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5화 (5/194)

서른 살에 얻은 첫 직장이다.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산 중턱에 위치한 비탈길.

끼이익-

페인트가 벗겨진 정류장 표지판 앞에서 초록색 버스가 위태롭게 멈췄다. 덜컥이며 열린 뒷문으로, 책가방을 매고 꽉 끼는 낡은 정장을 차려입은 이연우가 혼자 내렸다.

부우웅-

버스가 매연을 뿜으며 털털털 떠나자,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오며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연우는 내린 자리에서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도심을 지나서 도착한 외진 산골이다.

사방에 푸른 나무가 무성하고, 검은 아스팔트 도로는 노후되어 이곳저곳 금이 갔다. 사람 그림자는커녕, 지나다니는 차조차 보이지 않는 산길.

아무리 봐도 신입사원 연수회가 열린다는 장소가 아닌 거 같다.

‘여기가 아닌가? 연수 시작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신입연수부터 지각이라고? 아니지?’

더워서 흘린 땀이 밀려나고, 식은땀이 새로 맺혔다. 서늘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올랐다.

이연우는 다급하게 양복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회사에서 보낸 문자를 다시 읽었다.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화면 밝기를 최대로 키우고, 손 그림자를 핸드폰 위로 드리우면서였다.

기나긴 안내문자.

눈을 가늘게 뜬 이연우는 엄지로 화면을 빠르게 드래그하면서 중요사항만 찾아 읽었다.

[신입사원 연수회 안내]

신입사원 연수회는 1주일 동안 진행된다고 했다. 생필품과 편한 옷을 챙겨 오라고도 했고.

오는 길도 정확하게 안내했다. 중산골 정류장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있다는데.

“중산골. 맞게 내렸는데. 길이 어딨지?”

정류장 표지판을 올려 본 이연우는 얼른 오른쪽 길을 향해 시선을 바쁘게 움직였다. 핥듯이 도로 가장자리를 훑어보기를 잠시.

“아. 저기구나.”

길을 찾았다.

아스팔트조차 깔리지 않은 흙길. 차 바퀴가 지나간 자리로만 두 줄기 고랑이 파여 있고, 푸른 잡초가 무성한 길이 숨어 있었다.

이연우는 서둘러서 구둣발을 뻗었다. 까맣게 광낸 구두에 누런 흙을 묻히면서 걷기를 잠시.

휘어진 길 너머로 사람과 건물이 보였다.

‘저기가 맞나…?’

철조망을 두른 벽. 입구에는 군부대처럼 경비가 둘 서 있고, 자동차의 출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어, 꼭 검문소 같다.

이연우는 어깨를 움츠렸다. 걸음도 늦어졌다. 괜히 핸드폰을 들고 건물과 번갈아 봤다.

‘백범문화연구소가 아닌 거 같은데?’

문화연구소라기에는 경계가 삼엄하다. 분위기도 문화적이지 않게 살벌하고.

그러는 동안 거리가 가까워졌다.

새까만 마스크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경비 둘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상한 긴장이 흘렀다.

“….”

“….”

“….”

방탄조끼를 입고, 허리춤에는 삼단봉과 테이저 건을 걸어둔 경비가 이연우를 노려봤다. 앞에 선 경비는 슬그머니 손을 움직여 테이저 건을 쥐었고, 뒤에 선 경비는 무전기를 얼굴로 가져갔다.

사박사박-

주눅이 든 이연우는 등을 굽히고 양손을 모은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때 경비가 순식간에 테이저 건을 꺼내 겨누면서, 크게 외쳤다.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이연우는 화들짝 놀라며, 곧장 양손을 들어 올렸다. 억울한 목소리가 나왔다.

“저기요, 말만 여쭤-”

“조용히 해! 소리 내면 쏜다!”

“아니.”

“쏜다!”

철컥-

정확히 머리를 겨눈 테이저 건. 푸른 번갯불이 튀었다. 이연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면서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시험 같은 걸 막는 회사랬지. 이게 맞는 것도 같아. 저것도 평범한 테이저 건이 아닌 것 같고.’

“보안실에 확인해!”

“하려고 했습니다.”

치직-

경비가 무전기를 켜면서 노이즈가 울렸다. 딴생각을 하던 이연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팔딱였다. 인간자격시험에서 들었던 노이즈 같아서.

그 순간이었다. 깜짝 놀라는 이연우를 따라서, 덩달아 놀란 경비가 방아쇠를 당겼다.

파지지직!

푸른 번개가 번쩍였다. 순식간이었다. 푸른 뱀 같은 것이 이연우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연우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이를 딱딱거리면서 말려들어가는 신음만 간신히 토했다.

“으그윽!”

쿵!

뒤로 자빠져서 사지를 벌벌 떤다.

경비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무전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정문입니다. 거동수상자가 접근했습니다. 신원 확인 부탁드립니다.”

- 기다려봐.

지이잉-

CCTV 카메라가 돌아가며 경련하는 이연우를 렌즈에 담는다. 렌즈가 바쁘게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한 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사람 맞다. 이상異常은 아니야. 위험한 걸 가진 것도 아니고, 적대집단 일원도 아니고.

“민간인이랍니다.”

무전기를 든 경비가 말을 전하자, 총을 쏜 경비가 테이저 건 손잡이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젠장. 그러면 실수로 들어온 건가? 기억소거제 막 쓰면 욕먹는데.”

-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오늘 연수 오기로 한 신입이다.

“신입이요?”

“신입이라고?”

테이저 건을 쏜 경비가 당황한 듯 고개를 재빨리 움직여, 이연우를 보았다. 전기를 휘감고 경련한다. 박력 있게 외치던 게 거짓말처럼 이번에는 억울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니. 아. 신입들 다 들어온 거 아니었어? 군에서도 오고, 경찰에서도 오고, 국정원에서도 오고, 소방서에서도 왔잖아. 얼마 전에 있었던 생존자라는 사람도 왔고.”

- 이력 보니까 얘도 생존자라는데. 웬일로 둘이나 입사했네. 어쨌든 너희가 알아서 달래서, 안에 들여보내.

치지직-

무전기를 거둔 경비가 말했다.

“알아서 하랍니다. 선배님이 쐈으니까, 선배님이 처리하십쇼.”

“아. 좆 됐네.”

어슬렁어슬렁 걸어간 경비는 테이저 건을 이연우에게 들이댔다. 아직도 이연우를 휘감고 있던 푸른 뱀이 테이저 건으로 스르륵 빨려 들어갔다.

“으극!”

“괜찮으십니까? 정신이 드십니까?”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든다. 하얗게 뒤집혀 있던 눈동자가 내려오며, 경비의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초점 가운데에 잡았다.

“저기, 죄송합니다. 연수 오신 분이죠?”

“악!”

벌떡 일어선 이연우가 허겁지겁 뒷걸음질을 쳤다. 정장에 묻은 흙먼지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창백한 얼굴로 붉은 피가 쏠리며, 크게 벌어진 입에서 고함이 터지려는 순간.

“죄송합니다! 저희가 PTSD 같은 게 있어서. 요즘 들어 이상하게 접근하는 수상한 놈들이 있어서,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

경비가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허리의 홀스터에 느슨하게 걸린 테이저 건이 덜렁거렸다. 튀어나오던 고함이 목 아래로 돌아갔다.

전기 세례를 받아서 그런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연우는 생각했다.

‘인성시험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어떤 회사가 초면에 전기부터 지지고 봐.’

그래도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 지랄을 떠는 꼴이 좋게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이연우가 입꼬리를 어떻게든 끌어올렸다.

“하. 하하. 그럴 수도 있죠. 저도 얼마 전에 이상한 시험을 겪었더니, 노이즈 낀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라지 뭡니까. 그 뭐야, 전장을 겪은 군인이 큰 소리에 놀라는 것처럼요. 이해합니다. 암요. 하하하.”

핏줄이 돋아난 손으로 숙인 허리를 직접 펴주면서 웃는다. 전기 때문에 탄 자국과 탄 냄새가 잔뜩 남은 정장이 경비의 선글라스에 선명하게 비쳤다.

***

“연수! 연수 오셨죠! 늦기 전에 가시죠! 저기 통로를 지나쳐서 나가면, 왼쪽에 2층 건물 있습니다! 거기서 연수합니다!”

어색하게 외친 경비의 말을 따라 검문소를 넘어가니, 백범문화연구소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에 2층 건물. 오른쪽에 3층 건물. 특별한 것이 없다. 드물게 돌아다니는 사람도 평범하다.

‘괜히 딴 곳 기웃거리다가는 또 테이저 건 맞겠지.’

저벅저벅-

바로 2층 건물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복도 벽에 A4 용지가 떡하니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신입사원 연수장]

[           --->            ]

화살표를 따라서 도착한 1층 구석의 자그마한 강의실의 문 앞.

신입사원 연수장이라고 A4용지가 붙은 문 앞에서 이연우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8시 50분. 지각하지 않았다.

툭툭-

흙 따위를 털어내면서, 이연우는 깊게 호흡했다. 새삼 심장이 빨리 뛰었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기대감과 불안감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잘 할 수 있을까? 공시생으로 살면서 사회생활 같은 건 안 해봤다.

그러다가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애초에 시작부터 테이저 건을 맞았는데, 더 걱정할 게 있을까?’

“후.”

짧게 숨을 내뱉고, 손잡이를 잡아 문을 열었다.

벌컥-

활짝 열어젖힌 문으로 들어가니, 앞문이었다. 8개의 책상이 놓인 작은 강의실. 먼저 도착해 곳곳에 흩어져 앉은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5명. 여자 하나와 남자 넷.

머리를 짧게 깎은, 군복 입은 하사.

경찰복을 입은 청년.

반팔티와 청바지를 입은 청년.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 여자.

낡은 정장을 빼입은 아저씨.

그들도 저마다 보고 있던 핸드폰을 놓으면서 이연우를 마주 보았고, 이어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이연우는 왜들 이렇게 인사성이 밝은지 의문이 들었지만, 문득 이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입사동기 아닌가.

이연우도 그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비어 있는 제일 앞자리에 앉자, 뒤에서 남자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사 사람 아니십니까?”

“예?”

생뚱맞은 질문. 가방을 놓다 말고 몸을 돌아보니, 하사가 오묘한 표정으로 이연우의 옷을 가리켰다.

“옷이.”

흙먼지와 불탄 자국. 매캐한 탄내까지 풀풀 풍기는 옷. 누가 봐도 방금까지 험한 일을 하다가 온 현장직의 모양새다.

이연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도 이번에 입사했습니다.”

“그럼 왜 옷이.”

“정문에서 테이저 건에 맞아서.”

“아.”

어색한 탄성. 이연우를 주시하던 시선이 흩어졌다. 다시 자기 핸드폰을 툭툭 건드리는 소리가 시계초침처럼 이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 토일월화수 한편씩 연재하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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