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19화 (19/194)

“끄에에엑!”

“끄아아아악!”

우당탕쿵탕-

그물에 휘감긴 두 이상異常이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산길을 굴렀다. 땅바닥을 미끄러지고, 나무에 부딪혀 튕겨 나가, 끝내 안개 너머 비탈길로 사라지는 그림자.

“…뭐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안개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던 이연우는 고개를 돌려, 그물이 쏘아진 방향의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는 큼직한 드론이 4대나, 소리도 없이 떠 있었다. 그중 2대는 산 아래로 돌아갔고, 다른 2대는 재빠르게 날며, 이상개체를 쫓아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동시에, 드론이 있던 하늘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투타타타타-

안개 낀 초저녁의 하늘, 소방헬기가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며 화재 현장으로 날았고.

우르르르-

안개를 헤치고, 사람 무리가 산길을 뛰어올랐다.

전투복과 증강현실 헬멧 같은 것으로 완전무장한 6명. 그들은 이연우를 본 척도 안 하고, 이상개체가 굴러떨어진 산길로 곧장 내달렸다.

“목표물이 그물에 잡혔다! 계속 쫓는다!”

“확인!”

순식간에 안개 너머로 사라지는 전투소대.

이연우는 멍청하게 눈을 깜빡였다.

‘뭐지…? 이렇게 때맞춰 회사에서 지원이 온다고? 죽기 전에 환각을 보나?’

환각이 아니다.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우 씨! 어딨어요? 살아있죠!”

“아저씨, 말 좀 해봐! 어디야!”

“어, 아? 여기. 여기에 있는데.”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하니, 최재민과 유지유가 사람 몇을 데리고, 내려갔던 산길을 고스란히 거슬러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붉은색 하트 문양이 새겨진 완장을 찬 의무병이 반갑다. 안도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연우를 찾은 유지유의 얼굴에도 비슷한 웃음이 걸렸다.

“아! 찾았다! 빨리, 응급처치 좀 해주세요!”

“예, 비키십쇼.”

빨간색 구급상자와 들것을 바닥에 내려놓은 의무병이 이연우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능숙한 손길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상처 부위의 옷을 찢고, 소독액을 뿌려 흙 따위를 씻어내리고, 깨끗한 붕대로 압박한다. 그 고통이 어마어마하다.

지나친 고통 앞에서는 기나긴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꽉 매인 성대에서 외마디 신음만 새어 나왔다.

“끅!”

“어이구. 많이 다치셨네. 피도 많이 흘리셨고. 수혈이 필요하려나.”

“끄으윽-”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으니, 어느 순간 길쭉한 들것에 실렸다.

“으차! 내려갑시다!”

몸이 둥실둥실 흔들리는 듯도 했고, 세상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듯도 했다.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나뭇잎과 하늘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

문득, 이연우가 웃음을 실실 흘렸다. 고통도 살아있으니까 느끼는 것이다.

‘하하. 살았다.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어, 뭐야? 괜찮으세요? 왜 웃지? 위험한 거 같은데? 이거, 눈에 불 좀 비춰봐.”

“저희 배터리 없는데-”

“제 앞주머니에 손전등 있으니까 그거 꺼내서-”

“일단 빨리 내려가야-”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손길을 받으면서, 들것에 누운 이연우는 순수하게 생존을 기뻐했다.

***

주차장이 꽉 들어찼다.

첩보영화에서나 볼법한 새까만 승합차가 몇 대나 늘어섰고, 구급차 같은 것도 2대가 있었다.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명령과 보고가 이어지는 목소리.

“산불진압 완료됐습니다!”

“포획된 두 이상개체의 상태 보고하겠습니다. 화상이 있긴 한데, 심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해수대응중대 1소대 이상 무!”

“화재로 인한 긴급작전 슬슬 마무리하겠습니다.”

반면 이연우와 최재민과 유지유가 쉬고 있는 구급차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최재민이 구급차에 걸터앉아 다리를 달랑거리며 물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괜찮아. 살았잖아.”

수혈을 받는 이연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워서 수혈팩을 올려보는 눈이 금방이라도 잠들 듯했다.

유지유도 구급차 벽에 기대앉아, 고개를 꾸벅였다. 일이 끝나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온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구급차 밖을 보았다.

저벅저벅-

딱 봐도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훈장이 달린 전투복을 입은 중년남자가 선두다. 키가 큰 그는 조사원들을 내려보며, 입가를 비틀었다.

“이 또라이 새끼들. 산에 불을 지르질 않나, 중요한 이상개체를 파괴하지를 않나. 아주 지들 살겠다고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곱지 않은 말. 피곤한 머리는 그 말을 뒤늦게 이해했다.

“그럼 저희 보고 죽으라는 거예요!”

최재민이 바락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중년남자를 똑바로 노려봤다. 정말로 죽을 위기를 방금 넘긴 사람한테 이만한 악담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중년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죽어야지. 응? 얌전히 죽었어야지. 너희가 죽인 이상개체가, 열 명, 백 명 살릴 수 있는 거면 몰라. 그런데, 만 명, 십만 명 살릴 수 있는 이상개체네? 그런데 그 서식지에 불을 지르고, 심지어 하나는 파괴를 해?”

중년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최재민을 위에서 내려봤다.

최재민이 주춤 물러서기 무섭게, 남자는 양손을 뻗어 최재민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다.

“애새끼야. 네가 아까 말했지. 이거 암컷이랑 수컷이 있고, 새끼 까는 개체라고. 이것들만 번식시키면 기억소거제가 충분하게 공급되는데, 그걸로 살릴 수 있는 사람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이래도 너희 목숨 하나가 더 중요해?”

어두운 밤. 자동차의 라이트를 받아 빛나는 눈이 불꽃처럼 이글거린다.

당장 주먹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

“중대장님. 아직 부모개체도 멀쩡하고, 산불도 진화하지 않았습니까. 그만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얘는 아직 학생 아닙니까.”

옆에 있던 전투원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중대장이라 불린 남자는, 잠깐 최재민을 노려보다가 탁 멱살을 놓았다.

“하여튼 조사원 새끼들은 마음에 들지가 않아. 지들 사는 것만 우선이지.”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친 최재민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일그러진 눈으로 잠깐 허공을 보고, 입을 벌려 패륜적인 욕설을 뱉으려는 순간.

“느그 부우웁! 으으읍!”

“가만히 있어, 가만히!”

유지유가 손바닥으로 코까지 틀어막고, 구급차 안으로 끌어당겼다. 최재민이 고개를 도리질 치지만, 유지유가 과장되게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자, 얌전히 구급차 안에 앉았다.

중대장은 돌아서다가 멈춘 자세로, 머리를 돌려 그들을 보았다.

“뭐? 할 말 있으면 해봐.”

“하하. 아뇨. 가보세요.”

“중대장님…. 학생이랑 이러는 것도 조금 문제가….”

“이딴 세상에 학생이랑 어른이 어딨다고. 됐다, 가자.”

그렇게 몇 걸음을 걷는가 싶더니, 다시 몸을 돌린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던 유지유가 다시 바짝 긴장하며 최재민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걸 한심한 눈초리로 보던 중대장은 턱을 까딱였다.

“거기, 너.”

“저기, 이 애는-”

“애새끼 말고. 거기 누워 있는 놈.”

이연우가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팔이 파들파들 떨려, 주삿바늘로 연결된 붉은 링거가 사정없이 요동쳤다. 전투원이 당황한 손짓으로 나섰다.

“중대장님. 오늘 왜 그러십니까? 왜 환자한테까지 그러십니까.”

“지랄 안 한다, 인마. 그래, 너. 소속 바꾸고 싶으면 지금 말해.”

“소속 말입니까?”

이연우가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중대장은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우리 애들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이 새끼들처럼 지들 살겠다고 먼저 도망치는 일은 없어.”

마지막에 둘을 먼저 내려보낸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연우는 피로에 찌든 머리로 잠깐 생각하고, 금방 결론을 내렸다.

이상異常으로 의심되는 사건에 투입되는 조사반 VS 이상異常이 확실한 경우에만 파견하는 특전대.

이상개체를 만날 수도, 안 만날 수도 있는 조사원 VS 무조건 이상개체와 맞서 싸우는 특전대원.

심지어 상사가 저 중대장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괜찮습니다. 제가 체력도 안 좋고, 또-”

“싫음 말고.”

중대장은 두 번 묻지 않고 바로 승합차로 갔다. 보좌하는 전투원이 조사원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종종걸음으로 중대장을 쫓아갔다.

“….”

“….”

그가 떠난 자리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최재민과 유지유는 힐끔힐끔, 이연우의 눈치를 보았다. 이연우를 내버려 두고 떠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이연우는 느릿느릿 다시 자리에 누웠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깔린다.

“괜찮습니다. 제가 가라고 말했잖습니까.”

이 둘이 일부러 헛짓거리를 벌여 위기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이연우를 일부러 죽이려고 한 것도 아니다.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나빴을 뿐.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최재민이 잠시 눈치를 보다가, 아직도 자기 입을 막고 있는 유지유의 손바닥을 때렸다.

찰싹찰싹-

“아! 아직도 잡고 있었네.”

“푸흐.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왜 말도 못 하게 막고 그래!”

“네가 또 부모 욕하려고 하니까.”

“그건 맞는데…. 저 인간이 말을 꼴 받게 하잖아!”

최재민이 씩씩거리며, 중대장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봤다. 그러다가는 또 유지유의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뭐 좀 물어보려고 했지.”

“뭘.”

“부모 다 죽었길래, 댁 부모도 다른 사람 살리려다 죽었냐고. 몇 명이나 살렸냐고.”

“내가 느그 소리를 똑똑히 들었는데!”

빡-!

유지유가 손바닥을 경쾌하게 휘둘러 뒤통수를 때린다. 최재민이 악악 소리를 질렀다.

“그만 좀 때려!”

빡-!

“너는 더 맞아도 돼. 어차피 졸업하면 조사반에서 일할 텐데, 머리 좀 나빠져도 괜찮아.”

“안 해! 일 안 해!”

“하지 마! 그냥 실험실로 끌려가던가!”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그들이 아웅다웅하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온다. 이연우는 눈을 감고, 나른한 감각에 몸을 맡겼다.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와 멀어지는 소리. 마음이 편하다.

이연우의 다사다난했던 첫 업무가 이렇게 끝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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