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82화 (182/191)

< 2026 월드컵 (1) >

로큰롤 명예의 전당 (Rock and Roll Hall of Fame, 이하 록홀 병기).

대중 음악계에서 최고의 영예 중 하나로 꼽히는 그곳에, 드래곤플라이가 헌액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놀라웠다.

그것도 헌액 부분의 꽃이라고 불리는 공연자(퍼포머) 부문에 선정되다니!

참고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심사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기본적으로 첫 레코드 발매 이후 25년이 지나야지만 후보에 들어갈 수 있다.

후보에 오르더라도, 그룹 내의 모든 멤버가 헌액되는 것도 아니다.

해당 그룹에서도 로큰롤 역사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되는 멤버만이 헌액자로 선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드래곤플라이의 멤버 전원이 헌액 대상자가 된 건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형 게럴드가 말했다.

“전성기를 누리는 밴드는 많아도, 끝맺음까지 확실하게 하는 밴드는 잘 없거든. 그런 점에서 너가 만들어준 [Ode to the Path]가 결정적이었어. 고맙다.”

이제 팬들이 드래곤플라이를 돌아볼 때, 남아있는 건 아쉬움이 아닌 추억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프로듀싱한 앨범이 그 역할을 했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씩 웃었다.

“별말씀을. 나야말로 고맙지. 그런데 강력한 요청을 했다는 건 뭐야?”

방금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강력한 요청을 했다고 말했는데, 이들이 ‘강력하다’라고 할 정도면 대체 어떤 요청인지 궁금했다.

내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동생 게랄드의 콧대가 높아졌다.

“아아, 별거 아니야. 그냥 널 생각해서 록홀에 사소한 거 요청했을 뿐이지.”

“······.”

대체 뭐길래 저렇게 거들먹거릴까.

“뭔데?”

“너 그래미 기억나?”

나는 고개를 기우뚱했다.

그래미?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때지만, 그래도 드래곤플라이와 관련된 거라면.

“너희들이 록 70주년 헌정 무대를 까버렸던 거?”

“왓? 우리가 깠다니?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너를 객원보컬로 넣어달라고 했는데, 그걸 그래미 새끼들이 깐 거라고.”

이 뻔뻔한 말을 그래미 대표가 들었다면, 뒷목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크흠. 어쨌든 이번에 축하공연에서 무대를 13분을 배정받았는데, 그중에서 한 곡은 너랑 같이 하기로했어.”

“?”

“록홀 쪽에는 우리가 다 말해놨거든? 너는 그냥 와서 공연만 하면 돼.”

“???”

오우.

내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스페셜게스트로 선다고?

이건 좀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데?

언급했듯 데뷔한지 25년 이상 지나야만,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 곳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권위적이겠는가.

스페셜 게스트라도, 그곳 축전 무대에 선다는 건 팝스타 중의 팝스타나 가능한 것이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이걸 허락했다는 건, 드래곤플라이가 정말로 강력하게 요청을 했다는 이야긴데.

나는 감사를 전했다.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었네.”

강력한 요청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었는데.

괜한 기우였나 싶었다.

그러나 동생 게럴드는 여전히 거만한 얼굴로 검지를 까딱까딱했다.

“놉! 내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또 있어?”

“당연하지. 스페셜 게스트는 약하지.”

그리고 드래곤플라이의 강력함은 내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동생 게럴드는 악동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우리를 위해서 헌정 연설을 해주기로 했어.”

“······?”

헌정 연설을 하기로 해주기로 ‘했다’고?

게럴드 형제는 한 방 먹은 듯한 내 표정을 보더니 낄낄 웃었다.

“봐봐. 이번에는 진짜 놀랄 거라고 했잖아. 10달러 내놔 새꺄.”

“항상 무덤덤하기만 해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지. 쳇. 이봐 천마, 네가 없었으면 드래곤플라이의 ‘마지막’도 없었으니 이건 네가 맡아줬으면 한다.”

내기라도 했는지 내 앞에서 10달러를 주고받는 놈들 덕분에, 나는 다시 현실감각을 되찾았다.

스페셜 게스트는 좋다 이거야.

그런데 헌정 연설이라니.

드래곤플라이는 결혼식 사회라도 보라는 듯 말했지만, 이건 그렇게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헌정 연설이라 하면.

친한 동료 아티스트가 헌정 연설을 통해 헌액자를 소개하고 단상 위로 불러내는 순서이다.

다만 여기서 ‘친한 동료 아티스트’에 해당하는 사람이 대부분 대선배 격인 사람들이다.

폴 메카트니, 링고 스타, 닥터 드레 등.

업계에서 몇십 년은 굴러서 전설이 된 사람들이 하는 그걸.

그걸 나한테 맡기겠다고?

이건 거의 20살에게 결혼식 주례를 서라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의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록홀에서 이걸 허락해줬어? 진짜로?”

“당연하지. 거기가 융통성이 있더라고. 몇 번 이야기해 보니까 쿨하게 허락하던데?”

“······.”

나는 생각했다.

이건 록홀 쪽의 의견도 들어 보는 게 맞다고.

*

로큰롤 명예의 전당.

그 재단을 대표하는 회장은 지금 회의를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끄응.”

고급 세단 뒷좌석에 앉아있는 회장의 입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한숨이 나왔다.

이게 다 헌액자가 된 드래곤플라이 때문이었다.

“천마를 스페셜 게스트로?”

그래.

이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스페셜 게스트는 다른 헌액자들도 많이 세우는 편이니까.

천마는 퍼포먼스 하나로 그래미를 뒤집어 놓았고, 월간소식지처럼 매달 화제를 쏟아내는 팝스타이다.

또한, 드래곤플라이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사람이니 의미가 깊다.

“그런데 뭐? 연사로 천마를 쓰겠다고? 끄으응.”

이건 좀······.

헌액을 시작한 1986년부터.

유구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다.

이 중에 천마처럼 경험 없고 어린 연사는 없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거절했다.

‘천마의 커리어를 생각해보게. 스페셜 게스트는 몰라도, 연사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네.’

‘아 예. 그럼 우리도 록홀의 헌액자가 되기에 어울리지 않은 거 같네요.’

드래곤플라이가 헌액을 ‘정중히 거절’해온 것이다.

이런 ㅅ···.

늘 품위를 유지하던 재단 회장은 욕을 박을 뻔했다.

“끄으으응.”

그렇지 않아도 드래곤플라이가 헌액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상황이다.

그간 알짜배기 뮤지션은 전부 헌액되었는지라, 오랜만에 제대로 된 후보 등장에 언론에서는 ‘간만에 진짜가 나왔다’라며 기대했다.

그뿐인가.

전 세계에 있는 드래곤플라이의 팬들은 ‘영예로운 마침표’라며 발표만을 기다리는 건 당연지사.

모두가 주목하는 상황에서, 헌액이 불발된다?

‘분명 그래미 꼴이 나겠지.’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드래곤플라이는 그래미의 섭외 요청을 거절했고, 이후 왜 거절했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 천마를 객원보컬로 데리고 오고 싶었는데, 그래미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원하는 무대를 꾸밀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덕에 그래미는 수많은 논란 목록에 논란 한 줄을 더 추가할 수 있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회장은 그 사건을 보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드래곤플라이는, 한다면 하는 놈들이라고.

‘천마의 연사를 거절한다면, 이 새끼들은 진짜 헌액도 걷어찰 놈들이야.’

그러니 어쩌겠는가.

요청을 수락하는 수밖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회의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회장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천마라니···. 이거 너무 위신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큰일이구먼.’

최근 천마의 위상이 무섭게 높아지고 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단상에 선 연사에 비해 한 끗발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록홀 회장은 모르고 있었다.

이번 회의에서 천마의 위상을 더 높여줄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

록홀 재단 회장이 참여하는 회의는, 북미 월드컵 조직위원회였다.

캐나다, 미국, 멕시코가 주최하는 2026 북미 월드컵.

여러 가지 사안이 있지만, 이들은 주제가를 정하기 위해 모였다.

위원회에 참여할 만한 권위를 가진 관계자는 다 거기서 거기다.

그렇기에 헌트 뮤직 그룹 회장 역시, 음악산업 종사자이자 위원으로서 회의에 참석했다.

아직 회의가 시작 전이라, 헌트 회장은 다른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번 뮤지컬 영화가 꽤 괜찮았단 말이지.’

헌트 픽처스를 통해 알아본 결과, 천마가 호언장담할 만했다.

기본적으로 페니와 DJ 커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좋았고,

요즘 물이 오른 사이먼 감독의 각색도 훌륭했다.

‘천마가 직접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다고 하니, 뮤지컬 영화의 핵심인 넘버링은 보장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고.’

여기에 제작비가 낮게 책정되어 투자 리스크까지 낮은 건 덤이다.

손익분기점을 넘는 게 쉬워 보이니, 헌트 픽처스 측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전해왔다.

‘크으, 이거 천마랑 손을 잡으니 일이 술술 플리는구만.’

테마파크부터 영화까지.

잠깐 사이에 이득을 본 사업만 몇 개인지.

지금까지 로페즈 회장 혼자 천마를 독점하던 걸 생각하면!

천마신교의 앨범을 독점적으로 유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몇 년 전 투자에 실패한 게 그렇게 배가 아플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천마가 음악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문화 콘텐츠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헌트도 드디어 한발 걸칠 기회를 잡았고.

벌써부터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 좋은 걸 로페즈 혼자서만 누리고 있었다니. 거 욕심도 많지.’

헌트 회장은 다짐했다.

앞으로도 천마와의 관계를 공고하게 해야겠다고.

그때 또 다른 위원이 그를 불렀다.

“여기에 계셨군요. 그간 격조했습니다.”

돌아보자 옆자리에 록홀 회장이 앉고 있었다.

둘은 아는 사이였다.

아니, 사실 여기에 있는 위원 중 절반은 면식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다들 무슨 위원이니 고문이니 하며 감투 한두 개씩은 쓰고 있었고, 자연스레 마주칠 일도 많았으니까.

헌트 회장도 안부를 물었다.

“이번에 헌액 최종 후보가 확정되었다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최종 결정에 고민이 없었겠습니다?”

“허허허. 딱 최종 결정까지만 쉬웠지요.”

록홀 회장은 반쯤 해탈한 얼굴로 웃었다. 헌트 회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다른 문제라도 있었나 보죠?”

“휴우···. 드래곤플라이 축하공연에 스페셜 게스트로 천마가 나오기로 했습니다.”

“오?”

놀라운 일이지만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

드래곤플라이 마지막 앨범에서 천마의 활약이 좀 컸어야지.

하지만 다음 말에는 헌트 회장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천마가 헌정 연설도 맡게 되었습니다.”

“?”

“허허허. 그렇게 됐습니다.”

어딘가 허탈한 웃음을 들으며 헌트 회장은 생각했다.

‘이거 참. 헌액자가 발표되면 여러모로 뜨거워지겠구만.’

천마의 이름이 안 끼는 곳이 없다.

헌트 대표는 천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자신을 다시 한번 칭찬했다.

그렇게 착석하는 위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회의가 시작했다.

월드컵 주제가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이번 월드컵의 주제가는 총 4곡.

일단 각 국가에서 한 곡씩 맡는 것은 옛날에 합의했고, 이미 국가별로 작업에 들어갔다.

문제는 남은 한 곡인데.

그걸 누가 맡을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했다.

주제가 하나에도 엄청난 로비가 들어오는 판이니, 다들 자신들의 입김이 닿는 사람에게 주려고 난리였다.

그렇게 결론 없이 회의만 몇 시간.

기나긴 회의에 지친 한 위원이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지 말고 아예 우리랑 관계없지만 상징성은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건 어떻겠습니까?”

“?!”

얼핏 듣기에 괜찮은 의견이었다.

아무리 봐도 여기 모인 사람이 순순히 주제가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고.

내가 먹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못 먹는 게 낫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본 대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거 괜찮은 방법인데요?”

“차라리 그편이 더 낫겠군요.”

“화합이라는 주제를 보여주기에도 좋은 것 같네요.”

그렇게 남은 주제가에 대한 합의가 극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하나.

“그럼 그걸 누구에게 맡길 겁니까?”

< 2026 월드컵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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