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01. 재벌가 사위 (3) >
평일 정오 거리.
식사를 하기 위해 나온 직장인들로 바글바글한 바로 그 시각.
이 시간은 온갖 가십들로 가득 차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게 회사 일이든, 연예계의 소식이든, 아니면 남의 뒷담이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사람들의 대화 주제가 일치하고 있었다.
바로 오늘 아침.
페니 로페즈의 연애사가 집중 보도된 것이다.
신문이나 포털 최상단에 걸린 메인 이슈는 모두 페니의 이야기였다.
밥을 먹으러 나온 미국의 공무원도 마찬가지였다.
천마의 팬이기도 한 그녀는, 샌드위치에 커피 한잔을 해치운 뒤 신문가판대에 올려진 신문을 집어 들었다.
[페니 로페즈의 남자는 바로 ‘DJ노시스’... 소속된 AAA 클럽에서 밀회를 가져]
가십지로 분류되는 그 신문은 남자친구의 직업과 이름, 소속된 클럽까지 공개하고 있었다.
뉴튜브를 찾아보니 페니의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이 클럽에서 했던 공연 영상도 돌아다닌다.
‘와···. 여기 클럽 사장은 행복하겠네. 다들 페니 남자친구가 누군지 궁금해서라도 사람들이 몰려들 거 아냐?’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같이 식사를 한 동료도 신문을 뽑아 들었다.
신문 맨 앞에 적힌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 눈길이 간다.
[페니 로페즈와 남자친구, 거리 한복판에서 다퉈··· 이유는 로페즈 회장의 결혼 반대?]
흥미진진한 내용이다.
공무원은 같이 신문을 보며 말했다.
“와··· 대박이네요. 그럼 두 사람이 어제 길 한복판에서 싸웠다는 거에요?”
“그러게 말이에요. 늦은 밤이라서 사람들은 많이 없었던 모양인데, 그래도 볼 사람들은 다 본 것 같네요. 기사 보니까 뉴튜브에 둘이 싸우는 영상도 올라왔다는데요.”
“헐. 그래서 둘은 왜 싸운 거래요?”
“그것까지는 기사에 안 나와 있는데···. 마지막에는 둘이 싸우다가 근처에 호텔로 들어갔다나 봐요.”
“호텔로요?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으려나?”
이야기를 하는 건 공무원과 동료들뿐만이 아니었다.
신문가판대에 파는 신문에는 페니와 남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뿐이었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하나씩 사가며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공무원도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걸 귀동냥하며 생각했다.
‘솔직히 재미있는 주제이기는 하지.’
로페즈 뮤직그룹은 전 세계에 유통망을 깔아놓은 3대 유통사 중 하나이다.
페니 본인도 그래미에서 최고의 신인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한 팝스타고.
그런데 일반인 남자친구라니!
공무원은 페니의 남자친구라는 DJ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 사람은 어쩌다가 그런 여자랑 사귀게 된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공무원은 핸드폰을 들고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이었을까?
페니의 남자친구와 관련해서 엄청난 루머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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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페니 남친 아님?
(사진)
날짜 보니까 7년 전에 찍힌 사진이거든?
여기 노래 부르는 여자가 페니 로페즈고, 옆에서 기타 치고 있는 게 현 남친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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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이네. 그럼 두 사람이 최소 7년은 사귄 거야?
ㄴ 진짜 오래되기는 했다. 일반인도 그렇게 오래 사귀기 힘든데
- 그럼 이제 슬슬 헤어지겠네
ㄴ 왜?? 둘이 잘 어울리지 않아?
ㄴ 딱 봐도 로페즈 회장부터 떨어지라고 하겠지. 솔직히 두 커플이 아직도 사귀는 게 대단한 거라고 본다
ㄴ ㅇㅈㅇㅈ 연예인 중에서도 톱스타랑 사귄다? 남자 스트레스 ㅈㄴ 받을 듯
- 걍 끼리끼리 노는 게 제일 좋다
ㄴ 연예인 + 일반인? 이거 절대 오래 못 감
ㄴ 두 사람 결혼하면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가벗고 버스킹함
ㄴ 그럼 나는 옆에서 발가벗고 탬버린 칠게ㅋㅋㅋㅋ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니 커플이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공무원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헤어지지 않을까?’
안 그래도 남자 쪽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인데.
수천만 명의 관심까지 더해진다면··· 그 끝은 뻔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페니가 이번 천마 앨범에 참여한다고 했는데.’
그건 또 어떻게 되려나?
*
공무원이 한창 두 사람의 열애설에 대해 떠들고 있을 때.
나는 기사를 보고 놀라서 DJ가 있는 클럽을 찾아갔다.
‘아니, 어제 분명히 화해하라고 말했는데. 왜 또 가서 싸운 거야?”
지들끼리 어디 구석에서 싸웠으면 몰라.
하필 싸워도 사람들 다 보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싸우는 건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DJ는 신상까지 다 까발려졌던데 멘탈은 좀 괜찮은 건가?
두 사람이 싸웠으면 방금 쓰던 듀엣곡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이고 머리야······.’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러니 커플들 싸움에는 끼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을 한가득 안고 DJ가 있다는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
분명 페니와 DJ는 싸웠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저기 테이블에서 찐하게 키스를 나누고 있는 저 연놈들은 누구지?
“크, 크흠!”
내가 인기척을 내자 열심히 애정행각을 벌이던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다.
“어, 어··· 올 거면 말이라도 해주지.”
“흠, 흠. 대체 언제 온거야. 있는 줄도 몰랐잖아.”
나는 민망해하며 딴청 피우는 두 사람을,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두 사람이 싸운 줄 알고 ‘급하게’ 왔는데. 이렇게 사이가 좋았으면 내가 올 필요도 없었겠네. 그냥 두 사람 하던 거 마저 하시죠.”
둘이 길 한복판에서 싸우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찍힌 신문을 흔들자 DJ는 당황하며 해명했다.
“아 그게. 어제 너가 먼저 찾아가서 화해하라고 했잖아. 그래서 페니가 있는 호텔로 찾아갔거든. 싸울 생각은 없었는데, 얘가 전화도 안 받고 근처에서 계속 기다리다 보니······.”
DJ의 변명에 따르면 상황은 이랬다.
내 조언을 듣고 곧장 페니가 묵고 있는 호텔로 달려갔다.
하지만 페니가 연락을 받지 않아 일단 그 근처에서 죽치고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저녁을 포장해서 돌아오는 페니를 만났고,
왜 연락을 안 받았니, 쓸데없이 왜 여기서 기다리니 하면서 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싸우던 와중 주변에 사람들이 몰린 걸 보고 급하게 호텔 방 안으로 들어가······.
그 이후 호텔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생략하기로 하자.
“흐으음···.”
두 사람은 언제 싸웠다는 듯 서로 부둥거리고 미안하다고 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게 하필 내 앞이라서 굉장히 꼴사나웠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두 사람이 모두 이번 곡 작업에 꼭 참가했으면 했는데.
싸우고 헤어진 커플을 데려오는 것보다, 꽁냥꽁냥거리는 놈들을 데리고 작업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분위기도 나쁘지 않겠다, 나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지난번에 말한 앨범 말인데. 이번 트랙은 두 사람이 같이 참여하는 건 어때?”
페니는 이전에 피처링을 약속했었지만, DJ는 아니다.
DJ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눈이 동그래졌다.
“...갑자기? 그리고 내가 네 앨범에 참여해도 되는거야?”
나는 조금 전까지 만들고 있던 노래를 일부 재생해주면서 말했다.
“이번 트랙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지고 달달한 듀엣곡을 만들려고 하거든. 아무래도 두 사람의 이야기니까 같이 부르면 감정도 잘 전달할 수 있고, 진정성도 느껴질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DJ의 눈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한번 해볼래?”
DJ는 지금까지 페니의 남자친구라는 부담감에 눌려있었다.
페니의 남자친구라면 더욱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제안이 거절당했을 때를 대비해 설득할 방법들을 몇 가지 준비해 놓았지만,
“좋아. 그럼 한번 해볼게.”
내 제안을 들은 DJ는 고민 없이 수락했다.
“...?’
그리고 나는 조금 놀랐다.
어제 그렇게 고민하던 놈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설마 내 연애 상담이 엄청 효과적이었던 건가?
그때 DJ가 말했다.
“어차피 내 신상은 다 털렸으니까. 이참에 연애도 공개적으로 해버리고, 믹스테잎도 발표할 생각이었어.”
내가 오기 전, 페니와 DJ는 이미 앞으로의 계획을 다 세워놓은 모양이었다.
둘의 연애가 화제가 된 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이참에 DJ도 만들어놓은 믹스테잎을 발표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잘됐네. 일단 DJ가 전문 보컬이 아니니까 거기에 맞게 곡을 만들어야겠네.’
방금 말한 곡과 관련해서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
“우리 자기, 잘 생각했어! 우리 같이 듀엣으로 부르면 진짜 좋겠다. 그치? 그리고 자기 믹스테잎도 잘될 거야. 천마도 좋다고 했다며.”
“그러게. 이번 믹스테잎 반응도 좋고, 우리 듀엣곡도 성공하면 회장님도 인정해주시지 않을까?”
“우리 아빠? 우리 아빠는 신경쓰지 마.”
“아니 그래도 회장님은···.”
“내가 좋다는데 뭐! 어쩌라고!”
“.......”
또다시 그들만의 세상으로 가버린 두 사람을 보며.
나는 개탄했다.
‘듀엣곡···. 정말 잘한 선택이었을까?’
*
차선우는 이번 앨범 작업을 위해 미국에 몇 달은 머물 생각이었다.
아예 스튜디오와 저택도 따로 구해놓은 상황.
그래서 한국에 있는 천마 전담팀 직원도 몇 명 같이 들어왔다.
옥수진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차선우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그럼 두 사람은 이제 곧 열애설 인정하고 공개 연애를 하겠네요?”
차선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공개 연애뿐이겠냐? 조만간 결혼까지 할 기세던데.”
“어머! 정말요?”
차선우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옥수진이 보기에 페니와 DJ 커플의 스토리는 훌륭했다.
저걸 베이스로 로맨스 드라마 한 편은 뚝딱 만들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다.
더욱 좋은 건 두 사람이 열애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두 커플은 이번 열애설을 이용해 DJ의 데뷔 믹스테잎을 홍보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만약에.
그들만 허락해준다면.
두 사람이 피처링하는 천마의 신곡도 같이 끼워 홍보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수진이 차선우에게 물었다.
“천마 님. DJ 씨의 믹스테잎이 괜찮다고 하셨죠?”
차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더라. 그 정도면 감각이 있던데? 유니크 한 개성이 묻어 나오는데 대중성도 있고.”
페니와 열애설로 유명한 DJ가 믹스테잎을 발매한다?
사람들은 분명 흥미를 가지고 한번 들어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노래가 좋네?
그 와중에 페니와 DJ의 공개 연애까지 발표하네?
사람들은 더욱 뜨거운 관심을 보낼 것이다.
“그 상황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천마 님의 노래가 나온다면 사람들이 더욱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이번 앨범은 정식 발매 전에 두 곡 정도 리드 싱글로 내기로 하셨잖아요.”
“오호.”
옥수진의 계획은 차선우가 듣기에도 그럴듯해 보였다.
아무래도 이번 노래가 실제 있었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공감을 쉽게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게 남의 연애사라는 건데.
차선우 본인의 연애라면 망설임 없이 이용했겠지만, 아무래도 남의 연애다 보니 그쪽의 허락이 가장 중요했다.
“그럼 내가 한번 페니와 DJ에게 물어보지.”
이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기로 하고.
옥수진은 신기해하며 감탄을 내뱉었다.
“근데 이 두 사람 말이에요. 진짜 멋지지 않아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재벌가 소녀랑 평범한 소년이 진정한 사랑을 나누다니. 낭만적이에요!”
하지만 차선우는 코웃음을 쳤다.
“연애에 낭만이 어디 있냐? 그것도 돌아보면 다 현실이야.”
차선우의 이야기를 들은 옥수진은 문득 궁금해졌다.
차선우 정도면 얼굴이 꿀리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도 차선우를 소개받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천마 님은 연애 안 하세요?”
“뭐? 연애?”
차선우는 기억을 더듬어 무림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무림은 이곳과는 달라서 삼처사첩이 가능했고, 연애결혼보다는 정략결혼이 성행했다.
더군다나 차선우는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당연히 결혼이라는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이리저리 치인 결과.
깨달음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그 피곤한 걸 왜 하냐?”
< Track 01. 재벌가 사위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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