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8화 (8/194)

“…어?”

“지금?”

김 박사와 연구원의 머리가 신속하게 돌아간다. 그들은 유리창 너머 격리실을 보았다.

- 사슬 푼다. 넘어지지 않게 잡아.

- 부축하고 있습니다. 얼른 푸십쇼.

경비 하나는 벽에 연결된 마지막 사슬을 향해 열쇠를 들이밀었다. 다른 경비는 꽁꽁 묶인 피실험체가 넘어지지 않게, 어깨동무하듯 피실험체를 붙잡았고.

구속된 피실험체는 확장된 동공으로 독서대를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찰칵, 사슬이 풀리며 몸이 경비 쪽으로 기울어져도, 눈동자의 방향은 고정되어 있다.

누구도 ‘내가 죽어야 하는 36가지 이유’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소리는…?

“잠깐-”

연구원이 다급하게 마이크를 붙잡고, 외치지만 늦었다.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렸다.

사락-

이번에는 경비도 들었다. 그들은 움직이던 자세 그대로 정지했다. 고개를 사슬과 피실험체에 고정하며, 낮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 혹시 책장 넘기셨습니까? 지금 그게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뇨, 아닙니다! 그쪽에서도 손댄 거 없단 말이죠?”

- 예. 사슬과 피실험체만 건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선글라스부터 킨 다음에 눈도 감으시고-”

촤라라락!

독서대가 떨린다. 언뜻 독서대 위쪽으로 종잇장 끄트머리가 휘날리는 것이 보인 듯도 하다. 순식간에 책 뒤표지의 모퉁이까지 지나갔다.

결국 책이 끝까지 넘어갔다. 누군가는 책을 끝까지 보았다.

푸학!

피실험체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붕어처럼 뻐끔거리는 입에서 피분수가 솟구치고, 거칠게 뜯겨나간 혓바닥이 툭 떨어졌다. 피실험체는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웃었다.

- 으흐, 으흐흐. 우그어.

- 개씹!

피실험체를 부축하던 경비가 피실험체를 던지다시피 벽에 기대어 앉혔다. 이윽고 신속하게 손수건을 꺼내 입에 쑤셔 넣었다. 삼키지 않게 두 손가락으로 잡고 꾹 누른다.

- 진정제까지 투여했는데!

핏물이 손수건을 적시는 동안, 사슬을 다시 묶은 경비는 독서대를 등 진 상태로 물었다.

- 어떻게 합니까? 구조를 우선합니까? 긴급조치를 우선합니까?

순식간에 붉게 물든 격리실과, 경악에 잠긴 실험실.

신입사원들이 놀라 숨을 멈췄다. 이연우와 박상준과 이서연은 뒤로 물러섰다. 등 뒤로 캐비닛이 쿵 부딪쳤다. 금속의 감촉이 서늘하다.

반대로 송시우와 한창성과 강열은 한 걸음 나섰다.

“제가 응급처치하겠습니다. 어디로 들어가면 됩니까?”

“저는 바로 119에. 어, 왜 전파가 안 터지지?”

“제가 할 게 있겠습니까?”

하지만 연구원은 들은 채도 않았다. 독서대를 노려보며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물어뜯었다. 입술 위로 핏방울이 맺힌다. 연구원이 피를 삼킨 후, 말했다. 혀끝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긴급조치 진행하세요.”

- 알겠습니다. 선글라스 키겠습니다. 너도 지혈 그만하고.

- …예.

딸깍!

경비가 손을 올려 선글라스 측면의 버튼을 누른다. 동시에 실험실이 하얗게 물들었다. 밝은 빛이 선글라스에서 뿜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삐이이이!

전자음이 선글라스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터진다.

이로서 경비의 시각과 청각이 멀었다. 마스크가 후각과 미각도 막았다. 촉각만 남은 경비는 격리실에서 석상처럼 우두커니 대기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김 박사가 연구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늦지 않은 대처였어요.”

“긴급조치만 끝냈을 뿐입니다. 이제 후속조치를 진행해야죠.”

연구원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키보드를 바쁘게 두들긴다. 때로는 기계장치의 버튼을 조절하고, 눌렀다. 어딘가로 통신을 보내는 듯했다.

그때, 큰 목소리가 터졌다.

“뭐합니까!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소방관 출신 송시우다. 그는 밝은 빛에 눈살을 잔뜩 찌푸리면서, 유리벽을 쿵쿵 두들겼다.

하얀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버려진 피실험체가 옆으로 고꾸라져 피를 토하는듯했다.

이 순간에도 골든 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 바로 응급조치하면 살 수 있습니다! 어디로 진입하면 됩니까!”

연구원과 김 박사는 음울한 표정으로 다급한 외침을 외면했다. 연구원이 낮게 말했다.

“늦었습니다. 못 살립니다.”

“아뇨, 살릴 수 있습니다. 지혈하고 기도만 확보해도 살 수 있어요. 늦지 않았어요.”

“늦었어요. 저 이상異常에 당한 이상-”

“사람 살리는데 늦고 말고가 어딨습니까!”

쾅!

송시우가 팔꿈치로 유리창을 내려찍었다. 꿈쩍도 안 했다. 손으로 깰 수 있는 재질과 두께가 아니다. 그는 찌푸린 눈으로 실험실을 둘러봤다.

“비상망치나 소방도끼, 젠장,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지. 그러면, 아무튼 날카로운 철제-”

“여깄습니다. 비키십시오.”

강열이 성큼 나섰다. 어느새 가위를 역수로 쥔 채였다. 볼펜, 칼, 송곳 따위가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연필꽂이에서 찾아낸 것이다.

강열이 시험 삼아 가볍게 손을 뻗어 타점을 가늠한다. 그리고 팔을 바짝 당겨, 크게 휘두르려는 순간.

“아니! 안 됩니다! 멈추세요!”

연구원이 비명처럼 악을 쓰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열이 멈칫하는 사이, 넘어지듯 몸을 던져 강열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강열의 상체가 살짝 흔들렸지만, 가위를 놓치지는 않았다.

“놓으십시오. 사람은 살려야 할 거 아닙니까. 그리고 저… 책 같은 것만 안 보면 되지 않습니까?”

“격리가 깨진다는 것 자체가 문제란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보호무장도 안 했으면서!”

강열의 얼굴에 망설임이 드리워졌다.

연구원의 말도 일리가 있다. 물론 인명구조는 중요하지만, 저 안에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선생님, 잠깐 앉아계시죠?”

“아니, 지금 뭘! 날 말릴 때가 아닙니다!”

“예, 예. 일단 떨어집시다.”

한창성이다. 그는 취객을 제압하듯 능숙하게 연구원을 떼어내어, 두 손으로 사람 하나를 제압했다. 그가 고개를 까딱였다.

“뭐하세요. 지금 얼른 유리 깨부수세요.”

“이래서 신입은…! 멈추라고!”

서로 다른 명령이 둘.

강열은 망설였다. 그리고, 망설인 끝에 결단을 내렸다. 가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힘줄이 도드라진 손등이 휘둘러지려는 찰나, 다시 방해가 들어왔다. 이연우가 휘두르지 못하게끔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이연우는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했다. 인간자격시험을 겪어봐서일까. 긴급한 상황인데도 정신이 냉정하다. 시야가 좁아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와중에 김 박사가 분석하는 눈으로 신입사원을 관찰하는 것을.

‘이런 돌발상황에서 우릴 평가하고 있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행동을 해야 높은 평가를 받을까. 답은 간단했다.

‘회사 직원처럼 행동해야지.’

강열을 막는 연구원처럼 말이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 이상異常과 같은 공간에 있기 싫은 마음도 컸고.

한차례 헛기침한 이연우가 말을 쏟아냈다.

“생각해보세요. 이 사람들이야말로 전문가 아닙니까. 이러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거기에 굳이 이렇게 방을 나눠두기까지 한 이유도 있을 거고요.”

“그건.”

강열의 얼굴에 서렸던 결단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강열은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못 살립니다. 저 사람은 혀를 깨문 것이 아닙니다. 이상異常에 살해당한 겁니다. 응급처치가 안 통할 겁니다.”

인간자격시험에 탈락한 사람이 짐승이 되듯, ‘내가 죽어야 하는 36가지 이유’를 끝까지 읽은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개체의 이름과 연구원의 말과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 본 결론이 그랬다.

이연우의 논리적인 설득에 강열이 힘을 뺐다. 가위를 쥔 손아귀도 느슨하게 풀렸다.

이연우가 손을 놓고 물러서는 때였다.

“미치겠네! 살릴 수 있다니까!”

송시우가 사이에 끼어들어, 가위를 낚아챘다. 역수로 쥐어진 가위는 그대로 망치가 되어 유리창 모서리를 내려찍었다.

강철이 유리를 치는 강한 타격음과 강화유리가 잘게 부서지는 쩌저적 소리.

순간 유리창이 탁해졌다. 무수한 균열, 모래알 같은 작은 파편으로 나뉘었다.

아차하는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안 돼!”

연구원이 비명을 지른다. 비명만 질렀다. 한창성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와장창!

가볍게 미는 손짓에 유리창이 넘어갔다.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송시우는 유리 파편에 베이는 것도 개의치 않고, 피실험체를 향해 직선으로 달렸다.

“지혈하고, 혀뿌리가 말려들어가지 않게 막고, 피나 혀뿌리 때문에 질식하지 않게 기도를 확보하면.”

응급처치를 떠올리며 뛴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아져, 격리실의 벽 앞까지 도착했다. 그는 필연적으로 길쭉한 독서대를, 독서대 위에 자리한 이상異常의 옆을 지나쳤다.

지나가는 그 순간이었다.

우뚝 멈췄다. 그는 달려가다 말고, 눈동자만 굴려 책을 흘겨보았다.

이상異常이 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보았을까. 아니면 사람을 죽게 만든 원인이 뭔지 파악하려고 했을까. 그도 아니면, 책이 마술처럼 스스로 뒤집히는 신기한 광경이 눈을 사로잡았을까.

피실험체 하나를 더 잡아먹은 책 앞면에 써진 제목이 낙인처럼 눈에 박혔다.

‘내가 죽어야 하는 37가지 이유.’

사락-

책장이 넘어갔다. 그는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는 목과 눈꺼풀. 시야 중심에 자리한 문장이 눈을 통해 흘러들어왔다. 책이 사람에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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