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72화 (172/191)

< 그래미? 까짓것! (5) >

시간은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바로 천마신교로 그래미의 후보 노미네이트 메일이 도착했을 때.

옥수진과 강여름, 그리고 차선우까지.

내용을 확인한 세 사람은 직감했다.

그래미에서 차선우에게 제대로 된 상을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저 천마는 그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초대했다는 것을.

옥수진이 보기 드물게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이건 말도 안 돼요. 이대로 들러리로 끝낼 수는 없어요!”

차선우도 옥수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남의 축제에 가서 어그로만 잔뜩 끌어준 다음 뒷전으로 밀려나는 건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하면 그래미에서 주역을 차지할 수 있을까?

그때 옥수진이 스산하게 말했다.

“눈눈이이. 차라리 우리도 그래미를 이용하죠.”

“.......”

그래미가 이쪽을 홍보 수단으로 삼는다면, 이쪽도 그래미를 이용해서 홍보 수단으로 삼는다.

옥수진이 풍기는 분위기가 어딘가 오싹했지만, 그 말에 담긴 내용만큼은 호기심이 일게 만들었다.

“그래미를 이용하겠다고?”

옥수진은 본격적으로 계획을 말했다.

“마침 천마 님이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려고 했잖아요. 그것도 프로듀싱 역량과 보컬 역량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앨범으로요.”

“뭐, 그렇지.”

차선우는 이번 기회에 최고의 앨범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은 모든 경험과,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인맥을 동원한 최고의 앨범을.

옥수진이 메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앨범은 그래미를 이용해서 제대로 홍보해버리죠. 다행히 이번에 섭외하려고 했던 피처링 진이 다들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되었네요.”

토비와 타이슨, 하이포닉과 페니까지.

피처링을 부탁할 아티스트의 이름은 모두 노미네이트 명단에 있었다.

“그 사람들을 시상식 전에 섭외한 다음, 그걸 그래미에서 흘리는 거죠.”

섭외를 한 아티스트들은 시상식 이후 인터뷰에서 앨범에 대한 정보를 흘리며 기자들에게 떡밥을 흘린다.

차선우가 탑 아티스트들을 모아서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군침 도는 떡밥을.

그래미 시상식에 맞추어진 초점을, 다른 이슈로 물타기 해서 천마에게 초점을 가지고 오는 전략이다.

“대신 이 방법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빌드업이 필요할 것 같아요.”

먼저 차선우가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주어야 한다.

수상 실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천마의 공연만이 남아있을 수 있도록.

하지만 옥수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대를 보여주는 건 차선우의 특기였으니까.

*

다시 현재, 시상식은 끝났다.

모두가 예상했듯이, 천마와 토비의 합작 앨범은 수상에 실패했다.

대신 같이 후보로 오른 타이슨이 베스트 랩 앨범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당연히 기뻐해야 할 상황이지만, 정작 수상자인 타이슨은 당혹스러워했다.

거대한 덩치의 타이슨은 연신 식은땀을 훔치며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어··· 내가 수상 자격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분명히 말하건데, 이 트로피 안에는 아직 분노(the rage)가 사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습니다.”

타이슨은 수상 소감에서 센스있게 천마와 토비의 합작 앨범인 [Don't kill the rage]를 멘션하며 그 둘에 대한 리스펙을 보여주었다.

물론 대다수는 크게 문제를 삼지 않았다.

천마도 R&B 필드에서 상을 하나 받았고, 천마가 힙합퍼도 아닌데 힙합 장르에서 상을 받는 거 무리다···라는 게 전반적인 의견이었다.

그렇다고 그래미가 잘했냐?

그건 또 아니다.

천마 & 토비와 타이슨은 공개적으로 디스곡을 내며 붙었고, 앨범을 통해 배틀을 벌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천마와 토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미는 천마가 거둔 성과를 모두 무시하고 타이슨에게 상을 줘버린 것이다.

천마의 앨범은 확실한 메시지를 담으며 음악성까지 잡은 상황이었는데.

이 정도면 너무 흐린 눈으로 본 게 아닌가? 라는 말이 돌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매년 있어 왔던 그래미의 수상 기준에 대한 비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이런 게 한두 번이냐,’ ‘그래미가 그래미 했다’ 정도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천마의 공연 이후, 여론은 변하기 시작했다.

천마를 R&B 부문에서 상 하나쯤 받는 작곡가로 여긴 사람들에게.

그의 공연은 충격을 선사했다.

무대에 오른 천마는 록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나온 기라성같은 록커들을 모두 병풍으로 만들어버리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모든 사람이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그래미 시상식에 참여한 뮤지션들부터, 음반 산업 관계자들, 그래미의 관계자들.

마지막으로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는 기자들과 수많은 대중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

참고로 이날 시청률은 전년 대비 20퍼센트가량 상승한 상황이었다.

천마가 공연한 ‘Ode to the path’ 무대를 기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직관했다는 말이다.

그중에는 천마의 노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있었고, 노래는 들어봤더라도 취향과 맞지 않아 흘려넘긴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 천마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천마의 무대를 보고 난 후 생각을 바꿨다.

- ????이거 뭐임

- 와··· 저게 라이브라고? 지렸다 진짜

- 여러분 이제 숨 쉬어도 됩니다

- 와 오늘 팔콘즈 나온다고 해서 라이브 대기타고 있었는데··· 팔콘즈 생각도 안남ㅋㅋㅋㅋ 천마는 뭐하는 놈이냐?

- 집에서 드러누워서 보다가 쌀뻔함. 시발 화장실에서 볼걸.

덕분에 이번 그래미 어워드에 대한 SNS의 언급량은 천마의 무대에 집중되며 엄청난 편차를 보여주었다.

‘Cheonma_GrammyPerformance’가 해시태그로 들어간 게시글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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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그래미 공연장 모습.jpg

(글래스톤베리 락페)

(그래미 천마공연)

오늘 처음으로 셀럽들이랑 동질감 느꼈다. 걍 락페에 간 내 모습이랑 똑같네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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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가 첫 소절 부르자마자 객석 뒤집어지는 거 ㄹㅇ 쾌감 쩐다···. 솔직히 나도 집에서 뒤집어졌어ㅋㅋㅋㅋ

- 와 저 콧대 높은 사람들이 저렇게 방방 뛰는 거 처음봄ㅋㅋㅋㅋㅋㅋ

- 야 토비 저거 눈동자 뒤집힌 거 아니냐 (사진 확대)

수많은 좋아요를 받고 피드에 추천된 이 글은, 토비 본인이 댓글에 등판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ㄴ 사진 당장 지워라

ㄴ 잠깐만! 이거 토비 공계아니냐??

ㄴ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네 박제됐구요

‘천마’에 대한 게시물은 61만의 언급량을 기록하면서, 본상 수상자보다 많이 멘션되었고.

세계 최대 검색 사이트인 구글에서도 미국, 영국, 한국 등에서 검색률 100%를 달성하며 화제를 끌어모았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천마의 무대가 오늘 모인 아티스트 중에서 최고였다고.

‘저렇게 노래 잘하는 가수가 있었다고?’

천마가 보여준 노래가, 여러 개의 그래미상을 받은 사람보다 좋았고,

그래미에서 록 70주년이라고 특별히 기획한 무대보다 천마의 공연이 더 뛰어났다.

이번 그래미가 끝나고 생각이 나는 건, 천마의 공연이 대단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옥수진의 계획대로 천마는 그래미에 쏠린 주목을 점점 가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슈와 흐름에 민감한 기자들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

시상식이 모두 끝나고.

본격적인 인터뷰 시간이 되자 기자들은 사냥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기자들의 표적이 되었던 건 유니트론이었다.

유니트론은 지난번에도 천마의 앨범을 깠던 전적이 있기에, 기자들은 이번에도 유니트론과 천마를 엮었다.

한 기자가 그 당시 유니트론의 발언을 언급하며 물었다.

“지난번에 천마의 앨범이 주제에 비해 지나치게 팝하다고 비판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천마가 그런 이유로 올해 수상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정도 질문이면 유니트론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써먹을 수 있다.

저 주둥이라면 분명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쏟아낼 거라 확신하며 기자가 미소지었다.

하지만 기자의 예측은 완전히 어긋났다.

소속사인 헌트 뮤직 그룹은 유니트론의 주둥이에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미리 예상 질문에 대한 답안지를 만들어 주었다.

방금 기자의 질문은 예상 문제에 있었다.

유니트론은 오기 전 읽었던 답안지를 그대로 읊었다.

“...그래미의 수상 기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기자들이 모두 아쉬워하는 찰나.

유니트론이 말했다.

“하지만 천마의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먼저 후렴구를 인트로로 가져오는 편곡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그에게 붙잡힌 기자들은 장황한 음악평론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무엇을 하든 무덤덤한 유니트론이 천마의 공연에는 꽤 감명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기자들은 곧바로 그럴듯한 제목을 뽑아냈다.

["왜 1등인지 모르겠다"던 유니트론, 천마의 그래미 퍼포먼스를 보고 돌변]

.

.

.

유니트론 다음으로 기자들의 시선이 쏠린 건 바로 토비 무어였다.

천마와 만든 공동 앨범으로 수상에 실패한 토비는 거침없이 들이박고 다녔다.

마침 힙합 부문을 휩쓴 타이슨과는 한번 싸운 전적도 있었고, 상황이 토비가 타이슨에게 밀려서 수상에 실패한 것처럼 보였기에 기자들은 토비에게 몰려가 질문을 던졌다.

“타이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가 수상을 한 게 정당하다고 보시나요?”

“쯧. 니네 의도는 잘 알겠는데, 이번 사건에서 나랑 타이슨을 엮으려고 하지는 마. 타이슨이랑은 이전에 있었던 문제를 모두 풀었고, 우리는 존나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좆같은 건 그래미지! 그 썩어빠진 놈들.”

“그러면 이번 수상에 불만이 있으시다는 건가요?”

“불만은 무슨. 그래미 꼰대들이 힙합에 힙자도 모르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그딴 새끼들이 트로피를 나한테 주든, 타이슨에게 주든, 우리 옆집에 사는 개새끼한테 주든 상관없어. 다만 중요한 건 이거지.”

토비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씨익 웃었다.

기자들의 눈이 빛났다.

수십 쌍의 눈이 토비의 입술을 향했다.

저 모습의 토비가 하는 발언의 90퍼센트는 이슈가 되곤 했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토비가 외쳤다.

“LA맨이 모였다고! 우리는 천마와 함께 작업할 거야.”

LA 맨은 이번에 그래미 시상식에서 합동 공연을 펼친 LA 출신의 가수 3명을 일컫는 말이다.

토미 무어와 타이슨. 여기에 하이포닉까지.

세 사람은 처음으로 모여서 공연을 보여줬는데, 이건 꽤 큰 반향을 일으킨 상태였다.

토비와 타이슨이 주고받으면서 싸우듯이 랩을 내뱉고.

여기에 하이포닉이 기가 막히게 둘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노래를 부른다.

진작에 세 사람이 모였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세 사람의 조합은 훌륭했다.

하지만 이런 건 오직 그래미에서만 볼 수 있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자들은 서둘러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그럼 세 사람의 유닛으로 다시 활동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어. 우리뿐만이 아니야. 천마는 지금 새 앨범에 참여할 어벤져스를 모으고 있거든. 아마 여기 그래미에 온 사람 중에서도 피처링에 참여하는 사람이 꽤 있을걸?”

기자들은 토비가 던진 떡밥을 제대로 물었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천마가 만들겠다는 프로듀싱 앨범의 정체에 대해 캐내기 시작했다.

토비의 말을 기점으로, 프로듀싱 앨범에 대한 정보가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미 최고의 신인상 수상자 페니 로페즈, 천마의 프로듀싱 앨범에 전격 참여!]

[그래미 4관왕 맥 로스웰··· “천마의 퍼포먼스는 인상 깊었다. 프로듀서로서의 천마도 기대 중.”]

페니 로페즈와 맥 로스웰.

두 사람이 천마의 앨범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그 덕분일까?

그래미에 몰려있던 사람들의 관심이, 천마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 이거 실화냐? 이정도면 ㄹㅇ 어벤져스 아니냐?

ㄴ 앨범에 그래미 수상자만 5명임 ㄷㄷ

- 야 잠깐만ㅋㅋㅋㅋ방금 천마 앨범에 드래곤플라이도 참여한다고 오피셜 떴다 (기사링크)

ㄴ ㄷㄷㄷㄷㄷ

ㄴ 아니 형님··· 여기에는 왜??

ㄴ 지원사격 제대로 해주네

ㄴ 그래 시발··· 이게 낭만이지!

힙합, R&B, 팝, 컨트리, 여기에 록까지.

각 장르에서 확실하게 입지를 구축한 아티스트들이 모두 천마의 앨범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팬들은 난리가 났다.

동시에 궁금해졌다.

- 장르가 다른데 도대체 얘네 모아서 뭘 하려는 거지?

- 힙합이랑 R&B랑 락이랑 컨트리랑 팝을 모아서 뭘 하려는지 짐작도 안 간다

- 빨리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줘!! 궁금해 미치겠다.

- 천마는 근데 왜 인터뷰 안 함.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ㄴ 갑자기 사라졌다는데?

ㄴ ???그 수많은 기자들 사이에서? 갑자기? 어떻게?

엄청난 이슈를 만들어 낸 천마는, 왜인지 그때까지 인터뷰를 미루는 중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마침내.

천마가 입장을 밝히기 위해 나타났다.

< 그래미? 까짓것! (5)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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