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90화 (190/191)

<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1) >

얼마 전 차선우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강여름과 옥수진.

두 사람은 함께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점심이라고 해봐야 근처에서 사 온 샌드위치가 전부이지만.

샌드위치를 크게 한 입 베어 문 강여름이 말했다.

“그런데 천마 님 말이야. 오늘 뭔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어? 맞아요! 여름 언니도 느꼈어요?”

“헐,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지? 피부가 더 좋아진 것 같지 않아? 원래도 좋기는 했는데, 오늘은 반짝반짝하니 물광이 돌던데.”

차선우는 피부 관리도 안 받고 대충 스킨로션만 바르고 다닌다.

그런데도 이제 피부가 자신보다 훨씬 좋아졌다며 강여름이 투덜거렸다.

옥수진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부만 좋아진 게 아니라, 목소리도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맞아 맞아! 평소에도 저음 보이스가 미쳤는데, 오늘 아침에는 완전 극락이더라! 나 듣고 기절할 뻔했잖아.”

“저도 아까 천마 님께 보고하는데, 목소리 딱 듣는 순간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까먹었잖아요.”

“진짜 그 목소리로 영업하잖아? 그럼 알면서도 넘어갈 거 같아.”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어깨가 더 넓어진 것 같기도 하고···.”

“치아도 새하얀 게 미백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사람이 하루 만에 그렇게 바뀔 수 있는 거지?”

이전부터 차선우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일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에는 조금 신기했다.

두 사람의 마음이 편해지니 자연스럽게 수다도 튀어나온다.

천마가 각성을 한 이후.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옥수진은 안도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다행이지 뭐예요. 마지막 트랙을 못 넣고 그대로 앨범 발매했을 거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니까요.”

마지막 트랙을 엎었을 때는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차선우는 작업실에 틀어박히더니, 지금까지의 부진이 거짓말이라는 듯 뚝딱하고 곡을 만들어냈다.

차선우가 마지막 곡이라며 내놓은 결과물을 봤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곡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 고생을 했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마지막 트랙을 들어보니 확실히 할 수 있었다.

1번에서 5번 트랙을 거치며 차선우가 그렸던 그림이 무엇인지.

이번 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들으며, 옥수진은 괜한 감상에 젖었다.

음공천마라는 시청자 6명짜리 작은 채널에서 처음 천마를 만난 것부터,

우여곡절 끝에 천마신교에 입사하고,

결국 빌보드 1등에 오르는 순간까지!

천마의 곡이 지금까지 있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주는 것 같아 묘한 감동이 일어난달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마지막 트랙의 제목부터 가사까지 모두 한국어라는 거죠.”

“확실히 이전 곡들에 비해서 접근성은 떨어지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추후 영어로 된 트윈 버전을 따로 낼지언정, 이번 앨범에서는 마지막 트랙을 한국어 버전으로 발매하기로 했다.

가사에 담긴 깊이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낫다는 판단이었다.

아무튼.

앨범은 7월 말 전 세계에서 동시 발매 예정이다.

차선우는 지금 세션들과 함께 녹음에 들어갔다.

조만간 뮤비 촬영도 다시 시작할 거고.

기존의 일정보다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빠듯하게 진행하면 기한을 맞추는 데 문제가 없다.

옥수진이 남아 있는 스케줄을 검토해보았다.

“뮤지컬 영화도 프리프로덕션 끝나서 촬영에 들어갔고, 투어는 앨범 발매일에 맞춰서 티켓팅 진행하면 되고···. 아 참. 여름 언니, 이번에 팝업스토어 굿즈 디자인 뽑힌 거 봤어요?”

“아아아아! 나 그거 봤어.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그 회사가 괜히 업계 원탑이 아니더라. 영혼 갈아 넣은 줄.”

“어쩌면 그 회사에 우리 동지가 있었을 수도 있죠. 십만교인 정도는 되어야 알만한 포인트를 잘 잡았더라고요.”

예상보다 더 괜찮은 디자인이 나왔고, 그대로 공장에 발주를 넣어서 지금은 한창 물건을 뽑아내는 중이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게 잘 진행되고 있다.

확인을 끝낸 옥수진의 얼굴도 밝아졌다.

“이제 녹음만 끝나면 바로 영국으로 가면 되겠네요. 마지막 트랙도 세트리스트에 추가했으니, 준비는 끝났어요.”

아, 차선우가 영국에 가는 이유가 뭐냐고?

그건 바로 무대를 위해서다.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물론 코첼라를 비롯한 유명 페스티벌에서 섭외가 왔지만, 차선우가 선택한 것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었다.

코첼라는 4월이라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고, 7월에 열리는 글래스톤베리가 새로운 앨범을 공개하기 제일 적당했다.

그렇게 천마 앨범은 완성되었고,

시간은 어느새 7월 말.

뜨거운 여름 다가왔다.

*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천마의 미국 팬, 공무원은 영국에 도착했다.

바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서!

‘와! 글래스톤베리에 천마가 나올 줄이야.’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티켓팅은 작년 11월.

공무원이 티켓팅을 할 당시 라인업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실 천마를 알기 이전까지 공무원은 음악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음악이라 하면··· 그냥 일하면서 듣는 BGM 정도의 의미?

하지만 천마를 알게 된 후, 음악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특히 예전에 천마가 음악 토크쇼에 나와서, 래퍼인 토비 무어와 공연을 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어찌나 인상 깊던지.

그 이후 다양한 무대를 찾아다니면서 취미생활의 반경을 늘리다 보니, 규모가 있는 페스티벌에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글래스톤베리!

미국에도 유명한 페스티벌이 많지만, 이 핑계로 해외여행이라도 한번 가보자는 것이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지. 티켓팅이 그렇게 치열할 줄이야.’

공무원은 당시의 피 터졌던 티켓팅을 떠올렸다.

글래스톤베리에서 판매하는 티켓은 총 15만 장.

티켓팅을 위해 몰리는 사람은 무려 200만 명!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무원은 일반 티켓도 아닌 ‘코치 티켓’을 예매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참고로 코치 티켓은 글래스톤베리의 공식 패키지여행 같은 개념으로, 15만 장 중 딱 3만 장만 풀린다.

덕분에 집결지에만 도착해 버스만 탑승하면 글래스톤베리까지의 번거로운 교통을 해결할 수 있었다.

가격은 조금 비싸긴 했지만. 영국 초행인 공무원에게는 이만한 게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공무원은 괜히 들떴다.

우중충한 영국 날씨마저 기분 좋게 다가올 정도로!

‘난생처음으로 온 페스티벌에, 우연히 천마가 나오다니! 혹시 이건 운명 아닐까?’

예전에 천마가 나온 음악 토크쇼 방청도 성공하더니, 이번에는 페스티벌에서 천마를 만나다니.

계를 탄 기분이다.

마침 버스가 슬슬 집결지로 들어오고 있었다.

공무원은 런던의 집결지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규모가 있는 페스티벌이라 그런지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5박 6일 동안 캠핑을 하는 터라 짐도 한가득이고, 벌써부터 술을 마시고 취한 사람도 있다.

공무원은 버스에 짐을 싣고 올라탔다.

“낸시 힐스!”

버스 기사가 공무원을 호명하고 티켓을 준다.

공무원 티켓을 작은 짐가방에 챙겨 넣은 후 자리에 앉았다.

버스에 올라타자 기분은 더욱 들뜬다.

공무원은 이번 글래스톤베리의 라인업을 다시 한번 훑었다.

천마는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로 참석한다.

‘이번에 천마가 무슨 노래를 부르려나?’

뭐, 어떤 노래를 불러도 상관은 없다.

공무원은 천마가 뭘 부르더라도 빡세게 호응해 줄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페스티벌에 오기 전 천마의 모든 노래를 복습했으니까!

특히 얼마 전 발매된 신곡은 더욱 열심히 들어서 한국어로 된 가사까지 모두 외웠다.

공무원 며칠 전 발매된 앨범을 떠올렸다.

‘이번 앨범은 진짜··· 무슨 대서사시 보는 줄 알았네.’

앨범에 있는 6개의 트랙을 관통하는 흐름이 있었다.

그래서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쭉 이어서 들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심지어 천마는 트랙에서 트랙으로 넘어갈 때, 노래가 끝나고 간주가 나오기 전 발생하는 짧은 시간까지 조율해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6개의 곡을 듣다 보면 천마가 지금까지 걸어온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잠마동에서 걸어 나온 화자 ‘나 (I)’.

지난번 드래곤플라이와 찍은 뮤비에서, 화자는 경계선을 향해 차를 들이박았다.

이번 뮤비에서는 결국 잠마동이 무너진다.

아포칼립스 근원인 잠마동 무너지고, 세계는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다.

앨범 발매 이후.

사람들은 이번에도 뮤비에 담겨있는 떡밥을 열심히 분석했다.

잠마동이 어떤 의미였는지, 세계의 회복은 또 어떤 의미인지 추측하는 글이 수십 개씩 쏟아졌다.

런던에서 글래스톤베리까지는 거의 100km.

공무원은 가는 길에 떡밥 분석글을 몇 개 훑어보았다.

확실히 이번 앨범에 독특한 요소들과 스토리텔링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해석도 다양했다.

팬으로서 즐길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다만 이게 대중적일지는 모르겠네.’

일반인들이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 이해하면서 즐기기에는 조금 딥한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이번에 천마가 부른 마지막 노래가 한국어라는 게 좀 컸다.

거기에 제목까지 한국어.

팬인 공무원도 번역기를 돌린 가사를 보고 나서야 노래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제목부터 생소한 노래를 과연 대중이 들어볼지도 의문이다.

일단 팬들의 화력과 천마의 인지도로 빌보드 1등을 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2등을 하고 있는 ‘천마 - Dancing Road (feat. 드래곤플라이)’와 비교해서 스트리밍이 압도적이지도 않고 라디오 지수도 부족하다.

공무원은 아쉬웠다.

‘좀 더 많은 사람 알면 좋겠는데.’

노래는 진짜 끝내주는데.

공무원 처음으로 노래에서 언어적 접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떡밥 분석글도 정독하고, 천마의 노래도 듣다 보니 시간은 금방이었다.

버스가 마침내 글래스톤베리에 도착했다,

끼이익!

“도착했습니다. 자기 물건 잘 챙기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버스 기사가 앞으로의 일정을 안내해준 후 짐을 내리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공무원은 숙소로 향했다.

그녀의 숙소는 바로··· 캠핑장!

야외에서 캠핑을 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글래스톤베리에 온 이상 대부분 숙소는 캠핑장 행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무원의 텐트가 명당 중의 명당,

그것도 피라미드 공연장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했다는 것이었다.

공무원이 신청한 건 4인 텐트.

앞으로 5박 6일을 지낼 텐트를 찾아가 보았을 때, 안에는 공무원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있었다.

히피 머리를 한 여자였다.

헐렁한 튜닉 스타일의 셔츠가 허벅지 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알록달록한 천으로 허리를 묶고 있었다. 7월에 유난히 더워 보이는 가죽 부츠가 눈에 띈다.

여자는 근처 푸드코트에서 음식을 사왔는지 한 손에는 소시지를, 반대편 손에는 맥주를 들고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공무원은 배가 고파졌다.

공무원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안녕!”

“그거 맛있어 보이는데?”

“나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팔아. 같이 맥주 한잔할래?”

갑작스런 여자의 제안.

하지만 이런 게 또 페스티벌의 묘미 아니겠는가.

공무원도 맥주와 소시지를 사 와 건배를 했다.

글래스톤베리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어서 대화도 잘 통했다.

두 사람은 각자 어떤 무대를 볼 것인지 계획도 공유하고, 무대 추천도 받았다.

히피 머리의 여자는 이쪽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오틱스라는 애들 알아? 이번에 첫 앨범 낸 신인인데 초대받았더라. 확실히 이런거 보면 글래스톤베리가 상업성보다는 음악성을 중시한다니까. 얘네 언더에 있을 때 공연 한번 봤는데 신나더라고. 이참에 같이 보러 갈래?”

공무원은 오틱스라는 밴드의 공연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틱스는 천마가 헤드라이너로 선 마지막 날에 공연 일정이 잡혀 있었다.

시간대가 완전히 겹치는 건 아니지만, 공무원은 맨 앞쪽 자리를 잡기 위해 그날은 웬만하면 메인 스테이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아, 그날은 어려울 거 같아. 나 천마 공연 봐야 하거든.”

“뭐? 천마? 너 천마 좋아해?”

히피 머리 여자의 표정이 이상해졌지만, 공무원은 개의치 않았다.

“나는 천마 팬이거든. 너는 천마 노래 안 들어봤어?”

“세상에 천마 노래를 안 들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 요즘 라디오만 틀면 나오는 게 천마 노래잖아.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야.”

뭐, 그럴 수 있지.

그런데 히피 머리 여자는 굉장한 신념을 갖고 딱 잘라 말해서,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천마 노래는 좋은데, 너무 대중적이고 인기가 많거든. 그런 트렌디한 건 내 취향이 아니야.”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인기가 좋고 대중적이어서 싫다니.

히피 머리는 강하게 자기주장을 펼쳤다.

“알다시피 천마는 너무 메인스트림이잖아. 세상에 천마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남들이 다 듣는 거 좋아하는 건 식상하다고.”

“.......”

공무원은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살다 살다 영국인이 ‘천마가 너무 메인스트림이라서 싫다’는 소리를 하다니.

히피 머리 여자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천마 노래 들어봤어?”

“당연히 들어봤지.”

팬이니까.

그런데 너는 왜 그걸 아는 건데? 심지어 그건 한국어 가사라고!

“이번 신곡도 봐봐. 너무 쉬워서 아무나 따라부를 수 있잖아. 또 겁나 중독적이라서 카페 가면 하루종일 천마 노래만 나오겠지.”

“음, 그래. 그런 걸로 하자.”

공무원은 당황스러웠다.

얘는 천마를 칭찬하는 건지 까는 건지.

일단 취향이니 존중하기로 하고.

“그럼 너는 뭘 좋아하는데?”

히피 머리 여자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영상 하나를 틀어주었다.

“이런 게 진짜 음악이지. 여기 봐봐. 이 사람이 이 곡에서 쓴 게 6현 베이스인데, 독창적인 반주를 보여주기 위해서···.”

조회수가 1,000이 채 될까 한 인디 밴드의 음악.

공무원은 깨달았다.

‘아... 이 사람. 인디병이구나.’

<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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