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월드컵 (3) >
알바생··· 아니 우리의 인턴은 이 상황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얼마 전 천마와 드래곤플라이가 합작한 리드 싱글이 나왔다.
그런데 이 발매 시기가··· 참 묘했다.
‘드래곤플라이 헌액 발표가 나오자마자 신곡이 발매되는 거지?’
사실, 그래미나 빌보드만 들어본 인턴에게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은 생소하긴 했다.
천마 덕분에 알게 되어 찾아보니, 진짜 유서 깊은 시상식이었다.
헌액자로 선정되면 따로 기념관에 전시되기도 하고, 대중음악계에서는 최고로 쳐주는 영예라고 한다.
기가 막힌 타이밍 덕분에 천마의 SNS는 외국인 천지였다.
물론 평소에도 외국인이 많기는 하지만, 어설픈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나 ‘사랑해요’ 등의 문장이 도배되는 중이었다.
전 세계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는 천마라니.
팬으로서 뿌듯함이 솟아오른다.
‘그나저나 드래곤플라이 팬들 화력도 장난 없네···.’
지난 3월.
천마가 발매한 노래는 8주간 빌보드 1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1. 천마 - 7 years and··· (feat. Penny & DJ Nosis)
하지만 이 노래는 어쩔 수 없이 1위의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1. 천마 - Dancing Road (feat. 드래곤플라이)
바로 다음 천마의 노래에게.
드래곤플라이의 헌액과 겹친 신곡은, 발매 당일부터 엄청난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빌보드의 맨 꼭대기로 올라갔다.
다만 같은 앨범의 수록곡이라지만, 이번 곡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랐다.
페니와 DJ가 부른 첫 번째 리드 싱글이 듣기만 해도 달달한 감성에 젖게 만드는 사랑 노래라면,
드래곤플라이가 부른 두 번째 리드 싱글은 마치 자동차를 타고 시원하게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이랄까?
평소 드래곤플라이가 가지고 있는 도전적인 느낌은 줄이고, 세련되고 유연한 느낌을 강조했다.
팝락적인 요소가 가미된 멜로디 라인은 청량감과 스피디한 맛을 한껏 살려주며,
찰랑거리는 바람 같은 기타 소리, 자동차 엔진음처럼 짜릿하게 터지는 드럼은 곡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노래 후렴에 등장하는 고음은 사이다 한 사발 들이켠 것 같은 상쾌함까지 준다.
나중에 인턴이 돈을 모아 중고차라도 산다면, 첫 번째로 틀고 싶은 곡이다.
‘아 역시 이번에도 좋다···. 어떻게 매번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를 뽑아내는 거지? 대단하다니까 정말.’
이번 신곡의 기세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게, 빌보드 최상층은 당분간 계속 천마의 차지가 될 것 같았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지금까지 발표한 리드 싱글이 이 정도인데, 앞으로 공개할 정규 앨범은 얼마나 대단할까?’
마침 7월 초로 예정된 정규 앨범에 대한 단서가 이번에 공개된 뮤비에 담겨있었다.
3월에 공개되며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일으켰던 인트로덕션 필름,
이번에는 풀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며 수많은 떡밥들이 풀려나왔다.
동시에 떡밥을 연구한 온갖 분석이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인턴은 시계를 확인했다.
‘흠흠··· 아직 점심시간이 안 끝났네? 사무실에 사람들도 없고. 그럼 잠깐 영상이나 볼까?’
막간을 이용해 인턴은 공신력(?)도 높고 조회수도 많은 해석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원래는 벽이 사람들 간의 계층을 나누는 경계선이라는 썰이 지배적이었죠. 왜, 영화나 소설 보면 아포칼립스 세계는 신분에 따라 구역을 나누잖아요.]
그렇다.
처음 인트로덕션 필름이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저 말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에 등장한 떡밥들로 경계선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사실 그 경계선은 천마와 세상을 나누고 있는 벽이었던 거죠.]
나레이터는 말했다. 그 벽이 사실 나누는 건 사람의 계급이 아니라.
잠마동이 있는 세상과 그 밖의 세상이라고.
[다음 가사를 보시죠.]
- 엑셀에 발을 올려 스피드를 높여
낡은 벽을 돌파하는 건 무법자들뿐
[낡은 벽은 아마도 잠마동을 의미할 겁니다. 또한 그걸 돌파한다는 건 잠마동이 부숴야 할 대상이라는 거겠죠?]
[추측건대 잠마동은 천마의 중심, 그리고 앨범 속 아포칼립스는 천마의 내면세계가 아닐까요? 잠마동을 파괴함으로써 천마의 세계가 더 넓어진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여기 가사가 나왔을 때 뮤비 장면을 보세요.]
서부극 느낌이 물씬 풍기는 황야 위를, 클래식한 머슬카가 질주한다.
우우우우웅-
운전대를 잡은 건 천마.
그 뒤에서 연주를 하는 드래곤플라이의 멤버들.
아포칼립스 세상을 질주하던 자동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경계선으로 돌진한다.
경계선과 차가 부딪히는 순간.
콰앙!
잠마동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며 영상이 끝난다.
[자! 그럼 탑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발생하는 걸까요?]
‘오호?’
인턴은 뉴튜버의 말이 뭔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집중해서 다음 말을 기대했다.
‘그래서 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건데?’
[그건 저도 모릅니다.]
···뭐라고?
뭐 이딴!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탑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다음 트랙이 나오는 순간 분명히 무너지겠죠.]
그렇다.
탑에 생긴 균열.
잠마동으로 추측되는 탑이 무너진다는 게 뭘 의미하는 것일까?
팬들 사이에서도 가장 말이 많은 장면이었다.
인턴이 그 정체를 고민하며 영상에 한껏 몰입하는 순간.
톡톡톡-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혼자서 뭐하고 있어?”
“헛! 선배님.”
인턴의 사수인 직장인이었다.
직장인은 부사수의 어깨 너머로 핸드폰 화면을 힐끗 보았다.
화면에 나오고 있는 건, 얼마 전 직장인도 봤던 천마의 뮤비를 분석한 영상이다.
저런 딥(?)한 영상까지 챙겨볼 정도면 단순한 팬이 아니다.
최소 십만교인 정도는 되어야 볼만한 영상인데.
직장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제는 직장 후배가 아닌, 동지를 발견한 눈빛.
직장인의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흠흠. 곧 점심 회의 있는 거 알지? 아까 팀장님이 우리 팀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고 하시더라고.”
“네? 새로운··· 프로젝트요?”
새로운 프로젝트라면··· 야근?
인턴의 머릿속에 불길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프로젝트라면 누구보다 학을 떼는 직장인이 묘하게 기뻐하는 눈치다.
뭐지?
뭔가 놓친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인턴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선배님, 혹시 무슨 프로젝트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순간.
직장인이 지금껏 보여준 적 없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마신교에서 팝업스토어 굿즈 디자인을 해달라고 의뢰했대. 흐흥.”
“네!?!?”
헐!!
대박!!!
인턴은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사수 앞이라는 생각에 꾹 참았다.
천마신교의 팝업스토어라니!
‘이거 공식적으로 덕질을 할 수 있는 기회인 건가? 잠깐만, 그럼 레퍼런스 찾는다고 근무 시간에 뮤비도 마음껏 볼 수 있는 거잖아?’
일감이 밀려들었건만,
직장인과 인턴은 의욕에 차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
그 시각 미국.
나는 약속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보다 보니 얼마 전 드래곤플라이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녹음을 모두 마친 날.
게럴드 형제가 물었다.
‘오. 그럼 이걸로 앨범이 완성된 건가?’
‘아니. 아직.’
1번부터 5번 트랙까지는 완성했지만.
앨범의 하이라이트이자 내가 부를 마지막 트랙.
엔딩곡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실마리를 쫓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직 어떤 곡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고.’
내 말에 게럴드 형제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나는 뮤비만 봐도 대충 알 것 같은데.’
‘???’
그게 무슨 말이지?
이번 뮤비에 나온 세계관은 지금까지 나의 경험을 녹여내는 장이다.
나조차 아직 그 결말이 어떨지 모호하기만 한데.
두 사람은 뭔가 깨달은 게 있는 건가?
나는 게럴드 형제의 말에 답을 구하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게럴드 형제는 되려 나를 놀리듯 씩 웃으며 말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어쩌면 경계 밖에 있는 사람이 더 명확하게 볼 때도 있거든.’
‘너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주변을 돌아보는 게 더 도움이 되는 법이지.’
‘.......’
무슨 은거 기인이나 할 법한 소리를 하다니.
두 사람의 말에 대해 고민을 해봤지만 떠오르는 게 있을 리가 있나.
풀리지 않는 고민은 집어치우고, 일단은 현생으로 돌아올 시간.
마침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커다란 축구장이 가장 먼저 보였다.
2026년 북미 월드컵을 대비하기 위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캠프가 있는 곳이다.
그 앞에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다름 아닌 이승호였다.
나를 발견한 이승호는 능글맞게 웃으며 손을 비볐다.
“아이고, 우리 대표님.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드시지는 않았어요? 어떻게, 제가 어깨라도 좀 주물러 드릴까요?”
“.......”
이승호.
한때는 트릭커라는 그룹에서 메인 보컬을 맡았던 녀석이다.
내가 귀환하고서 가장 처음 부딪힌 인물이기도 하고, 엑소더스 당시 제일 먼저 천마신교로 튀어온 녀석이기도 하다.
전에는 그렇게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졸라대더니.
천마신교에 들어온 지금은··· 열심히 음악방송 MC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음악보다는 이쪽이 더 적성에 맞는 모양이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고정 MC 자리도 두어 개 꿰찼다고 한다.
특유의 유들유들한 입담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나 뭐라나.
이제는 반쯤 예능인이나 다름없는 녀석은, 이번에도 방송 때문에 미국에 왔다.
매번 월드컵 시즌에 돌아오는 파일럿 프로그램의 메인 MC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승호의 간곡한 부탁으로, 나는 게스트로 나와주기로 한 상황이다.
“히야, 우리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다 나와주시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제가 회사 하나는 진짜 잘 들어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본 녀석은, 여전히 처세술 하나는 끝내줬다.
“아니 제가 천마 님 모셔 온다고 했더니 피디가 놀라 자빠지더라고요. 한국 최고의 팝스타가 우리 방송에 나오다니! 다른 방송사에서 시청률 다 뺏기는 거 아니냐고 난리가 났어요.”
“...올려치기는 그쯤 해도 될 것 같은데.”
“하핫, 너무 티가 났나요?”
짧은 해후를 나눈 우리는 본격적으로 방송 촬영을 시작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요. 제가 오늘, 국가대표팀을 만나러 미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옆에 있는 분이 누군지 아십니까? 빌보드의 사나이! 현시점 세계에서 가장 핫 한 남자! 월드 스타 천마 님 모시겠습니다!”
삐까뻔쩍한 소개에 듣는 내가 다 부끄러워졌다.
“제가 천마 님 모셔 오느라고 진짜 노력 좀 했거든요. 그럼 오늘 천마 님과 함께 우리 태극 영웅들을 만나러 가 보겠습니다!”
나는 이승호를 따라서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촬영하는 것은 국가대표팀의 공개 훈련 세션.
우리 말고도 기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선수들은 이미 필드에 나와 훈련하는 중이었다.
사다리나 콘을 이용한 기초적인 체력 훈련부터,
중간중간 트래핑이나 드리블, 슈팅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공개 훈련인 만큼 특별한 전술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묘기와 같은 기술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방금 손호민 선수 슈팅 보셨나요? 슛 파워가 무슨···.”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이승호의 멘트를 배경으로, 나는 추억에 잠겼다.
‘저거 보니까 작년에 자선경기 했던 게 생각나네.’
킹 감독의 주선으로 참여하게 된 자선경기.
거기서 토비도 만나고, 아발론 녀석들도 박살 내주고, 베컴과 골 경쟁도 했었다.
‘그때 꽤 재미있었는데.’
당시 최종 스코어가 21 대 몇 이었더라?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축구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선수들의 훈련도 끝났다.
“천마 님. 저는 일단 캠프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캠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이 몇 장 없어서, 이승호와 카메라맨 한 명만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마지막 트랙에 대해 고민을 하려는 그때.
누군가 내 근처로 다가와 불쑥 손을 내밀었다.
“혹시··· 천마 님 맞으시죠?”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손의 주인을 확인했다.
“!?”
한국 축구의 영웅, 손호민!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 2026 월드컵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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