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거주춤하게 선 이연우는 셔츠의 단추 두어 개를 풀며 실험실을 둘러봤다.
온도조절장치에서 뿜어진 미풍이 맴도는 실험실.
폭풍이 몰아친 듯,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서류들. 복잡한 용어와 그래프, 표 따위가 나열된 서류가 짓밟혀 구겨지고, 발자국이 남았다.
그 위에 선 사람들도 실험실 못지않게 망가졌다.
털썩-
이서연이 주저앉았다. 한 손에는 이연우처럼 넥타이와 정장 재킷을 구겨 쥐었다. 옷가지를 뒤집어썼던 모양인지, 정돈되어 있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쳐서 흔들렸다.
이서연만이 아니다. 김 박사는 정장 재킷을, 강열은 군복 상의를 벗고 있었고, 연구원은 하얀 가운을 돌돌 말아 쥐었다.
문득 이서연이 감탄하듯 말을 뱉었다.
“와. 끝났네요.”
눈동자를 빛내면서 격리조원을 올려본다.
“예, 끝났습니다. 안전합니다.”
격리조원은 한 명이었다.
작은 카메라가 덕지덕지 붙은 새까만 헬멧을 썼는데, 언뜻 헬멧 안면부의 까만 유리창에 증강현실 디스플레이가 푸르고 붉게 반짝였다.
두꺼운 검은색 방호복으로 꽁꽁 싸맨 몸은 피부 한점 보이지 않았다.
장갑을 낀 손에는 일기장 하나와 테이저 건을 나눠 쥐고 있었는데, 테이저 건은 이미 사용된 듯, 푸른 번갯불이 보이지 않았다.
누구에게 사용되었는지는 한눈에 보였다.
“으우윽! 극! 그윽!”
서류 위로 누운 박상준이 푸른 뱀에 휘감겨 전신을 떨었다. 이상異常에 당해서 책을 계속 읽으려고 발광한 모양이다. 서류 따위를 밀어내고, 찢고, 푸른 전기로 태우면서, 게거품을 문다.
“회수!”
격리조원이 몸을 숙여, 테이저 건을 박상준의 이마에 들이밀었다. 푸른 뱀이 기다렸다는 듯, 테이전 건으로 슈르륵 돌아간다. 푸른 번갯불을 튀기는 테이저 건.
“으으으.”
박상준은 축 늘어져, 멍한 눈으로 번갯불을 보았다. 진정제까지 맞았는지,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지 못한다. 침을 질질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쉴 뿐.
그런 박상준을 경비 둘이 일으켜 세웠다. 선글라스를 끈 그들은 박상준을 좌우에서 어깨동무하여 실험실 밖으로 끌고 갔다.
“의무실로 옮기겠습니다.”
“그러세요.”
휘릭-
김 박사가 구겨진 정장 재킷을 그대로 걸쳤다. 그리고는 격리조원에게 턱, 손을 내밀었다.
“그거 줘보세요.”
“어떤 거 말씀이신지.”
“그 이상異常. 제압됐으니까 신입들 보여주게요.”
격리조원은 별말 하지 않고, 자그마한 일기장은 김 박사에게 건네줬다. 김 박사는 일기장을 신입사원이 볼 수 있게 세웠다. 표지에 적힌 문장이 모두에게 보였다.
“내가 죽어야 하는 39가지 이유….”
이서연이 홀린 듯이 읽어내린다. 강열이 흠칫 놀라며, 천장을 올려다보며 문가로 이동했다. 이연우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제압됐다고 했어.’
하지만 발작하듯 몸이 놀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락-
선명하게 종이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책장이 넘어가자, 저절로 뒷걸음질이 쳐졌다. 뒷발이 툭, 캐비닛 안으로 들어갔다. 흠뻑 흘렸던 땀이 마르며 서늘한 한기가 피부를 기어오른다.
표지를 넘긴 김 박사가 말했다.
“읽어보세요. 문제없으니까.”
짧게 호흡한 후, 볼펜으로 쓴 문장을 읽어내린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띄웠다.
[어느 더운 여름밤의 일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닌자가 나타났다! “도-모. 처음 뵙겠습니다. 닌자데스.”]
“닌자?”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단어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다. 놀람이나 공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괴상한 표정을 한 이서연과 강열도 김 박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김 박사는 설명조로 말을 이었다.
“이상異常이라고 모두 인간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이 ‘그런데 갑자기 닌자가!’처럼 회사를 돕는 이상異常도 있죠.”
“이 문장이 이상개체라는 말입니까?”
강열이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질문하자, 김 박사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정보생명체 같은 거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영상이든, 문화적 매체에서 매체로 이동하며, 내용을 변질시키죠. 그 특성으로 다른 문화적 재해를 무력화하고요.”
“신기하네요.”
이서연이 눈을 반짝이며 문장을 몇 번이고 읽는다. 이연우도 닌자가 나오는 괴상한 글을 읽다가, 무언가를 문득 떠올렸다.
‘인간을 해하는 이상異常. 인간을 돕는 이상異常. 그럼 사람은?’
모든 인간이 회사의 이념에 동의할까? 회사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없을까? 하다못해 이익관계가 상충되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가능성. 닭살이 피부 위로 오돌토돌 올라온다. 이연우는 흔들리는 눈으로 김 박사를 보고 물었다.
“이 이상異常이란 것을 다루는 집단이 회사뿐입니까?”
“눈치가 빠르군요. 좋습니다. 아까부터 보았지만, 훌륭해요. 그 눈치와 생존본능이야말로 사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죠.”
“…있군요.”
암시하는 바가 단순하다. 회사가 상대하는 것은 이상異常만이 아니다.
이연우의 얼굴이 굳었다. 김 박사의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안색이 어두워졌다.
“당신들이 알던 세상만 해도 별의별 사람이 많죠. 이상異常이 더해진 세상은 더합니다. 이 일기장 같은 이상異常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집단도 있죠….”
김 박사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잠깐이었다.
김 박사의 눈이 다시 신입사원에게 돌아왔다. 이서연, 강열, 이연우를 차근차근 돌아보며, 말했다.
“인류보호회사. 이상異常으로부터 인류를 지켜라. 이상異常과 연관된 집단의 위협으로부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당신들이 오늘 겪은 일은 별것도 아닐 수도 있죠. 그러니까 지금 묻겠습니다.”
진지하고 무거운 목소리. 신입사원이 집중하여 김 박사의 질문을 기다렸다.
김 박사가 말했다.
“회사에 입사하시겠습니까?”
“네, 할게요!”
이서연이다. 냉큼 답했다. 로봇을 본 남자아이처럼 흥분하여,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강열은 군인답게 짧게 말했다.
“입사하겠습니다.”
김 박사의 시선이 이연우에게 향한다. 이연우는 눈을 감고, 고민에 잠겼다.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할 갈림길이 이곳에 있었다.
‘대의나 신념 같은 건 모르겠어.’
단순하게 위험과 이익만 본다.
‘입사한다면.’
이익은 간단하다. 입사. 취직.
위험도 간단하다. 이상異常. 적대집단.
‘입사하지 않는다면.’
생계가 위험하다. 공무원 시험을 다시 치를 준비를 하자니, 회사에 입사한다고 날려 먹은 시간이 결코 적지 않다. 벌써 까먹은 내용이 한둘이 아니다.
대신 이상異常과 연관되지 않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삶을 살겠지만….
‘내가 몰랐을 뿐, 이상개체나 이상현상 같은 것의 위험은 항상 있었어. 인간자격시험을 생각해봐. 차라리 알고 대처하는 편이 옳아. 그리고, 산재나 사고 같은 건 굳이 회사가 아니어도 있어 왔고.’
이연우가 눈을 떴다.
깨진 유리창을 배경으로 연구원과 김 박사가 서 있었고, 격리조원이 우두커니 대기하고 있었다. 그새 돌려줬는지, 손에는 닫힌 일기장을 들었다.
‘오늘 일도 사실 통제 가능했어. 사고가 터졌지만, 회사 사람은 전부 살아남았고.’
위험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으리라. 할만한 일이고, 직업이다.
마음이 기울었다.
“결정이 힘들면 천천히 해도 됩니다. 아직 연수는 안 끝났으니까요. 연수 마지막 날까지만 말해주면-”
“아뇨. 저도 입사하겠습니다.”
이연우가 말했다. 김 박사가 웃었다.
“좋습니다. 이상경험을 지닌 신입사원은 무엇을 하든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하죠. 세 분이 입사해서 기쁩니다.”
짝!
박수를 친 김 박사는 실험을 나갔다. 신입사원은 김 박사를 따라가며,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남은 일정은 캔슬하겠습니다. 돌발사태를 몸으로 직접 겪었는데, 뭘 더 배울 필요는 없죠. 숙소로 안내할 테니, 남은 시간은 편히 쉬세요.”
***
숙소는 2층 건물의 2층에 있었다.
군대 생활관 같은 곳이었는데, 8인실이 둘 비어있어, 강열과 이연우가 방 하나를 쓰고, 이서연이 방 하나를 썼다.
“이곳에서 짐 풀고 쉬면 됩니다. 이 건물 근처까지는 돌아다녀도 되고, 식사는…. 벌써 점심시간이 지났네. 저녁식사는 6시에 1층으로 내려가세요.”
김 박사는 신입사원 셋을 숙소로 안내한 다음, 몸을 돌렸다. 대충 연수 일을 마쳤으니, 본업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2층 건물을 떠나, 3층 건물의 3층까지 올라간다. 3층 복도 중앙의 소장실.
철컥-
김 박사는 노크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소장실. 느릿하게 걸어, 연구소장의 명패가 놓인 자리에 앉았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푹신한 의자가 푹 꺼진다.
“사고 보고서는 연구원이 쓸 거고, 신입평가서나 쓸까.”
마우스를 툭 친다. 절전상태가 끝난 컴퓨터의 모니터에 불이 들어온다.
대충 신입평가 문서창을 띄워만 놓고, 키보드 위에 한 손을 멍하니 올려놓았을 때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예, 소장님. 박상준 씨 관련해서-”
“김 박사라고 부르세요. 소장이라고 불리기 싫으니까.”
의무실의 의료 스텝에게 짜증스레 말하자, 의료 스텝이 침을 꿀꺽 삼킨 후 말을 이었다.
“예, 박사님. 박상준 씨가 정신을 차렸는데, 집에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일단 진정제를 더 투여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기억소거제 투여한 후 내보내세요. 일하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써봤자 사고만 나죠.”
드르륵, 딸깍-
냉정하게 말한 김 박사는 신입평가서에서 박상준의 표를 지웠다. 삭제는 두 번 더 이어졌다. 한창영과 송시우.
잠시 두 이름을 되뇌이던 김 박사는 내선전화기를 들고, 의료 스텝에게 대충 손을 휘적였다.
“그럼 이만 가보세요.”
“예!”
의료 스텝이 빠른 걸음으로 나간다. 김 박사는 내선번호를 눌러, 통화를 시작했다.
“이번에 신입 둘 사망한 거, 한국지사에 협조받아서 확실하게 처리하세요. 둘 다 앞날 창창한 공무원이었으니까, 의문 안 나오게.”
그리고, 한 번 끊어진 통화는 다른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보안실장. 자유예술가협회의 동향은 어떻죠? 요즘 수상하게 접근한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아, 전부 길을 잘못 든 민간인이었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 일단 알겠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통화 끝에,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김 박사는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커서가 이서연의 것에서 멈춰 있다. 잠시 후, 타닥타닥, 키보드가 눌리면서 평가가 추가되었다.
또한 향후 어떤 일을 할지도 지금 김 박사의 손에서 정해졌다.
이서연은 행정실, 강열은 보안실.
막힘 없이 움직이던 손은 이연우 앞에서 우뚝 멈췄다. 백범문화연구소에서 일할 둘과는 다른 신입.
“한국지사의 이상조사반에서 데려간다고….”
생존본능과 눈치가 상당한 것 같더니, 이미 한국지사에서 뽑아가기로 했단다. 제법 괜찮은 인재지만, 한국지사 산하의 분점에 불과한 연구소로서는 방도가 없었다.
연수만 대신해주고, 보내주는 수밖에.
“하긴, 이런 연구소보다는 이상조사반에 어울리는 사람이었지."
이상異常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터지면, 제일 먼저 투입되는 이상조사반. 생존본능이 뛰어난 이연우는 이미 부서에 적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