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6화 (6/194)

‘첫인상 망한 거 같은데?’

경비한테 테이저 건을 맞았다. 첫인상이 좋을 리가 없다. 이연우가 식은땀을 흘리는 가운데, 9시가 되었다.

딱 정각이 되자, 앞문이 열리며 사람이 들어왔다. 다크 써클이 볼까지 내려온 여자였는데, 라면 국물이 튄 정장을 그대로 입고 왔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어온 그녀는 교단에 서서는 대충 신입사원을 둘러봤다.

“신입이 많이도 왔네. 좋아요. 인력은 많으면 좋지. 다들 죽어나가는데 보충이 안 되거든.”

등을 곧게 펴고 경청하던 사람들이 자세를 흐트러뜨리며, 조금은 당황한 눈을 했다. 연수를 맡은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다.

눈동자가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든 말든, 여자는 자기 할 말만 이어갔다.

“제가 누군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죠. 그냥 김 박사님이라고 부르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래요, 자기소개부터 합시다.”

촤륵-

서류뭉치를 교단에 놓고, 펼친다. 회사에서 정보를 수집해 작성한 이력서. 김 박사는 종이를 휙휙 넘기며 이름과 이력만 대강 훑어봤다.

“대략적인 이야기만 듣고 이직 제안을 받아들이신 분도 있고, 생존자가 둘이나 왔네. 이서연 씨부터 합시다. 나오세요.”

“PPT를 준비해왔는데, 그건 어떻게 할까요? 컴퓨터에 보안이 걸려 있어서 파일을 받아놓지 못했는데.”

“그냥 말로 하세요.”

성의 없이 휘적이며 앞으로 나오라는 손짓.

정장을 핏 좋게 입은 이서연이 하얀 칠판 앞으로 나가서는, 자신감 있게 말했다.

“저는 이서연입니다. 국정원에서 일했고, 인류보호회사의 제안을 받아 이직했습니다. 무슨 회사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인류의 안전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아, 됐어요. 대충 어디에서 일했는지랑 이름만 말하세요. 다음. 강열 하사?”

가차 없이 말을 자른다. 이서연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강열과 자리를 바꿨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특수부대에서-”

“예, 다음. 이름은 내가 말했으니까 넘어갑시다.”

“저는 경찰 출신 한창성-”

“소방서에서 일하던 송시우-”

순식간에 지나가는 자기소개.

제복을 입은 경찰과 반팔티를 입은 소방관이 잠깐 앞에 섰다가 내려가는 동안, 이연우는 당황했다.

김 박사의 어처구니 없는 진행 때문이 아니었다.

‘뭐야, 다들 경력자잖아?’

그것도 쟁쟁한 실력을 자랑하는 경력자. 9급 공무원 시험에서 빌빌거리던 자신과는-

“이연우 씨?”

“아, 예.”

생각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부름 받아, 칠판 앞에 선다. 엉망인 옷과 머리를 보고는 김 박사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보안팀장에게 들었습니다. 첫날부터 테이저 건에 맞은 사람이 있다고.”

“하하.”

웃어 넘기자, 김 박사는 고개를 주억였다.

“업무에 투입되기도 전에 이상異常을 두 개나 겪는 사람은 드물죠.”

이상異常. 인간자격시험 같은 것. 테이저 건의 푸른 뱀 같은 것.

그 말이 자신감을 심어줬다.

‘나는 인간자격시험을 겪고, 합격했어. 이상경험! 이 회사에서는 확실한 장점이야. 이런 부분에서는 내가 경력자인 거야.’

목을 곧추세운 이연우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연우입니다. 네 번째 공무원 시험을 치던 중 이상異常을 겪고,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반응은 좋지 않다. 이상을 겪었다는 말에 흥미를 가졌던 눈동자들이, 4수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무관심과 알 수 없는 실망과 조금의 우월감을 품었다.

샘솟았던 자신감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김 박사도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 다음. 박상준 씨.”

이연우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자리로 돌아가는 발걸음에서 터덜터덜 힘이 빠졌다.

‘하긴, 내가 이상異常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겪고 살아남은 베테랑도 아니고. 우연히 한 번 겪고 살아남은 건데. 장점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

저 경력직들도 시험을 치면 통과할 테지. 능력적인 측면에서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연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멍하니 다음 자기소개를 기다렸다.

마지막 사람의 차례.

낡은 양복을 입은 박상준은 긴장한 듯 꽉 매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도 이연우 씨와 같은 이상異常을 겪고, 제안을 받아 입사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요. 생존자가 둘이나 입사하다니. 그럼 이제 뭘 해야 하나.”

김 박사가 서류를 뒤적인다. 박상준이 뻣뻣한 걸음걸이로 교단에서 내려오는 동안, 이연우는 실망감도 잊고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수염을 깎아 말끔한 턱. 하지만 퀭하게 파인 눈가. 긴장한 가운데, 절실함을 품은 눈동자.

언뜻 시험장에서 보았던 얼굴이 스쳤다.

‘고시 낭인?’

가장 공격적이던, 끝내는 짐승이 되어버린 장수생이 아니다.

가장 먼저 시험지의 이상을 시험감독관에게 말했던 사람이다.

박상준이 이연우를 스쳐 지나가며, 언뜻 눈짓으로 아는 척을 했다. 그도 이연우를 알아본 것이다. 이연우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공무원시험준비생끼리, 같은 시험의 생존자끼리 뭐라 표현 못 할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탁!

그 사이에 서류를 훑어본 김 박사가 서류뭉치를 집어던지듯 교단 구석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보드마커를 쥐었다. 검은색 보드마커가 하얀 칠판 위로 찍찍 그어졌다.

이상異常

“이게 뭔지부터 말하겠습니다.”

자기소개하며 어수선했던 강의실의 분위기가 변했다. 자세를 바로 한 신입사원의 시선이 김 박사의 입으로 모였다. 인간자격시험을 겪은 이연우와 박상준도 그랬다.

보여주기 위한 태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했다.

사람을 짐승으로 만드는 그것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그것이, 과학적으로도 존재할 수 없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렵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뜻과 같아요.”

김 박사가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꾹꾹 눌렀다. 이어 대본 읽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정상적인 상태와 다름.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름.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음.”

인터넷에서 찾은 문장이었는지, 김 박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걸로 설명이 끝났다.

김 박사는 보드마커를 다시 움직이며, 이상異常 아래로 여섯 글자를 썼다.

인류보호회사.

“그리고 우리 회사는 그런 이상異常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회사고요. 뭐 더 설명할 게 없네요. 직접 겪어봐야 지나 알지.”

이연우의 얼굴에 알쏭달쏭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상異常의 정의가 모호했다.

‘그냥 이상하면 이상異常이다?’

이연우 뿐만이 아니라, 모든 신입사원이 이해하지 못했다.

김 박사는 신입사원을 쭉 둘러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구겨진 정장을 휘날리며,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눈으로 보고 겪는 게 제일이죠. 따라오세요. 거기 생존자들도. 회사가 하는 일 중 일부지만, 우리 연구소가 하는 일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잠깐 정적이 있었다. 정말 잠깐이었다.

신입사원들은 저마다 눈을 반짝이더니,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끌리는 소리가 좁은 강의실을 가득 채운 뒤, 6명의 신입사원이 복도로 나가는 발걸음 소리로 이어졌다.

분주한 발걸음은 2층 건물의 복도로, 정문을 지나 바깥으로, 끝에는 3층 건물로 이어졌다.

***

이동하는 동안 신입사원들은 둘로 나뉘었다.

이서연과 강열을 비롯한 경력자 넷.

공시생 출신 이연우와 박상준 둘.

가장 앞서 나가는 김 박사가 중심이다. 좌우로 나뉜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걸었다.

“한창성 씨는 경찰 시험 언제 합격하셨습니까. 되게 어려 보이시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합격했죠.”

“오, 최연소 합격자? 뉴스에도 나왔겠는데요?”

“강열 씨는 어디 부대에서-”

“이서연 씨는 국정원 출신이시면, 막 첩보요원 같은-”

친분을 다지는 이야기.

그곳에 끼지 못한 이연우와 박상준은 입을 다물었다. 오른쪽 대각선 뒤로 몇 걸음 뒤처져서 걷기만 하다가, 뒤늦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연우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살아남으셨네요.”

“다행이죠. 그때 중간에 일어선 사람 말고도 절반은 탈락해서, 집에서 짐승이 되었다던데.”

“절반이나.”

대화가 끊겼다.

어색한 침묵. 박상준은 주먹을 계속 쥐락펴락하면서, 3층 건물 정문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는 박사의 뒷모습과 건물 주변을 바쁘게 돌아보았다.

“지금 그 시험 같은 거 보러 가는 거면,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그렇게 위험한 걸 보여주지는 않을 거 같은데…. 그래도 각오는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어차피 회사에서 일하려면, 이상異常과 마주치는 것은 필연일 테니.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테스트일지도 모르지. 어떻게 반응할지 알아보는.’

면접도 보지 않고 채용되었다. 이건 연수이자, 신입사원평가일지도 모른다. 기준에서 미달하면 채용이 취소될 수도 있는.

이연우는 이를 꽉 물며 각오를 다졌다.

‘능력이 부족해. 나이도 많아. 경력도 없어. 여기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 연수에서 어떻게든 회사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야 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3층 건물의 1층 중앙,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도착했다.

헐벗은 콘크리트 계단. 하얀 백열등이 내리쬐는 음침한 계단은 아래로 몇 개나 있는지 모르겠다.

타닥탁탁-

계단을 내려간다. 한참 동안.

강열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얼굴로, 언뜻 위를 올려봤다.

“깊습니다. 벌써 지하 5층까지는 내려왔습니다. 여기는 무슨 시설이길래, 아니, 아래에 무엇이 있길래 엘리베이터도 설치하지 않았습니까?”

“백범문화연구소죠. 문화적인 것이 있고요.”

김 박사가 슬리퍼를 찍찍 끌며, 계단을 휙휙 내려갔다. 완전히 몸에 익은 계단인 듯, 제대로 보지도 않고 발을 쭉쭉 뻗었다.

이서연이 종종걸음으로 김 박사 옆으로 다가가, 하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문화연구소가 도대체 뭔가요? 오기 전에 찾아봤는데, 딱히 나오는 게 없던데요?”

김 박사가 훌쩍 계단 세 칸을 뛰어내린다.

탁!

드디어 계단이 끝났다.

황량한 콘크리트 복도. 마감도 마치지 않은 좁은 복도가 좌우로 길게 뻗었다. 벽의 상단에 띄엄띄엄 달린 명패에는, 실험실이나 보관실이나 연구실 따위가 쓰여 있었다.

복도에 멈춰선 김 박사는, 아직 계단에 있는 신입사원을 올려봤다.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죠.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이 문화의 힘이란 것이 뭘까요?”

아이돌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한국 작품이 유행할 때마다 한 번씩은 나오는 말.

강열은 잘 모르겠다는 듯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이서연은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김 박사의 말을 기다렸다. 한창성과 송시우도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이연우는 시험문제의 의도를 파악하듯, 김 박사의 말에 담긴 함의를 재빨리 깨달았다.

‘문화적인 이상異常? 그런 걸 연구하는 곳인가? 예를 들면.’

언젠가 보았던 공포영화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보면 자살하는 영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소설. 그런 게 있다고?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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