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86화 (186/191)

< 2026 월드컵 (5) >

훌쩍 다가온 월드컵.

하지만 그 주제가에까지 관심을 가진 한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주제가보다 더 중요한 건, 개막식 날 펼쳐지는 대한민국의 경기다.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은 모조리 거기에 쏠려있었다.

그렇기에 FIFA 엔터 사업의 경영자이자, 이번 주제가를 총괄하는 프로듀서 블랙원의 인터뷰가 나왔을 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기자 : 그럼 이번 월드컵의 개막식 공연에는 총 몇 팀을 부른 건가요?]

[블랙원 : 총 6팀이 개막식에서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기자 : 현재 캐나다, 멕시코, 미국 출신의 가수 3팀이 공개되었는데요. 그럼 다른 팀은 누구인가요?]

[블랙원 : 세 나라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건 FIFA 역사상 처음 있던 일입니다. 그렇기에 FIFA는 조직위원회와 깊은 논의를 거쳐 선정했습니다. 분명한 건 여러분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사람들을 섭외했다는 겁니다.]

[기자 : 그게 누구인지 알려주실 수는 없나요?]

[블랙원 : 하하, 자세히 밝히기는 곤란하군요. 이건 서프라이즈로 남겨 놓도록 하죠.]

아무도 그 서프라이즈에 한국인이 숨어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덕분에 오피셜이 뜨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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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2026 FIFA 월드컵 개막식 공식 사운드트랙과 개막식 공연에 참석합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Honor to announce that Cheonma is one of the 2026 FIFA World Soundtrack & will perform at the

World Cup opening ceremony.

Look forward to it!

#FIFAWorldC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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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뒤집어졌다.

- 인별그램 보니까, FIFA 엔터사업 경영자인 블랙원이 천마 팔로우하고 있었음ㅜㅜ 아니 누가 천마가 그때 말했던 서프라이즈 인줄 누가 알았겠냐고

- 천마 클라스 진짜 미쳤다ㄷㄷㄷㄷ

- 월드컵 개막식 공연을 솔로로 서는 게 가능한 한국 가수가 있다는 게 놀라운데, 그게 천마니까 뭔가 납득이 가긴 하네

ㄴ ㅇㅈㅇㅈ 천마라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ㅋㅋㅋ

- 개막식 공연은 조명도 없고 립싱크도 없어서 실력 뽀록나기 십상인데 ㅉㅉ

ㄴ 걱정할 게 없어서 천마 라이브 걱정을 하네 ㅋㅋㅋㅋ

ㄴ 천마 인기가 좋기는 한가보다ㅋㅋㅋ 하다하다 실력으로 까는 사람도 생겼네

월드컵에,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개최하는 월드컵에.

한국인이 개막식 공연 헤드라이너로 서는 일은 뽕이 차오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떡상하는 천마코인에 제대로 탑승한 의외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이승호가 MC를 맡은 파일럿 예능 프로였다.

일단 방송에 잘 나오지 않는 천마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리모컨이 향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천마가 국대 팀을 위해 노래도 불러주고, 친근하게 어깨도 주물러주는 모습이 나오며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덕분에 월드컵 시즌에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모두 물리치고, 압도적인 시청률 1등을 달성할 수 있었다.

- 제발 개막식에서 둘 다 잘되면 좋겠다ㅠㅠㅠ

- 개막 당일에 천마가 공연도 하고 국대팀도 경기를 한다고? ㄹㅇ뽕차오르네

- 근데 천마가 안마해줄 때 선수들 표정 뭐임? 다들 정신을 못차리네ㅋㅋㅋㅋ

여기까지는 훈훈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촬영된 내용은 색다른 재미를 보여주었다.

으레 모든 월드컵 파일럿 프로그램이 그렇듯.

이승호와 천마 역시 이번 개막전의 스코어를 예상해보았다.

그런데 천마가 예측한 스코어가 참··· 재미있었다.

[천마, 2026 북미 월드컵 개막전 스코어 예측. 결과는 4 대 2?]

- 오 우리가 2골이나 넣는다는 건가? 천마가 넉넉하게 쳐줬네ㅋㅋㅋ

ㄴ 아니 우리가 4라고ㅋㅋㅋ 한국이 네 골 넣어서 이긴다는데

ㄴ 얔ㅋㅋㅋㅋ 이건 너무 애국 배팅이다

ㄴ 천마 특) 은근히 립서비스 잘함

- 야 근데 개막전에서 개최국은 무조건 이기지 않냐?

ㄴ ㅇㅇ 지난 월드컵 제외, 무조건임

ㄴ 걍 졌잘싸 외칠 준비나 하자

- 한ㅋ국ㅋ승ㅋ리ㅋㅋㅋㅋ 천마가 스코어 맞추면 천마신교 앞에 가서 빤스벗고 노래부른다ㅋㅋㅋ

ㄴ 나는 옆에서 빤스만 입고 탬버린 침ㅋㅋㅋ

역대 개막전에서 개최국이 패배한 경우는 단 한 번(카타르)을 제외하곤 없었다.

홈팀인 미국을 4대 2로 이긴다는 게 현실성 없는 예측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기는 충분했다.

아무튼.

월드컵 전, 국내는 여러모로 천마 덕분에 시끌벅적해졌다.

그렇게 마침내 월드컵 개막전이 다가왔다.

*

요 몇 주 동안 나는 완전히 월드컵 개막식에 집중했다.

섭외를 수락하자마자 FIFA 엔터 사업 부문 경영자인 블랙원이 작곡 디렉팅, 즉 가이드라인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그게 일반적인 가이드라인보다 훨씬 디테일했다.

원하는 주제, 악기 구성, 심지어 리듬까지.

FIFA 측에서 무슨 그림을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지 명확했다.

나는 FIFA 측에서 요구한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일차적으로 곡을 만들어서 보냈고, 블랙원은 곧장 편곡을 해서 보내주었다.

아예 작사가도 따로 있어서 나는 보컬과 이후에 있을 무대연출에만 신경을 쓰면 됐다.

‘아, 그러고 보니 신경 쓸게 하나 더 있었지.’

다름 아닌 안무였다.

아무래도 월드컵 개막식인 만큼 대형 안무팀이 필요하다.

그래서 친구인 안토니오 로시의 안무팀이 나와 함께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커다랗게 펄럭이는 천을 소품으로 이용하여, 유려한 선을 연출하는 대형 안무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안무는 안무팀에게 맡기고 나는 연출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안토니오가 내게 요구했다.

‘천마. 그러지 말고 너도 안무하는 건 어때?’

‘...뭐라고?

‘너도 춤 잘 추잖아. 격한 퍼포먼스는 말고,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서 간단하게 춤을 추면 무대가 훨씬 좋아질 것 같은데.’

하긴.

내 주변에서는 역동적으로 춤을 추며 천을 흔들어대는데.

가운데에서 나 혼자 가만히 서서 노래 부르면 그것도 언밸런스하다.

그래서 개막식 20일 전쯤.

안토니오의 팀이 만든 안무 영상을 받아서 안무 연습에 들어갔다.

이후 무대 일주일 전에는 대역 리허설을 하고, 며칠 전 본 리허설까지 마친 후.

마침내 개막식 당일이 되었다.

나는 FIFA에서 보낸 의전차량을 타고 경기장에 도착했다.

경기장이 어찌나 큰지 안에서는 카트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였다.

각국의 국기를 들고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은 나를 보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저들을 보니 나는 문득 동생 생각이 났다.

‘지금쯤 걔도 경기장에 도착했겠는데?’

개막식 며칠 전.

차소미는 친구와 함께 미국에 도착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사실 차소미에게 간 티켓 두 장은, 원래 부모님에게 드리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부모님께서는 거절하셨다.

흔치 않은 기회인데, 왜 안 가시냐고 여쭤보니.

‘선우야. 술장사는 월드컵이 대목인데, 우리가 그때 가게를 비워서야 되겠냐.’

‘아···.’

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강원도에서 ‘낭만 포차’라는 이름의 가게를 운영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천마 부모님이 하는 가게’로 소문이 난 탓에 매일 같이 사람이 미어터진다고 하는데, 이참에 쉬셨으면 좋겠지만.

손님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한사코 거절하셨다.

대신 가게에서 대형 스크린을 틀어놓고 개막식을 생방송으로 지켜보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부모님께 드릴 표 2장이 차소미에게 간 것이었다.

‘엄마는 손님이랑 같이 응원할게. 선우 너는 무대 잘하고 와. 동생도 잘 좀 챙겨주고!’

‘이제 곧 대학교 졸업하는 애를 뭐 챙길게 있어요.’

‘그래도 소미는 미국이 처음이잖아. 미국 생활하는 니가 좀 도와줘야지! 엄마 친구 딸이 미국에서 유학하는데 거기는 위험해서···.’

“.......”

그래도 부모님이 저렇게 걱정하시니, 오늘 공연 끝나고 만나봐야겠지?

밥이나 한 끼 사주고, 대충 관광지나 좀 추천해줘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스탭이 다가왔다.

“천마 님. 이제 스탠바이 해주시면 됩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안무팀으로 참가한 안토니오 로시가 긴장되는 듯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이야. 방금 무대 봤어? 월드컵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장난 아닌데?”

“그러게. 방금 퍼레이드에 나온 사람만 오백 명은 넘는 것 같네.”

대기실에서 화면을 통해 지켜보았는데, 확실히 무대 규모가 대단하다.

우리 안무팀도 200명 정도 되는데, 앞 무대에 비교하자니 규모가 작아 보인다.

안토니오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짓궂게 웃었다.

“기분이 어때? 전 세계가 널 지켜보고 있는데. 긴장돼?”

긴장?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가서 준비한 대로만 보여주자고.”

나는 묵직한 단전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수련하며 내공을 늘린 보람이 있다.

캘리포니아 로즈볼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9만 명의 관객.

그들을 경악시킬 준비가 끝났다,

그뿐만 아니다.

내 시선은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통로로 향했다.

선수들도 슬슬 대기하는 참인지, 주장 완장을 찬 손호민 선수가 내 시야에 잡혔다.

‘개막식, 이겨야겠지?’

*

손호민은 신발 끈을 고쳐 맸다.

이제 개막식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에 따라 한국 국대 팀도 입구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마지막 순서인 천마의 무대 이후, 주최국 측의 공동 대표가 연설만 하면 개막식이 끝난다.

그럼 옆에 있는 미국 놈들이랑 한판 붙어야겠지.

옆을 보니 주장 완장을 찬 미국 선수가 이쪽을 슬쩍 째려본다.

신경전이라도 하자는 건지.

한번 씩 웃어준 손호민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기든 지든. 여기선 100%를 쏟아낸다!’

이번 월드컵은 특히 부담감이 심한 요소들이 많았다.

일단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었으며, 같은 조에 속한 나라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다.

16강을 갈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그 와중에 한쪽 팔에는 주장 완장이 달려있으며, 하필이면 개최국과 개막전에서 경기를 한다.

월드컵은 전통적으로 개막전을 치르는 개최국이 승리한다.

기본적인 적응 문제부터, 구장의 잔디 상태까지.

모든 환경적인 요소들이 홈팀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걸 꺾고 승리를 따내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난번 천마에게 안마를 받은 이후 컨디션이 급격하게 올라왔다는 것이다.

당시 불러준 노래를 듣고 나서는 이상하게 몸이 끓어올라 다음에 있는 친선전에서는 날아다니기도 했었다.

손호민 자신뿐만 아니라, 팀에 있는 선수들 전부 상태가 좋아져서 다들 신기해했다.

‘그런 일이 한 번만 더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그때, 천마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솨아아아

짙은 안개가 경기장을 뒤덮는다.

이내 거대하고 새하얀 천이 솟아오른다.

무용수들이 이끄는 대로, 천은 우아하게 허공을 유영한다.

그리고 그 사이.

무대가 비칠 듯 말듯 어렴풋하게 보인다.

천마를 중심으로 겹겹이 둘러싼 꽃잎과 같았다.

앞선 무대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서사적 파노라마에 방점을 찍으려는 듯했다.

시작부터 음을 높여 가는 오케스트라의 관현악 협주가 중심을 잡고,

숨 가쁘게 발을 굴리는 팀파니가 다이나믹한 리듬을 보강한다.

듣고 있자니 이제 모험을 시작한다는 기분이 든다.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My wishes beyond the Universe

to awaken the World]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켜보는 스타디움에서,

천마 혼자만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손호민은 방금까지 그를 짓누르던 압박감도 잊은 채 무대에 집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주파수가 맞춰진 것처럼, 천마의 지휘에 따라 몸의 기운이 움직인다.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아름다운 움직임을 그리는 천은, 거대한 물결과도 같아서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보게 된다.

안개가 사그라들고, 나풀대던 천이 떨어지는 꽃잎처럼 내려앉고,

마침내 무대가 비친다.

[My wishes beyond the Universe

to reach your Destiny]

뜨끈한 온천에 들어간 것처럼.

온몸이 쭉 이완되는 동시에, 근육 속에서 적당한 긴장감이 차오른다.

마치 세포 한올한올 살아 숨 쉬는 느낌.

‘...이 느낌은?’

천마가 캠프에 놀러 오고.

안마를 받고 노래를 듣고 난 후.

처음으로 경기장에 올랐을 때.

고양감이 차오르며 지금이라면 어디서 슛을 때려도 들어갈 것 같은, 딱 그때 느꼈던 기분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그때보다 더 좋은가?’

손호민이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선수들도 그와 비슷한 걸 느낀 모양이었다.

“와, 노래 진짜 좋다. 막 파이팅이 넘치는데?”

“옆에 미국 놈들은 감수성이 없는 건가? 이 노래를 듣고 느끼는 게 없나 보네.”

“같은 나라 사람이 불러줘서 힘이 나는 건가?”

선수들은 벌써부터 흥분에 차올라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손호민도 굳어있던 몸이 풀리는 걸 느끼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에서 천마가 예측했던 스코어가 스쳐 지나갔다.

‘4 대 2로 우리가 이긴다고 했지?’

처음에는 그저 립서비스라고만 생각했다.

골이 많이 나오는 월드컵에서도 자주 나오지 않는 스코어였던 데다, 대한민국이 이긴다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천마의 노래를 들은 지금.

‘이거 해볼 만하겠는데?’

손호민은 천마의 예측이 이루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2026 월드컵 (5)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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