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사람 지금 하나님도 못말려 (2) >
두 눈을 이글거리며 후원을 날리려던 헌트 회장.
그런 헌트 회장을 진정시킨 건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었다.
“잠시만요 회장님. 이것 좀 보시죠. 천마의 표정이 아무래도 탐탁지 않아 보입니다.”
“음?”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헌트 회장은 천마의 표정을 보았다.
[넷플렉스 님이 5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마 님. 혹시 잠마동 2기를 하실 생각 있으신가요? 저희가 투자하겠습니다.
후원 금액도 크고, 사업적인 관점으로 봐도 좋은 제안이다.
아티스트를 만들고 홍보하는데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돈을 지원해준다?
어떤 기획사라도 눈이 돌아갈 거다.
하지만 저기 후원 창 너머 천마의 표정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눈썹은 살짝 치켜 올라가고, 미간은 살짝 좁혀진 게···. 흡사 귀찮은 숙제를 받은 학생의 표정이었다.
헌트 회장이 중얼거렸다.
“천마는 잠마동 2기를 원하지 않는 건가?”
헌트 회장이 업계에서 들은 소문이 있었다.
잠마동으로 한번 인기를 맛본 넷플렉스가, 잠마동 2기에서는 글로벌 보이 그룹을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천마가 진두지휘하는 글로벌 보이 그룹은 확실히 안정적인 시청자층을 확보할 수 있으니, 좋은 계획처럼 들리긴 했다.
다만 천마의 반응으로 보건데 넷플렉스의 계획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하긴, 탑걸즈가 잠마동을 통과한 지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았군.”
아직 데뷔 2년 차에 불과한 탑걸즈는 나아갈 길이 멀었다.
이제 아시아 시장을 장악했으니, 슬슬 북미 시장 진출을 노릴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잠마동을 만든다?
“모든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겠지.”
어떻게 보면 탑걸즈에서 새로운 그룹으로 세대가 교체되는 느낌마저 든다.
가지고 있는 단서를 조합해보니 확실해진다.
천마는 새로운 그룹에 대한 생각이 없다.
넷플렉스의 제안이 오답임을 알았으니, 헌트 회장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천마가 혹할 만한 제안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헌트 회장은 떠올렸다.
‘기존의 제안에 더해서, 탑걸즈도 끼워 넣어볼까? 천마가 관심을 가질 것 같은데.’
헌트 회장은 옆에 있던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지금 리조트 & 테마파크 쪽에서 천마 방송 모니터링 하고 있지?”
“예.”
“잠마동 어트랙션에 탑걸즈도 함께하는 건 어떨지 물어봐. 이대로 끝내기엔 이번 판이 아깝잖아?”
급하게 전화기를 드는 비서실장을 뒤로하고, 헌트 회장은 화면을 보았다.
- 왘ㅋㅋㅋㅋ 5만 달러면 한국 돈으로 6,000만 원 아니냐?
- 더 들어올 사람 없냐? 이대로면 넷플렉스 단독 입찰인데
- 응 그래봤자 5만 달러 다 기부행이야. 천마 지금 조올라 바쁜 거 모르냐?
ㄴ 천마가 수락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아무리 앨범 작업에 바쁘다고 해도 당장 잠마동 열라는 것도 아니고. 이건 받아주는 게 무조건 이득임ㅇㅇ
“아름답군.”
무슨 축제라도 벌어진 분위기였다.
원래 남의 플렉스를 보는 게 대리만족이 되지 않던가.
거기에 이전보다 후원액도 훌쩍 올랐으니, 흥미진진할 것이다.
헌트 회장은 짙은 웃음을 지었다.
“쯧쯧, 사람이 말이야. 돈만 쓴다고 다가 아니지. 기업가라면 상대의 니즈를 파악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말야.”
어디 천마가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던가.
“전략이 있어야지, 전략이!”
방금 전까지 활활 불타며 돈찍누를 시전하려던 과거는 모두 잊고, 헌트 회장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때마침 비서실장도 통화를 끝내고 의사를 전달했다.
“회장님. 리조트 측에서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그쪽에서도 탑걸즈가 잠마동을 통과한 스토리가 있는 만큼, 함께 하는 것도 좋아 보인다며 수락했습니다. 다만 메인은 천마라는 걸 분명히 해달라고 했습니다.”
“좋았어!”
넷플렉스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우리는 판돈을 두 배로 올린다.”
[헌트 뮤직 님이 10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이쪽도 잠마동을 원하네만. 헌트 테마파크에 ‘잠마동 어트랙션’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10만 달러의 후원과 거물의 등장.
채팅창은 축제를 넘어 경악에 빠졌다.
- ㅅㅅㅅㅅㅅㅂㅁ나.?
- 눼?
- 에?
- 십만 달러라고? 십만?
- 0 잘못 누르셨ㅅ나?
- 십만달러면 1억이 넘는데요?
십만 달러가 주는 경악에서 겨우 벗어난 그들은, 그제서야 내용에 집중했다.
- 님들아, 지금 금액이 중요한게 아닌데요? 헌트 테마파크에 잠마동이 온다는데?
- 잠마동 어트랙션?
- 헐ㄹㄹㄹㄹㄹ
- 뭐지? ㅈㄴ궁금하네ㅋㅋㅋㅋㅋ 잠마동 탈출하는건가ㅋㅋㅋㅋㅋ
- 남돌 만드는 거보다 훨씬 재밌겠구만ㅋㅋㅋㅋ
천마의 표정도 펴졌다.
아까와 같이 귀찮아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채팅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헌트의 후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헌트 뮤직 님이 10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그리고 잠마동 하면, 탑걸즈도 빠질 수 없지 않겠나?
결정타였다.
마침내 천마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 딜.
헌트의 전략(?)이 먹혀들어 가는 순간이었다.
*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헌트 회장이 건넨 제안을 떠올렸다.
‘잠마동에 탑걸즈까지. 타이밍이 좋군.’
마침 이번 앨범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탑걸즈 활동을 밀어주려고 했다.
탑걸즈는 한국과 일본을 거점으로 아시아 시장은 점령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탑걸즈 애들도 슬슬 미국 진출을 노릴 차례지.’
그런데 헌트 측에서 알아서 미국 진출을 위한 레드 카펫을 깔아주겠다고 하니.
어떻게 봐도 이득인 상황이다.
또 한편으로는 헌트의 제안이 미심쩍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탑걸즈가 헌트 테마파크에 진출할 정도는 아닌데. 갑자기 탑걸즈는 왜 끼워주겠다는 거지?’
마침 내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헌트 회장이었다.
- 어때, 어제 내 제안이 꽤 괜찮지 않았나?
헌트 회장은 기분이 좋은 듯 껄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수화기 너머로 흡족해하는 헌트 회장의 표정이 그려질 정도였다.
나도 만족스럽기는 했다.
“넷플렉스 쪽보다는 훨씬 구미가 당기던데요.”
- 넷플렉스가 그날 끼어들 줄은 몰랐지만, 오히려 좋더군. 껄껄껄. 오늘 기사 봤나? 전 세계가 우리 얘기뿐이네.
아침 뉴스부터 외신까지.
내 방송 장면을 그대로 자료 영상으로 가져가서 알뜰살뜰하게 써먹고 있더라.
전 세계가 이 일을 얘기하는 데에는 헌트 그룹의 지분도 클 것이다.
아마 그쪽 홍보팀에서 작정하고 보도자료를 돌렸겠지.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조금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탑걸즈 말이죠. 갑자기 훅 들어온 느낌이던데?”
- ···하하하.
어딘가 멋쩍은 헌트의 웃음이 넘어온다.
- 솔직히 말하지만 계획에는 없었네. 다만 상대가 넷플렉스인 만큼 도박을 걸어본 거지. 아, 당연히 테마파크 측과도 이야기는 끝난 사항이네.
후원 배틀은 새로운 형태의 광고로 자리 잡았다.
이 배틀의 꽃은 바로 상대방.
어떤 상대를 이기고 배틀에서 승리하느냐에 따라 가져갈 수 있는 화제성이 달라진다.
그런데 그 상대가 넷플렉스라는 거대 기업이라면?
넷플렉스를 꺾고 배틀에서 승리한다면 수백만 달러의 홍보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정도라면 탑걸즈를 넣어 승리를 따내는 게 이득이다.
다만, 헌트 회장이 덧붙였다.
- 자네도 알겠지만, 탑걸즈를 메인 홍보 모델로 내세우는 건 어려울 걸세.
내년 ‘호러 나이트’에 맞춰 오픈할 어트랙션의 포인트는 천마와 잠마동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탑걸즈까지 전면에 나서는 건 욕심이고, 오히려 산만해질 수도 있다.
탑걸즈는 테마파크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배경 정도의 역할이 지금으로선 적당하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헌트의 제안은 합리적이고, 나도 동의할 수 있다.
‘어차피 탑걸즈는 미국 시장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과이기는 한데.’
뭔가 아쉽다.
그저 배경으로 끝나지 않고, 들러리로도 활약할 수 있는 역할을 주면 좋을 텐데.
탑걸즈가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확실하게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때 내 머릿속에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잠마동에도 테마송과 퍼포먼스가 필요하지 않나요?”
- 호오?
“그거 탑걸즈가 잘할 텐데. 우리 애들 뛰어난 퍼포머거든요.”
헌트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 오?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듣기에는 괜찮아 보이는군. 그럼 내가 자네 의견도 같이 전달해보지. 잘 말해줄 터이니, 조만간 그쪽에서 연락을 할거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렇게 슬슬 헌트 회장과의 통화를 마무리하려는 순간이었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 헌트 회장이 말했다.
- 아! 그런데 말일세, 얼마 전 우리 소속 아티스트 하나가 한국으로 갔네.
“???”
- 그쪽에서 전에 하던... ‘강호행’이라던가? 그걸 하겠다고 하더군.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
천마의 팬인 직장인이 있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가득한 직장을 다니는 그녀는, 요즘 오랜만에 한가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진행하던 대규모 프로젝트가 끝난 덕이었다.
당분간 편안한 마음으로 있고 싶은 직장인이지만, 회사에서는 그녀를 놀릴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갑자기 부사수라니!!!’
채용 전환 전형으로 들어온 인턴 하나를 그녀에게 붙여준 것이다.
너무너무 귀찮았지만···. 회사에서 까라면 까는 게 직장인의 운명.
앞으로 정규직 전환이 될지는 모르는 인턴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는 중이었다.
그래도 애가 아직까지는 사고를 치지도 않았고, 행동도 빠릿빠릿한 게 마음에 들었다.
‘잘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 일도 만들지 말고 무사히 보내기만 하면 되는거야. 암. 그렇고말고.’
아무튼.
부사수 하나 가르치는 것 말고는 이전보다 훨씬 덜 바쁜 지금.
직장인은 오늘도 월급루팡을 하고 있었다.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남아있기는 하다만, 오늘은 통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대단하네. 천마 클라스는 진짜 미쳤다!’
천마의 소식은 봐도 봐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특히 어제의 배틀 현장을 직접 목격한 직장인은, 아드레날린을 뿜뿜한 상태로 10분마다 새로고침을 누르며 기사를 체크했다.
‘미친. 진짜 천마랑 잠마동 테마로 어트랙션을 만든다는 거지?’
물론 시즌 한정이기는 하다만.
그게 어딘가.
직장인은 컴퓨터 화면에 코를 들이박다시피 하며 검색을 계속했다.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새로운 기사가 수십 개씩 올라온다.
[(오피셜) 천마 X 헌트 테마파크, 콜라보 확정!]
[천마의 잠마동 어트랙션은 어떤 모습일까··· 다크라이드 vs 귀신의 집]
[천마의 소프트 파워! 이제는 세계 문화를 선도하다]
아직 설치까지 1년은 남았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세계가 들썩이고 있었다.
당연히 직장인도 벌써부터 설레고 있었고.
‘이번에 앨범 인트로덕션 필름에 나온 그 탑이 잠마동이라는 말이 있던데.’
미국에 가면 그 탑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건가?
공포영화라면 진저리를 치는 공찔이지만, 이건 못 참지!
‘내년에는 미국에 간다. 꼭 간다!’
대형 프로젝트가 있어서 연차를 못 쓰게 한다?
그럼 사표라도 써서 간다!
직장인은 벌써부터 내년 연차계획을 세우며 흥분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천마의 팬들은 모두 흥분하고 있었다.
- 이번에 앨범 규모가 커서 어떻게 기다리나 싶었는데 그랜절 받으십쇼
-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이번에는 공백기 꽤 될 줄 알았는데 한 달마다 빵빵 터지네
ㄴㄹㅇ 그래미때부터 지금까지 몇개가 터진거야
ㄴ심지어 거를 타선도 없음ㅎㅎ 다음달에는 뭐가 나오려나?
- 진짜 요즘이 제일 행복하다ㅠㅠㅠ 이대로라면 평생 앨범 준비만 해도 좋아
ㄴ 아 그건 좀···.
셀럽을 열광하게 만든 그래미 퍼포먼스부터.
수상자들을 모아서 앨범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일,
페니와 DJ 커플 열애설로 첫 번째 트랙을 공개하고,
헌트 테마파크와 어트랙션 콜라보까지.
지금까지의 모든 행보가 세상을 들썩이게 만드는 중이었다.
직장인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기대하며 실실 웃었다.
‘이제 다음에는 무슨 소식을 가지고 오려나?’
이제 어떤 소식이 들려도 놀라지는 않을 것 같다.
잠마동을 두고 헌트와 넷플렉스가 싸우는 게 조금 인상 깊었어야지.
그러나 그런 직장인을 놀라게 할 소식이 아직 남아있었다.
< 저 사람 지금 하나님도 못말려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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