노래를 들은 형 게럴드는 생각했다.
‘이 노래가 이렇게 좋았던가?’
흑역사라고 생각해서 피하려고만 하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수십 년 전, 마지막 앨범을 만들 때였다.
눈앞의 성공에 취해 있었고, 똑같은 성공을 이어 나가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작곡을 담당하는 형 게럴드는 좋은 노래는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예민해졌다.
그 결과,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실에서 눈을 돌려버렸다.
그랬으면 안 되는 거였다.
차라리 불안하고 답답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음악으로 승화할지언정,
그 감정들을 외면하고 내팽개치면 안 됐던 거였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지 마.
네가 결정한 세상을 감당할 수 있겠어?]
동생 게럴드도 생각했다.
‘이게 내가 불렀던 노래라고?’
차선우는 자신이 책임졌어야 할 노래를 완벽한 형태로 보여주고 있었다.
저 노래를 듣고 있자니, 기억 한구석에 숨겨둔 부끄러운 과거가 떠올렸다.
마지막 앨범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곡을 만드느라 예민해진 형도,
그리고 형이 만들어낸 결과물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술과 약에 취한 채.
꼬부라진 발음과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무책임하게 녹음을 했다.
그건 밴드의 존재 이유를 없애버리는 일이었다.
차선우의 노래가 끝났다.
드래곤플라이의 멤버들은 침묵에 잠겼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게럴드들이었다.
“...노래가 좋네.”
“그러게. 정말 좋은 노래군.”
오랜만에 형제의 의견이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후회했다.
방금 차선우가 부른 아름다운 노래는, 자신들이 불렀어야 했다.
게럴드들이 생각했다.
‘그때 천마가 있었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과거를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차선우가 말했다.
“그쪽은 과거를 되돌리기 위해 여기 모인 게 아니잖아.”
차선우는 그들이 모인 이유를 일깨워주었다.
“10년 전. 그때 외면했던 걸 똑바로 마주하기 위한 것이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선들도, 결국에는 한 번쯤 만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파탄 난 관계와 마음속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서 그걸 음악으로 기록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때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형 게럴드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곡을 하나 내려고 하는데. 너가 프로듀싱을 해줄래? 아무래도 그쪽이 잘할 것 같아서 말이야.”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동생에게로 향했다.
형의 말이라면 항상 지랄발광하며 반대했으니까.
그러나 동생 게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웬일로 저 새끼가 맞는 말을 다 하는군.”
그렇게, 차선우는 드래곤플라이의 마지막 앨범 프로듀서가 되었다.
< 락 스피릿 어게인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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