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13화 (13/194)

3. 2층 생활관 복도 / 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복도. 신나고 흥분된 얼굴로, 뛰다시피 걸어간다. 공연을 기대하며 들뜬 걸음.

연구소 직원1 : 레오나르도 다 서울의 공연을 보다니 너무 좋아!

연구소 직원2 : 내 인생에 이런 행운이 올 줄이야! 빨리 내려가서 좋은 자리를 잡아야겠어!

이때 인파를 헤치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김 박사.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안면근육이 꿈틀거리고, 손은 휘적인다.

신입사원이 머무는 방문 앞에서 멈추는 김 박사. 몸이 삐걱거린다.

***

“컷! 감히 시나리오를 거부하려고 하다니! 안 되지! 배우면 배우답게 연기에 충실해야지! 레디!”

딱-!

“액션!”

***

4. 남성신입사원의 숙소 / 밤

빈 침대가 더 많은 숙소. 신입사원 세 명은 침대에 앉아 술잔을 나누다가 멈춘다.

신입사원1 : 방금 무슨 소리 나지 않았습니까?

신입사원2 : 저도 들었습니다. 텀블러 부딪치는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신입사원3 : 꼭, 슬레이트 치는 소리 같았는데, 막 영화나 드라마 촬영할 때 쓰는 그거.

그때 문이 열린다. 신입사원이 급히 움직이다가 소주를 쏟는다. 바닥에 퍼지는 소주.

소주를 밟고 선 김 박사가 신입사원3을 내려본다.

신입사원 3 : (어색하게 웃으며) 아, 그러니까, 제가 술 가져온 거고, 제가 마시자고 한 건데요.

김 박사 : (단호하게) 여러분.

김 박사가 여전히 손을 움직이면서 이상한 표정을 짓지만, 시나리오 외의 행동은 불가능하다.

김 박사 : 무사히 연수를 마친 것을 기념해 공연이 준비되었습니다. 얼른 보러 가시죠.

신입사원1 : (이상하다는 듯) 예? 이 시간에요?

신입사원1이 창가를 본다. 11시 20분을 가리키는 시계.

신입사원들이 박수를 친다.

신입사원3 : 그거 너무 기대되네요! 얼른 보러 가죠!

신입사원2 : 갑시다!

신입사원1 : 세상에! 노래 한 소절로 사람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는, 그 전설의 가수! 레오나르도 다 서울(Leonardo da Seoul)이라니! 이건 꼭 들어야겠는걸!

흥겹게 방을 나가는 김 박사와 신입사원들.

***

“컷! …무엇이지? 내가 엑스트라 따위에 이렇게 분량을 할애할 리가 없는데? 무언가가 간섭하나? 아니, 그럴 리가. 감독인 내가 못 알아챌 리가 없다.”

***

방을 나온 순간, 정체 모를 강제력이 헐겁게 풀렸다. 여전히 다리는 자기 혼자 움직이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지만, 손과 입은 자유를 찾았다.

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았다가, 손바닥이 쓸리며 끌려내려간 이연우가 다급하게 말했다.

“김 박사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실습이나 훈련인가요?”

“아뇨. 공격받는 겁니다.”

김 박사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정신이 다른 곳에 집중되었다. 얼마 안 되는 자유를 찾은 동안, 얼른 손을 움직여 핸드폰을 빠르게 두드렸다.

연구소장의 권한으로 접속한 연구소관리시스템.

씬이 바뀌는 동안 조금씩 진행하여, 이제 비상격리조치를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새빨갛고 커다란 버튼이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것을 훔쳐본 강열이 침착하게 물었다.

“누가 어떻게 공격하는 겁니까? 저희는 무얼 하면 됩니까?”

“현재 확인된 침입자는 자유예술가협회의 이사. 이상개체명 ‘감독’입니다. 그는 제한적인 현실조작-”

말하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김 박사의 손가락이 붉은 버튼을 눌렀다가 떨어졌다.

당장 그들이 있는 공간은 변화가 없었으나, 이상異常을 보관하는 공간이 철격자로 격리되고, 최후의 격리수단인 ‘그런데 갑자기 닌자가’의 봉인이 풀리며, 닌자가 자유를 얻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건물을 나가 공터에 도착했고.

소리가 들렸다.

딱-!

***

4. 공터 / 달이 밝은 밤

공터에 모인 연구소 직원들이 웅성거린다. 그들은 앞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흥분하여 제자리에서 방방 뛴다.

연구소 직원3 : 저길 봐! 레오나르도 다 서울이야!

보안직원3 : 이런 날이 오다니! 나 너무 행복해!

하얀 달빛의 중심에 선 레오나르도가 감고 있던 눈을 뜬다.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자지러진다. 레오나르도가 기타에 손을 올린다.

레오나르도 : 이제 다 모였나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연구소 직원 일동 : (아주 크게) 네!

레오나르도 : 여러분, 저는 서울의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 다 서울입니다.

연구소 직원 일동 : 와아아아아!

레오나르도 : 그럼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안내사항 먼저 알려드릴게요.

레오나르도가 보안직원1을 가리킨다.

정문에서 레오나르도를 맞이한 보안직원이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그 말고도 잠옷에 선글라스를 삐뚤게 쓴 보안직원이 몇 있다.

레오나르도 : 이런 선글라스는 벗어주세요. 제 공연을 관람하는 데 방해되겠죠?

보안직원1 : 네, 에.

보안직원1이 힘겹게 선글라스를 벗는다. 바닥에 떨어진 선글라스. 금이 가고 망가진다. 흙바닥 위로 연달아 떨어지는 선글라스들.

레오나르도가 관객을 둘러본다. 오밀조밀 모여 기다리는 관객. 레오나르도가 기타를 고쳐잡는다.

레오나르도 : 그러면 첫 곡으로.

그런데 그때! 갑자기 닌자가 나타났다!

닌자 : 도-모. 처음 뵙겠습니다. 닌자데스.

***

“컷! 컷! 컷! 감히 내 시나리오에 손을 대! 감히! 용납할 수 없다!”

***

달빛이 사라져 어둑한 공터. 작가의 능력에 힘입어 현실로 튀어나왔던 닌자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대신 빵모자를 눌러쓴 백인남성이 툭 튀어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목에 핏대가 섰고, 침이 사방에 튀었다.

“내 작품에 손을 대?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주마! 예술작품만 돌려받으려고 했지만, 자비는 끝이다, 끝!”

하지만 그 말을 얌전히 듣는 사람은 없다.

강제력이 느슨해진 지금, 분위기가 확 변했다. 좋아하던 가수의 노래를 기다리던 열광적인 공연장에서, 적을 맞이한 회사로.

보안직원은 녹슨 기계처럼 관절을 삐걱이며 선글라스를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고, 정문경비는 테이저 건에 손을 뻗었다. 상급자는 비상장치를 원격에서 가동하려고 주머니를 뒤졌으며, 연구직원은 오감을 곤두세워 이상異常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기억했다.

그 과정이 지나치게 늦다. 무거운 무언가에 꽁꽁 묶인 것처럼, 힘겹게, 느리게 움직인다.

시간을 끌듯, 김 박사가 크게 외쳤다.

“감독! 한국에 들어왔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꼭 이래야겠습니까?”

“입 다물어! 네놈들은 말할 자격도 없어! 예술도 모르는 놈들이!”

“이곳에는 사람을 죽이는 이상異常도 많아요! 세상에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이상異常이 아니다! 세계를 감동시켜, 세계의 사랑을 받는 위대한 예술이야! 그런 걸 네놈들이 상자 속에 처박아둔 거고! 그리고 이제 와서는 내 시나리오에도 손을 댔지! 감히!”

감독의 눈이 번들거렸다. 김 박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말이 안 통해.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비상격리조치를 실행해, 이상異常을 단단하게 격리하고, 닌자를 불렀다. 연구소에 있는 이상異常을 탈취당할 일은 없고, 나아가 닌자가 감독까지 제압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마음 편하게 생각할 때.

감독이 돌연 히죽 웃고는.

“그렇지. 화만 낼 게 아니지. 돌발상황도 감독의 역량에 달린 법. 좋아, 이렇게 연출하면 재밌겠어.”

몇 마디를 내뱉는다.

“닌자몰살.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폭력.”

“아?”

이해하기도, 말리기도 전에 감독이 빠르게 외친다.

“레디.”

딱-!

“액션!”

***

5. 공터 / 어두운 밤

달도 뜨지 않은 공터.

그런데 그때! 갑자기 닌자가 나타났다!

닌자 : 도-모. 두 번째로 뵙겠습니다. 닌자데스.

닌자는 어둠 속에! 우리들 속에 서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천 옷과 두건을 두르고!

닌자가 닌자 소드를 뽑는다! 어둠 속에서도 번쩍이는 닌자 소드! 달빛 같은 검광이 연구소 직원 사이를 가로지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일곱 개의 초승달이 지상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토막 나서 떨어지는 시체! 솟구치는 선혈! 메아리치는 비명! 끔찍한 참극의 현장이다!

시체 밭의 중심에 선 닌자가 닌자 소드를 떨어뜨린다!

닌자 : 이, 이건 와타시가 원한 게. 아아!

닌자가 피바다 가운데에서 주저앉는다! 무릎이 피 웅덩이에 잠긴다!

그리고, 벌떡 일어선 닌자가 도망친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닌자.

***

“컷! 하하! 꼴 좋다! 그러게 감히 남의 작품을 멋대로 바꾸려고 해!”

닌자의 변질마저 연출로서 이용한 감독이 머리를 흔들어대며 웃었다. 널브러진 시체 토막을 손가락질하다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시체에 발길질까지 하면서.

즈으윽-

얻어맞은 시체 토막이 데굴데굴 구르며 자신이 지나온 길에 붉은 자취를 남겼다. 아찔한 피 냄새가 짙다.

한순간에 20여 명이 잔혹하게 죽었다.

현실 같지 않은 감각. 감독의 광소가 어딘가 멀다.

연구소의 직원들이 멍하니 동료였던 시체 파편을 내려보았다. 말을 잃고, 생각도 잃은 사람처럼 정신이 나갔다.

“아저씨요.”

얼굴에 핏방울이 튄 레오나르도가 핏방울을 문질러 닦아낸 후, 감독을 노려보았다.

“미쳤어요? 왜 남의 관객을 막 죽여요!”

“하! 네 관객이 아니라 내 배우야! 죽이든 살리든 내 마음이다!”

“아니! 배우든 뭐든 내 노래 들을 사람이면 관객이지!”

“그러는 너도 내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배우다! 어딜 감히 감독님한테-”

“뭐래, 이상한 힘만 가졌지, 제대로 된 작품 한 번 못 만든 주제에-”

“너-”

서로 말다툼하기 시작하는 둘.

하지만 이연우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저 좁아진 시야로 발치를 내려봤다. 발 앞에서 나뒹구는 시체. 핏물이 밀려와, 슬리퍼를 적시고, 발가락 사이까지 스며든다.

‘…간신히, 한 끗 차이로 살았어.’

천운이었다. 닌자의 섬뜩한 검광은 아슬아슬하게 이연우를 스치고 지나갔다. 예리하게 잘린 옷소매가 그 증거다.

하지만 생존을 순수하게 즐거워하지 못했다.

문제의 원인이 여전히 남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큭.”

“아윽.”

일주일 동안 그럭저럭 정을 붙인 강열과 이서연. 주저앉아 핏물을 쏟고 있다.

강열의 팔,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베였다. 강열이 침착하게 티를 찢고는, 천을 붕대 삼아 묶지만, 혈색이 좋지 않다. 멀쩡한 손과 이빨로 매듭을 묶는데, 잘게 떨고 있다.

쓰러져버린 이서연은 더 심각하다. 나뭇가지처럼 얇은 다리 왼쪽이 뚝 잘려 나갔다. 허벅지의 절단면이 무슨 수도꼭지인 것처럼 쏟아지는 핏물.

어찌어찌 매듭을 묶은 강열이 다가간다.

“이서연 씨, 일단, 응급처치부터 하겠습니다.”

찢어낸 티로 허벅지를 묶기 시작한다. 이서연은 까무러치며 벌벌 떨었다. 흰자를 보이는 눈동자.

“끄으으윽!”

이연우는 느릿하게 다시 시선을 옮겼다. 사방에 널린 시체 중,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연수 첫날, 그에게 테이저 건을 쏜 보안직원. 미안했다며, 자주 이야기를 나눈 그의 머리통이다.

자다가 나왔는지, 주변에 떨어진 조각은 잠옷을 두르고 있다.

“이사라고 해서 얼마나 대단한 감독인가 했더니, 능력 없었으면 삼류도-”

“한 마디만 더해봐. 너도 죽여버릴 거야.”

여전히 싸우는 침입자 둘.

그들에게 흐린 시선을 보낸 이연우는 잠에 취한 사람처럼 흔들흔들 걸음을 옮겼다. 피 웅덩이와 시체를 디디며.

바닥에 떨어진 테이저 건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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