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73화 (173/191)

< Track 01. 재벌가 사위 (1)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

그래미를 시상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NARAS).

그래미의 대표는 천마의 인터뷰를 보고 있었다.

[...사실이냐고요? 네. 딱히 노렸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전부 그래미 수상자가 됐네요. 그만큼 기대해도 됩니다.]

짧지만 자신만만함이 가득 담긴 인터뷰가 끝나고, 그래미의 대표는 영상을 보던 태블릿을 책상에 쾅 내려놓았다.

“...저건 대체 뭐하는 놈이야?”

천마 덕분에 애써 끌어왔던 화제성이 실시간으로 증발하고 있었다.

SNS, 뉴튜브, 뉴스까지.

모두 천마의 퍼포먼스가 어땠는지, 천마의 새로운 앨범이 얼마나 대단할지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수백 개의 소스 중에는 이번 그래미에 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을 들여 기획한 록 70주년 특별 무대도 가뭄에 콩 나듯 튀어나온다.

그래미 대표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그래미는 하락세이다.

매년 시청률은 떨어졌고, 사람들의 관심은 식어만 갔다.

그래서 천마를 이용했다.

나름대로 확고한 팬덤을 만들었길래 단독 공연도 배정해주고, 여러 부분에서 노미네이트를 해주면서 화제를 끌어모았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그래미 시청률을 올릴 수 있었다.

역시나 시상식은 그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천마가 그 망할 놈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 일을 기점으로 겨우 관심을 끌었던 게 모두 천마에게 돌아가 버렸다.

천마의 공연이 끝나고.

지금 세상이 그래미하면 기억하는 건 딱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천마의 퍼포먼스가 개쩔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천마가 그래미 수상자들을 모아서 엄청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것.

정성들여 밥상을 차려놓고, 이제 먹기만 하면 되는데.

천마라는 놈이 그걸 홀랑 먹어 치웠네?

“끄응··· 제대로 한 방 먹었군.”

대표의 이마에 주름이 더욱 깊어져 갔다.

*

천마의 팬 중에서 편의점 알바생으로 일하던 대학생이 있다.

<천마의 음악방송>으로 입덕한 그녀는, 알바를 하는 와중에도 학점관리까지 열심히 하며 부지런히 살았다.

그렇게 쥐 죽은 듯 취업 준비를 하기를 일년 반.

알바생은 마침내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디자인 계통 회사에 정규직 전환형 인턴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는 알바생이 아니라 인턴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우리의 인턴은 한숨을 쉬었다.

‘레벨업 해 봤자 뭐하냐. 그래봤자 비정규직인데.’

전환형이라고 해 봤자, 수십 명의 쟁쟁한 동기들과 경쟁해서 승리해야지만 진짜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다.

오늘도 정규직 전환을 위해 야근을 하며.

설령 전환에 실패할지라도 이력서에 적을 한 줄의 스펙은 얻을 수 있으리라, 위안을 삼던 인턴은······.

‘에휴···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자연스럽게 펜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천마의 영상을 보았다.

알바생에서 벗어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천마 덕질을 멈추지는 않았다.

‘풍요롭다 풍요로워. 일하려고 덕질하나, 덕질 하려고 일하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이렇게 치사량의 떡밥을 풀어내다니.

팬 입장에서는 좋아도 너무 좋다.

특히 이번의 그 퍼포먼스.

인턴은 생중계로 보았던 그래미 시상식의 퍼포먼스를 떠올렸다.

‘퍼포먼스는 진짜 대단했지. 그 덕분에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었으니까.’

그전까지만 해도 천마는 장르 필드에서 작곡 부문의 상 하나만 수상했을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역시 한국 최초, 아시아 최초이긴 했지만.

팬으로서, 천마가 보였던 활약에 비해서는 아쉬운 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천마는 퍼포먼스 하나로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그걸 보느라 밤을 새 다음날 뒤질 뻔했지만···.’

···그건 잠을 포기하고 볼 가치가 있었다.

암, 그렇고말고.

또한, 그래미에서 천마의 활약은 단순히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화제가 되었다.

인턴이 천마에 대해 푹 빠져있을 때였다.

정규직 전환을 위해 함께 야근을 하고 있던 동기들이 주문한 야식이 도착했다.

“야식 도착했습니다! 다들 먹고 하죠.”

“오? 뭐에요 뭐에요?”

“야식은 떡볶이죠!”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젓가락을 놀리며 대화를 시작했다.

주제는 당연히 천마와 그래미.

“다들 봤죠? 나는 우리나라에서 그래미 수상자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러니까요. 천마 무대는 또 어떻고요! 미국 뮤지션들 반응 보니까 제가 다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진짜 무대를 뒤집어 놓았다? 그 표현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 프리미어리그에서 손흥민 선수가 득점왕을 했을 때처럼.

사람들은 천마가 이룬 일에 환호하고, 설레했다.

한국인이 그래미에서 상을 탈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한국 최초로 수상을 한 걸로도 모자라서, 무대까지 잘해서 해외 유명한 셀럽들이 다 천마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이건 대놓고 주모를 부를 일이었다.

그리고 직원들이 천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인턴도 뽕이 차오르며 천마 부심이 뿜뿜했다.

인턴도 슬며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다들 천마 인터뷰는 보셨나요? 이번에 새 앨범 낸다고 하던데요?”

천마의 공연도 충분히 화제가 되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주목받는 건 ‘대형 프로젝트’라 불릴 만한 새로운 앨범이었다.

특히 이번 앨범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화려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었다.

기본이 그래미 수상자에, 드래곤플라이까지 참여하는 앨범이라니.

“스타들을 모아놓고 만드는 프로듀싱 앨범이라니. 나중에 천마 사단을 만드는 거 아니에요?”

“근데 모아놓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장르가 다 다르던데.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요.”

몇몇 천마의 까들은 ‘잡탕’이라고 비판하지만, 대부분은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재료들도 대단하고, 요리사도 대단한데.

이상한 게 나오기가 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각 장르의 피처링진과 작업하는 내용도 관심을 끌고 있었다.

어쩌면 그 과정이 [컴백일지]에 풀릴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며, 이제 천마의 채널 구독자는 7천만 명을 넘어섰다.

그때였다.

한 직원이 말했다.

“근데 천마는 누구랑 가장 먼저 작업을 할까요?”

인턴은 천마와 함께하기로 한 사람들의 명단을 떠올렸다.

다들 면면이 익숙했다.

먼저 토비 무어.

술방과 축구, 여기에 합작 앨범까지 같이 한 전적이 있다.

이번에 대놓고 그래미의 편파성을 욕하며 천마의 팬들에게 사이다를 선물해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맥 로스웰.

워낙 유명한 팝스타이며, 맥 로스웰의 노래는 믿고 듣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한국 차트에도 종종 올라오는, 인지도 하나만큼은 최고이다.

하지만 역시나.

“페니 로페즈. 그쪽이랑 가장 먼저 작업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국내 천마 팬들에게는 가장 친숙한 이름이 바로 페니 로페즈다.

일단 페니는 천마가 본격적으로 미국 진출을 하기 전부터 천마와 친분을 쌓았다.

데뷔 과정을 컴백일지에 올리기도 했으며, 한국을 직접 방문해서 천마신교 현판 인증샷을 찍은 건 유명하다.

2집 앨범 [THE REAL]을 냈을 때 수록곡 몇 개가 국내 차트에 들어가기도 했었고.

페니의 이름을 들은 직원들을 고개를 끄덕였고, 인턴도 페니라면 인정했다.

“페니랑 먼저 작업하는 것도 좋겠네요.”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인턴은 화장실에서 이를 닦으며 방금 했던 이야기를 곱씹어봤다.

‘아무래도 천마가 이번 앨범은 각 잡고 만들려는 것 같은데. 그러면 공백기가 좀 있겠는데?’

당분간 잠잠해질 걸 생각하니 슬프지만, 이만큼 떡밥을 던져줬으면 적어도 한 달은 이걸 물고 씹고 뜯어도 좋을 듯하다.

그래도 괜히 아쉬워서 인턴은 하이버 검색창에 피처링진 이름을 하나씩 검색해보았다.

천마가 이들과 만나는 사진이라도 찍혔을까 궁금해져서이다.

그렇게 피처링진 중 하나인 페니 로페즈의 이름을 검색하는 순간.

“어?”

[그래미 최고의 신인상 수상자 페니 로페즈, 일반인 남자친구와 불화설?]

아무래도 천마의 작업기간이 생각만큼 잠잠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

나는 본격적으로 다음 앨범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떠들썩하게 전세계에 광고를 했으니, 잠잠해지기 전에 바쁘게 움직여야지.’

내가 첫 번째 작업 파트너로 점찍은 건 다름 아닌 페니 로페즈였다.

그 이유인즉슨,

‘페니만 스케줄이 없었거든.’

일단 LA맨은 각자 앨범 작업과 콘서트 일정으로 바빴다.

맥 로스웰도 바쁘기는 마찬가지고.

드래곤플라이도 은퇴 기념 투어와 진성 메가 콘서트가 아직 남아 있었다.

반면 페니는 휴식기를 갖는 중이라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 다만 페니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연애 상담을 한 번 더 해달라고 했었지.’

지난번 그래미에서, 페니는 내 음반에 참여하기로 한 대신 남자친구를 직접 만나서 같이 상담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남자친구도 캘리포니아에서 DJ를 하는데, 내가 한번 만나서 상담을 해줬으면 좋겠다나 뭐라나.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에서 필요하다면 못 해줄 것도 없다.

상담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페니 & DJ 커플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곧바로 캘리포니아로 넘어갔다.

공항에 도착하자 나를 반기는 건 여전히 쨍쨍한 햇빛이었다.

나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묵었던, 샌프란시스코의 해변이 잘 보이는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짐을 방 안에 넣어두고 페니와 그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나는 호텔 앞에 있는 해변을 걸으며 처음 미국에 왔을 때를 떠올렸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아마 그때 소매치기를 잡았었지?’

소매치기가 한 버스커의 마이크를 훔쳐 달아나려고 하던 걸 내가 잡아주었다.

당시 버스커가 여자친구에게 선물받은 마이크였다며 굉장히 고마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는 아름다운 해변에 반해 ‘백일몽’을 즉석에서 연주했었고.

공연을 보던 그 버스커가 기타를 선물해 주었었다.

‘그 기타 진짜 좋은 거던데. 처음 보는 사람에서 선뜻 선물을 건네주다니. 어지간히 공연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

참고로 그 어쿠스틱 기타는 내가 종종 공연할 때 쓰고 있다.

제품도 좋고, 길도 잘 들어있고, 무엇보다 팬에게 받은 선물이라 손이 가는 물건이다.

이번에 미국에 올 때도 들고 와서 숙소에 고이 모셔두었다.

해변을 걷다 보니 당시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추억을 곱씹으며 약속한 시간에 맞춰 클럽에 도착했다.

페니의 남자친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름 유명한 DJ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클럽의 레지던트로 있다고 한다. 또한 지역 방송국에서도 라디오 DJ를 하며 바쁘게 살고있는 중이다.

지금 가는 클럽에서 페니가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아직 해가 쨍쨍한 낮이라 한적한 클럽에 들어가는 순간.

“아니, 왜! 갑자기 왜 헤어지자고 하는건데!”

며칠 전 파파라치가 보도한 불화설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

< Track 01. 재벌가 사위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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