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01. 재벌가 사위 (2) >
클럽의 안쪽.
페니와 DJ는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했다.
“.......”
나는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하나 싶었는데, 안쪽에서 페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왜! 갑자기 왜 헤어지자고 하는건데! 너 혹시 우리 아빠 만났어? 우리 아빠가 뭐라고 해서 그러는 거지?”
···?
오. 이 싸움에 로페즈 회장도 끼어있는 건가?
나도 모르게 내공을 돌려 두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원래 구경 중에 제일 재미있는 건 싸움 구경이다.
그런데 그냥 싸움도 아니고 커플 싸움이라고?
나는 클럽 안쪽으로 한발짝 더 다가갔다.
방금 전 말에 DJ가 우물쭈물하자, 페니는 본격적으로 몰아붙였다.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아빠가 여기까지 다녀온 거였구나? 그래서 아빠가 뭐래? 나랑 헤어지라고 시켰어?”
“아니. 이건 로페즈 회장님 때문이 아니야. 내가, 내가 지쳐서 그렇다고. 맨날 너한테 맞춰줘야 하는 거. 이제 너무 힘들어.”
“...뭐? 너가 맞춰주는 거라고?”
“그럼 아니야? 너 지난주 토요일 기억은 나냐? 너가 갑자기 스케줄 있다고 해서 약속 펑크 냈잖아. 그날도 너가 바쁘다고 해서 이주일 만에 겨우 잡은 약속이었던 건 기억 나고?”
“아, 아니. 그건 그날만 그랬던 거지. 왜 맨날 내가 그러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래서 내가 그 다음날 스케줄 끝나자마자 너 만나러 갔잖아. 그리고, 그러는 너는 아무 잘못 없어?”
오오오.
잠깐 수세에 몰렸던 페니는, 다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맨날 내가 피해 입을까봐 배려해주는 거라고 말하는데, 그냥 너가 자신이 없어서 그런거 아냐? 그냥 내가 페니 남자친구다, 공개하고 너가 하고 싶어 하는 음악 활동 해. 왜 맨날 내 핑계 대면서 뒤에 숨어만 있는 건데.”
“뭐? 내가 니 뒤에 숨었다고?”
“그럼 아니야? 지난번에는 내 핑계, 이번에는 아빠 핑계. 이게 핑계 대면서 숨는 게 아니고 뭔데!’
“하··· 핑계라고? 너는 이게 핑계로 보이냐? 너는 내 생각은 안해? 너랑 니네 아빠 사이에 껴서 아주 피곤해 죽겠어!”
그렇게 한참을 투닥거리다가, 돌연 페니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럼 니가 그렇게 바라는 대로 헤어져!”
페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클럽 밖으로 뛰쳐나왔다.
페니는 구석에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그대로 지나쳐 저 멀리 달려 나갔다.
“.......”
멀어지는 페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안면은 있지만, 방금 실연을 당한 여자를 따라가 달래주는 게 나을지.
일면식은 없지만, 약속대로 저 안에 있는 남자를 만나봐야 하는지.
하지만 내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클럽 안에 있던 페니의 남자친구인 DJ가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어?”
“어?”
그의 얼굴은 분명 내 기억 속에 있었다.
DJ도 나를 알아봤는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굳어버렸다.
나는 이 상황이 퍽 신기했다.
페니의 오랜 남자친구가 다름 아닌 내 미국 1호 팬이자 기타를 선물해준 사람이라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반가운 마음에 나는 먼저 아는 척을 했다.
“그때 그 기타, 맞지?”
“천마!”
“기타는 잘 쓰고 있ㄴ······.”
“천마다!!”
“.......”
그래.
나 천마 맞다.
일단 이 녀석부터 진정시켜야겠다.
‘후우······.’
왠지 오늘 하루가 무척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DJ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차선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몇 년 동안 응원하던 가수가,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더군다나 그 기타!
DJ는 천마가 자신의 기타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뉴튜브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을 할 때나, 콘서트 무대에 오를 때도 종종 그 기타를 이용했으니까.
DJ는 그 사실이 기뻤다.
원래 기타를 선물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차선우가 소중하게 기타를 다뤄주니 이제는 어찌 됐든 좋았다.
그렇게 잠시 만남의 시간을 가진 두 사람은 다시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소개를 주선하기로 한 페니는 없었지만, DJ와 차선우는 이미 안면이 있었다.
곧바로 술병을 깐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차선우가 물었다.
“페니랑 잘 만나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꽤 오래 사귀었다고 들었는데.”
“그렇죠. 벌써 7년이나 지났네요. 길거리에서 음악을 시작했을 때 만나서, 지금까지 동고동락해 왔거든요.”
대답을 하는 DJ는 씁쓸한 표정으로 술을 원샷했다.
페니와 DJ는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낸 사이지만.
이제 두 사람의 위치는 완전히 달라졌다.
페니는 천마를 만난 이후, DJ는 쉽게 올려다보지 못할 곳으로 올라가 버렸다.
물론 DJ가 능력이 없다는 건 아니다.
그도 견습부터 시작해서 하우스 DJ를 거쳐 레지던트 자리를 차지했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이제는 클럽에서 메인 타임을 도맡아 공연하고, 파티에 섭외받을 때는 타임 당 만 달러씩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페니와는 비교할 수 없다.
침울해지는 DJ의 표정을 보고, 차선우가 비어있는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술이 들어가자 어느새 두 사람의 말투는 편해졌다.
“그럼 로페즈 회장이 그런거야? 그쪽에서 돈 줄 테니까 페니를 포기하래?”
“아니, 뭐 그정도까지는 아닌데.”
DJ는 얼마 전 로페즈 회장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로페즈 회장이 기사와 함께 차를 보냈고, 호텔의 프라이빗 룸에서 있었던 일방적인 만남이었지만.
아무튼.
그때 로페즈의 회장은 정확히 이렇게 말했었다.
‘자네가 우리 딸을 만날 자격이 충분한지에 대한 의심이 드는군.’
‘그리고 보아하니, 자네 본인부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같고.’
대놓고 그만 만나라는 건 아니었지만.
로페즈 회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능력을 보이고 자격을 갖춰라.
차선우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거 영감님 참. 젊은 사람들 연애하겠다는데, 말 참 이쁘게 하시네.”
DJ는 손사래 쳤다.
“아니, 아니야. 사실 회장님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 나도 페니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고. 이런 식으로 관계가 지속된다면··· 회장님이 아니더라도 분명 문제가 생겼을 거야.”
“쯧.”
차선우가 혀를 찼다.
차선우는 페니에게도 애정이 있었고, DJ가 미국의 1호 팬이다 보니 마음이 가는 건 사실이다.
아무리 오래 사귀었다고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 연인 사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이 헤어진다면 신경이 쓰일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이대로 헤어질 거야? 너도 뭐 계획이 있을 게 있을 거 아냐?”
DJ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사실 내가 이쪽에서 일하다 보니 인맥이 조금 생겼거든. 그래서 내 음반을 만들어볼까 했지.”
음반이라.
차선우는 호기심이 생겼다.
보통 DJ라고 하면 힙합이나 EDM 프로듀싱을 같이 하곤 한다.
이 친구도 비슷한 전철을 밟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음반이라면, 프로듀서가 되겠다는 건가?”
“하하, 아직 프로듀서라는 호칭은 너무 거창하지만··· 비슷하지.”
DJ가 이 지역에서 일을 한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다.
특히 지역 라디오 DJ로 활동하면서 이쪽 인맥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그에게 신곡을 좀 틀어달라고 CD를 갖다주면서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DJ는 웬만하면 그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다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DJ는 그렇게 쌓은 인맥으로 비트도 구하고, 래퍼도 구하고, 노래를 부를 가수도 구했다.
그리고 얼마 전, 스튜디오에서 녹음 작업까지 시작했다.
“일단 믹스테잎은 거의 완성이 되었는데, 발표하는 게 조금 망설여지네.”
리스너들의 비판이 무서운 건 아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비판받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다만 그에게 붙어있는 ‘페니의 남자친구’라는 수식어 부담스러웠다.
새로운 음원이 나왔는데, 들어보니까 별로네?
그런데 그게 페니의 남자친구가 낸 거네?
괜히 구린 앨범을 내서, 페니의 얼굴에까지 함께 먹칠을 하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 돼서 자신 있게 믹스테잎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떠올린 DJ가 괜히 소심해지자 차선우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줘봐.”
“응? 뭘···?”
“믹스테잎. 만들었다며. 한번 들어보자고. 얼마나 구린지.”
차선우에게 이런 걸 보여줘도 되는걸까라는 생각에 DJ는 우물쭈물했지만.
“쓰읍. 어서!”
단호한 차선우의 말에 믹스테잎을 재생했다.
장르는 일렉트로팝.
트랙은 총 네 개.
네 개의 곡 모두 실험 정신이 강하게 느껴진다.
EDM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신스가 곡의 모든 구간에 걸쳐서 루프되고 있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곡에서, 비트를 독특하게 배치해 의외성을 주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어찌 보면 도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트랙이다.
하지만 난해함과 신선함은 한 끗 차이다.
그리고 그 한 끗 차이를 만드는 게 바로 프로듀서의 감각이다.
차선우는 생각했다.
‘괜찮은데? 유명한 곡을 마구잡이로 샘플링한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트렌디하게 잘 살렸네. 이렇게 잘 만들었는데도 자신이 없어? 얘는 귀가 구린 건지 원.’
차선우는 DJ의 곡을 듣고 가능성을 보았다.
분명 이 정도라면 시장에서도 충분히 먹힐 만하다.
그리고.
어느새 믹스테잎의 마지막 트랙이 재생되었다.
DJ가 유일하게 자신감을 내비치던 트랙이기도 하다.
차선우의 귀에 익숙한 비트가 날아와 꽂힌다.
“...잠깐만 이거?”
차선우는 트랙의 이름을 확인했다.
[천마 REMIX]
“.......”
*
그날 나는 DJ와의 1차 상담을 끝냈다.
술 몇 잔 먹이고 페니한테 가서 화해하라고 하니 DJ는 그날 밤 페니를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믹스테잎이 괜찮다는 말을 듣고 DJ가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른 건 덤이다.
사랑싸움은 칼로 물 베기니. 두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데.
페니와 DJ의 관계를 보다 보니, 내 앨범에 들어갈 첫 번째 곡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보통 곡을 만들 때 멜로디를 먼저 쓰는 편인데, 이번에는 가사가 먼저 떠오른다.
꿈을 좇아 집을 뛰쳐나온 재벌가의 소녀.
거리에서 음악을 하던 가난한 소년.
소녀는 소년과 함께 거리를 쏘다녔지만, 그녀는 원래부터 특별한 사람이었다.
소녀는 당연하다는 듯 저기 위로 올라가 빛나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소년은, 이제 어른이 되어 현실을 깨닫는다.
어릴 때는 스스럼없이 어울려 놀 수 있었지만.
지금도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이 이야기의 결말은 아직 나지 않았다.
페니와 DJ의 사랑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니까.
나는 생각했다.
‘이거 달달한 사랑 노래가 되겠는데?’
사랑 노래라.
사랑을 주제로 노래를 만드는 건 처음이라 조금 닭살이 돋으려고 하지만.
그래도 한번 써보고 싶다.
두 사람의 진정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
나는 머릿속으로 가사를 떠올려보았다.
‘이건 듀엣으로 불러야겠군.’
이 노래를 부를 사람은, 불러야만 하는 사람은 정해졌다.
페니와 DJ.
이 두 사람밖에 없다.
‘흐음, 얼른 두 사람이 화해를 했으면 좋겠는데.’
.
.
.
하지만 다음날.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불화설 이후 파파라치가 엄청 따라붙은 모양이었다.
심지어 DJ의 신원까지 공개되며 두 사람의 연애사가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로페즈 그룹 상속녀의 남자친구, 신원 공개!]
[지인 A씨의 제보, “재벌가 공주와 일반인의 첫만남은···.”]
나는 그 상황을 보며 당황했다.
“흐음···.”
페니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을 부담스러워 하던 DJ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곧바로 어제 DJ를 만났던 클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했다.
“.......”
언제 싸웠냐는 듯 알콩달콩한 두 사람의 모습을.
‘...이게 나라냐.’
< Track 01. 재벌가 사위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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