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온 지 며칠이 지났다.
이연우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상평시 시내 구석에 위치한 고깃집으로 걸었다. 어기적거리는 발걸음으로 보도블록을 한참 지난 뒤에야, 식당 앞에서 멈췄다.
활짝 열어둔 문밖으로 고기 굽는 냄새가 진하게 흘러나온다. 이연우는 깁스를 두른 손을 덜렁거리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냉큼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쇼! 몇 분이십니까!”
얼굴에 징그러운 흉터가 있는 사장이 활짝 웃으며 반긴다. 흉악한 비주얼.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 이연우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드문드문 차 있는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오늘 여기서 회식하기로 했는데요-”
“어! 신입! 여기야!”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구석 테이블에서, 두툼한 체구의 반장이 두꺼운 손을 흔들었다.
사복을 입고 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최재민과 유지유도 저마다 손을 들거나, 고개를 까딱이며 아는 척을 했다. 이연우는 얼른 그곳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반장님, 선배님. 재민이도.”
“어, 얼굴 보는 건 처음이지? 어때 상처는 괜찮고?”
반장은 슬쩍 의자를 빼주면서도 깁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연우는 깁스한 팔을 앞뒤로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며칠 푹 쉰 덕분에 괜찮습니다.”
그 말 그대로 며칠 동안 고시텔의 좁은 방에서 푹 쉬었다. 부상을 그렇게 당했는데, 출근이 웬 말이냐고.
물론 휴식과는 별개로, 혹사당한 온몸이 근육통 때문에 비명을 질러댔지만.
“암, 일 오래 하려면 푹 쉬어야지. 후유증 같은 거 안 남게 말이야.”
그때, 험악한 인상의 사장이 큼직한 쟁반에 밑반찬 따위를 가져왔다. 척척, 김치와 파채, 콩나물을 내려놓는 사장은 해맑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연우를 곁눈질하면서.
“아이고, 신입사원이신가 봐요?”
“아, 예.”
“자주 뵙겠네. 고맙게 회식은 꼭 여기서 하더라고. 뭐, 음료수라도 드릴까?”
“거, 음료수는 뭔. 됐고, 소주나 줘.”
이연우는 과도한 관심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고, 반장은 심드렁히 주문했다. 사장은 재빨리 떠났다가, 소주와 가스버너, 돌판, 굵은 소금을 뿌린 삼겹살을 부지런히 가져왔다.
“그럼 맛있게 드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주세요.”
사장이 다른 테이블로 떠난다. 유지유가 익숙하게 가스버너를 키고, 고기를 올렸다.
치익- 치이익-
고기가 익는 소리. 소나기 소리 같은 맛있는 소리와 함께, 고기 냄새가 훅 올라온다.
꿀꺽, 침을 삼킨 이연우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한 손으로 수저통에서 젓가락과 수저를 꺼냈다. 막내 직원으로서 세팅을 할 생각이다.
하지만.
달달그락달그락-
수전증처럼 떨리는 손, 식기가 요란하게 몸을 부딪친다. 근육통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아저씨, 주세요! 제가 할게요.”
말없이 넘겨주니, 최재민이 수저와 젓가락을 각자 앞에 두고, 탑처럼 쌓은 소주잔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최재민 본인의 자리에도 놓인 소주잔.
고기를 굽던 유지유가 눈매를 좁혔다.
“너는 왜? 콜라 담아 마시게?”
“아니. 나도 술 마실 건데?”
당당하게 마주 보는 최재민. 유지유가 손을 들어 올렸다가, 집게와 가위를 들고 있는 것을 깨닫고 고민에 잠겼다. 가위로 머리를 내리쳐도 될까?
흉흉한 기색에 최재민이 의자를 밀며, 뒤로 멀어졌다.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해봐. 설득 못하면 이걸로 찍을 거야.”
“자, 들어봐.”
의자를 바짝 당긴 최재민이 유지유와 이연우와 반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한껏 깔았다.
“저번에 죽을 뻔했잖아요.”
“그래서? 끝?”
“아냐! 끝까지 좀 들어. 저번에는 어떻게 살았지만, 조사반에서 하는 일이 그런 거잖아. 대부분 문제없지만, 한 번 잘못 걸리면 죽는 거.”
“….”
소란스러운 고깃집, 그들 테이블에만 침묵이 내려앉았다. 유지유는 말없이 고기를 뒤집었다. 최재민이 계속 말했다.
“앞으로도 실습 갈 텐데, 내가 성인 될 때까지 살아있을지 어떻게 알아? 운 안 좋으면 바로 다음 실습 때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살아있는 동안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봐야지.”
끼릭-
반장이 말없이 소주 뚜껑을 돌려 열었다. 소주병이 최재민을 향했다.
“됐다, 마시게 둬라. 어른 앞에서 마시는 건 괜찮아. 이 기회에 주도 배우는 것도 괜찮고.”
“예! 감사합니다!”
최재민이 두 손을 공손히 들어, 잔을 올렸다. 어디 TV에서 본 걸 따라 하는지 과하게 공손한 자세와 찰랑찰랑 잔을 채우는 소주.
유지유는 떨떠름하게 보다가, 병이 자신에게 오자 집게를 내려놓고 잔을 받았다. 이연우도 마찬가지. 멀쩡한 손으로 공손히 올린 잔 앞에서, 반장이 잠깐 멈칫했다.
“너는 지금 술 마셔도 되나?”
깁스를 보는 눈. 이연우는 끄덕였다.
“몇 잔 정도는 괜찮겠죠. 오히려 마시면 낫지 않을까요?”
“으하하! 그렇지! 뭘 아는구만!”
그러는 동안 고기가 완벽하게 익었다. 유지유가 가위로 싹둑싹둑 고기를 잘랐다. 한입에 먹기 딱 좋은 크기로.
“건배!”
“건배!”
반장이 잔을 높게 들었다. 네 개의 잔이 테이블 가운데에 모였다가 떨어졌다.
“으으으윽! 존나 맛없어!”
아예 뒤로 돌아 잔을 비운 최재민이 서둘러 돌아앉은 후, 고기를 세 점씩 집어 쌈장을 듬뿍 찍어 먹는다. 유지유는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보다가, 몇 마디 했다.
“조금만 마셔. 사고 치지 말고.”
“이걸 어떻게 많이 마셔? 말도 안 돼. 이걸 왜 맛있다고 마시지?”
“으하하!”
유쾌한 소란 속에서 이연우는 힘겹게 쌈을 만들었다. 멀쩡한 한쪽 손으로 앞접시에 싱싱한 상추를 놓고, 따듯한 밥 한 숟가락 넣고, 쌈장을 찍은 삼겹살을 올리고, 마늘도 살포시.
그렇게 겨우 만든 쌈을 입이 터져라 우겨넣을 때, 반장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작은 유리병을 꺼내, 이연우 앞자리에 놨다.
“신입아. 챙겨라.”
우적우적-
이연우는 턱을 움직이며, 유리병을 봤다.
라벨이나 종이 같은 것이 없는 유리병은 탁한 갈색이었는데, 소화제나 숙취제거제 같은 모양이었다.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찰랑인다.
반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 일에 포상금은 없단다. 이유는 너희도 알지?”
“…예.”
꿀꺽 쌈을 삼킨 이연우가 꽉 막힌 목소리로 답하고, 유지유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중대장이란 사람한테 욕을 먹으면서 잘못을 들었으니까. 이상개체의 파괴, 서식지의 방화. 그들 손으로 지워버릴 뻔한 가능성.
반장은 수저로 테이블을 때리며, 상부를 욕했다.
“씨부랄놈들. 이게 인류보호회사야, 이상보호회사야. 이딴 걸 잘못이라고. 하여튼, 포상금 대신 우리 조사반에 기억소거제가 몇 개 보급 왔다. 너한테 준 것도 그거야.”
“이게 그 기억소거제입니까?”
이연우는 기억소거제를 들어 올린 후, 몇 번 흔들었다. 안에 든 투명한 액체가 평범하게 출렁였다. 이연우는 시선을 돌려 반장을 봤다.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사직서 같은 거야. 지유는 이미 가지고 있어.”
반장은 자기 잔에 술을 따르며, 소주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
“사직서랑 같이 품고 있다가, 퇴직할 때 마시라고.”
“아.”
유지유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우는 조심스럽게 유리병을 바지 주머니에 챙겼다.
그 후로도 삼겹살을 몇 번 더 시키고, 소주 몇 병을 더 비웠다. 시간이 늦은 밤을 향해 달려갈수록 멀쩡했던 얼굴들이 불콰하게 취했다.
삼겹살과 김치와 콩나물을 잘게 자른 후 볶은 밥까지 남김없이 먹어 치운 후,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자. 저, 저 새끼 취한 거 봐라.”
“아아아. 나 더 마시 수 이쓸 거 가튼데? 안 치해써!”
최재민이 팔을 파닥이며 혀 꼬인 소리를 낸다. 제 몸도 제대로 못 가눈다. 유지유가 뒤통수를 내리쳤다.
빡-!
“내가 조금 마시라고 했지?”
“조오금 마셨은데!”
“돌겠네. 이걸 어쩌지.”
“일단 끌고 나가죠?”
반장이 계산하는 동안, 유지유와 이연우는 최재민을 양쪽에서 붙잡아, 바깥으로 끌고 갔다. 두 발이 바닥에 질질 끌리는데, 최재민은 그게 재밌다고 실실거렸다.
“와!”
“안녕히 가십쇼!”
험악한 얼굴의 사장이 웃으며 그들을 마중하고, 반장은 법인카드를 꺼내 건넸다. 사장이 받아들며 궁금한 듯 질문했다.
“맛있게 드셨습니까?”
“고깃집인데 고기가 맛이 없으면 안 되지.”
“하하. 고기 맛은 문제가 없다는 거죠?”
“왜, 장사가 잘 안되나?”
결제가 끝났다. 사장은 카드를 돌려주었고, 반장은 카드와 영수증을 함께 지갑에 집어넣으며 슬쩍 물었다.
“단골손님 몇 분 빼면 손님이 새로 안 와서요. 오시던 단골손님도 점점 줄어들어서…. 이러다 장사 망하면 어떻게 먹고사나 걱정이고.”
걱정이 잔뜩 섞인 대답.
반장은 묵묵히 듣다가, 한 번 웃고는 핀잔 섞인 잔소리를 돌려줬다.
“먹고 사는 걱정이구만. 이 사람아, 복 받았으니까 그런 걱정이라도 하는 거야.”
“하하. 그런가요? 하긴 안사람도 무슨 걱정을 사서 하냐고 하던데.”
사장은 웃었다. 반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활짝 열린 문을 나섰다. 뒤에서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히 가십쇼!”
반짝이는 간판을 피해, 어둑한 흡연구역으로 간 반장은 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칙칙 라이터 부싯돌 부딪치는 소리.
피어오른 불꽃과 함께, 머릿속에서 한때 같은 조사원이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나 더는 못하겠다. 매일매일이 지옥이야. 업무만 문제가 아니야.’
‘오늘은 문제없이 살아남을까, 미친놈들이 공격해오지 않을까, 내가 사는 도시가 파괴되지는 않을까. 내일 갑자기 지구가 멸망하지는 않을까. 이딴 걱정만 하면서 사는 게 어떻게 사람 사는 삶이냐.’
’나도 이제 평범한 사람들처럼 먹고사는 걱정만 하면서 살고 싶어.’
그와 함께 조사원으로 10년을 버텼던 동료는 그렇게 기억소거제를 마시고 이상하지 않은, 평범한 세계로 갔다.
10년의 기억을 잃은 조사원은 고깃집 사장이 되었고, 인생의 반려를 만나 결혼까지 하여, 그가 원하던 것처럼 먹고 사는 걱정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담배를 깊이 빤다. 반장은 한숨처럼 욕을 뱉어, 연기와 함께 하늘로 흘렸다.
“새끼….”
그렇게 추억을 곱씹던 반장은 돌연 피식 웃었다. 저 앞에서 난동을 피우는 조사원들이 있었으니까.
“흐어엉! 내가, 내가 두고 가서 미아내…!”
“팔! 팔! 팔! 악!”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이연우에게 매달리는 최재민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이연우와, 최재민을 붙잡고 끌어내는 유지유. 언제 어떻게 헤어질지 모르는 사람들.
반장은 담배 한 대가 다 탈 시간동안 그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