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미? 까짓것! (2) >
그래미 어워드.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중음악 시상식이다.
그리고 그만큼 화려한 퍼포먼스와 무대로 유명하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록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무대가 있는 만큼 확실한 볼거리를 준비해놓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그래미 어워드를 챙겨보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미라고 해봐야, 다소 생소한 아티스트들이 나와 저들만의 축제를 벌이는 것일 뿐.
한국 아티스트가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되거나, 거기에서 무대를 펼친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소식이 그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천마의 단독공연과 노미네이트 소식이 빠르게 보도된 것이다.
[천마, 그래미 어워드 노미네이트 되었다···4개 부문 지명]
[K팝 가수 최초! 천마, 그래미 어워드 4개 부문 노미네이트!]
[4개 부문 노미네이트된 천마, 그래미 수상도 가능하다?]
한국 가수가 노미네이트 된 것도 처음인데.
무려 4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소식은 사람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래미에서 단독 공연을 배정해준 것이다.
컬래버레이션 부대가 아니라 단독 공연을!
[천마, 한국 가수 최초 그래미 어워드 단독공연 펼쳐]
[천마, ‘그래미 어워드’ 단독 퍼포먼스 확정! 이번에도 전 세계 팬들 매료시킬까?]
[‘두유 노우 천마?’... 천마, K팝의 새역사 쓰다]
이것 역시 한국 최초!
이만하면 국뽕이 차오르지 않겠는가?
이 소식에 팬들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모두 환호했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여주는 반응은 신기함이었다.
-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 시장이 이렇게 천마한테 개방적인 것도 거의 기적적인 일이라 봄
- 그래미는 진짜 못 뚫을 줄 알았음 근데 ㄹㅇ 저기까지 가네...
그래미라면 한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시상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천마가 후보에 오른 건 놀라운 일이었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2022년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비록 우승을 하지 못했더라도, 본선 무대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그런 상황.
아시아에서만큼은 천마를 이용해서 시상식에 대한 관심을 높이겠다는 그래미의 전략이 확실하게 먹혀들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소식은 전 세계의 천마 팬에게로 퍼져나갔다.
- 천마가 퍼포먼스 하는 시간은 언제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 부분만 보고 싶은데
ㄴ 아쉽게도 큐시트는 당일에 나옵니다
- 그래미 시상식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 내가 천마 때문에 그래미 어워드를 찾아보다니
ㄴ ㅇㅈㅇㅈ 그래미 편파적인 거 때문에 꼴도 보기 싫었는데
- 우리 천마가 수상은 할 수 있을까?
ㄴ 그래도 랩 퍼포먼스는 조금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ㄴ 힙합에서 안주면 솔직히 억까지. 음악성이랑 대중성 다 잡은 명반인데
팬들은 천마의 그래미행을 기대하고 있었다.
누가 상을 받을지 예측하는 컨텐츠나,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예측하는 컨텐츠의 생산이 예년 대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노미네이트 된 건 축하할 일이지만, 왠지 그래미에서 천마를 너무 이용만 하는 것 같은데
ㄴ 실컷 천마로 홍보해놓고, 상은 하나도 안 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ㅋㅋㅋ
설레발은 자제하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동의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바로 천마의 단독 공연이 엄청날 거라는 것.
- 천마의 단독 공연? 상 받는 거랑 상관없이 그래미 다 찢어버리고 올 듯. 백퍼 장담한다
- 솔직히 천마 라이브는 못 참지!
- 무슨 노래할까..?? 천마 띵곡 개 많아서 뭘 할지 궁금하다 같이 진짜 화려한 퍼포먼스의 정점을 찍는 노래 해줬으면 좋겠다 ㅠㅠ
그렇게 기대와 염려와 속에서, 천마가 미국으로 향했다.
*
차선우는 옥수진의 계획대로 준비 중이었다.
그래미에서 4부문 노미네이트와 단독 무대라는 당근을 던져줬지만.
어차피 결과적으로는 조연 1이 될 게 뻔하다.
'내가 겨우 들러리?'
안될 말이지.
아무것도 없이 돌아오는 건 천마의 성미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을 이목을 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 그래미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사실 준비라고 해 봤자 원래 하던 것들을 신경 쓰는 것이지만.
이번 단독 공연의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여기에 다음 앨범까지 준비한다.
그런고로 차선우가 지금 뭘 하고 있냐 하면······.
“야, 너 이번에 드래곤플라이 만나고 왔다면서. 뭐 썰 같은거 없냐?”
공연을 준비하는 LA맨들을 만나 드래곤플라이를 만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여기서 LA맨은 LA 출신의 세 가수를 묶어서 지칭하는 말이다.
토비 무어.
타이슨.
그리고 하이포닉.
토비와는 같이 컴튼에서 합작 앨범을 내면서 친해졌고.
앨범을 낼 당시에는 토비와 타이슨이 앙숙이었지만, 시원하게 한판 붙은 이후 앙금을 모두 털어냈다고 한다.
하이포닉은 강호행 당시 LA의 라이브 하우스에서 만난 놈이다.
그때 봤던 차선우의 부캐를 진심으로 사랑한 모양인지, 아직도 종종 부캐를 만날 수 있냐며 연락하곤 했다.
어쨌든.
다들 LA 출신의 뮤지션이기에 간단하게 LA맨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LA맨 세 사람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바로 무대를 위해서였다.
얼마 전 작고한 래퍼를 기리기 위해 그래미에서 헌정 무대를 만들기로 했고, 세 사람이 합동 공연을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금 무대에서 부를 곡을 편곡하다 말고, 세 사람은 차선우의 앞에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마치 명절에 용돈을 기대하는 조카들을 보는 듯한 모습에 차선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게럴드 형제가 어땠냐고? 흠··· 성격은 토비 너랑 비슷하더라.”
그리고 차선우의 말을 들은 토비는 가슴을 쭉 펴고 말했다.
“그래! 그 영국 아저씨들도 나처럼 화끈한 게 있다니까!”
“...화끈?”
“너 양심 어디 갔냐?”
중간에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레전드였던 드래곤플라이의 썰은 흥미로웠다.
그렇게 한참 썰을 듣고 있던 하이포닉이 물었다.
“근데 이번에 그래미에서 록 70주년 행사 한다면서. 드래곤플라이는 안불렀나?”
그래미에서 기획한 록 70주년 기념 무대에는 여러 밴드가 올라와 특별공연을 펼칠 예정이었다.
다만 그 면면들이 모두 미국 출신의 밴드였다.
메탈릭스부터 비치가이즈, 팔콘즈 같이 ‘미국’을 대표하는 록밴드의 이름만 올라가 있었다.
그들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말이 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직전, 전설적인 록 밴드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플라이가 마지막 앨범을 내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컴백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번 앨범은 음악성과 대중성 모두 잡으며 벌써부터 명반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물론 그래미에서도 드래곤플라이를 섭외해보려고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차선우는 얼마 전 게럴드 형제와 연락했던 걸 떠올렸다.
- 아 그래미? 얼마전에 연락 왔지. 근데 안 나가려고.
‘왜?’
- 우리가 무대를 서는 대신에 너를 객원 보컬로 넣어달라고 했거든. 그런데 그건 안된다더라고.
- 그래서 우리도 걍 좆 까라고 했지.
‘.......’
뜬금없이 객원 보컬이라니.
보수적인 그래미가 퍽이나 들어주겠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LA맨들이 투덜거렸다.
“그래미는 이게 문제라니까? 항상 지네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불러. 여기 드래곤플라이가 왔었어봐. 상징성 하나는 죽여주는 거지!”
“이번에 핫플레이도 안 부른 그래미가 퍽이나 드래곤플라이를 부르겠다.”
“근데 핫플레이는 하프타임쇼 하러 갔다던데?”
또 다른 영국의 유명 밴드, 핫플레이.
그들은 그래미 무대와 슈퍼볼 하프타임쇼 섭외 제안을 동시에 받았다.
하지만 하필 비슷한 시기에 무대가 있어서 그래미 측은 하프타임쇼에 나갈 거면 이쪽에는 나오지 말라는 강짜를 놨고,
‘그래서 핫플레이가 진짜로 그래미를 까버리고 하프타임쇼를 가버렸지.’
차선우는 생각했다.
‘그래미라. 참 여러모로 대단한 곳이군.’
이쪽도 그래미에 쌓인 불만이 많다.
모두가 그래미가 보수적이고 편파적인 걸 알지만, 자기들은 그렇지 않은 ‘척’ 비주류 장르와 비 영미권 아티스트를 챙겨주는 ‘척’하는 게 꼴보기 싫었다.
그 와중에 단독 무대를 주면서 마케팅은 제대로 뽑아먹으려고 하다니.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차선우가 말했다.
“그래서 다음 앨범에서 제대로 한번 보여주려고.”
갑작스런 말에 하이포닉이 물었다.
“보여줘? 갑자기 뭘?”
“모든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앨범을 내려고.”
차선우의 프로듀싱 능력과 보컬 역량까지.
가지고 있는 최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앨범을 만들 예정이었다.
팝. 록. 힙합.
알앤비. 컨트리.
각 장르에서 확실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한 트랙, 한 트랙 발표를 할 것이다.
싱글 하나를 발표할 때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앨범의 발매.
이번 그래미 시상식은 그 출사표를 위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차선우는 눈앞에 있는 삼인방을 바라보았다.
토비, 타이슨, 하이포닉.
힙합과 알앤비 쪽에서는 이들이 메인 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니들이랑 함께 앨범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차선우의 말을 들은 토비 무어와 타이슨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사람 잘 찾아왔네! 천마 너라면 무조건이지.”
“퍼킹! 우리 같이 최고가 되어보자고!”
배틀을 하며 차선우의 진가를 본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을 그 자리에서 차선우의 제안을 승낙했다.
반면 차선우의 제안을 들은 하이포닉은 고민했다.
하이포닉은 토비와 사이가 썩 좋지 않은 편이다.
이전에 서로 크게 다투면서 SNS로 치고받고 싸운 전적이 있다.
그 뒤에 토비는 함께 술 한잔하며 모두 풀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하이포닉은 아직 마음속에 앙금이 모두 해소되지 않았다.
이번에 같이 그래미에 서게 된 것도 헌정 무대라서 함께 한 것이다.
‘그런데 천마가 직접 프로듀싱 하는 앨범이라면 분명 굉장할 텐데.’
이전부터 하이포닉은 천마의 프로듀싱이 마음에 들었다.
차선우는 이번 드래곤플라이의 앨범을 프로듀싱 하면서 그 능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고.
‘저 두 사람도 실력 면에서는 괜찮기도 하지.’
토비와 타이슨도 레전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길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래퍼들이다.
여기에 어디서든 멜로디를 끼워 넣을 수 있는 하이포닉의 능력과 천마의 프로듀싱 능력이 합해진다면?
‘분명 개쩌는 작품이 나올 텐데.’
여기까지 생각한 하이포닉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안하면 무조건 손해다.
“그, 나도 그럼 참여하는 거로 하지.”
.
.
.
미리 미국에 간 차선우는 다음 앨범에 참여할 사람들을 섭외하고, 무대를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이 다가왔다.
시상식장으로 향하는 차 안.
매니저로 함께 참여한 강여름이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이번 무대도 꼭! 잘하고 오세요. 천마 님 무대가 우리 계획에서 제일 중요해요!”
강여름의 말에 차선우는 그저 씩 웃었다.
차 문이 열리고.
차선우가 그래미의 레드 카펫을 밟았다.
< 그래미? 까짓것!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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