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87화 (187/191)

< 2026 월드컵 (6) >

함께 미국 여행을 떠난 강한솔과 차소미.

두 사람은 로즈볼 스타디움에서 개막전을 관람하고 있었다.

자리는 3등석이나 2등석도 아닌, 경기장이 가장 잘 보이는 1등석!

그래서 그런지 무대 위 천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내가 천마 공연을 코앞에서 보다니!’

천마의 팬인 강한솔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천마의 공연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몇 년 전 운 좋게 팬사인회에 당첨이 되기는 했지만··· 콘서트 티켓팅은 전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종종 뉴튜브에 올라오는 라이브 영상이나 찾아보는 게 전부였는데.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라이브 무대를 보니 영상은 천마의 흡인력의 1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라운드 써클을 중심으로 나부끼는 하얀 천은, 겹겹이 싸인 연꽃 같다.

꽃봉오리처럼 숨어있던 천마의 무대가 드러나고.

[My wishes beyond the Universe]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진다.

한계를 넘어, 그 너머로 나아가라며 등을 떠미는 듯한 목소리.

가사에 담긴 의지는, 실제적인 형체를 지닌 생명체처럼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그건 참 기묘한 감각이었다.

로즈볼 스타디움에 모인 9만 명의 관객은,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고요한 정적 속에 빠져들었다.

—.

천마의 목소리만 홀로 울려 퍼졌다.

[to awaken the World]

강한솔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걸 느꼈다.

‘와··· 쩐다. 다들 천마 라이브를 찾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 사람들이 무대 위에 있는 단 한 명의 사람에게 몰입하고 있다는 걸 인지한 순간.

그리고 그게 천마라는 걸 깨달은 순간.

전율이 일었다.

어느새 무대는 끝났다.

잠깐의 정적 이후, 관객석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라도 된 듯 기립박수를 보냈다.

아니, 단순히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걸 넘어 거의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갈 것 같은 분위기다.

- 우와아아아아아!!

강한솔도 태극기를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우와악 으아아악 천마아아악!”

천마의 무대는 이번 개막식 무대 중 최고였다.

아무도 이 사실에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강한솔은 잔뜩 흥분한 채로 옆에 있는 여자친구, 차소미에게 말을 걸었다.

“야! 천마 진짜 미친 거 같아!”

“뭐? 안 들려!”

“무대 쩔었다고!!!”

주변에서 전부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바로 옆에서 하는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차소미는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차소미도 솔직히 조금, 아니 꽤 많이 충격을 받은 상태였으니까.

‘...오빠가 저 정도였다고?’

세상에는 남매 디버프라는 게 있어서,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해도 그게 혈육이라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차소미도 ‘오빠가 한 일들이 대단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오빠가 대단해 보이지는 않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무대를 보고, 차소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천마가 노래를 하는 내내 차소미는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오빠를 향해 감탄 섞인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아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천마의 이름을 외치며 열광하고 있다.

천마가 보여준 완벽한 피날레에 오프닝 쇼의 분위기는 한껏 치솟았다.

‘...이건 좀 대단해 보이는데?’

천마가 환호성을 받으며 퇴장하고, 지루한 연설이 열기를 살짝 가라앉힌 후.

마침내 진짜 개막전이 시작되었다.

미국과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경기장 안으로 입장했다.

차소미는 마음 한구석에 긴장감을 느꼈다.

‘이길 수 있으려나?’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보러 온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이 패배하는 모습을 본다면 기분이 조금 그럴 것 같다.

천마는 4 대 2로 한국이 승리한다고 했지만, 여기서 그걸 믿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한솔아. 너는 최종 스코어 어떻게 될 것 같아?”

“나는 4 대 2로 우리나라가 이기는 데 걸었는데.”

···옆에 있는 한 사람 빼고.

“뭐? 걸었다고? 얼마나 걸었는데?”

“어? 어, 얼마 걸었냐고? 어··· 딱 만 원만 걸었···지?”

“...그래? 만 원이면 뭐.”

만 원이면 큰돈도 아니고.

그정도면 재미 삼아 걸어볼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다.

- 어? 어? 손호민 선수, 단독 돌파 시도합니다! 아 박스 밖에서 가볍게 접고, 슛, 슈웃!! 골!! 골입니다!! 대한민국의 손호민 선수. 선제골을 넣습니다!

경기 시작 1분 만에 손호민이 멋진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넣어버린 것이다.

“와아아아악 손호민!!! 가즈아!!!”

“????”

이후에도 이변은 계속되었다.

미국 측의 터치 실수로 이어진 한국의 공격 기회.

수비수의 롱볼 패스를 받은 손호민은 수비 3명을 돌파, 골키퍼 앞에서 침착하게 옆에 있는 선수에게 절묘한 패스를 주며 2 대 0을 만들어 버렸다.

‘이러다가 우리 진짜 이기는 거 아냐?’

미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압도적인 응원에 파이팅을 얻은 미국 선수들은 전차처럼 밀고 들어와 한 골을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

역전의 가능성이 보이자 경기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손호민이 나섰다.

미국의 수비 진형 사이에서 공을 주고받던 손호민은 순식간에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쐐기골을 넣었다.

전반전 스코어는 3 대 1.

경기를 보던 강한솔의 눈은 반쯤 돌아가 있었다.

“그래! 제발 한 골만 더 넣자. 그리고 수비! 너네는 조금 못해도 돼. 딱 한 골만 더 먹히자!”

“.......”

후반전.

절치부심한 미국이 한 골을 만회했으나,

물오른 손호민이 해트트릭을 완성하며 경기는 한국의 4 대 2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가 끝난 후.

눈이 튀어나올 듯 소리를 지르는 강한솔을 보며 차소미는 생각했다.

‘...이게 된다고?’

*

경기가 끝난 후.

흥분이 가라앉은 강한솔은 멍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보았다.

‘내가··· 얼마를 번거지?’

강한솔이 건 금액은··· 사실 만 원이 아니었다.

월드컵 토토의 최대 베팅 금액을 꽉꽉 채워 시원하게 십만 원을 박았다.

나믿천믿!

지금까지 강한솔이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천마 덕분이었다.

지난 펄 엔터 인수 전쟁에서, 야수의 심장을 가진 강한솔은 천마신교만 믿고 베팅했다.

그 덕분에 강한솔은 남부럽지 않은 주식 부자가 되었다.

이번에도 천마가 4:2로 스코어 예측을 했길래, 그냥 별생각 없이 상한선을 가득 채웠다.

이 정도 금액은 주식 부자인 그에게 부담스럽지 않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또 대박이 터지다니!

배당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강한솔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한편, 차소미도 다른 의미에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방금 전 도착한 메시지 때문이었다.

- 오빠 : 경기 끝나고 잠깐 보자. 호텔까지 데려다줄게

혼자라면 오빠를 만나든 말든 상관이 없다.

그런데 하필 지금 옆에 있는 게 남친이네?

‘아직 한솔이한테 오빠가 천마라는 것도 말 안 했는데.’

참고로 강한솔은 아직 차소미의 친오빠가 천마라는 것을 모른다.

강한솔과 알게 된 지 벌써 고등학교 때부터 7년.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굳이 말하고 다니지도 않았다.

차선우가 유명해지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오빠를 소개할 이유가 없었고,

오빠가 천마로 유명해졌을 때는 사람들이 자신을 차소미가 아닌 ‘천마의 동생’으로만 기억할 것 같아서였다.

오빠를 보고 괜히 자신에게 달라붙을 사람이 있을 것도 뻔했고.

강한솔이 오빠의 팬인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서 이제 와 말하기가 애매해졌달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수도 없다.

‘그래. 어차피 조만간 말하려고 했으니까.’

강한솔이 조금 놀랄 것 같아서 날을 잡고 말하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기회가 생겨버렸다.

차소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우리 오빠가 여기 있는데 잠깐 만나볼래?”

강한솔은 어리둥절해졌다.

“오빠? 너네 오빠분도 여기 오셨어?”

“응. 월드컵 관계자거든.”

“그래? 그럼 이참에 인사 한번 드리자.”

강한솔은 그저 스탭으로 참여했겠거나 하고 차소미를 따라갔다.

그런데 차소미는 스탭에게서 출입증을 받은 후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뭐지?’

대체 오빠가 누구시길래.

단순한 진행 스탭이 아니라 어디 공연 관계자인가?

설마 그래서 개막전 티켓도 받을 수 있었든 건가?

대기실은 또 처음이라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던 강한솔은 차소미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오빠분이 누구시길래 여기까지 들어와야 하는거야?”

“아 그게. 우리 오빠가 누구냐면···.”

차소미는 평소와 다르게 머뭇거렸다.

그녀의 입이 열리는 순간.

끼이익

천마가 있는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강여름이 나왔다.

강여름과 강한솔의 시선이 마주쳤다.

강한솔은 입을 떡 벌렸고, 강여름이 눈을 깜박거렸다.

“???”

“???”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당황했다.

강한솔이 입을 뻐끔거렸다.

“너, 아니, 누나가 왜 여기서 나와?”

“그러는 너는 왜 여기 있어? 군대는 어쩌고?”

“그게 뭔소리야. 나 지난주에 제대했는데. 엄마가 말 안 해줬어?”

강여름이 움찔했고, 덕분에 강한솔은 눈앞의 사람이 진짜 친누나가 맞다는 걸 실감했다.

강여름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그런데 너 진짜 여기는 무슨 일인데? 여기 관계자 아니면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인데?”

“아 그게 여자친구가···.”

그 순간이었다.

강한솔의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먼저 누나인 강여름은 천마신교의 직원.

그것도 천마 전담팀 소속이자 천마의 직속 매니저다.

여자친구의 이름은 차소미.

여기에 오늘 공연을 한 천마의 본명은 차선우.

차 씨가 흔한 성씨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거 굉장히··· 절묘한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잠깐만. 그럼 설마?’

강한솔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안에서 강한솔의 추론에 쐐기를 박을 증거가 등장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대기실 안에서 차선우가 나온 것이다. 차선우의 얼굴을 본 순간, 강한솔은 기겁했다.

“우오오오왁! 처, 처, 천마!”

“...?”

차선우는 의아한 눈으로 강한솔을 쳐다봤다.

‘이 친구는 누구길래 소리를 이렇게 지르지?’

물론 이런 반응이 익숙하기는 했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팬을 마주할 때 종종 보던 반응이었으니까.

“우오오오옷 천마다!! 그럼 소미 오빠 분이 처, 천마? 진짜로?”

“.......”

···눈앞에 녀석은 조금 과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 사람에게는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 어려울 것 같다.

강여름과 차소미를 쳐다보자 두 사람은 굉장히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전에 말씀드렸던 부끄러운 제 동생이에요.”

“...내 남자친구야. 이번에 같이 온 친구가 얘야. 얘가 오래전부터 오빠 팬이거든.”

“오, 그래?”

차선우는 다시 한번 강한솔을 봤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그러니까.

동생의 남자친구가, 강여름의 동생이라는 거지?

거기에 내 오랜 팬이기까지 하다?

차선우 조금 마음이 넉넉해졌다.

강한솔의 흥분도 가라앉힐 겸 악수를 건넸다.

“괜찮아요? 너무 놀랐나 본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한솔은 이미 실신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공이 듬뿍 담긴 천마의 무대를 보고 흥분한 상태였으며,

4대 2로 대한민국이 승리하며 대박 배팅이 터지며 격분했고,

여자친구인 차소미의 오빠가 천마였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천마를 눈앞에서 만났다는 사실에 광분했다.

그 와중에 천마가 악수까지 건넸다?

강한솔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차선우는 그런 강한솔을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거참. 심약한 친구로구만.

< 2026 월드컵 (6)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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