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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으로차트올킬-181화 (181/191)

< ISTJ vs ENFP >

인천공항.

뉴욕에서 출발해 장장 14시간의 비행을 끝마친 비행기가 활주로로 들어왔다.

비행기에서 내린 것은 바로 헌트 뮤직그룹의 유망주, 유니트론이었다.

빠르게 입국수속을 마친 유니트론은 곧장 천마신교로 향했다.

‘사람들이 아주 친절하군.’

아니, 도시 자체가 친절한 느낌이었다.

거리에 있는 표지판에는 대부분 영어가 병기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의 영어는 능숙했다.

한국은 처음이었으나, 덕분에 천마신교를 찾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천산빌딩 앞.

[天魔神敎]

용사비등한 필체로 걸려있는 현판을 마주한 유니트론은 제대로 찾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여기서, 유니트론이 천마신교를 찾은 이유는 뭘까?

바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유니트론의 장점 중 하나는 정확한 자기 객관화다.

지난번 진성 그룹과 에이플 사이에 있던 광고 배틀에서 유니트론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 색깔이 없었어.’

가수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노래 속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더라도,

아니면 아예 다른 가수의 노래를 커버해도.

들으면 ‘역시!’하고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확고한 정체성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유니트론에게는 그런 게 없다.

이곳저곳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가지고 와, 듣고 좋게 다듬는 것.

그게 유니트론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천마는 달랐다.

천마 역시 자신처럼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을 만들지만, 자신과는 달리 천마의 노래를 들으면 ‘이게 천마구나!’ 하고 느껴진다.

그래서 천마에게 자신의 색을 입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천마와는 그래미에서 화해도 했으니까.’

물론 천마가 그걸 화해했다고 생각할지는 의문이지만.

유니트론은 나름대로 천마와의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자신의 색깔을 입힐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평소와 달리 약간 흥분한 채로.

유니트론이 천마신교의 문을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천마신교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괴성과 함께.

“어어어어!?!?”

천마신교에서 나온 사람은 유니트론을 알아봤는지 소리를 질렀다.

이쪽과 비슷한 나이대의 소년.

덥수룩하지만 곱슬거리는 포인트가 있는 밝은 갈색의 머리는, 소년의 얼굴에 장난기를 한 스푼 더해준다.

다름 아닌 길성진이었다.

“유니트론이다!!”

유니트론은 한국에서 곧바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날 줄은 몰라서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납득했다.

천마신교에서 나왔다면 소속 아티스트나 직원일 텐데.

천마와 몇 번 얽힌 적이 있는 유니트론을 알아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마침 유니트론도 길성진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유니트론이 ‘강호행’을 마음먹은 게 바로 길성진의 강호행 영상을 보고서였으니까.

마침 아는 얼굴이 나왔겠다, 유니트론은 평소처럼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길성진 씨, 반갑습니다. 저는 천마 님을 만나러 왔는데,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상대방에게서 돌아온 건 유니트론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길성진은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헐 대박! 저를 아세요?”

“아, 예. 미국에서 강호행을 하시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천마 님은···.”

유니트론은 다시 한번 천마의 행방을 물어보려 했지만.

길성진의 관심은 이미 다른 데 꽂혀 있었다.

“이야, 내가 강호행을 한 보람이 있었네요. 빌보드 스타가 나를 알아볼 줄이야! 저도 반가워요. 작년에 핫샷으로 데뷔하셨죠? 노래 진짜 좋던데요? 아참. 제 영어 실력은 좀 어떤가요? 강호행 하면서 맨바닥에서 구르다 보니까 확실히 늘더라고요. 강호행을 통해 생존 영어를 배웠달까요.”

와다다다 쏟아지는 길성진의 말에 유니트론은 당황했다.

‘...대체 무슨 대답을 해줘야 하는거지?’

강호행에 대해서 말해야 할지,

핫샷 데뷔를 축하해준 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영어 실력을 칭찬해줘야 할지.

속으로 열심히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유니트론의 고민이 무색하게, 길성진은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한국에는 무슨 일로 온 거에요?”

“아, 그게 강호행을···.”

“강호행 오셨구나! 그런데 혼자 오셨나 보네요? 저는 LA에서 강호행을 했는데, 미니롱 누나들이랑 같이 다녔거든요. 그때 현지 매니지먼트에서 신경을 써주기는 했는데, 갑자기 타지에 혼자 내팽개쳐진 기분이라서 적응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실력이 늘긴 늘었죠. 이건 게임에 나오는 말을 써먹어 본 건데. 게임 좋아해요? 혹시 둠 스카이 해봤어요?”

“.......”

유니트론은 자신의 화법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길성진은··· 그런 자신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았다.

도대체 저 짧은 사이에 화제가 몇 번이나 바뀌는 거지?

이대로 두면 하루종일이라도 떠들 것 같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유니트론은 벌써 세 번째로 본론을 꺼냈다.

“...저기 그래서 지금 천마 님은 어디 계시죠?”

“천마 님이요? 지금 한국에 안 계시는데요?”

“네?”

“일정이 있다고 얼마전에 미국으로 돌아가셨어요.”

“...???”

유니트론은 또 한 번 당황했다.

천마를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는데.

천마는 미국으로 갔고 웬 이상한 녀석이 눈앞에 있는 이 상황.

몇 년간 당황했던 것보다, 오늘 하루 당황하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유니트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성진은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사실 길성진은 유니트론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둘 사이에 공통점이 꽤 많았다.

일단 나이도 비슷하고, 강호행을 떠났다는 것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천마에게 처발리고 사람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했다는 것도 똑같고.

길성진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잘 왔어요. 이번에 우리 새로운 사옥 짓는 거 알아요? 천마타운이라고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까지 맡았는데. 거기 부지 한번 가볼래요? 마침 또 근처가 홍대라서 다른 볼거리도 많아요.”

“.......”

유니트론에게 다가가는 길성진.

주춤주춤.

유니트론은 저도 모르게 후진 기어를 넣었다.

왠지 모르지만.

천적을 만났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유니트론은 생각했다.

‘한국에 온 게··· 잘한 거겠지?’

*

나는 얼마 전 나눴던 헌트 회장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잠마동 건으로 전화를 걸었던 헌트 회장은, 뜬금없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 내 정신 좀 보게. 말하는 게 늦었구만. 유니트론이 한국으로 간다네.

‘...음?’

- 그래서 말인데 자네 회사에서 현지 매니징을 담당해줄 수는 없겠는가? 다른데도 알아봤는데, 천마신교가 한국 최고가 아닌가. 그리고 이 녀석이 천마 자네를 꼭 보고 싶다더군.

‘...뭐 매니징 해주는 건 상관없지만. 저는 당장 내일 미국으로 가는데요?’

- ···?

‘...?’

갑자기 흐른 정적 끝에 헌트 회장이 다급하게 물었다.

- 벌써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예상보다 조금 빠르기는 하죠. 영화랑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 영화? 잠깐만. 갑자기 영화라니? 자네 영화도 하나?

내 말을 들은 헌트 회장은 급관심을 보였고, 그 순간 나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헌트 픽처스가 있었지?’

<팬텀 스틸러>를 전 세계에 배급한 게 헌트 픽처스다.

헌트는 우리 회사를 통한 매니징을 원하고, 나는 헌트 픽처스의 배급망이 필요하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상황.

‘흐음. 소식 못 들으셨나 보네. 이번에 팬텀 스틸러 만들었던 팀이 다시 한번 뭉쳐서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 호오? 조금만 더 말해줄 수 있겠나?

역시나 헌트 회장은 내가 던진 떡밥을 물었다.

‘제 노래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데, 제가 공동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기로 했어요.’

- 뭐? 자네가 음악 감독을 맡았다고?

‘참고로 제작 투자까지 했습니다.’

- ···투자까지 했다고?

‘기본적으로 시내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영화라서 제작비가 크게 들지도 않고 해서 일단 초기 비용은 제 쪽에서 투자했습니다.’

일단 책정된 총제작비는 3,000만 달러.

나는 그중 20%를 먼저 투자한 상황이다.

사이먼 감독은 내 OK 사인을 보고 순식간에 시나리오까지 완성해서 보내줬는데.

그걸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

팬텀 스틸러를 봤을 때 들었던 대박의 느낌이.

‘사이먼 이 사람, 제대로 물이 올랐는데?’

사랑을 무겁지 않게 표현한 것도 좋았고, 몰입을 위해 시나리오 곳곳에 리얼리즘 요소를 배치한 센스도 좋다.

시나리오도 좋은데,

뮤지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넘버를 내가 직접 담당한다.

흥행을 위한 기본적인 요소들은 갖춘 셈이다.

나는 헌트 회장에게 말했다.

‘관심 있으면 헌트 픽처스 통해 한번 오퍼 한번 넣어보시죠.’

- 자신이 있나 보군?

‘확실한 건 그쪽이 손해를 볼 제안은 아니라는 거죠. 내 곡으로 영화를 만드는 이상, 넘버링은 완벽하게 손볼 겁니다.’

- 좋아! 자네가 이렇게 장담하니 헌트 픽처스에 알아보라고 연락을 넣어야겠군. 검토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확실히 밀어주도록 하지. 대신 자네도 유니트론 매니징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주면 좋겠군.

‘딜.’

헌트 픽처스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영화제작의 팔 부 능선은 넘은 셈이다.

나는 다음으로 유니트론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갑자기 강호행이라니.

‘일단 천마신교로 찾아올 거라고 하니, 정식 계약 전까지 편의를 좀 봐줘야겠군. 매니지먼트 팀에 말해두면 알아서 잘하겠지.’

천마신교의 조직도를 보면 나만 전담팀을 따로 두고 있는 형태이고, 미니롱이나 이승호, 길성진 등은 전부 매니지먼트 팀에서 관리한다.

거기까지 떠올린 나는 길성진에게 생각이 머물렀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동갑이었던가?”

나이도 같겠다, 두 사람을 붙여놓는 것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지만 유니트론의 재능은 진짜배기다.

헌트 뮤직에서 아무리 밀어준다고 해도, 핫샷 데뷔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마침 길성진은 자극이 필요한 상황.

이 자식은 배가 불러서 이정도면 괜찮다느니, 자기 정도면 잘하는 거라느니 따위의 헛소리를 아직까지 늘어놓고 있었다.

‘견문을 넓히라고 비싼 돈 들여서 강호행을 보내놨더니, 대체 뭘 보고 배워온 건지. 쯧.’

배가 부른 길성진 옆에, 유니트론을 붙여준다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니트론은 밋밋한 놈이지만 곡을 만드는 감각은 탁월하고,

길성진은 감성 하나는 충만한 놈이다.

‘이거 아주 완벽한 한 쌍이군.’

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트론 문제는 길성진을 붙이는 걸로 해결했고.

이제 다시 앨범 작업을 해야 할 시간이다.

나는 다음 작업 파트너인 드래곤플라이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영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가고 있냐고?

나도 그게 궁금하다.

얼마 전 게럴드 형제에게 왜 미국이냐고 물어보니, 비밀이라며 끝까지 말을 안 해주더라.

아무튼.

미국에 도착한 나는 공항으로 마중 나온 게럴드 형제를 만날 수 있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게럴드들이 말했다.

“우리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거래.”

“???”

“너가 프로듀싱한 마지막 앨범 있잖아. 그게 결정적이었다고 하더라고.”

오.

이건 정말 놀랄만한 일인데.

하지만 놀람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 쪽에 강하게 요청한 게 있거든."

게럴드 형제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를?”

두 사람이 저런 웃음을 지으면··· 항상 뭔가 일이 일어났는데.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 ISTJ vs ENFP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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