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70화 (170/191)

< 그래미? 까짓것! (3) >

그래미 어워드.

레드카펫 위에 올라서자 플래시 세례가 쏟아진다.

나는 적당히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응답해주며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휘유, 화려한데?’

이목이 집중되는 시상식이라 그런지 개성 있는 옷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 입었을 때는 내가 입은 옷도 화려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흰색 정장이 그나마 이중에서는 얌전해 보인다.

참고로 이건 내가 산 게 아니고, 선물 받은 거다.

때마침 이 옷을 선물해준 사람이 바로 앞에 보여서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헌트 대표님. 보내주신 옷이 아주 마음에 드는데요?”

이건 바로 헌트 대표가 선물해준 옷이다.

지난번 팬텀 스틸러 애프터 파티에서 입었던 정장도 이쪽에서 선물해줬었다.

물론 그때는 헌트 뮤직이 아니라, 영화 제작사인 헌트 픽처스에서 선물을 한 것이기는 하지만.

같은 헌트 그룹 계열사니 이 사람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겠지.

내 인사를 받은 헌트 대표는 껄껄 웃었다.

“오! 옷이 아주 잘 어울리는구만.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야.”

그리고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참, 내가 정식으로 이 친구를 소개해주지.”

헌트 대표의 옆에는 익히 얼굴만 알고 있는, 실물은 처음 보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유니트론이었다.

‘아, 맞다. 놈이 헌트 뮤직 그룹 소속이었지.’

헌트 뮤직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가수.

기대대로 빌보드에서 곧바로 핫샷을 달성한 악마의 재능.

하지만 문제는 그 주둥이까지 악마라서, 에이플 광고 발언 이후 모든 활동을 말아먹었다.

여기에 감히 내 앨범에 평가질을 한 놈이라서 관계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녀석이다.

나와 유니트론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는 헌트 뮤직의 대표가, 대체 무슨 의도로 유니트론을 소개해준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유니트론이 한발짝 다가왔다.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천마 님.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제가 일전에 했던 인터뷰는 경솔했습니다.”

“......?”

유니트론은 다짜고짜 사과를 박았다.

뭐지?

이놈이 사과를 한다고?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눈치도 말아먹고, 사회성도 말아먹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기로 정평이 난 놈이.

사과?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나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헌트 뮤직 대표를 바라봤다.

‘아, 혹시 이쪽이 유니트론에게 사과하라고 시킨 건가?’

그렇다면 이 상황이 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옆에 있는 헌트 뮤직의 대표도 놀랍다는 듯 유니트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 깜짝 이벤트는 유니트론 놈의 돌발행동인 것 같았다.

‘그새 눈치라도 좀 생긴 건가?’

유니트론은 내 의심스러운 눈빛에도 꿋꿋하게 손을 내민 채 악수를 나에게 청했다.

“부디 사과를 받아주십시오.”

악수하자는 상대방을 세워두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에, 나는 유니트론의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어··· 뭐 그럼.”

사과를 받기는 받았는데.

이렇게 떨떠름할 수 있는 건가?

반면 시원해진 표정이 된 유니트론은 본격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좋습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지난 진성 전자의 광고 음악에서 말입니다······.”

“.......”

갑자기 급발진하며 본론으로 들어가는 유니트론.

‘...혹시 사과 한번 하면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생각한 건가?’

아무래도 눈치가 생긴 건 아닌 모양이다.

다행히 옆에 있던 헌트가 유니트론을 말렸다.

“자자,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헌트는 유니트론을 아예 멀리 치워버리고 말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야 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군. 다름이 아니라······”

그러나 그가 운을 떼는 순간 또 방해를 받았다.

“천마. 여기에 있었군.”

헌트 뮤직 그룹의 영원한 라이벌인 로페즈 그룹의 회장이 다가왔다.

딸 페니 로페즈와 함께.

“쳇!”

헌트 대표는 혀를 찼다.

그는 오늘도 밀려났다.

*

행사가 시작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시상식이 본격적으로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그래미에서 주는 상은 꽤 많은 편이다.

이것저것 다 따지다 보면 상만 무려 40개가 넘는다.

대부분의 상은 공개 방송 전에 따로 마련된 행사에서 시상을 끝낸다.

이후 생중계에서는 무작위로 장르 필드의 몇 부문만 시상하고, 초점은 네 부문의 제너럴 필드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생중계가 시작된 지금, 장르 필드 시상은 대부분 끝난 상태였다.

짝짝짝짝-

그리고 바로 방금.

하이포닉과 페니 로페즈가 수상을 하고 돌아왔다.

각각 R&B와 컨트리 부문에서 베스트 퍼포먼스상을 받았다.

관계자석에 있는 헌트는 열심히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수상한 사람들은 다 천마와 관련이 있군요.”

그 말에 헌트 옆에 있던 그래미 어워드의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천마 본인도 수상을 했지요.”

천마는 작곡가에게 주어지는 상을 받았다.

하이포닉과 함께 작업했던 노래가 베스트 R&B 송 부문에서 수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순수한 의도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래미가 천마를 시상식에 데려온 것을 다분히 전략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2년 전.

그래미는 역대 최저 시청률을 찍으며 대중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단단히 준비했다던 작년 시상식도 꼴찌에서 두번째를 기록했다.

그래서 시청률 반등을 위해 내세운 게 바로 천마다.

이번 시상식은 한국과 아시아, 천마의 팬덤의 힘으로 시청률 반등에 성공했다.

거기에 천마가 베스트 R&B 송 수상을 하며 지금까지 그래미에 붙은 차별성 논란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고.

그래미 대표가 선심이라도 썼다는 듯 말했다.

“예전부터 그래미가 보수적이니, 차별적이니 하는 말들이 많았는데. 사실 그게 완전히 잘못된 말입니다. 천마처럼 뛰어난 사람만 나오면 우리는 인종이나 국적과 상관없이 상을 준다는 거죠. 그래미만큼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상식이 어디 있습니까.”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관계자석에 있는 모든 사람의 표정이 묘해졌다.

헌트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객관? 공정?

‘이 무슨 개소리야.’

그래미가 진짜 객관적이고 공정했더라면 천마에게 힙합 부문에서 상을 줘야지.

이번 앨범을 미국인인 토비와 합작하지 않았으면 아마 노미네이트도 안 해줬을 거다.

헌트는 더 생각해봤자 짜증만 날 게 뻔해서, 그냥 저 혼자 떠들게 놔두었다.

‘쯧쯧, 보는 눈이 저렇게 없어서야.’

천마와 함께 작업한 3명이 수상 후보에 올랐고, 그중에서 2명이 수상에 성공했다는 건 천마가 재능 있는 아티스트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천마가 미국에 와서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접촉하고 있다던데.’

헌트 그룹에서도 천마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천마의 행동으로 보아, 조만간 일을 벌일 게 분명했다.

헌트는 이번에는 절대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2년 전 로페즈한테 밀려서 천마신교에 투자할 기회를 놓친 것이 이렇게 아까울 수가······.’

지금은 천마와 로페즈의 사이가 좋다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그래서 헌트는 오늘처럼 선물을 주며 꾸준히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마침 오늘도 유니트론도 소개해주고 사업 이야기도 꺼낼 겸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페니 로페즈가 홀라당 천마를 채갔다.

‘끄응. 잠마동 컨텐츠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헌트라는 거대한 그룹 아래.

뮤직, 픽처스, 파크 앤 리조트 등.

다양한 계열사가 있다.

헌트 픽처스는 팬텀 스틸러 같은 영화를 제작하고 유통하고,

헌트 파크 앤 리조트는 픽처스가 만든 IP를 이용해 테마파크 사업을 한다.

그러던 와중 눈에 들어온 게 천마신교의 잠마동 IP이다.

특히 둠 스카이라는 게임에서 잠마동을 이용해 글로벌 히트를 쳤다. 넷플렉스에서도 잠마동 에피소드의 판권을 유통하기도 했고.

그래서 헌트에서도 천마가 가지고 있는 IP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기간 한정으로 스릴 넘치는 잠마동 어트랙션을 만들 수 있다면?

여름 시즌의 호러 나이트를 뛰어넘는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그 계획이 확정된 건 아니어서 오늘 일단 운만 띄워보려고 했는데.

‘시상식이 끝나고 개인적으로 연락해봐야겠군.’

그렇게 혼자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다음 무대에 천마가 나오는군.”

“그래? 벌써 순서가 그렇게 됐나?”

헌트는 그 말에 생각을 멈추고 본격적으로 무대를 구경할 준비를 시작했다.

천마의 무대를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천마의 라이브 무대가 그렇게 대단하다지?’

직접 무대를 본 사람들의 경험담에 따르면, 노래를 듣는 순간, 마치 다른 세상에 다녀오는 듯한 느낌이 들고 심지어 환상까지 보게 된다는 말도 있었다.

뭐, 실제로 환상을 봤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그만큼 대단했다는 걸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천마가 부를 노래가 뭐라고 했지?’

헌트는 기대를 품고 배부된 큐시트를 확인했다.

“쿠, 쿨럭!”

그리고 당황했다.

비슷한 소리가 주변에서 터져 나왔다.

[드래곤플라이 - Ode to the path]

하고많은 본인의 히트곡을 제치고.

왜 굳이 드래곤플라이의 노래를 고른 것일까?

물론 못할 것은 없다.

천마가 바로 얼마 전 직접 프로듀싱을 한 곡이기도 하고, 이번 그래미가 록 탄생의 70주년을 기념하기에 취지도 괜찮다. 노래도 명반 대열에 들어갈 만큼 좋기도 하고.

다만 문제라면.

천마의 바로 다음 무대.

그게 바로 록 탄생의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무대라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을 대표하는 밴드들이 대거 등장하는.

헌트는 꿀꺽 침을 삼켰다.

‘이거 잘못하면 제대로 비교되겠는데?’

그리고 그 순간.

천마의 무대가 시작됐다.

*

논란과는 별개로, 그래미 시상식의 무대는 볼거리만큼은 확실하다.

초대받은 아티스트들은 화려한 장치를 이용해 경쟁적으로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천마의 무대도 그랬다.

어두운 무대 위.

그 위에 우뚝 선 신전이 보인다.

찬란하던 고대 제국의 성지와도 같은 느낌을 풍긴긴다.

미약한 조명은 무대를 온전히 밝히지 못하는 가운데,

스멀스멀 기둥을 타고 오르는 붉은 빛은 마치 신전이 불에 타고 있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광경이었다.

그 순간.

쿵쿵 두두두두두두- 쿵쿵 두두두두두두-

묵직하게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행진하듯, 가슴을 두방망이질 치는 울림이 무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간다.

‘뭐지?’

모두가 그 진원을 궁금해하는 순간, 조명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진다.

어둠 속에 잠겨 흐릿하게만 보이던 무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군악대다.

금빛 수실이 새겨진 검은 제복을 입은 군악대는, 무대 양측에서 걸어 나오며 행진을 시작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해지는 광경이었다.

트럼펫이 뿌우뿌우 울려 퍼지고, 두두두두 북을 두드린다.

그리고 일정한 박자로 발을 구른다.

두두두두두두- 쿵- 두두두두두두- 쿵쿵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 관계자이다.

그들의 예민한 귀는 그 속에서 익숙함을 포착했다.

‘어? 이거!’

‘분명 어디서 들어봤는데?’

단순하지만 그만큼 뇌리에 쉽게 박힌다.

그들은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거 드래곤플라이의 ‘Ode to the Path’ 드럼 루프잖아?’

최근 각종 음원차트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곡이었으며, 어쩌면 이들 중 몇몇은 오늘 아침에도 시상식에 오면서 들었을 그 노래.

저도 모르게 박자를 타게 된다.

트럼펫에, 북소리에, 발울림에.

고개가 절로 까닥여진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분위기가 바뀌었다.

굳건하게 서 있는 기둥이 양옆으로 밀려난다.

그 사이로, 하늘 끝까지 곧게 뻗은 계단이 서서히 드러난다.

모두의 시선이 계단을 향해 쏠린다.

하지만 천마의 모습은 그저 어렴풋한 형체만 보일 뿐이었다.

그 사이 절도있게 도열한 군악대는 분위기를 절정으로 올린다.

그 뒤로 세션의 연주가 시작된다.

놀랍게도.

이건 인트로가 아니라 후렴구였다.

이 노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천마는, 과감히 코러스를 맨 앞으로 당기는 편곡을 보여주었다.

누구나 쉽게 떠올리고,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도록.

그건 적중했다.

[Hey, Are You Ready?]

낮고 깊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긁어서 묘하게 흥분시키는 목소리.

내력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틀어박히는 순간.

모두 천마의 무대에 빨려 들어갔다.

< 그래미? 까짓것!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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