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좁은 콘크리트 복도를 걷는다.
김 박사는 신입사원을 어딘가로 인도하면서, 열정과 학구열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문화. 사람을 미치게 하죠. 웃게 하고, 울게 하고, 감동하게 하고, 열정을 불태우게 하고, 죽게 하고.”
열의 가득한 목소리가 회색 복도에 울린다. 낯설었다. 잠깐 봤지만 이런 성격 같지는 않았다. 신입사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몇 걸음 떨어졌다.
혼자 앞서나간 김 박사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영화, 노래, 아이돌, 춤, 그림, 조각상, 소설, 시, 문학, 드라마, 뮤지컬.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이 뭘까요? 이 문화란 것은 무슨 힘을 지니고 있을까요?”
“관객이나 독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 말인가요?”
뒤에서 이서연이 조심스럽게 답하자, 김 박사는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아니죠.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리고는 제1실험실의 명패 아래에서 갑자기 몸을 돌려,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신입사원을 보았다. 이서연이 움찔 걸음을 멈췄다. 따라오던 신입사원도 멈췄다.
조금 거리를 두고, 높다 못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쏘아졌다.
“사람을 조종하는 겁니다.”
“…예? 조종이요?”
예상치 못한 말이 이어진다.
“위대한 예술작품을 보면 많은 사람이 비슷한 감정을 품습니다. 왜? 예술이 사람을 그렇게 조종하니까. 사람의 영혼을, 사람의 뇌를, 사람의 신체반응을 그렇게 조종하니까.”
“그, 슬픈 영화를 보면 울고, 웃긴 영화를 보면 웃는 그런 거 말입니까?”
강열이 힘들게 이해해서 말하자, 김 박사가 히죽 웃었다. 김 박사의 손이 제 1실험실의 문 손잡이에 올라갔다.
“직접 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그녀는 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이제 신입 여러분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문화의 힘을 볼 겁니다.”
열린 문 너머로 김 박사가 사라졌다.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는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실험실의 밝은 조명이 네모난 그림자처럼 복도에 드리워졌다.
신입사원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리에 서 있었다. 뱀을 마주한 쥐처럼, 낯선 무언가를 마주한 느낌. 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좁은 복도에 꽉 찬 신입사원을 뚫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뒤에 있던 이연우다.
입술을 앙다물고 성큼 앞서 나갔다.
‘전부 평가받는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여. 내가 일할 회사고, 일하면서 마주할 이상異常이야. 겁먹지 마. 적응해.’
이연우는 제1실험실의 모습에 잠깐 멈칫했다가, 단호한 걸음으로 김 박사 옆에 다가갔다.
“저희도 가죠.”
“베르테르 효과를 말씀하신 건가…?”
“들어갑시다.”
뒤이어, 신입사원들도 정신을 차리고 우르르 들어왔다.
“….”
“….”
그들은 실험실의 정경에 말을 잃었다. 그저 우두커니 멈춰 섰다.
“실험 준비는 끝났나요?”
“아, 김 박사님. 이제 시작하면 됩니다. 뒤에는 신입입니까?”
“견학 왔습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죠.”
“그건 그런데….”
웅웅-
컴퓨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장치가 진동하는 실험실.
하얀 가운을 걸친 연구원 한 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겼다. 문득 젊은 연구원이 유리창을 힐긋 보았다.
“처음부터 이런 걸 보면 힘들지 않을까요? 퇴사할지도 모릅니다.”
실험실 왼쪽, 벽을 대신하는 큰 유리창.
유리창 너머의 격리실에는 온몸이 꽁꽁 묶인 사람이 콘크리트벽에 바짝 구속되어 있었다. 머리 주변으로 전선 같은 것이 다닥다닥 늘어져 흔들렸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얼굴 앞까지 길쭉한 독서대가 솟아 있었는데, 독서대가 수직으로 서 있어서 뭐가 놓여있는지 안 보인다.
“어차피 이 정도로 도망치는 사람은 오래 일 못하죠.”
“그것도 맞네요. 그럼 뭐. 시작할까요?”
연구자가 멀리 손을 뻗어 유리창 앞의 마이크를 제 앞으로 당겨오는 순간이었다.
경찰 출신 한창성이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이거 인체실험입니까? 저 사람은 왜 묶여 있고요?”
“법적으로는 문제없습니다. 동의도 받았습니다.”
“동의를 받았다고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법적으로 문제없으니까.”
“걱정이 아니라…. 아닙니다.”
일단 지켜보기로 한 걸까. 한창성은 팔짱을 끼며 뒤로 물러났다.
이서연은 기계장치를 둘러보다가 피험자를 보기 시작했고, 강열은 문가에 섰다. 다른 신입도 저마다 자리를 잡았다.
이연우는 유리창 가까이에 서서, 김 박사와 연구원의 태도를 보았다. 매일 반복되는 작업처럼 사무적이다.
‘이상異常을 대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그래, 괜히 겁먹을 거 없어.’
그리고, 실험이 시작됐다.
“이상개체 ‘내가 죽어야 하는 36가지 이유’의 23번째 실험을 개시합니다. 실험목적은 문화적 재해의 요소를 분석하고, 해당 개체의 변화를 측정하기 위함. 피실험체는.”
마이크를 잡은 연구원이 잠깐 말을 멈추더니, 힐긋, 신입사원을 본 후 작게 말했다.
“피실험체는 사법거래자. 피실험체는 들리십니까?”
- 잘 들립니다.
작은 스피커에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말끔하게 나온다. 연구원은 모니터만 보며 말했다.
“저희가 책을 펼쳐 드리면 읽으시면 됩니다. 다 읽으면 말해주세요. 책장을 넘겨 드릴 테니까요.”
- 그건 알겠는데. 진짜 이것만 읽으면 징역을 낮춰준다고요?
“예. 당연하죠. 그럼 시작합니다.”
달칵-
사락-
연구원이 버튼을 누르자, 고성능 스피커에서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는 않지만, 독서대 너머에서 책장이 넘어간 듯했다.
책 한 장 읽을 시간이 지났다. 피실험체가 말했다.
-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유서 같은 겁니까? 기분이 나쁜데.
“계속 읽으십시오.”
달칵-
사락-
종이가 또 넘어간다. 이번에는 책 두 장 읽을 시간이 지났다.
- 이건 다른 사람 유서 같은데. 어쨌든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면 차라리 풀어주시죠? 제 손으로도 책 넘길 수 있는데.
“안 됩니다. 말하시면 저희가 넘겨 드리겠습니다. 계속 읽으세요.”
신입사원들은 이게 무슨 실험인가,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위험한 실험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을 묶어놓고 책을 읽게 만들 뿐이지 않은가.
죽음이니 이상이니 그렇게 겁준 것치고는….
- 쯧, 읽었습니다.
“네, 다음.”
책장이 계속해서 넘어간다. 변화는 없었다. 읽고, 넘기고, 읽고, 넘긴다. 지루한 반복.
신입사원들의 자세가 풀어졌다. 벽에 등을 기대고, 짝다리를 짚고, 주머니로 손이 들어가고, 눈빛이 멍해지고, 집중이 흩어졌다.
- 읽었습니다. 넘겨주세요.
“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 말해주시고요."
- 넘겨나 주세요.
달칵-
사락-
스피커가 깨끗한 음질로 소리를 전달한다. 노이즈는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이연우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PTSD와는 다른 이유로 입이 바짝 마르면서, 섬뜩한 상상이 뭉게뭉게 떠올랐다.
김 박사의 언행과 이상개체의 이름.
‘사람을 죽이는 이상異常을 사람한테 실험한다고? 사람을 죽인다고? 진짜로?’
좀처럼 믿고 싶지 않다. 이연우는 곁눈질하여 김 박사와 연구원을 살폈다. 너무나도 평범한 얼굴. 광기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겠지. 그런 미친 짓을 하는 회사가 아닐 거야.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회사라잖아.’
이연우는 손바닥을 펴서, 바지춤에 쓱쓱 문질렀다.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닦여 나갔다.
달칵-
사락-
몇 번이나 책장을 넘겼을까.
- 읽었습니다. 넘겨주세요.
“뭔가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거나, 생각이 떠오르거나, 특별한 건 없나요?”
- 없어요. 넘겨주세요.
“정말 없습니까?”
연구원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재차 물었다. 모니터에는 사람의 뇌가 출력되어 있었는데, 붉은빛의 경고 표시 같은 것이 명멸했다.
- 없다니까. 빨리 넘기기나 해.
유리창 너머 피실험체가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머리에 달린 뇌파측정기의 전선이 물결친다. 연구원은 모니터의 수치를 몇 번이고 체크한 뒤, 버튼을 눌렀다.
“그럼 한 장만 더 보겠습니다.”
- 빨리!
달칵-
사락-
책 두 장 읽을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았다. 피실험체가 외쳤다.
- 읽었어! 다음!
“….”
연구원은 붉게 물든 두뇌 모형을 본 다음,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연구원이 의자를 빙글 돌렸다. 김 박사를 향해서 멈췄다.
“확실해요. 저번에 사람 하나 더 잡아먹었더니, 특성이 추가됐어요.”
“끝까지 읽으면 사람이 스스로 죽게 만드는 걸로 모자라, 이제는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특성이…. 얼마나 더 변할지 모르겠군요. 당분간 연구는 스탑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실험도 여기서 종료하겠습니다. 더하면 사람 죽겠어요.”
연구원은 다시 의자를 돌려, 발작하는 피실험체를 보았다.
- 빨리 넘겨! 빨리! 빨리!
꽉 묶인 상태에서 어떻게든 몸을 꿈틀거린다. 머리를 독서대를 향해 굽히고, 책을 향해 손을 들고, 다가가려고 발을 뻗는다.
하지만 관절을 묶은 구속구와 벽과 연결된 쇠사슬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절박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찢을 듯이 울렸다.
- 왜 못 보게 하는 거야! 다 읽었다고 말했잖아! 넘기라고!
“오늘 실험은 여기까지입니다.”
- 지랄하지 말고 다음 장으로 넘겨! 내가 보겠다잖아!
“예에. 실험 끝났습니다. 보안직원 투입하겠습니다. 진정제 투입하고, 격리해주세요.”
철컹-
무거운 강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유리창을 뚫고 들려왔다. 이어 척척척, 전투화가 열을 맞춰 걷는 소리가 들리고, 정문경비처럼 무장한 남자 둘이 격리실로 들어왔다.
- 진정제 투여하겠습니다.
- 어. 난 저거 사슬 열쇠 찾을게.
주사기를 꺼내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고, 실험이 마무리되는 격리실.
유리창 가운데에 선 김 박사가 몸을 돌려 신입을 보았다. 어리둥절하고, 조금은 불신하고,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얼굴이 김 박사를 기다렸다. 김 박사는 입가를 축 늘어뜨렸다.
“새로 생긴 특성이 약하면, 직접 체험시켜 주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래서 안 되겠네요.”
“…저 사람 책만 봤는데 저러는 건가요?”
이서연이 유리창을 가리키며 물었다.
비스듬하게 쓰러진 피실험체의 얼굴이 보였다. 진정제 때문에 힘이 풀려 꺾인 목과 느슨해진 얼굴 근육. 하지만 눈동자는 계속해서 독서대만 보고 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
“저 정도면 마약중독자 수준인데.”
한창성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김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저희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이상異常입니다. 문화가 사람을 조종하듯-”
김 박사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이연우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異常을 겪는다고 무조건 치명적인 건 아니구나. 실험도 막 미친 인체실험 같은 게 아니고.’
준비된 안전대책. 윤리적인 사업.
회사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걱정하던 게 해소되는 느낌. 계속 빠르게 박동하던 심장이 편안한 박자로 뛰기 시작했고, 끈적하게 맺히던 식은땀이 멈췄다.
실험실의 기온조절장치에서 불어오는 약한 바람이 산뜻하다. 이연우가 굳었던 어깨를 시원하게 풀 때였다.
사락-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버튼은 눌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