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k 01. 재벌가 사위 (5) >
세계 3대 메이저 음반 레이블인 로페즈 그룹의 회장.
그에게도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딸래미.
몇 달 전 딸의 연애를 반대하고 나서자, 페니는 그 길로 집을 나와 여태 연락 한번 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로페즈 회장은 딸의 소식을 오직 기사로만 접하고 있는 중이었고.
“쯧쯧, 하여간 성질머리 하고는. 누구를 닮아서 그런 건지 원.”
원하는 게 있으면 무조건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고집불통.
페니의 남자친구인 DJ가 마음에 차지 않는 로페즈 회장이지만,
딸의 성질머리는 7년 동안 받아준 인성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래도 이번에 뜬 불화설을 보며 이제 슬슬 두 사람의 관계도 끝이 나나 싶었다.
“우리 페니에게 흙탕물이 튄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지난번 직접 만난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구만.”
로페즈 회장은 얼마 전 DJ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자기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침착한 모습과, 말속에서 느껴지는 페니를 향한 애정어린 마음까지.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 페니 옆에 있으려면 그걸로는 부족하지. 암.”
단순히 사람이 좋은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음악이든, 디제잉이든 간에.
로페즈 회장은 DJ가 본인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길 바랐다.
만약 그럴 능력이 없다면, 이대로 끝나는 게 두 사람을 위해서도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불화설 이후.
페니와 DJ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 두 사람의 이별은 확정된 수순을 밟는 것처럼 보였지만···.
바로 오늘.
상황이 바뀌었다.
[불화설에 휩싸였던 페니-DJ노시스 커플, 공개 연애 인정··· 여전한 애정 과시]
[페니 로페즈, “평범한 연인처럼 잠깐의 다툼일 뿐, 우리 사랑은 굳건하다”... 7년 사귄 남자친구에 대한 애정 드러내]
DJ의 데뷔 믹스테잎이 나오는 날짜에 맞춰, 이전에 했던 인터뷰를 공개한 것이다.
변함없는 애정을 자랑하는 모습과 함께.
그 인터뷰에는 지금까지의 두 사람의 연애 과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랑을 키워갔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 까지.
참고로 이번 인터뷰에서 로페즈 회장은 두 사람의 연애를 방해한 악역으로 등장했다.
[우리 아빠요? 세상에, 내 남자친구를 직접 만나서 헤어지라고 얘기했어요!]
“.......”
아무래도 딸래미에게 아직 뒤끝이 남아있는 게 분명했다.
[아마 제 남자친구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한 거 같은데. 이번 데뷔 믹스테잎을 들어보면 분명 생각이 바뀔걸요?]
그 와중에 깨알 남자친구 자랑까지.
인터뷰를 보던 로페즈 회장은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그는 뒷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끄응···. 이 녀석이.”
하지만 아직 인터뷰 영상은 끝나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닭살이 올라오는 이 영상에는, 두 사람이 어떻게 불화를 극복했는지 나왔는데.
놀랍게도 두 사람의 열애에 큰 지분을 차지한 것은 천마였다.
요약하자면 천마의 조언 덕분에 다시 관계를 회복했으며,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천마의 앨범에서 듀엣곡을 피처링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알뜰살뜰하게 신곡 홍보까지 해준 건 덤이었다.
[페니: 이번 앨범은 컨셉부터 되게 재미있어요. 꼭 연극을 하는 듯할까?]
[리포터: 흐응. 연극이요?]
[페니: 가상 세계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에 이입하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앗, 이건 스포인가?]
[리포터: 그러지 말고 조금 더 말해주시죠.]
페니 로페즈는 영악하게 실수인 척하며, 앨범에 대한 궁금증까지 북돋아 줬다.
“천마 이 사람이···.”
인터뷰를 모두 본 로페즈 회장은 천마에게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이 년 전, 천마신교에 큰 투자를 한 이후.
로페즈 회장은 천마와 좋은 사업파트너를 넘어 동맹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대형 프로젝트나 다름없는 이번 앨범도 로페즈 그룹에서 책임지고 확실히 밀어주기로 약속했는데.
“그런데, 딸 남자친구까지 앨범에 참여한 걸 나한테 귀띔도 안 해줄 줄이야···.”
이런 사실마저 인터뷰를 통해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로페즈 회장은 그 즉시 천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천마의 대답은··· 로페즈 회장의 혈압 수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 왜 말 안 해줬냐고요? 제가 말했으면 회장님이 반대하고 나섰을 거잖아요. 아니에요?
“.......”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천마는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 보아하니 내년에 사위 하나 생기겠던데요?
사위라니?
갑자기 사위라니!
“아니, 나는 아직 인정 못 하겠네!”
- 글쎄요. 예비 사위의 믹스테잎을 들어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끄응···. 그건 자네가 도와준 거 아닌가. 그걸 온전히 그 녀석의 실력이라고 보긴 어렵네만.”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천마의 웃음소리가 넘어온다.
오늘따라 그 웃음소리가 너무 얄미웠다.
- 전 하나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 녀석이 이래 봬도 자기 색채가 뚜렷하거든요. 일부러 손을 대지 않으려고 노력 좀 했죠. 그리고 어차피 정규 앨범도 아니고 믹스테잎인데요.
“.......”
- 아 그리고 애들이 연애하겠다는데 간섭 좀 그만하시고 내버려 두시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천마와의 전화는 끊어졌다.
로페즈 회장은 여전히 불편한 심정이었지만.
처음 인터뷰를 봤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는 파악했으니까.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들리는 단어.
믹스테잎.
“그놈의 믹스테잎이 어쨌길래.”
딸래미부터 천마까지, 다들 들어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는 거지?
잠시 고민하던 로페즈 회장은 DJ의 믹스테잎을 찾아서 재생했다.
*
페니와 DJ의 공개 연애 발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다들 이대로 헤어질거라 생각했지만, 대중들은 자기도 모르게 일반인인 DJ에게 이입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평범한 남자가.
사랑 하나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재벌가의 사위가 되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건 짜릿하니까.
거기에 천마가 요정 할머니의 역할을 하며 신데렐라 스토리에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혹자는 이걸 가지고 로맨스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호사가의 흥미를 자극하는 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또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더해졌다.
바로 DJ의 천마 성덕설!
DJ는 ‘미국 1호 팬’이라는 고정닉으로 활동하는 천마의 오래된 팬이다.
이번 믹스테잎의 마지막 곡으로 [천마 REMIX]를 배치하면서 찐팬이라는 걸 인증까지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보통 사람들은 ‘아아, DJ가 천마 팬이었구나’라고 넘어갈 법했다.
하지만 코난 1이 예전에 DJ의 옛날 영상을 발굴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 영상은, 페니와 DJ가 연애 초반에 함께 공연을 하던 영상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누군가가 말했다.
- 어? 잠깐만. 여기서 DJ가 쓰는 기타. 천마가 쓰는 거랑 너무 똑같은데?
DJ가 예전에 쓰던 기타를, 언젠가부터 천마가 공연에서 종종 사용하는 모습이 발견된 것이다.
심지어 천마가 미국 팬이 선물해 준 기타라며 자랑하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영상으로 남아있었다.
코난 1은 DJ가 쓰던 기타와 천마가 쓰는 기타의 흠집 위치까지 대조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 와··· 그럼 천마가 가지고 다니는 기타가 DJ가 준거였어?
조사에 맛이 들린 코난들은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윤곽이 점점 더 드러났다.
- 그러면 타임라인이 어떻게 되는 거지?
- 야야, 이거 좀 봐. 천마가 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버스킹 하는 영상에 DJ 나왔어!!!
- 잠깐만. 천마가 저 날 버스킹한 건, 페니랑 작업하기 훨씬 전 아니야?
- 어어 맞다맞아!!
- 그러니까, 천마가 페니랑 작업을 하기 전부터, DJ를 알고 있었다는 거네
- 공원에서 우연히 버스킹하다 만난 팬이, 알고 보니까 페니의 남자친구였다? 걍 소설이네ㅋㅋㅋ
- ㅋㅋㅋㅋㅋㅋ이게 왜 진짜야???
소설이라면 개연성을 어디 꼬라박았다고 욕했겠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환장하게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페니와 DJ의 열애설 이슈를 보며, 그들이 참여했다는 곡이 어떨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 노래에 얽힌 스토리가 로맨틱하기도 하고.
커플이 우여곡절 끝에 결실을 맺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연애사를 한 달 내내 듣고 지켜보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알고 보니 DJ가 예전부터 천마의 찐찐찐팬이었다?
그 와중에 천마의 앨범 작업에 함께 참여한다?
- ㄹㅇ 이게 성덕이지
- 계탔네 계탔어
- 조오옹오오온나 부럽다!!!!
재벌가 딸과 연애 성공!
성덕의 꿈 달성!
DJ는 많은 의미에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덩달아 아직 발매조차 되지 않은 듀엣곡 역시 더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
미국의 어느 공무원도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박··· 사랑이랑 덕질 모두 성공하네. 부럽다 부러워.”
물론 그녀가 부러워하는 건 사랑보다는 덕질 쪽이 훨씬 더 가깝기는 하다만.
눈앞에 있는 성덕을 보며 공무원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도 천마랑 노래 한번 불러보고 싶다. 나도 노래 부를 줄 안다고···.”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다.
성덕은 무슨.
천마 얼굴을 볼 기회도 없다.
천마가 언제 다시 미국에서 콘서트를 해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작년 토비와 함께 방송에 출연한 이후, 천마의 공식적인 공연 소식은 없었다.
“월드 투어 콘서트가 그렇게 쩔었다는데. 조금만 더 빨리 천마 팬 할걸.”
그럼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공무원은 성덕의 꿈을 이룬 DJ를 향해 부러움을 한번 발사해주며, 이번에 나온 [천마 REMIX]를 재생했다.
그녀는 평소 댄스나 일렉 쪽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DJ의 믹스테잎 중에서 [천마 REMIX]만큼은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DJ가 만든 리믹스는 은근히 천마 곡의 포인트를 잘 잡아서 귀에 착착 감겨오는 맛이 있다.
그렇게 한참 [천마 REMIX]를 듣던 공무원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DJ의 노래가 좋다지만, 진짜 천마의 노래와는 비교할 수 없다.
“천마 신곡은 언제쯤 나오려나.”
그래미 시상식에서 새로운 앨범을 낼 거라는 발표를 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라인업만 나오고, 언제 앨범을 내겠다는 말이 없어 속앓이만 하는 중이었다.
“뭐 새로운 떡밥 같은 거 없나?”
답답한 마음에 공무원이 이런저런 것들을 검색하던 와중.
띠링!
팝업 알림이 떴다.
구독과 알람 설정까지 야무지게 해놓은 천마의 오피셜 채널이었다.
공무원은 곧바로 천마의 채널에 들어갔다.
[Introduction Film]
“이게 뭐지?”
1분 남짓한 길이에, 어찌 보면 뮤비의 티저 같기도 한 영상.
궁금증을 가득 담고, 공무원은 영상을 클릭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잿빛 공기.
건물을 지탱하던 철근은 휘어져 있고, 그 위에 건물 잔해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모래가 뒤덮여 황폐해진 도시는 끝장난 문명처럼 보인다.
그 와중에도 우뚝 서있는 건.
잡동사니라도 끌어모아 쌓아 올린 그로테스크한 탑.
“헐 대박! 이게 뭐야?”
그냥 뮤비가 아니라 영화 예고편을 보는 듯한 퀄리티의 영상이다.
그것도 아포칼립스의 냄새가 솔솔 나는.
공무원은 이런 어두운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천마의 채널에 올라온 영상이다.
또 뮤비로 영화 한 편을 찍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했고, 영상의 길이도 길지 않다.
그래서 취향은 잠깐 저기 치워두고 본격적으로 영상을 시청했다.
땅에서 그로테스크하게 기울어진 탑을 올려보는 듯한 시선이 바뀐다.
휙 하고 솟구쳐오른다.
탑 저 위쪽으로.
그제서야 이 세상의 풍경이 제대로 보인다.
땅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벽은 경계선이 되고.
한쪽에는 잿빛 공기를 품으며 무너진 건물이,
다른 한쪽에는 맑은 하늘이 비치는 쾌적한 공간이 펼쳐진다.
그 경계선에서 선 한 남자의 뒷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어! 천마다!”
이제 뒤통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남자가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나아갈 때.
저 멀리 두 남녀의 인영이 흐릿하게 보인다.
짧은 길이의 영상은 여기서 끝이 났다.
“와···. 이게 프로듀싱 앨범이라고?”
영상은 대놓고 보여주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유명한 아티스트들을 모아서 만든 앨범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관으로의 초대장이라는 것을.
그녀가 알던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이 세계에서 무슨 역할을 맡을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드래곤플라이는, LA맨은, 맥 로스웰은.
이 세계에서 어떤 이야기를 펼칠까?
“맨 마지막에 남자와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으니까, 다음에는 페니와 DJ가 나오는 거겠지?”
공무원 발을 동동 굴렀다.
“흐아··· 두 사람 듀엣곡 너무 궁금해지잖아!”
그리고 공무원의 기다림에 화답이라도 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신곡이 공개되었다.
< Track 01. 재벌가 사위 (5) > 끝
ⓒ 연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