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락 스피릿 어게인 (3) >
차선우는 드래곤플라이의 마지막 프로듀서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수락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차선우는 드래곤플라이의 노래를 들어왔다.
그 시절에도 드래곤플라이는 잠정 활동 중단 상태였지만, 당시 차선우의 플레이리스트 최상단에는 드래곤플라이의 노래가 있을 정도로 그들의 음악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드래곤플라이의 프로듀서가 되어달라고?
그것도 마지막 앨범의 프로듀서가?
‘이게 바로 낭만이지!’
그렇게 흔쾌히 제안을 승낙한 차선우의 주도 아래, 드래곤플라이는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바로 어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는 해도,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는다.
게럴드 형제들은 여전히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대신 그들은 선을 지켰다.
공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딱 거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으르렁거렸다.
여기에 차선우가 중심을 잡고 두 사람을 컨트롤하니 다툼이 큰 싸움까지 번지는 일도 없었다.
기타리스트는 마치 구원자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차선우를 바라봤다.
‘그래! 저 사람이 우리의 리더가 되었어야 했어.’
차선우가 온 이후 게럴드 형제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었다.
덕분에 매일 같이 달고 살던 스트레스성 위장약도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뀐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에. 우리가 회의라는 걸 해보다니.’
드래곤플라이의 멤버들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회의’를 할 수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회의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그 회의가 ‘게럴드 식 회의’였을 뿐이지.
형 게럴드가 트랙을 선택하고 통보한다.
그럼 회의(?)는 끝이 난다.
여기서 뭔가 진행이 되려고만 하면 형제간의 개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냥 체념하고 넘어갔다.
지금껏 드래곤플라이의 회의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런데 차선우는 달랐다.
‘술과 싸움 없이도 작업이 가능한 거였구나?’
어제 12시간 동안 작업을 했음에도,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싸움도 없었다.
작업이라는 게 이렇게 건전한 것이라니!
기타리스트는 매우 행복했다.
하지만 모두가 기타리스트처럼 행복한 건 아니었다.
먼저 형 게럴드.
형 게럴드는 드래곤플라이 내에서 전반적인 송 라이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앨범에 들어갈 트랙을 결정하는 데에도 그의 발언권이 제일 강했다.
유일한 걸림돌이 있다면 종종 들어오는 동생 놈의 태클 정도랄까?
이번에는 그 걸림돌도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새 철이라도 들었는지 자신의 노래를 듣고 ‘좀 늘었는데?’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형 게럴드는 동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걸림돌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형 게럴드의 노래를 들은 차선우가 말했다.
“마음에 안 들어.”
“.......”
저 말을 들은 게 벌써 3번째다.
“뭐라고? 그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데?”
형 게럴드는 당연히 바로 따졌지만, 차선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방금 가져온 대로 하면 노래는 듣기 좋겠지만, 이건 ‘드래곤플라이’가 아니잖아.”
형 게럴드는 욕심이 많아진 거다.
다름 아닌 마지막 앨범이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팬들도 만족시키고 싶고,
드래곤플라이의 곡을 들을 대중들을 미치게 만들고 싶고,
무엇보다 길이 남을 명반을 만들고 싶었다.
10년 전 개판으로 마무리한 그들의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는 명반을.
형 게럴드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요즘 트렌드가 바뀌었으니까. 여기에 세련된 느낌을 추가하고 싶은데.”
형 게럴드가 음악을 시작한 지 벌써 30년은 되었고, 전성기는 20년 전이다.
그래서 지금의 사람들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줘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하지만 차선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쭙잖게 트렌드를 따라가지 말고, 그쪽이 늘 해오던 걸 해.”
그리고 그대로 빠꾸를 먹였다.
동생 게럴드는 제대로 물먹은 형을 보며 비웃었다.
“낄낄낄. 또 빠꾸 먹었냐? 그러니까 잘 좀 하지 그랬어.”
형은 발끈했지만, 대꾸할 말이 없었다.
적어도 차선우가 하는 조언들은 동생 놈이 거는 태클과는 격이 달랐으니까.
대신 형은 똑같이 비웃어줬다.
“너도 당하고서 질질 짜지나 말아라.”
“헹, 내가?”
동생 게럴드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곡 해석에 천부적인 능력이 있었다.
어지간한 노래는 한번 듣고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해서 곧바로 녹음을 할 정도였으니까.
‘이번에도 별다를 건 없겠지.’
한 트라이에 녹음을 끝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동생은 평소처럼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고 들어갔고,
“다시!”
“.......”
차선우의 ‘다시 지옥’을 맛볼 수 있었다.
“비강 공명을 조금 더 활용해서 파워풀하게 내 봐 다시!”
“콧소리가 너무 섞여서 답답하게 들리잖아. 조금 더 시원하게 내지르는 느낌으로.”
“마음에 안 들어 다시.”
동생 게랄드도 반발했다.
“끄응. 아무리 내가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는 없어. 이러다가는 성대가 완전히 갈려 나갈 거라고. 그럼 니가 책임질 거야?”
“응. 책임지지 뭐.”
“...어?”
차선우는 동생 게럴드의 몸속에 내공을 주입했다.
그러자 목 상태가 좋아져 버렸다.
동생 게럴드가 충분히 컨디션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어어어?”
아니, 이게 아닌데?
그리고 차선우가 사악하게 웃었다.
“다시!”
*
원래 드래곤플라이는 각 잡고 정규 앨범까지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냥 제대로 활동을 마무리할 수 있는 EP 정도만 만들려고 생각했었는데.
“야, 오랜만에 같이 작업하니까 재미있는데?”
“이참에 몇 개 더 만들어 봐?”
10년 동안 쌓아둔 이야기가 많았던 건지, 오랜만에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취한 건지.
멤버들은 단순히 EP를 만드는 걸 넘어 정규 앨범을 만들자는 의견에 동의했고, 이전보다 열성적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그렇게, 드래곤플라이의 앨범이 완성되었다.
마지막 앨범의 이름은 [Full Stop].
기나긴 드래곤플라이의 여정에 마침표가 되어 줄 앨범이었다.
마스터링까지 끝난 앨범을 듣기 위해, 차선우와 드래곤플라이의 멤버, 그리고 관계자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레코즈의 사장이 비싼 샴페인을 터트렸고,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 드디어 끝났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그래도 천마 님이 제일 고생하셨죠.”
샴페인 잔을 든 천마도 웃으며 말했다.
“이건 차마 부인할 수가 없네요.”
차선우가 드래곤플라이에게 요구하는 건 딱 하나였다.
온전히 그들이 되는 것.
시대에 휘둘리지 않고.
이전의 드래곤플라이가 보여주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차선우의 주문에 따라 형 게럴드는 그 시절의 감성을 그대로 녹여 이번 앨범에 담았다.
하지만 그만큼 우려도 되었다.
형 게럴드는 생각했다.
‘이번 앨범이 너무 올드하지는 않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속에서,
드래곤플라이가 가진 감성이 먹힐지 걱정됐다.
이번에는 차선우가 특별히 엔지니어링까지 맡겠다고 했다.
그래서 마스터링을 끝낸 앨범은 아직까지 차선우 혼자만 알고 있었고, 드래곤플라이의 멤버들도 아직 들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멤버들의 기대와 걱정이 반쯤 섞인 얼굴을 보며 차선우는 시원하게 웃었다.
“분명 엄청날걸.”
그는 천마니까.
“그럼 어디 한번 들어볼까?”
그리고 오프닝 곡이 흘러나오는 순간,
‘시발. 이건 미쳤어.’
형 게럴드는 전율했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는 왜 천마가 천마인지 깨달았다.
형 게럴드의 말대로 기존 드래곤플라이의 노래는 올드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천마의 프로듀싱이 들어가자 노래는 완전히 달라졌다.
천마의 최대 장점은 바로 팝(Pop) 한 감각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장르적인 팝을 말하는 게 아니라, 드래곤플라이의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성까지 잡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감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거칠게 부른 록 음악이 다 귀에 착착 감겨온다.
차선우는 드래곤플라이에게 보여주었다.
아무리 옛날 감성의 록이라도, 어떻게 손보느냐에 따라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옆에서 완성된 노래를 듣던 동생 게랄드가 중얼거렸다.
“...나 노래 존나 잘 불렀네.”
안타깝게도 형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차선우는 동생 게럴드가 전성의 때의 그 보컬을 뽑아낼 수 있도록 쓰러지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는 모르지만 동생의 목소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졌고, 그렇게 엔지니어링까지 끝난 보컬은 세련되고 깔끔했다.
“홀리 몰리.”
소름이 돋았다.
자신들의 마지막 앨범이.
명반이 되어버렸다.
동시에 두려워지기도 했다.
‘이런 앨범을 냈는데. 우리 해체할 수 있을까?’
이번 앨범의 제목은 [Full Stop].
즉 마침표이다.
멤버들은 이번 앨범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발표하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앨범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 거라는 걸.
사람들은 드래곤플라이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
당연히 더 활동하기를 갈망할 거고.
그 상황 속에서, 과연 드래곤플라이가 끝을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썅. 이러니까 괜히 욕심이 나네.’
자신부터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렇게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드래곤플라이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
*
영국에 있는 드래곤플라이의 어느 열혈 팬.
그는 진성 카드에서 주최하는 메가 콘서트에 드래곤플라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뭐? 드래곤플라이가 10년 만에 완전체로 콘서트를 한다고?”
이건 못 참지!
활동을 중단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드래곤플라이가 컴백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뭐, 팬들이 바라던 성질의 컴백은 아니었지만.
완전체 드래곤플라이를 무대에 세운 것만으로도 진성은 영웅 취급을 받고 있었다.
열혈 팬은 3개월 뒤에 열릴 콘서트의 티켓팅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여기에 진성 카드 멤버십이 있으면 선 예매권을 준다고 하여 카드까지 만들어둔 참이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엥? 드래곤플라이가 새로운 앨범을 낸다고?”
커뮤니티를 떠돌던 열혈 팬은 누군가 쓴 글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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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이 레코드 관계자인데 드래곤플라이가 이번에 새로운 노래 녹음했다던데?
설마 드래곤플라이 새 앨범으로 컴백하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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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열혈 팬은 콧방귀를 뀌었다.
“쯧쯧, 새 앨범이라니. 아직도 다 쉰 떡밥을 던지는 놈이 있네.”
드래곤플라이의 컴백설은 10년 전부터, 매해 있었던 떡밥이다.
올해로 벌써 11번째 컴백설을 본 열혈 팬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돌아가는 모양이 심상치 않았다.
구체적인 정황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 천마가 프로듀서라는데? (사진)
드래곤플라이 멤버들과 천마가 함께 술을 마시는 사진이 올라온 것이다.
그 사진이 올라온 순간 팬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10년 만의 완전체 콘서트 소식이 전해진 덕분에 팬들은 이미 흥분해 있었다.
잠시 떠나있던 사람들도 돌아왔고, 뉴비들도 유입됐다.
그런데 컴백이라니!
다 쉬었다고 생각한 떡밥에 커뮤니티는 불타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열혈 팬은 고인물답게 냉정을 유지했다.
“에이, 설마. 천마가 영국에 왔으니까 그냥 한번 만난 거겠지. 천마야 진성이랑 친한 거 다 알고 있고, 드래곤플라이도 진성 측이랑 안면이 있으니까 그쪽에서 자리를 마련한 거겠네.”
열혈 팬은 애써 머릿속 행복회로를 냉각했지만, 몸은 정직했다.
그는 다리를 달달 떨면서 컴백과 관련한 정보를 미친듯이 찾았다.
“...시발. 이거 진짜인가? 설마? 그래도 천마랑 아무 이유없이 만나지는 않았을 거잖아. 그리고 천마는 꽤 능력 있는 프로듀서고.”
또 속으면 속는 놈이 병신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슬며시 올라오는 기대감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드래곤플라이는 열혈 팬을 병신으로 만들지 않았다.
무수히 쏟아지는 찌라시 가운데.
오피셜이 올라왔다.
동생 게랄드가 SNS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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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사진)
기다렸냐?
이번엔 진짜다.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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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아아아아ㅏㅇㄱ!!!”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그리고 열혈 팬도 난리가 났다.
“복귀라니! 드래곤플라이가 복귀라니!”
머리에서 발 끝까지 복귀뽕이 차오른다.
언제 컴백한다는 말은 없었지만, 녹음을 했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하루빨리 완벽해진 드래곤플라이를 보고 싶었다.
“이건··· 이건, 안되겠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아직 시작도 못 한 티켓팅?
“그딴 거 알 게 뭐야.”
열혈 팬의 머릿속에는 완전체 + 새로운 앨범을 연주하는 드래곤플라이의 모습만이 가득했다.
“못하면···그냥 콘서트장 근처에 있으면 되지.”
그래. 마침 그때 휴가철이니까.
티켓팅에 실패하면 한국 여행이라도 하지 뭐.
열혈 팬은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아주 합리적인 소비였다.
< 락 스피릿 어게인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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