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1화 (1/194)

공무원 시험만 네 번째다.

나이는 앞자리가 바뀌어 서른이 되었건만, 이연우는 지금 입은 낡은 후드와 빛바랜 청바지, 그리고 마모된 운동화처럼 망가지고 낙오되기만 하였다.

나이를 먹은 몸은 하나둘 고장이 나기 시작했고. 긴 공시생활을 겪는 정신과 영혼은 조금씩 깎여나가고 썩었다. 뒷바라지하며 같이 망가진 부모를 생각하면 더는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이번에는 꼭 합격한다. 꼭, 반드시.’

이연우는 시험장에 앉아, 핏발선 눈으로 교재를 읽었다. 외우지 못한 분량이 있었다. 시험 시작까지 몇 분도 채 남지 않았지만, 한 글자라도 더 머릿속에 각인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연우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앉은 시험생도 다 비슷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시를 치는 사람도, 대학을 막 졸업한 사람도, 이연우보다 장수한 공시생도, 탁한 열망을 빛내며 교재를 뒤적였다.

‘제발, 내가 아는 문제만 나와라.’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집중력이 시간을 길게 늘어뜨려도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고, 시험 감독관과 부감독관이 교실로 들어왔다.

이연우보다 젊은 감독관은 교단에 서서 손목의 전자시계를 확인하더니, 주의사항을 길게 늘어놓았다.

“보고 계시는 교재 다 넣어주시고요, 컴퓨터 사인펜, 필기도구, 응시표, 신분증만 올려주십시오. 통신기기랑 전자기기는 시험시간 중 소지하시면 안 됩니다. 소지가 적발되면 부정행위로 처리됩니다.”

부산스럽게 책이 닫히고 가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몰아쳤다.

이연우는 최대한 느릿하게, 그래 봤자 몇 초지만, 책을 닫으며 정리된 문장을 읽고는 시험생 중 마지막으로 책을 가방에 넣었다.

이연우가 가방 지퍼를 닫는 소리가 끝나자, 감독관이 말했다.

“답안지 배포하겠습니다.”

부감독관이 돌아다니며 답안지를 나눠준다. 이연우는 눈을 꼭 감고, 방금까지 읽은 교재의 문장을 떠올렸다. 검은 시야 위로 하얀 글자가 떠올랐다.

‘까먹지 말자, 까먹지 말자.’

그러는 동안 부감독관이 다가와, 이연우의 책상 위에 답안지를 놓았다. 이연우는 곧장 눈을 뜨고, 컴퓨터 사인펜을 뽑아들었다.

성명, 응시번호, 생년월일 따위를 신중하게 마킹하는 동안 답안지 배포가 끝났다. 시험장을 둘러본 감독관이 이어서 말했다.

“시험지 배포하겠습니다. 책형 확인해주십시오.”

컨닝하지 못하게끔 문제의 순서만 바꾼 시험지의 유형. 부감독관이 지그재그로 나눠준 시험지의 위에는 A 책형이라고 적혀 있다.

책형을 확인한 이연우는 싸구려 컴퓨터 싸인펜을 꽉 쥐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A. 좋아. 느낌이 좋아.’

삼수하며 쌓아온 경험에 의하면 B보다는 A가 성적이 잘 나왔다. 이번에는 정말 합격이 다가온 느낌이다.

그러는 동안, 아침에 인터넷 시계와 동기화한 손목의 전자시계가 정확히 10시를 알렸다.

동시에 고등학교 교실의 오래된 스피커가 찢어지는 듯한 종소리를 내었다.

띵동댕동-

“시험 시작입니다.”

촤라락!

사방에서 시험지 첫 장을 넘기는 소리가 몰아쳤다. 뒤질세라, 이연우도 첫 장을 거칠게 넘겼다.

그리고, 멈췄다.

순간, 몇 초 동안 기묘한 정적이 시험장에 내려앉았다.

‘인간자격시험…?’

공무원 지방직 9급 시험이다. 마땅히 시험과목, 이를테면 국어와 영어와 한국사와 선택과목 둘이 있어야 할 시험지에, 기묘한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인간자격시험.

‘이게 뭐지? 시험지가 섞였나? 아니야, 이딴 시험이 세상에 어딨어. 그럼 장난? 왜? 안 그래도 시간이 빡빡한데, 왜!’

분노와 공포가 이연우의 뇌를 가득 채운다. 시야가 좁아 들었고, 심장이 마구 뛰었으며, 싸구려 볼펜을 쥔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시험지를 보느라 숙였던 고개가 팍 들렸다.

거칠게 손을 들어 항의하려는 때였다.

이연우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저기요! 감독관!”

수염을 마구잡이로 기른 아저씨다. 딱 봐도 공무원 시험에 최소 5년은 투자한 고시 낭인.

퀭한 눈동자에 절실한 광기가 빛나며, 거친 목소리가 크게 터졌다.

“시험지가 잘못됐습니다!”

“시험지가요?”

감독관이 조금 당황한 듯 빠른 걸음으로 교단에서 내려오는 동안, 시험장 곳곳에서 손이 올라왔다.

“저도 이상해요.”

“이게 뭡니까? 뭐 촬영이라도 합니까? 누구 동의받고?”

“야! 공무원 시험이 장난이야! 왜 이딴 짓을 하는 거야!”

말로 항의하면 다행이다. 공무원 시험이 목숨줄이 된 또 다른 장수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삿대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몰아치는 소란. 화내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 와중에 이연우는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다른 사람이 더 난리를 쳐주어서 그런지, 분노와 공포가 스르륵 사라졌다.

‘뭐야? 다 잘못된 거야?’

한사람만 잘못되면 흐지부지 넘어갈지도 모르겠지만, 시험장 하나가 잘못됐다. 쉽게 넘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최소한 재시험이다.’

못해도 하루, 길면 며칠. 공부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해도 된다.

이연우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나쁘지 않아. 안 그래도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컨디션이 영 아니었어.’

반대로 감독관은 현실적인 시련에 직면했다.

“아니,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으면 이건 뭔데! 너 누구야! 어디 소속의 누구야! 관등성명 대봐!”

“청원하고 인터넷에도 글 올릴 거니까 기대하세요!”

“그건, 일단. 여러분. 죄송합니다. 우선, 시험본부에 확인해볼 테니까, 잠깐만 조용히 대기해주십시오.”

아우성치는 시험생이 쏟아내는 항의의 파도 앞에서, 감독관을 식은땀을 흘리면서 양손을 들어 올려 그들을 말리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교실의 앞문으로 달려가, 꽉 닫힌 문에 손을 댔다.

드르륵-

교실의 미닫이문이 절반쯤 열릴 때였다.

치지직하고 낡은 스피커가 소음을 뱉었다. 감독관과 시험생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안내방송이라도 하려는 건가? 이 교실만이 아니고 다 잘못됐나?’

비슷한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을 스쳤다. 감독관은 문을 열던 손을 멈췄고, 시험생은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모두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올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방송은 기대를 배신했다.

노이즈 낀 목소리가 기묘하게 울렸다.

- 시험시간 중 시험장을 벗어나는 자는 부정행위자로 간주하여, 인간자격시험에서 불합격합니다.

그 말은 한 번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진짜로 이딴 시험이 있다는 것도, 공무원 시험 대신 이딴 시험을 치른다는 사실도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벅이는 동안에도, 방송은 멈추지 않았다.

- 이는 시험감독관에게도 적용됩니다. 규정을 위반한 감독관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방송이 끝났다. 스피커가 침묵하여, 더는 이상한 노이즈 소리를 뿜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현상은 끝나지 않았다.

비틀비틀-

교실 앞문을 반쯤 연 감독관이 만취한 사람처럼 휘청이며 뒷걸음질치다가, 주저앉았다. 당황한 듯 크게 뜬 눈으로 시험장을 둘러보더니, 입을 쩍 벌리고 짖었다.

“꾸에에엑! 뀌엑! 뀌이이익!”

짐승의 울부짖음.

그곳에 있는 것은 더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처럼 생겨서, 사람 옷을 입고, 두 발로 걷는 짐승일 뿐.

“뀌에에엑!”

감독관이었던 짐승이 네 발로 기다가, 벌떡 일어나 교실 앞문으로 다시 달려갔다.

끄드득-

짐승은 손을 써서 문을 열 생각도 못 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문이 몸통에 밀려나며 억지로 열렸다. 짐승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문을 지나, 복도를 달렸다.

타다닥!

복도쪽으로 난 교실 창문 너머, 짐승의 머리가 위아래로 흔들리다가, 메아리치는 울부짖음과 함께 멀리 사라졌다.

이어 같은 직렬의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옆 교실의 문이 열리더니, 옆 교실의 감독관이 고개를 내밀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뭔 놈의 짐승이 여기까지 왔지. 예, 여러분, 짐승은 아래층으로 내려갔으니까-”

탁, 문이 닫히며 뒷말이 들리지 않는다.

대신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크게 났다.

“어, 어.”

가장 공격적으로 소리치던 장수생이다.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나무의자에 강하게 주저앉았는데도,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황망한 눈으로 짐승이 지나간 문을 보았다.

장수생뿐이 아니었다.

교실 뒤편에 가만히 서서 얼어붙은 부감독관도, 짐승을 눈으로 좇던 시험생도, 이연우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어 정지했다.

“말이 안 되잖아. 이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누군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바로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늦지 않은 나이에 공무원이 된 감독관이,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안정된 미래를 쟁취한 인간이, 한순간에 짐승으로 변했다.

생김새와 옷차림과 목소리까지 똑같은데도, 그냥, 그냥 짐승이었다. 짐승으로만 인식되고 생각되었다. 어떻게 보아도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초월적인 무언가가 감독관에게서 인간이라는 구성요소를 박탈한 듯한 광경.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태.

“….”

충격적인 침묵이 내려앉은 이때. 이연우는 가까스로 볼펜을 쥐었다.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볼펜이 미끄러졌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볼펜을 몇 번이고 고쳐잡은 끝에, 겨우 시험지에 볼펜을 댔다.

‘인간자격시험…. 떨어지면 감독관처럼 짐승이 된다.’

아무리 현실 같지 않더라도, 본 것이 그랬다. 뭔지 모르겠지만, 느낀 것이 그랬다.

“으.”

시야가 핑 돌며 시험지의 문자나열이 일렁였다. 어지럼증이 몰려오는 듯했다. 호흡이 거칠었다.

‘안 돼. 떨어지면 안 돼. 이건 꼭 붙어야 해.’

눈을 꽉 감았다. 필사적으로 호흡을 정돈했다.

4년 동안 공시생으로서 아무리 사람 같지 않게 살아왔다지만, 진짜 짐승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이고 싶었다.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신 부모님에게 보은하기 위해서, 자괴감으로 연락을 끊은 친구들과 다시 만날 날을 위해, 무엇보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 자신을 위해서.

이 기괴한 시험에 합격해야만 한다.

이연우가 충혈된 눈을 뜨고, 익숙하게 시험지를 살폈다.

째깍째깍-

이 순간에도 칠판 앞에 세워놓은 시계 속 초침은 부지런히 달렸다.

하나둘 현실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시험지 위로 식은땀을 뚝뚝 흘리면서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험지에 적혀 있는 시간은 100분.

답안지에 표시해야 하는 문제는 100개.

벗어날 수 없는 밀실에서, 행동을 잘못하면 짐승이 되어버리는 시험이 촉박하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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