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14화 (14/194)

온 세상이 흐릿하다. 오직 피 웅덩이에 반쯤 잠긴 테이저 건, 푸른 번갯불을 튀기는 테이저 건만이 시야 가운데에 선명하다.

‘푸른 뱀….’

이연우는 두서없이 생각을 떠올리고, 흘려보냈다.

‘번개 같은 뱀, 뱀 같은 번개. 사람 같은 이상異常. 이상異常 같은 사람. 결국은 이상異常.’

여전히 악을 써가며 다투는 두 이상개체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사람처럼 생겼고, 사람처럼 화를 내며, 사람처럼 손짓하지만, 저것들은 이상異常이다.

그것도 이 끔찍한 참사를 일으킨 이상개체.

‘처리해야 해.’

살아남기 위해.

복수를 위해.

나를 위해.

핏물에 손을 적시면서 테이저 건을 움켜쥔 이연우는 깨달았다.

‘이상한 세상.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은 있을 수가 없구나.’

비단 회사생활만이 아니다. 삶 자체가 그러하다. 세상의 그림자에는 이상한 것이 도사리며, 언제든 악의를 표출할 수 있다. 저 이상개체가 어느 날 밤에 연구소 사람들을 참살하듯 말이다.

‘이런 이상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철컥-

흐느적거리는 손이 정확히 이상개체명 감독의 뒤통수를 겨눈다. 맞은편에서 삿대질을 하던 레오나르도가 눈을 크게 뜬다. 다급히 열리는 입에서 고함이 터졌다.

“아저씨, 피해-”

‘나도 이상한 사람이 되어야지.’

격발.

번쩍-

섬광. 순식간에 내달린 푸른 뱀이 맹렬하게 감독을 휘감았다. 감독의 전신이 경련하며, 옆으로 쿵 넘어졌다. 놀랍게도, 혀가 마비되는 상황에서 감독은 혀를 놀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레에에엑! 레에에! 디으으윽! 레엑! 애에에엑! 르에에엑! 디이! 이이익!”

이연우는 그 꼴을 내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레오나르도를 보았다. 그를 겨누는 테이저 건. 레오나르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또르륵 굴러떨어졌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저기, 여러분. 항복하면-.”

딸깍-

방아쇠를 당기지만 푸른 뱀은 나오지 않는다. 테이저 건 하나에 한 마리인 듯하다.

깜짝 놀랐던 레오나르도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기타 줄 위로 올라간 손. 손가락이 현을 오가며 황홀한 멜로디가 공터를 채운다.

“자, 첫 곡! 21세기 서울의 레오나르도!”

세계를 감동시키는, 그래서 세계의 편애를 받는, 그리하여 세계를 움직이는 예술. 그중 레오나르도의 노래, 사람을 황홀경으로 이끄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입이 벌어지고 침이 뚝뚝 떨어진다.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이 몽롱해진다. 영혼이 환희와 희열로 물든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노래가-

그때 김 박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멈추세요!”

멈추지 않는 노래.

“놔줄 테니까 멈추세요!”

까드득-

김 박사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닌자의 칼에 베인 부상자를 가리켰다. 죽은 사람이 많지만, 다친 사람도 많다.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당신 노래 들으면 이 사람들 다 죽습니다! 응급처치해야 하니까 멈추세요! 당장 멈추지 않으면 당신의 적대수준을 격상하겠습니다!”

“…그건 안 되는데. 그럼 진짜 약속이에요? 나는 여기서 멈추고, 당신은 날 놔주고.”

“예, 그러니까, 빨리 멈추세요.”

“적대수준도 진짜진짜 약속-”

여전히 기타 줄을 튕기지만,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 레오나르도와 김 박사, 둘 모두 필사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목숨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레오나르도의 머릿속에서 이연우의 존재가 새까맣게 지워졌다.

뚝- 뚝-

이연우의 턱을 타고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앞니와 송곳니가 아랫입술을 흉하게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정신이 천상으로 이끌려, 윗입술까지 짓씹는다.

콰직-

고통과 황홀감이 충돌하는 머리. 간극에서 사고의 흐름을 간신히 붙잡는다.

‘정문경비는 둘. 테이저 건도 둘. 뱀도 둘. 하나는 내가 썼고, 다른 하나는, 저깄다.’

다른 정문경비도 죽었다. 바닥에 떨어진 홀스터, 테이저 건.

“그럼 안전하게 제가 저기 정문까지 간 다음에 연주를 멈출게요.”

“빨리 가세요! 뛰어! 시간 없어!”

“아니, 기타 치면서 뛰는 게 말이 되나. 그건 멋이 없는데-”

번갯불이 튀는 테이저 건을 홀스터에서 꺼내 조준한다.

격발. 섬광.

“약속은 꼬오오옥! 오오옥!”

딩, 데뎅, 딩-

손가락이 통제를 잃고 현을 제멋대로 쳤다. 그것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다. 서서히 물러가는 황홀감. 설상가상, 레오나르도는 앞으로 넘어지며 주둥이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으으읍! 읍!”

김 박사와 이연우의 시선이 교차했다. 김 박사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잘했어요. 덕분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아꼈어요.”

“별거 아닙니다.”

이상한 세상에 적응해버린 이연우가 묵묵하게 고개를 저었다.

***

그 후의 일은 빠르게 지났다.

학살에 충격을 받은 직원. 거기에 쏟아진 레오나르도의 노래.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사람들의 뺨을 두드려 깨웠다. 당장 필요한 의료진을 우선으로.

볼에 피멍이 든 의료진은 허겁지겁 뛰어다니며, 살릴 수 있는 사람부터, 그중에서도 부상이 심각한 사람부터 응급처치하기 시작했다.

공터 한쪽에서는 보안직원이 흉흉한 눈으로 침입자 둘을 노려보며, 허튼짓을 못 하게끔 감시했다.

“미친놈들입니다. 뱀에 잡힌 상태에서도 뭘 하려고 합니다.”

이연우와 김 박사는 보안직원과 함께 서서, 두 침입자를 내려봤다.

감독은 레디 액션을 외치려고 몸을 비틀어댔고, 레오나르도는 비명을 노래로 승화하려고 비명에 음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쏟아지는 몽둥이세례.

“이 새끼들! 가만히 있어!”

“죽어! 죽어! 죽어!”

“야, 멈춰! 죽이면 안 돼! 이 새끼 끌어내!”

전기가 통하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진 삼단봉이 가차 없이 휘둘러졌다. 머리, 가슴, 팔, 허리, 다리 가리지 않고 내리꽂힌다. 안 그래도 푸른 뱀 때문에 엉망인 몸 위로 피멍이 꽃 피었다.

그런 그들에게 연구원이 다가왔다.

안색이 새까맣게 죽은 연구원은 음울한 목소리로 김 박사에게 말했다.

“임시격리조치가 준비됐습니다.”

“설명해주시죠.”

“두 이상개체 모두 입으로 내는 소리가 이상현상의 시작점으로 추측됩니다. 그렇기에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저 가수는 손도 구속하고요.”

“그리고요?”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으므로, 추가로 수면제와 진정제를 투여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합니다. 만약 정신이 각성한다면, 그 순간 뱀이 물게 장치를 준비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임시로 그렇게 해두죠.”

고개를 끄덕이는 김 박사.

연구원은 보안직원의 도움을 받아, 두 침입자를 3층 건물의 깊은 지하로 끌고 갔다.

그것을 눈치챈 두 침입자가 발악한다. 격렬하게 경련하고, 몸을 뒤틀고, 어떻게든 이상異常을 일으키려고 입을 연다. 보안직원은 잘 걸렸다는 듯 눈에 불을 켜고 삼단봉을 내리쳤다.

콰직- 뻐억- 우득-

“끄으윽! 렉! 끅! 딕!”

“아아아아! 아아! 아아아”

“이래도 얌전히 안 있지? 계속 패! 앓는 소리도 못 낼 정도로 패!”

사람 둘이 죽어도 모를 살벌한 현장. 김 박사도 딱히 말리지 않는다.

가만히 보던 이연우가 질문했다.

“이제 저 이상개체들은 어떻게 됩니까?”

“글쎄요. 저 가수는 우리 연구소에서 관리하겠지만, 감독은 모르겠군요. 한국지사, 아니면 본사에서 결정하겠죠.”

김 박사가 감정을 죽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나 꽉 쥔 주먹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자유예술가협회와 뭔가 협상을 하는 데 쓰거나, 현실조작을 연구하는 데 쓰거나. 죽이진 않을 거예요.”

“그런가요.”

불합리하다면 불합리한 처사. 하지만 이연우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상한 세상이다. 이상異常의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인간보다는 이상異常인 편이 더 편하지 않겠나.

참극이 일어난 공터.

살아남은 직원 여럿이 분주히 움직이며 동료의 시체를 수습한다. 붉은 피를 흠뻑 머금은 공터 위로, 흐릿한 햇빛이 들었다. 연수가 끝나는 날, 아침이 왔다.

이연우는 이상한 세상의 한 사람으로서 아침을 맞이했다.

***

7일간의 연수가 끝나는 날.

연수를 훌륭하게 마쳤다며 수료식을 치르는 일은 없었다. 그럴 상황이 아니다. 그저 세 명의 신입사원과 김 박사가 모여 약소하게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의무실만으로는 환자를 수용할 수 없었던 탓에 8인용 병실로 변신한 숙소.

왼 다리를 잃은 이서연의 침상 근처에, 이연우과 강열과 김 박사가 모였다.

모두 잠을 잘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에 낯빛이 좋지 않다. 다크 써클이 더 내려온 김 박사. 거즈를 두른 손가락으로 서류 몇 장을 뒤적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신입사원 여러분, 7일간의 연수가 무사히, 아, 이런 건 읽을 필요가 없죠.”

김 박사는 서류를 대충 치우고는, 신입사원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팔에 깁스를 두른 강열.

다리를 잃고 병상에 누운 이서연.

칼에 잘린 옷을 입은 이연우.

그들은 하루 만에 사람이 변한 듯, 제법 사원다운 눈으로 김 박사를 마주 보았다.

”어제 있었던 습격을 한국지사와 본사에 보고했습니다. 다른 사항은 중요하지 않고, 이게 중요하겠군요. 강열 씨와 이서연 씨의 소속과 보직이 다소 바뀌었습니다. 위에서 그런 명령이 내려왔거든요.”

“어떻게 변했나요?”

이서연이 힘없이 질문했다. 다리가 잘렸다고 채용을 취소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기색.

“이서연 씨. 한국지사, 정보부입니다. 강열 씨. 한국지사, 특전대입니다.”

“정보부!”

한순간, 이서연이 아이처럼 기뻐했다. 사라진 다리조차 잊은 듯, 얼굴에 혈색이 돌아온다.

반면 강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특전대는 무슨 부대입니까?”

“저도 모릅니다. 정보부나 특전대나 산하에 특정목적 부서가 있는데, 당신들이 어디로 갈지는 제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한 강열이 멀쩡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애매모호한 표정.

“그리고, 이연우 씨.”

“예.”

“이연우 씨는 똑같이 이상조사반입니다. 하지만 이연우 씨는 감독과 레오나르도 다 서울의 포획에 가장 큰 역할을 하셨죠.”

이연우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일을 했다는 자각이 없다. 그냥, 테이저 건을 쥐고, 방심한 적에게 쐈을 뿐이니까.

김 박사가 새삼 이연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쨌든, 이연우 씨에게는 실적과 보상이 돌아갈 겁니다.”

“보상이라면 어떤…?”

“돈이겠죠.”

이연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무리 이상한 세상이어도 돈은 여전히 옳았다.

김 박사가 마지막으로 이연우에게 말했다.

“이연우 씨는 이상조사반에서 연락하는 대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강열 씨와 이서연 씨는 우선 치료부터 마치세요. 그럼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걸로 김 박사의 말이 끝났다.

헤어질 시간이 왔다. 이연우는 김 박사와, 강열과, 이서연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연우 씨는 어딜 가든 잘할 겁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감독을 잡아줘서 고마워요.”

“이연우 씨, 나중에 봐요!”

“고생하십쇼.”

인사를 뒤로하고 병실을 나간다. 바쁜 의료진과 어두운 얼굴의 환자가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이연우는 백범문화연구소를 떠났다. 2층 건물을 나와, 보안직원이 지키는 정문을 지나, 흙길을 걸어, 중산골 버스 정류장까지.

***

6. 에필로그

털털거리며 힘겹게 멈춰서는 버스. 이연우는 버스를 타고, 창가 자리에 앉아, 백범문화연구소 방향을 본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

굽이치는 산길을 달리는 버스.

자막 : 그리하여 백범문화연구소는 두 예술가를 회수하였으며, 인류보호회사는 대규모이상유출로 인한 국가멸망급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였다.

하얀 글씨로 ‘The End’가 떠오른다.

***

CAST

이연우 역 : 이연우

이서연 역 : 이서연

강열 역 : 강열

김 박사 역 : 김혜지

감독 역 : 밀 메디슨

레오나르도 다 서울 역 : 박 레오나르도

닌자 역 : 그런데 갑자기 닌자가

연구소 직원1 역 : 김소홍

연구소 직원2 역 : 최유진

연구소 직원3 역 : 박상하

보안직원1 역 : 신으뜸

보안직원2 역 : 배준용

보안직원3 역 : 조강민

푸른 번개뱀1 역 : 와트

푸른 번개뱀2 역 : 파랑이

STAFF

각본 : 작가

제작 : 인류보호회사

제공 : 프레탑, 초코보, 포보스, 쭌영, Pitchblende, 투펀맨, 사강사강, 다다만, was yea ra, 밥줘, 아우터갓l, 탈모치료제삭발, 1h2q3p, 사과_513, 완성, 00 inch, 즐거운미생물, 창간지남, 생성, 현진57, 개쓉상타취예아, preeded, 길조, 날개미, 월드이터.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등은 실존하는 것과 일체 관계없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프롤로그가 끝났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지금처럼 토일월화수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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