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67화 (167/191)

< 락 스피릿 어게인 (4) >

드래곤플라이가 10년 만에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한다는 이야기는, 몇몇 록 팬들 사이에서만 화제가 된 건 아니었다.

드래곤플라이가 활동을 시작한 건 90년대.

당시 앨범을 사서 들었던 청년들은 이제 4050대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청춘을 회고하며 드래곤플라이의 컴백 앨범을 기다렸다.

“이게 바로 낭만이지!”

또한 드래곤플라이는 현재 청년들에게도 사랑받던 밴드다.

2010년 초까지 활동했던 드래곤플라이의 음악은 이제 2030대가 된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었다.

“와, 나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맨날 드래곤플라이 노래 커버했는데.”

그러다보니 록밴드보다는 아이돌을 더 좋아하는 10대들도 드래곤플라이의 복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드래곤플라이? 이름은 들어봤어.”

“으흥, 이런 노래구나? 지금 들어도 좋은데?”

그들의 컴백 소식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그 열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스포티나인 차트에서 드래곤플라이의 대표곡들이 다시 역주행을 시작할 정도였다.

하지만 온 세상의 관심이 쏠리는데도 드래곤플라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인터뷰도, 활동도, 심지어 파파라치의 사진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앨범 발매 전이라면 적어도 선공개라도 해서 화제를 더 끌어모을 텐데.

드래곤플라이는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그 모습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더욱 끌어 올렸다.

그건 열혈 팬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야? 드래곤플라이가 이렇게 조용하다고? 설마 앨범 엎어진 거 아냐?”

평소 화끈한 입담으로 유명한 드래곤플라이가 이상하게 조용하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열혈 팬은 열심히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있는정보 없는정보 모두 찾아보았다.

드래곤플라이의 팬들 사이에서도 온갖 괴담이 다 돌고 있었다.

- 내 지인이 레코즈 관계자인데, 어제 천마랑 게럴드 형제가 2대1로 맞짱떴다는데? 그래서 앨범이고 뭐고 다 쫑났다더라

- 내 지인도 레코즈 관계자인데, 셋이 싸운 건 맞는데 천마가 게럴드 형제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더라

- 내가 아는 사람은 홍보팀에 있는데, 지금 분위기 조용한 거 다 전략이라고 하더라. 이번 앨범이 존나 대단해서 선공개 같은 거 없이 한방에 터트릴거래.

“.......”

찌라시도 이런 찌라시가 없다.

이쯤 되면 온갖 관계자와 지인들은 전부 커뮤니티에 상주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기다림도 잠시.

모든 걸 덮어버릴 드래곤플라이의 앨범이 공개되었다.

“끼야야야얏호! 시바! 내가 나올 줄 알았지!”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샤워까지 끝낸 열혈 팬은 경건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앨범의 제목은 [Full Stop].

재킷은 네 명의 사람이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진이 박혀 있었다.

곡은 총 12곡.

지금까지 드래곤플라이의 앨범 볼륨과 비슷한 수준이다.

열혈 팬은 벌써부터 뽕에 취한 채 오프닝 곡을 재생했다.

[Ode to the Path]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송가.

형제라서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관계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볼륨은 언제나처럼 웅장했다.

군악대 풍의 드럼과 팀파니가 인트로를 장식하고, 동생 게럴드의 맑고 시원한 목소리가 그 위를 내달린다.

“오 마이 갓!”

50대의 가창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보컬.

분명 동생 게럴드는 전성기 이후 급격하게 목이 망가지면서 더 이상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정도면 전성기 실력을 회복한 것 같은데?”

아니,무슨 조화를 부린 건지 실력이 더 좋아져서 나왔다.

웅장하고 화려한 현악 오케스트레이션과 기타&키보드와 함께 폭발하는 코러스.

거기서 내지르는 후렴구를 들을 때는 솔직히 살짝 지렸다.

열혈팬이 드래곤플라이를 생각했을 때 떠올렸던 생기있고 경쾌한 에너지가 이번 앨범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크으. 그래! 이게 드래곤플라이지!”

자신들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팬들이 기억하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 꽤나 멋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올드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드래곤플라이 특유의 쉬운 코드 진행과 아름다운 멜로디는 세련되고 깔끔하게 떨어진다.

“이야, 천마를 프로듀서로 써서 그런가? 드래곤플라이 노래에서 팝한 느낌도 나네.”

프로덕션을 잘 손보면, 시대와 상관없이 트렌디해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드래곤플라이의 초창기부터 팬이었던 열혈 팬은 알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홀리. 천마 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듣던 열혈 팬은 대단히 만족하며 향수에 취했다.

그리고 난 후 자신의 감상을 커뮤니티에 남기기 위해서 들어갔는데······.

[드래곤플라이, 마지막 앨범 ‘Full Stop’과 함께 해체선언!]

“......?”

갑자기 해체라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이만한 명반을 내놓고 해체를 하겠다고?”

도대체 왜?

열혈 팬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해체 이야기가 나온 인터뷰 영상을 클릭했다.

*

인터뷰에서는 드래곤플라이 네 사람이 완전체로 함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열혈 팬은 해체 소식에 충격을 받은 와중에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완전체로 있는 걸 보는 게 얼마 만이야. 벌써 10년도 넘었네.”

의자 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사이가 좋아 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건 훨씬 부드러워 보이는 두 게럴드의 관계였다.

예전에는 같은 의자에 앉아있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싸웠었는데.

역시 물보다는 피가 진하다는 건가?

리포터도 두 사람의 개선된 관계를 눈치채곤 흥미를 느꼈다.

[리포터 : 요즘 두 사람은 잘 지내나 봐요?]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두 사람은 정색하며 말했다.

[형 게럴드 : 우리? 우리는 걍 비즈니스 파트너지.]

[리포터 : 종종 만나서 어울리거나 하지는 않나요?]

[동생 게럴드 : 굳이? 어울리는 건 무대에서 하는 걸로 충분해.]

게럴드들의 답변에 열혈 팬은 놀랐다.

“와씨. 저기서 그냥 끝낸다고? 욕도 안하고?”

말로 투닥거리는 선에서 끝낸 거면··· 정말 많이 발전한 거다.

인터뷰 도중에 두 형제가 욕을 내뱉으며 싸우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요즘 두 형제가 사이가 좋아졌다더니. 그게 사실이었네.”

도대체 드래곤플라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약간의 아이스브레이킹 이후 리포터가 모든 팬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리포터 : 10년 만에 복귀를 하셨는데요. 컴백을 결정하신 이유가 뭔가요?]

[형 게럴드 : 이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가 중요한 거지!]

응?

어떻게?

영상을 보던 열혈 팬은 고개를 갸웃했고, 리포터도 궁금하다는 눈빛을 빛냈다.

[리포터 :그래요? 그럼 어떻게 컴백을 할 수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그 질문에 모든 멤버가 입을 맞춘 듯 대답했다.

[형 게럴드 : 천마!]

[동생 게럴드 : 암, 다 천마 덕분이지.]

[기타리스트 : 천마가 아니였으면 우린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처음으로 모든 멤버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뭐야? 갑자기 천마라고?”

뜬금없이 나온 이름에 열혈 팬은 호기심이 들었다.

천마가 프로듀서로서 드래곤플라이를 진두지휘했다는 건 알지만.

이 정도까지 대단한 사람이었나?

천마 때문에 드래곤플라이가 컴백을 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당연히 리포터도 그걸 궁금해했고, 형 게럴드가 본격적으로 썰을 풀어주었다.

[형 게럴드 : 진성에서 소개해 줘서 천마를 만났거든. 근데 천마가 우리가 망쳤던 지난 앨범의 노래를 불러 주더라고. 와, 그때 존나 멋졌어. 우리 밴드 보컬이라는 놈보다 훨씬 더 잘 부르더라고.]

옆에서 동생이 노려보았지만, 형은 꿋꿋하게 말했다.

[형 게럴드 : 그러면서 말하더라. 이번에는 도망치지 말라고. 크으, 난 그때 딱 깨달았어. 천마만이 우리 프로듀서가 될 수 있다고!]

이후에는 이번 마지막 앨범에서 천마가 어떤 일들을 했는지 에피소드가 풀려 나왔다.

[동생 게럴드 : 천마가 노래도 기깔나게 잘 만들더만. 솔직히 천마만 있으면 우리 밴드에서 송라이터는 필요도 없었을걸.]

[형 게럴드 : 천마가 있으면 너도 드래곤플라이에 필요 없었을걸. 천마가 너보다 노래 더 잘 부르잖아.]

형제가 또다시 으르렁거리는 가운데, 기타리스트는 부처님 같은 해탈한 얼굴로 말했다.

[기타리스트 : 천마는 우리 드래곤플라이의 5번째 멤버라고 할 수 있어요. 그가 없었으면 앨범은커녕 진성 메가 콘서트도 못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천마가 없었다면 마지막 앨범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거라는 뜻이다.

여기까지 사태 파악이 되자 열혈 팬은 천마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천마는··· 진짜 최고다.”

그 망둥이같은 녀석들을 잘 이끌고 이렇게 귀한 앨범을 내려주셨다니.

리포터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열혈 팬이 인터뷰 영상을 클릭하게 된, 문제의 그 ‘해체 발언’이 담긴 부분이었다

[리포터 : 그럼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만 물어보고 끝내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이야기해주시죠.]

[형 게럴드 :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우리? 이번 앨범을 마지막으로 해체할 건데.]

[리포터 : 네!?]

리포터는 찐으로 놀랐고, 이미 소식을 알고 있던 열혈 팬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리포터가 다급하게 물었다

[리포터 : 아니 왜요? 자세히 이야기 좀 해주시죠.]

[동생 게럴드 : 우리는 사실 존나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해체를 못하고 있는 거였지.]

[리포터 : ···네?]

[동생 게럴드 : 아, 농담이야 농담.]

그리고 형 게럴드가 진지하게 말했다.

[형 게럴드 : 천마 덕분에 이번 앨범을 만들 수 있었어. 그가 없었으면 복귀고 뭐고 없었을 거야. 앞으로 우리끼리 활동을 한다면 이런 앨범을 만들 수도 없을거고, 맨날 싸우기만 하겠지. 그럴 바에는 그냥 지금 깔끔하게 끝을 내는 게 낫겠더라고.]

[동생 게럴드 : 우리는 니들이 우리를 망가진 밴드로 기억하는 건 원하지 않아. 천마 덕분에 좋은 기회로 마지막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거지. 우리는 여기서 끝낼 거다.]

인터뷰는 끝이 났다.

검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열혈 팬은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걸 느꼈다.

인터뷰를 보기 전.

어째서 드래곤플라이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을 만들고서 해체를 한다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크으··· 이거 멋있잖아?”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해체하는 이유가.

팬들에게 멋진 모습으로 남고 싶어서라니!

“그래! 이거지.”

열혈 팬은 뽕이 차올랐다.

아무래도 드래곤플라이는 열혈 팬의 가슴 속에 영원히 개쩌는 모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천마.

드래곤플라이를 전설로 남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장본인.

“천마 이놈도 낭만이 뭔지 아는 녀석이구만!”

이전까지 열혈 팬은 천마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저기 미국의 빌보드에서 조금 잘나간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는 수준?

하지만 드래곤플라이를 가슴 속 최고의 밴드로 남을 수 있게 만들어준 천마에게 가슴 속 깊이 고마움을 느꼈다.

10년 동안 복귀도 안 하던 놈팽이들과 함께 최고의 앨범을 만들어준 천마.

“이거 안되겠네. 나 오늘부터 천마 지지한다.”

열혈 팬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았다.

드래곤플라이의 팬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준 차선우.

차선우는 영국을 넘어서 전 세계 드래곤플라이의 팬에게 지지를 받게 되었다.

*

드래곤플라이의 해체 발언이 담긴 인터뷰 영상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에 퍼졌다.

그리고 나는 방송 도중 영문도 모르고 드래곤플라이의 팬들에게 엄청난 후원을 받았다.

[DF LOVE 님이 1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천마와 나는 한 몸이고 천마를 향한 공격을 나를 향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천마를 찬양해!!!

[로큰롤베이비 님이 777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와씨 이곳이 천마의 나라입니까? 소리벗고 팬티질러!!!

“.......”

그뿐만이 아니다.

게럴드 형제의 어머니가 직접 눈물 젖은 인터뷰를 하면 감사 인사를 보냈다.

[10년 만에 아들 둘과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천마, 정말 고마워요.]

우리 어머니는 어디서 보셨는지 그 인터뷰를 보고 곧장 전화를 하셨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가족애를 매우 강조한다.

- 선우야, 너 요즘 소미하고 좀 연락하고 있니?

“.......”

소미 친구 신예리한테서는 종종 근황은 듣고 있는데.

- 아무리 일 열심히 하고 돈 잘 벌어도 소용없다. 엄마 아빠 죽고 나면, 남는 건 가족밖에 없어···.

엄마가 잔소리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급하게 외쳤다.

“엄마 손님이 와서 이따가 전화할게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로 손님이 와 있기는 했으니까.

내가 전화하는 걸 지켜보던 게럴드 형제가 낄낄 웃었다.

“너도 형제 사이가 썩 별로인가 보구먼.”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건 만국 공통이라니까.”

“...적어도 너희들한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은데.”

아무튼.

이제 천마타운 건설 건은 마무리 지었고.

드래곤플라이와 뜻밖의 앨범 작업도 마무리했다.

슬슬 영국을 떠날 시간이다.

출국하기 전.

드래곤플라이 멤버들이 송별회를 열어주며 말했다.

“우리는 너한테 빚을 졌어. 나중에 피처링이나 곡 작업이 필요하면 말해. 우리가 다 같이 가서 도와주지.”

“아니면 한국에서 공연이라도 해줄까? 너 고정 음악 프로그램 한다며?”

뭐 드래곤플라이 이용권이야?

다음 앨범 낼 때 유용하게 써먹어야겠군.

나도 웃으며 작별 인사를 남겼다.

“그럼 또 보자고.”

그렇게 드래곤플라이는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리고,

“이건 뭐야? 그래미?”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래미에서 연락이 왔다.

< 락 스피릿 어게인 (4)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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