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2화 (2/194)

공무원 시험만 네 번째다.

100분의 시험시간과 100개의 문항.

처음 접하는 시험일지라도, 4년 동안 몸에 익힌 요령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선, 우선은 뭔 시험인지 파악한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손가락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이연우는 간신히 시험지의 낱장을 집어, 다음 장으로 넘겼다.

안내사항이 적힌 제일 앞장이 넘어가며 본격적인 문제가 적힌 뒷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쓱 훑어내리며 문제의 유형부터 확인하려던 이연우는 첫 문제부터 덜컥 눈을 멈췄다.

문 1. 기차가 고속으로 달려오고 있다. 기차의 앞에는 네 갈래 선로가 있으며, 당신은 기차가 나아갈 선로를 정할 수 있다. 각 선로에 다음과 같은 인물이 묶여 있을 때, 당신은 어느 선로로 기차를 인도할 텐가?

[A 선로 : 당신 하나.]

[B 선로 : 당신의 부모 둘.]

[C 선로 : 당신의 친구 다섯.]

[D 선로 : 당신과 관련 없는 무고한 인간 백 명.]

1번 : A 선로.

2번 : B 선로.

3번 : C 선로.

4번 : D 선로.

답이 없는 문제. 사람마다 답이 달라지는 주관적인 문제. 공무원 필기시험에 나왔다가는 후폭풍이 몰아칠 문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마주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종류의 문제.

이연우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걸 어떻게 맞추라고!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잖아!’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가, 볼펜이 시험지를 찢을 듯이 파고들었다. 턱 끝으로 방울방울 맺힌 땀방울이 뚝 떨어지며, 구겨진 시험지 위로 얼룩을 만들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점점 넓어지는 얼룩.

그러는 동안에도 주변에서 볼펜을 거칠게 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쓰윽쓱, 벅벅벅, 부욱, 찍찍.

이연우가 충혈된 눈동자만 조금 굴려 다른 시험생을 확인하니, 핼쑥한 얼굴로 시험지에 고개를 처박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분주히 춤을 추는 볼펜의 대열.

‘뭐지? 문제가 다른가? 어떻게 저렇게 빠르지?’

의심하기도 잠시. 째깍거리는 초침소리에 시계를 보니까 어느새 10분이 지났다. 남은 시간은 90분.

1분에 하나씩 풀어도 시간이 부족하다.

‘이럴 때가 아니야. 문제를 풀어야만 해. 머뭇거릴 시간 없어.’

서둘러 시험지로 눈을 되돌린 이연우는 간신히 수능 때부터 이어져 오는 격언을 떠올렸다.

‘출제자의 의도. 맞아. 의도를 파악하자.’

이연우의 눈이 시험지 최상단에 위치한 여섯 글자에 고정되었다.

인간자격시험.

인간의 자격을 시험해, 불합격하면 짐승이 되는 시험. 그 의미를 생각하면 의도도 투명하게 보인다.

‘인간을 가리는 시험. 가장 인간다운 답을 고르면 되는 거야.’

대강 맥락을 파악했다. 핏줄 선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문제를 빠르지만 신중하게 해석하고, 네 개의 답 중 하나를 고른다.

쉽지 않았다. 볼펜이 네 개의 선택지 사이를 몇 번이고 오갔다.

‘A 선로인가? 나 하나 죽는 걸로 107명을 구한다. 거기다 자기 희생적이니까 A 선로가 가장 인간답긴 해. 아니면, 인간적으로 이기적인 선택지? 나를 위해 초대면인 100명을 희생한다?’

어찌어찌 심정적으로 1번과 4번으로 좁혔지만, 함부로 정답을 고를 수가 없다.

시험지 몇 센티 위에 우뚝 멈춰선 볼펜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파르르 떨었다.

틀리면, 이 문제 하나로 인간실격되어 짐승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문제 하나에 걸린 것이 공무원 직업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어떻게, 뭘 해야.’

이연우는 눈을 꽉 감았다. 시험 직전까지 외웠던 문장은 까맣게 지워졌다. 대신 오늘 아침 거울로 본 추레한 자신의 얼굴과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부모님의 얼굴과 한참 전에 보아 가물가물한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죽기 싫어. 내 가족과 친구가 죽는 것도 싫어. 차라리 모르는 사람 100명이 죽었으면 좋겠어.’

극한상황에서 마주한 솔직한 마음.

‘나는 인간이야. 내 마음이 시키는 선택이 인간다운 답이야. 불합격하면 애초에 내가 인간이지 못했다는 소리니까, 그러니까.’

총을 쏘듯이, 포기하듯이, 충동적으로, 볼펜을 내려찍어 답에 V 표시를 체크했다.

4번 : D 선로.

“후우우.”

고작 한 문제 풀었는데 단거리 달리기를 완주한 것처럼 진이 빠졌다. 축 늘어지려는 손을 힘겹게 들어 올려, 얼굴을 흠뻑 적신 땀을 닦아냈다.

긴장이 조금은 풀렸기 때문일까.

시험지의 문제 하나로 한껏 좁아졌던 세계가 넓어지며, 시험장의 온갖 군상이 보였다.

달달달달-

다리를 쉴 새 없이 떠는 남자가 볼펜 꼭지를 까득까득 씹고 있었다.

“흐, 흐흡. 흑.”

누군가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끼며 눈물을 쏟았고, 누군가는 소나기라도 맞은 것처럼 땀으로 상의를 흠뻑 적셨다.

“콜록, 콜록. 크흠. 흐흐흠.”

거기에 발작하듯 기침하는 사람까지.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시험지를 누비는 볼펜들의 불협화음이 시험장을 가득 채운다.

패닉에 가까운 정신상태 때문에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던 온갖 소음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집중을 방해했다.

‘너무 시끄러운데.’

눈살을 찌푸린 이연우가 부감독관을 찾았다.

하지만 부감독관은 교실 뒤편에 쓰러져 사물함에 기대앉아 있었다. 넋이 나간 얼굴로 무릎을 끌어안은 모양새가 영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이연우는 억지로 눈을 시험지에 집중했다.

‘집중해, 집중해. 문제만 풀 시간도 부족해.’

흘깃, 손목시계를 보니 5분이 더 지났다. 남은 시간은 85분. 남은 문제는 99문제.

마킹을 못해서 불합격하는 끔찍한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상상인데도 오싹, 오한이 든다.

‘안 돼. 빨리 읽고, 빨리 푼다.’

촤륵- 촤라락-

거칠게 문제지를 끝까지 넘겨보니, 마침 모든 문제가 1번 문제와 비슷했다. 답이 없는, 개인의 주관을 묻는 문제.

덕분에 문제풀이에 시간이 들 것 같지는 않다. 한눈에 끌리는, 솔직한 답만 고를 거니까.

그렇게 이연우가 시험지 앞으로 돌아와, 2번 문제부터 답하려고 펜을 들었을 때였다.

쾅!

고개를 돌리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큰 소리가 났다. 흔들리는 목소리가 크게 뒤따랐다.

“이거, 촬영이지? 몰카지? 어! 너희 다 한통속이잖아! 사람이, 사람이 짐승이 될 리가 없잖아!”

감독관에게 삿대질하던 장수생이다.

책상을 두 손으로 내리치며 일어난 그는 수축한 동공으로 사방에 손짓을 하다가, 그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초췌해진 시험생들과 눈을 마주쳤다.

장수생은 주춤하더니, 갑자기 몸을 숙여 시험지며 컴퓨터 사인펜을 마구잡이로 잡아 운동복 바지의 주머니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일 리가 없어. 정신 나간 놈들. 내가 가만히 두나 봐라. 사람이 목숨 걸고 시험을 치는 날에, 이딴 짓을. 그냥은 안 넘어갈 거야. 두고 봐.”

책상을 때려 붉게 물든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가방이 있는데도, 허둥지둥 바지 주머니에 큰 시험지를 우스꽝스럽게 꽂아넣었다.

그리고는 가방은 책상 옆에 걸어둔 채로, 냅다 교실 뒷문으로 뛰다시피 걸어갔다.

“이딴 장난, 절대 용서하지 않아.”

사물함 앞에 주저앉은 부감독관에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친 장수생이 미닫이문에 손을 올렸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던 볼펜 소리가 천천히 멎었다. 드르륵, 열리는 문을 따라 시험생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여러 쌍의 시선이 장수생에게 향했다.

희미한 희망과 불신과 기대와 공포가 복잡하게 섞인 시선과 낮은 중얼거림.

“나갈 수 있나? 진짜?”

“제발.”

“그래, 질 나쁜 장난이겠지? 어그로 끄는 위튜브 같은 거.”

뒤로 돌아간 머리들을 본 장수생은 창백한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안 통해. 나는 집에 갈 거야.”

쾅!

끝까지 당겨 연 미닫이문. 장수생은 문지방을 지나, 복도로 나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리고 네 걸음. 아무 일도 없이 복도중앙으로 걸어나간다.

색이 빠져나간 시험생들의 얼굴에 희망이 깃들며,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때였다.

‘저건.’

이연우는 장수생의 책상 모서리에 뒤집혀 놓인 답안지를 발견했다. 자세히는 안 보이지만, 진하게 마킹된 자국이 군데군데 비쳐 보이는 답안지의 뒷면을.

‘문제를 다 풀었다고? 마킹까지 끝내고? 그런데 왜 그 난리를 피면서 나갔지? 아, 설마.’

이연우가 시험장을 돌아봤다.

장수생이 무사히 나가는 것을 보고 따라서 나가려는 시험생이 부지기수다. 문제도 마저 풀지 않고 말이다.

13명. 시험장의 3분의 1쯤 되는 시험생이 가방을 챙기기 시작한다. 슬쩍 살피니까 답안지에 마킹도 안 됐다.

순간 소름이 올라왔다.

‘다른 시험생들이 제대로 풀지 않고 나가게 하려고. 그 이유는.’

인간자격시험이 상대평가일지도 모르니까.

합격자로 몇 명을 뽑을지 모르니까.

자기보다 더 인간다울지도 모를 경쟁자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그 깨달음과 동시에 공포가 엄습했다.

‘만약, 만약, 상대평가면. 한 명만 뽑히는 시험이면. 공무원 시험처럼 경쟁률이 미쳐 돌아가는 시험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가장 솔직한 답만 고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쟁자가 나보다 더 인간다우면, 그래서 내 인간점수가 남보다 낮아서 짐승이 되면 어떡하지?

이연우는 일어선 사람들, 인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시험생들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제발 이대로 나가라.’

그 염원에 답하듯, 스피커가 지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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