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괴물(임시)]
- 적대수준 : 옐로우
- 위험레벨 : 2
- 중요등급 : D
- 상세 : 서식지에 단기적인 기억을 지우는 안개를 만들어내는 이상異常.
- 대책 : 최초발견된 산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민간인의 출입을 막고, 이상관리팀을 신설하여 이상개체의 탈주를 막는다. 최초서식지에서 이상개체의 번식을 최우선으로 노력할 것.
또한 이상발견절차에 따라 연구팀을 할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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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발견한 이상개체를 연구하는 방향에 관하여.]
신설연구팀에게.
언제나 그렇듯, 이상발견절차에 따라 해당개체의 분석을 최우선으로 하십시오. 막 발견한 이상개체, 아직은 모두 추측일 뿐이니까요.
정말 번식이 가능할까? 정말 이 이상異常이 안개를 발생시키는 걸까? 안개와 괴물은 서로 다른 개체가 아닐까? 혹시 안개가 괴물을 만들지는 않을까? 어쩌면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먹는 것은 아닐까?
많은 질문이 있고, 미지는 위험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밝혀야만 하죠.
물론 기억소거제의 공급부족은 익히 알 거라 믿겠습니다. 안개 성분의 안전성과 해당개체의 번식여부부터 연구하십시오.
그 때문에 희귀물질연구소와 크립티트연구동호회에서 우선 인원을 차출한 겁니다.
***
[안개 속의 괴물 1차연구보고서]
대략적인 결과가 도출되어 보고합니다.
안개의 기억소거성분 분석결과, 안전합니다. 당장 기억소거제의 원재료로 사용해도 문제없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복용할 경우 어찌 될지에 관한 데이터는 당연하게도 없지만, 기억소거제를 장기적으로, 또 주기적으로 복용할 일은 드물기 때문에, 후순위 연구과제로 밀었습니다.
교배도 성공하여 새끼가 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멸종의 대변인이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여, 의심되는 점을 함께 보고하겠습니다. 이하 내용은 멸종의 대변인의 의견인 점을 감안하여 읽어주시길.
인간 여럿에게 기억소거제를 임상실험한 날짜와 새끼가 탄생한 날짜가 같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의 식생활을 보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해당 이상개체는 동물의 내장을 먹으나, 활동에 필요한 열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이것의 필수영양소는 사람의 기억이다.
안개는 입이며, 입으로 기억을 섭취하여 생명유지와 번식에 사용한다.
즉, 우리가 안개를 기억소거제로 정제하여 사용한다는 것은 이들의 번식을 돕는 것이며, 안개를 정제한 기억소거제를 많이 사용할수록 이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안개 속의 괴물의 적대수준을 오렌지로 격상할 것을 제안한다. 이것의 숫자가 손 쓸 수 없이 폭증하기 전에. 우리의 손으로 실수를 반복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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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괴물의 적대 등급 상향에 관하여.]
멸종의 대변인의 의견을 주의 깊게 검토한 결과, 관리 불가능한 위험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재 수준을 유지하겠습니다.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억소거제의 부족
기억소거제의 공급을 늘릴 수만 있다면, 일정 수준의 위험은 감수해야죠, 어쩌겠습니까.
2. 이상개체의 취약함
비록 유아 개체였지만, 초보적인 조사원 몇이 죽일 정도로 나약했죠. 저것의 숫자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불어나더라도, 단순한 총화기만으로 정리 가능할 겁니다.
물론 방심은 죄악이니, 경계 대책도 준비했습니다.
1. 서식지의 엄격한 제한과 개체 수의 세밀한 관측과 관리
2. 해당 이상개체를 이용한 기억소거제의 별도 관리
안개로 만든 기억소거제를 MM-001로 명명하고, 여타 특수비품처럼 별도항목으로 관리합니다.
***
[시말서]
소속 : 이상조사반
직위 : 조사원
성명 : 이연우
금번 본인은 조사업무를 수행하던 중 산에 불을 지르고 이상異常을 파괴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추후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며, 이에 시말서를 제출함.
깜빡- 깜빡-
명멸하는 커서를 따라 이연우도 눈을 깜빡였다. 깁스를 풀기도 전에 출근하자마자, 그것도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자마자 시말서를 작성했다. 제대로 작성했나 의심부터 들었다.
슬쩍, 옆 데스크를 보니, 유지유도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고개를 조금 더 빼 모니터를 훔쳐봤다. 똑같은 시말서였다.
내용까지 똑같았다. 몇 글자만 다를 뿐.
“저, 선배님. 이거 시말서 이렇게 쓰는 게 맞나요?”
“한 번 봐봐요.”
이연우가 몸을 반대쪽으로 뺀 후, 모니터를 살짝 돌렸다. 몸을 기울인 유지유는 빠르게 한 번 훑더니,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대로 올리면 될 것 같은데요?”
“너무 비슷하지 않습니까?”
“상관없을걸요?”
“그래요?”
“불만 있으면 짜르라고 해요. 조사원 기껏해야 반장님까지 셋밖에 없는데, 위에 놈들이 뭐 어쩌겠어요.”
그러면서 시말서를 업로드한다.
이연우는 다시 한번 시말서를 처음부터 읽었다. 아무리 봐도 유지유의 것과 너무 똑같았다. 보고 베낀 것처럼.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들어, 몇 글자라도 고쳐보려고 한 손을 키보드 위로 올릴 때였다.
부장이 말했다.
“대충 써도 된다, 신입아. 어차피 조사원은 승진도 없고, 오래 일할수록 월급 올라가는 구조야. 이런 거 대충 쓴다고 불이익 없다.”
“그렇습니까?”
잠시 망설이던 이연우가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찝찝하지만, 반장님까지 저렇게 말하는데.
그렇게 시말서 제출이 끝나기 무섭게.
“씨벌. 옘병하네.”
반장이 욕설을 내뱉었다. 살짝 놀란 이연우가 데스크 칸막이 위로 머리를 위로 쭉 빼, 반장의 자리를 보았다. 유지유도 아닌 척 귀를 기울였다.
반장은 혼자 궁시렁거리더니, 두꺼운 손을 들어 이리 오라 손짓했다.
“이 새끼들은 또 뭔 지랄을 하려고 조사원을 차출해. 어이, 지유야, 신입아. 와봐라.”
“예.”
“가요.”
두 명이 반장의 자리로 가니, 반장은 의자에 등을 기댄 자세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요청서가 있었다.
[인원차출요청서]
뭐라뭐라 형식적인 문장이 길게 늘어서 있지만, 거부할 수 없다는 뜻만은 분명했다.
반장은 혀를 찼다.
“저기 위에서 내려온 명령인데, 조사원 한 명 아무나 데려다 쓴단다.”
유지유가 피곤한 눈을 비볐다.
“뭔지 모르겠지만, 제가 가야겠네요. 연우 씨는 팔이 아직 아프잖아요.”
“그건 아니야.”
반장이 짜증 섞인 눈으로 요청서를 보다가 이연우를 봤다. 이연우가 아직 깁스를 풀지 않은 손을 꼼지락거렸지만, 반장은 개의치 않았다.
“이 새끼들 이거, 이름하고 사람만 빌리는 거야. 사람들 이목 속일 때 대충 조사원 활동으로 퉁치려고 이러는 거라고.”
“…그럼 제가 갑니까?”
이연우가 묻자,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도 할 거 없어. 대충 자리만 지키고 있다가 돌아오면 돼.”
“그래도 지유 선배가 가는 게 낫지 않습니까? 저는 완전히 신입인데.”
이연우가 유지유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편한 일이라고 사무작업을 내팽개치고 냅다 떠나는 것도 보기가 안 좋았으니까.
하지만 유지유는 슬쩍 한발 물러섰다.
“연우 씨가 사무실에 있어봤자 무슨 일을 더 하겠어요. 제가 사무실에 있는 편이 효율적이죠.”
옳은 말이었다. 이연우는 시말서 쓰는 법만 배웠지, 다른 건 조금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팔 한쪽도 못 쓴다.
거기에 유지유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연우 씨 보니까,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것 같은데. 제가 괜히 나섰다가 이상한 일에 엮일 거 같아서 무섭네요.”
“어….”
이연우는 뭐라고 반박하지 못했다. 그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인간자격시험을 시작으로, 연수 때는 이상개체가 폭주하지 않나, 적대집단이 쳐들어오지 않나. 첫 업무부터 진짜 이상異常을 마주치지를 않나.
생각할수록 찜찜하다.
‘액이 꼈나? 무당이라도 찾아가야 하나?’
예전 같으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흘려 넘기겠지만, 이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상-
반장이 쓸데없는 생각을 끊었다.
“신입아. 내일 저기 청해시 청해항구로 가라.”
“아, 예. 그런데 가서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거기 다른 사람 있을 텐데, 그 사람 쫓아다니기만 하면 될걸. 네가 뭐 할 거는 진짜 없을 거야.”
이연우는 불편한 얼굴로 짧게 답했다.
“예.”
남은 근무시간 동안 이연우는 유지유에게 기본적인 사무업무를 배웠고, 청해항구로 가는 날이 왔다.
***
청해항구 근처의 공용주차장.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워, 이연우는 편의점 얼음 커피를 쭉 빨며, 주변을 둘러봤다.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주차장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차보다는 바닷바람에 실려 날아온 모래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노란 스프레이가 뿌려진 듯한 주차장.
이연우는 모래가 밟히는 아스팔트를 신발 바닥으로 바르작거리며, 주차장 입구를 주시했다.
‘날 부른 사람들은 언제 오는 거지? 그리고 어떤 차로 오는 거지? 승합차 같은 건가?’
그때,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이연우는 바로 받았다.
“예, 이연우입니다.”
- 요청받고 출장 나오신 분 맞습니까? 조사원?
다급한 목소리.
“네. 차출되서 나온 조사원인데요.”
이연우는 조심스럽게 대답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용달트럭 한 대. 속도를 채 줄이지 못하고 위태롭게 드리프트한다.
끼이익-!
- 지금 저희가 말한 위치에 있습니까?
“예.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요.”
- 어디 있습니까?
지금 막 도착했다는 듯한 말. 이연우는 푸른색 용달 트럭을 보면서 긴가민가했다.
“파란 트럭입니까? 짐칸 있고?”
- 맞습니다. 빨리 오시죠.
덜컹!
용달 트럭이 브레이크를 밟아 급하게 속도를 늦췄다. 이연우는 잰걸음으로 트럭의 뒤로 다가가, 회색 천막을 쳐둔 짐칸을 지났다. 걸음이 잠깐 느려진다.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천막의 틈새로 언뜻, 외국인과 문짝 같은 것이 보였다.
‘뭐지? 외국인? 문?’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문을 닫기 무섭게, 인사치레도 없이 트럭이 출발했다.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로 진입하는 트럭.
이연우가 질문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현재 상황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아니, 어디로-”
“습격에 대비하십시오.”
운전석의 까만 정장 남자는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곁눈질하며 빠르게 말했다. 불안하게 오가는 시선. 엑셀을 밟아, 속도를 올리는 트럭.
이연우는 재빠르게 안전벨트부터 맸다.
‘습격? 습격? 이름만 빌린다며? 자리만 지키면 된다며?’
마음 편하게 시간만 보낼 것 같지가 않다. 영화를 저장한 핸드폰을 주머니 깊이 꾹 쑤셔 넣은 이연우가 사이드미러를 보았다.
항구도시의 텅 빈 도로, 트럭이 속도를 높여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