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01. 재벌가 사위 (4) >
새로운 프로듀싱 앨범.
나는 이번 앨범 작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들 워낙에 바빠야지. 스케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네.’
공연이다, 곡 작업이다 바쁘다보니, 하나하나 스케줄을 맞춰서 작업을 하려면 기존의 앨범보다 준비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피처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화려한 만큼 나도 공들여서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거 만들다 보니 조금 번잡하네. 너무 색깔이 다른 아티스트들을 한 곳에 몰아넣으려고 했나?’
구상을 하다보니 앨범에 통일성이 없다.
노래가 아무리 좋다지만.
저쪽에서는 드래곤플라이가 하드한 록을 하고, 반대편에서는 페니가 구수한 컨트리를 부른다?
밑그림만 그렸는데 전체적인 완성도부터 사운드의 유기성까지 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래서 계획했다.
‘잘 안 어울리면, 다 들어가도 어울릴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주면 되는 거 아냐?’
앨범 자체에 확실한 컨셉을 만들어서 그들을 모두 담아보자고.
‘이참에 앨범에 하나의 세계를 담아보는 건 어떠려나?’
그렇게 만들어진 배경은 바로 모든 게 사라진 아포칼립스에 디스토피아까지 섞인 세계.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개판으로 망가진 세계라면, 뭘 때려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니까.
하지만 이 세계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순간에도.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줄 생각이다.
그 이야기의 첫 시작은 바로 페니와 DJ 커플.
그런데······.
“쓰읍. 이거 쉽지 않네.”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
*
새로 구한 차선우의 스튜디오 안.
차선우와 페니, DJ까지 이번 트랙에 참여할 세 사람이 모두 모여있었다.
요 몇 주 내내 붙어서 작업하다 보니 세 사람은 급격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페니가 말했다.
“앨범 컨셉이 진짜 재밌는 거 같아. 나도 다음 앨범을 만들 때 이렇게 한번 해볼까?”
‘아포칼립스’라는 앨범 세계관에 맞게, 커플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가사로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화자 ‘나(I)’의 모험 이야기로 시작되는 오프닝 곡을 지나, 페니- DJ 커플의 트랙으로 이어진다.
상류층 소녀와 하층민 소년.
화자 ‘나(I)’가 두 사람을 만나고, 둘의 사랑을 지켜보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가사가 쓰여졌다.
차선우도 이번 작곡 과정이 신선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작곡 방식이랑 달랐으니까.’
이번만큼은 악기 하나 없이 가사부터 쓴 후, 그 가사에 어울리는 멜로디는 붙여나갔다.
그 덕분에 확실히 ‘자신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는’듯한 느낌이 곡에서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사운드부터 멜로디나 코드 진행까지.
곡 자체가 가사와 찰떡같이 어울리게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을 보며 차선우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꽤 괜찮은데?’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녹음을 하기로 한 당일 벌어졌다.
“잠깐잠깐. 스탑. 두 사람 일단 좀 밖으로 나와봐.”
차선우는 녹음을 중단하고 부스 안에 있던 DJ와 페니를 불러냈다.
같이 노래를 주고받으며 애틋한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두 사람은 동시에 녹음 부스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자꾸 한 파트에서 미스가 나고 있었다.
페니는 완벽했다.
그녀는 이미 본인만의 확실한 스타일을 정립했고, 무엇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문제는 DJ였다.
DJ는 미안한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부스에서 나왔다.
“아, 미안.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게 생각대로 잘 안되네.”
보컬이 문제는 아니다.
페니나 차선우에 비교한다면 당연히 모자라지만, DJ도 오랜 버스킹으로 다져진 몸이다.
차선우를 처음 만난 것도 해변에서 버스킹을 하면서였으니까.
이정도면 보컬로 나무랄 데는 없었고, 실제로도 잘했다.
소년과 소녀가 사랑을 시작하고, 함께 꿈을 이루어나가고, 소녀가 먼저 성공을 이뤘다는 내용까지.
이 부분에 대한 녹음은 순조로웠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이 성공하는 가사가 나올 때.
- 길었던 7년. 그가 넘길 다음 장의 이야기는,
스포트라이트, 환호, 박수갈채로 가득 차있어.
문제가 발생했다.
마침내 남자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 부분에서.
벌써 DJ가 네 번이나 실수를 해버렸다.
경직된 녹음 분위기에 DJ는 긴장으로 굳었고, 페니는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우리 그럼 조금 쉬었다 할까?”
하지만 차선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조금 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니.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올게. 페니 너는 좀 쉬고 있어.”
차선우는 그대로 DJ를 끌고 나간 후, 냉장고 안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DJ에게 건넸다.
DJ는 답답했는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진짜 미안해. 아까 연습했을 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아까부터 저 부분을 부르려고 할 때만 되면 머뭇거리더라. 뭐가 문젠데?”
“그게··· 저기서 갑자기 몰입이 깨지네. 차라리 생각을 비우고 노래만 부르면 어렵지 않은데.”
“흐음······.”
솔직히 말해서, 이번 곡은 어렵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차선우가 이번 곡에서 원했던 건 ‘공감’이다.
얼마나 기깔나게 부르냐가 아니라, 얼마나 대중에게서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느냐란 말이다.
더군다나 DJ의 실력을 감안해서 기교를 많이 넣지도 않았다.
조금 더 감정 전달에 집중하라는 배려였다.
그런데 정작 그 당사자가, 감정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니!
그새 맥주 한 캔을 모조리 비운 DJ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히··· 많이 부담되네.”
DJ는 천마의 미국 1호 팬이다.
팬 입장에서 동경하던 뮤지션의 앨범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책임감이 느껴지는데, 심지어 자신을 제외한 모든 피처링진이 넘사이다.
괜히 끼어들어서 차선우의 앨범을 망칠까 봐.
급도 안 맞는 사람이 여기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DJ가 거의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차선우는 피식 웃었다.
“뭐야? 그게 문제였어?”
“엉?”
“음. 보컬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
“.......”
“그런데 내가 그것도 생각 안하고 너한테 피처링을 부탁했을 거 같아? 네가 내 팬이라서, 아니면 페니의 남자친구라는 이유로 피처링을 부탁한 건 아니거든. 거기에다.”
지금 DJ는 문제의 원인을 잘못짚고 있었다.
앞부분은 잘 부르다가 갑자기 꼬인 건, 보컬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건 보컬 문제가 아니야. 네 마음의 문제지.”
차선우는 페니-DJ 커플을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페니 쪽이 자기주장도 훨씬 강하고 관계에도 주도적이고, DJ는 그저 받아들이고 맞춰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중심도 잘 잡혀있다는 뜻이다.
믹스테잎에서도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구성이, 그런 DJ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확실히 DJ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페니가 갑자기 가출을 감행하며 뛰쳐나와도, 잘 나가다가 한 번씩 비뚤어질 때도,
두 사람이 평온하게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DJ의 뿌리 깊고 단단한 자아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짓눌리고 있고,
흔들리고 있고,
휘둘리고 있다.
‘가사 내용처럼 정말로 성공해서 페니의 옆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DJ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정면에서 페니와 자신을 비교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금까지 간신히 수평을 이루던 관계는 일방적으로 변한다.
이걸 바로잡지 않으면 이번 트랙은 물론이고, 앞으로 페니와의 관계도 제대로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차선우는 내공을 담아 강하게 말했다.
“급이 맞지 않는다고? 아니. 급이 맞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피처링을 부탁하지도 않았겠지.”
지금까지 DJ가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찾아줄 필요가 있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 자리는 ‘너’가 필요한 자리야. 내 노래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건 바로 너라고. 너는 니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자리에 정확하게 들어가는 거야.”
그건 바로.
자기 확신.
그 순간 DJ는 과거의 어느 장면을 떠올렸다.
꺼진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확연하게 달라지는 머릿속.
그 변화를 눈치챈 차선우가 씨익 웃었다.
“그럼 다시 시작할까?”
*
차선우와 DJ는 녹음실로 들어왔다.
녹음은 곧바로 시작되었고, 부스로 들어간 DJ가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원 테이크로 다시 한번 가볼 수 있을까?”
DJ의 말에 페니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DJ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DJ의 눈빛 속에 불안함은 없었다.
피식 웃은 차선우는 손을 들어 올려 OK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페니의 보컬을 시작으로, DJ의 노래가 시작된 순간.
- 그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조차도 아니지.
소녀는 줄리엣이지만, 소년은 로미오가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들은 늘 같은 페이지에 있었어.
페니는 느꼈다.
이번에는 되겠구나!
마침내.
페니가 알던 DJ의 모습이, 가사를 타고 뚜렷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시작은 살짝 떨렸지만.
이내 기교 없이 담백한 목소리가 잔잔하게 녹음실 안을 채워나간다.
마치 어느 시골 담벼락의 소담스러운 들꽃처럼.
하지만 그래서 더 큰 여운이 남는 기분이다.
노래와 딱 맞는 순수함을 이제야 찾은 것 같았다.
- 길었던 7년. 그가 넘길 다음 장의 이야기는,
스포트라이트, 환호, 박수갈채로 가득 차있어.
문제가 됐던 그 구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노래에 완전히 몰입했다.
한껏 집중해 모든 게 아득하게 멀어지고.
그저 감정 위에 감정을 쌓아 올리며.
풋풋하고 자신만만했던 그때처럼.
함께 앞에 있는 난관을 뛰어넘는다.
차선우는 두 사람의 노래를 끊지 않았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후,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좋은데? 한번 들어볼래?”
확실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진 노래.
하지만 녹음본을 들어보니 DJ는 뭔가 아쉬웠다.
보컬은 풋내기 같고, 초반에는 떨림이 묻어 나오기도 했다.
한 번만 더 녹음한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DJ가 요청했다.
“우리 딱 한 번만 더 해보면 안 될까?”
그러나 차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이 딱 좋아. 소리는 기계로 해결할 수 있지만, 감정은 그게 불가능하거든.”
때로는 완벽한 사운드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뛰어난 보컬보다, 정교한 기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꾸며지지 않은 찰나의 순간.
그게 더 큰 울림을 주곤 한다.
“여기에는 그게 담겨있거든.”
이 녹음본에는 차선우가 원하던 게 정확하게 담겨있었다.
완벽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보여주는 증거가.
차선우는 그걸 지울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문제가 거짓말인 것처럼 순식간에 녹음에 성공했다.
페니는 감탄했다.
“두 사람. 나가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온거야? 어떻게 사람이 갑자기 잘해진 건데?”
페니의 물음에 DJ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천마의 말을 들으니까 한 장면이 떠오르더라고.”
“그래? 그게 뭔데?”
“음··· 니 생각?”
“...시부럴.”
여전히 꽁냥거리는 두 커플 옆에서 차선우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사귄 지 7년이 지났다는데.
아직도 저러고 싶을까?
그 모습이 꼴보기 싫어 차선우는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까 지금 믹스테잎이 발매되었겠는데?”
정신없이 녹음을 하느라 잊고 있었다.
바로 오늘 오후에 DJ의 믹스테잎이 발매 예정이라는 것을.
시계를 확인하니 바로 방금 발매가 예정된 시각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번 확인해볼까?”
그 순간이었다.
지이이잉-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차선우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들어 발신인을 확인한 순간.
녹음실이 조용해졌다.
“.......”
“...아빠가 왜?”
발신인은 바로 로페즈 회장이었다.
< Track 01. 재벌가 사위 (4) > 끝
ⓒ 연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