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22화 (22/194)

달리는 트럭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항구도시의 풍경.

키가 작은 건물들은 낡고 헤진 페인트 옷을 입고, 불 꺼진 눈으로 자고 있었다. 건물의 잠을 깨울 사람은 없어, 도시가 고요하게 자는 듯했다.

쇠락한 항구도시의 풍경이었다.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점이 있다면, 차 하나 돌아다니지 않는 도로를 내달리는 트럭 한 대뿐.

부우웅-!

빨간불 신호도 무시하며 달리는 트럭이, 방지턱에 걸려 크게 위아래로 들썩였다.

조수석에 앉은 이연우의 머리도 맥없이 좌우로 흔들리며, 쿵쿵, 유리창과 목받침 따위에 마구 부딪쳤다. 하지만 이연우는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한 손으로 종이를 들고, 그 내용을 읽었다.

난폭운전 따위보다 훨씬 위험한 내용이 쓰여 있었으니까.

‘위험레벨 4? 멸망주의자? 그러니까, 이게.’

순식간에 내용을 정리한 이연우가, 종이를 거칠게 무릎 위에 올리며, 운전석의 남자를 봤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지금 핵폭탄 재료를 짐칸에 실었고, 세상이 멸망하길 바라는 미친놈들이 핵폭탄 재료를 탈취하려고 습격해온다는 겁니까?”

“정확하게 이해하셨습니다.”

“아니. 아니.”

담담한 대답에 이연우는 다시 종이를 들어 그 내용을 읽었다. 첫 장에는 사진이 있었다.

이연우가 언뜻 보았던 외국인과 문짝. 정확히는, 문짝을 관통하듯 박혀 있는 외국인.

[끼인 남자]

- 적대수준 : 오렌지

- 위험레벨 : 1

- 중요등급 : B

- 상세 : 문이나 벽이나 사물에 위치가 중첩되는 인간형 이상異常.

‘여기까지만 읽으면 괜찮은데.’

게임에서 가끔 보이는, 버그 걸린 캐릭터 느낌이니까. 문제는 다음이었다.

- 오류 NPC(ERROR NPC) : 물리법칙이 어긋난 일련의 이상개체. 오류 NPC가 모일수록 오류가 현실로 확대되어, 위험레벨이 상승한다. 둘이 모이면 2, 셋이 모이면 3.

- 현재 회사에서 발견한 오류 NPC는 다섯이며, 발견하지 못했을 오류 NPC까지 생각하면 잠재적인 위험은 최대 6에서 7까지 상승한다.

운전석의 남자가 말했다.

“본사에서 엄중하게 관리하던 NPC 셋을 멸망주의자가 강탈했고, 회사는 남은 두 NPC를 다른 곳으로 비밀리에 이송하는 중입니다. 그 중 하나가 뒤의 끼인 남자입니다.”

“습격은 무슨 말입니까?”

“걸렸습니다.”

“…예?”

이연우가 서류를 얼굴 옆으로 치우고 황당한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쉴 새 없이 눈을 움직여 사방을 경계하면서,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이송작전을 멸망주의자한테 걸려서, 놈들이 청해항구까지 쳐들어왔습니다. 지금 경호가 없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경호1중대와 타격중대가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펑-! 쾅-!

폭음이 멀리 항구 방향에서 들려왔다. 잠자는 항구도시를 일으키는 듯한 소리의 연속.

이연우가 빠르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은 없었다. 대신 폭음에 놀란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눈을 땡그랗게 뜨고 핸드폰을 꺼내는 아줌마와, 도망치듯 건물로 들어가는 노인.

‘나도 차에서 내리고 싶다. …내릴 수 없을까? 잘 말하면 될 것 같은데?’

이연우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나는 왜 부른 겁니까…. 조사원 필요 없잖아요….”

“원래는 조사원 활동으로 위장하려고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도와주셔야 합니다.”

“뭘, 어떻게 말입니까?”

이연우가 깁스한 팔을 들어 올리고, 서류를 쥔 손도 항복하듯 위로 뻗었다.

“무기 같은 것도 없고, 있더라도 못 싸웁니다. 이 손 좀 보세요. 하다못해 힘쓰는 일도 못 합니다.”

“손은 필요 없습니다. 조사원이시지 않습니까. 이상異常을 발견하고 파악하는 데 이골이 나셨을 테니, 공격이나 습격의 전조를 빠르게 파악해 알려주십시오.”

“아니….”

이연우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운전석의 남자가 머리를 돌려 이연우와 시선을 마주했다. 진지하고 절실한 눈동자.

“부탁드립니다. 지금 멸망주의자가 몇 명이나, 어떤 이상異常을 얼마나 들고 왔을지 모릅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우리나라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절절한 목소리도 이연우에게는 닿지 않았다.

핵폭탄이 떨어지면 폭심지에서 도망쳐야지, 고작 사람 하나가 그걸 어떻게 막나.

“이봐요, 저는 조사업무 딱 한 번-”

어떻게든 내리기 위해 설득하려고 했다.

한창 목소리를 높이던 이연우의 눈동자가 돌연 커졌다. 남자보다 절실한 목소리가 터졌다.

“앞! 앞에! 차!”

반대쪽 도로에서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왔다. 조금 과속하지만, 평범한 차처럼 보였다. 역주행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넓고 투명한 전면 유리창 너머, 사람이 없다.

부우우웅-!

다음 순간, 중앙선을 넘은 승용차가 역주행하며, 트럭의 전면으로 달려들었다.

콰아앙-!

***

청해항구의 한 주차장.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주차장이 붉게 물들었다. 피를 흘리는 시체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정장을 입은 경호원과 전투 슈트를 입은 타격대원이 쓰레기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주변으로, 스키드 마크가 찍힌 아스팔트와,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자동차. 폭발하여 불이 붙기도 하고, 찌그러져 있는 자동차.

그리고 두 명의 이질적인 사람이 난장판의 가운데에 있었다.

딸깍딸깍! 꾸욱!

자동차에 기대앉아, 자는 사람처럼 눈을 감은 소년. 야구모자를 꾹 눌러쓴 소년은 손가락으로 게임기 컨트롤러를 현란하게 움직이더니, 다음 순간 눈을 뜨고 두 손을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오예! 들이박아서 막았음!”

“위치는?”

푸르게 빛나는 장난감 총을 든 남자가 대뜸 묻자, 소년은 눈을 깜빡였다.

“모르겠는데? 내가 이 나라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 그런데 도로 타고 운전하는 길은 알아.”

“그럼 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야겠군.”

“좋아! 여기는 도로에 차가 없어서 속도 내는 재미가 있어.”

“우리가 타는 차는 안전운전해라.”

“그건 재미없는데?”

자동차에 손을 짚어가며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은 문득 다시 컨트롤러를 휘둘렀다.

“그런데 NPC랑 같이 있는 회사 사람 아직 안 죽은 것 같아. 얘네처럼 다 차로 뭉개는 편이 낫지 않아?”

“안 돼. 혹시라도 NPC가 휘말려서 사망하면 지구 어딘가에서 리스폰할 텐데, 그걸 다시 찾기는 귀찮아.”

“재미없게. …그럼 다른 차로 길이라도 막을까? 오도 가도 못하게?”

“그건 괜찮군.”

소년이 다시 주저앉아, 게임기 컨트롤러를 두 손으로 쥐었다. 감은 눈과 육신을 벗어난 의식. 가상현실 게임을 하듯, 컨트롤러로 먼 거리의 차를 조종한다.

남자는 장난감 총을 쥔 채, 소년을 내려봤다.

그런 둘을 보는 시선이 있었다.

하반신이 으스러진 타격대원.

“….”

타격대원은 터지려는 비명과 울컥 올라오는 핏물을 삼켰다. 조금의 소리도 내면 안 된다. 고통에 떨리는 손으로 수류탄을 쥔다.

딸깍딸깍-

소년이 컨트롤러를 움직이는 소리에 숨기듯이, 안전 클립을 제거하고 안전핀을 뽑았다. 중년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타격대원은 깃털을 밀어내는 듯한 손짓으로 둥그런 수류탄을 밀었다.

데굴데굴-

핏물에 젖은 도로를 소리 없이 구르는 수류탄. 타격대원이 깨진 헬멧 너머로 눈 한 번 깜빡이지 못하고 바라볼 때.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대응은 신속했다.

찰나.

찰칵찰칵-

푸른 장난감 총으로 수류탄을 쏘고, 멀리 보이는 바다를 쐈다. 발사되는 것은 없었다. 대신 총구가 겨눈 장소에 푸른 구멍이 뚫렸다.

수류탄은 데구르르 굴러 푸른 구멍으로 들어갔고, 바다로 떨어졌다. 직후 먼바다에서 물보라가 높게 치솟았다. 멀리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폭음.

실패했다. 소리로 직감했다. 타격대원이 피를 토하며,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탈취자…. 그리고, 운전자…. 상부에 보고했다…. 네놈들의 전담부대가 올 거야….”

물보라가 가라앉는 광경을 보던 탈취자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내려 타격대원을 보았다. 그리고는 손목만 움직여 하늘을 쏘고, 총구를 내려 타격대원을 조준했다.

“그 전담부대, 여기에는 없군.”

무미건조한 읊조림. 이어지는 격발.

타격대원이 누운 지면에 푸른 구멍이 뚫리고, 타격대원은 하늘의 구멍에서 떨어졌다. 낙하지점은 주차장의 승용차. 콰앙, 천장을 으스러뜨리며 추락했다. 구부러진 차체와 탁해진 유리창.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겠어.”

탈취자는 혹시 남은 생존자가 있을까, 시체 하나하나를 바다로 이동시켰다.

찰칵- 찰칵- 찰칵-

방아쇠를 몇 번이나 당겼을까. 붉은 핏물과 파손된 주차장만이 남았다.

소년, 운전자가 벌떡 일어서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 막았다! …뭐야? 웬일로 정리를 해?”

“정리가 아니라 확인사살이다.”

“그래? 그럼 출발?”

“출발.”

둘은 문이 잠기지 않은 아무 자동차에 올라탔다. 운전자는 뒷자리에 편하게 누워, 다시 컨트롤러를 쥔다. 조수석에 앉은 탈취자가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지원하지.”

“오. 그럼 나 브레이크 안 밟는다?”

“그렇게 해. 생각보다 시간이 부족할지도 몰라.”

“그럼 간다!”

까무룩 감긴 눈과 멀어진 의식. 손가락만 깨어 있는 것처럼 버튼을 조작했다. 동시에 시동도 켜지지 않은 자동차가 가속했다. 전면의 가로수를 향해.

부우우웅-!

조수석의 탈취자는 코앞까지 다가온 가로수와, 옆으로 보이는 주차장 출구 도로의 한 지점을 연달아 쐈고.

거칠게 질주하는 자동차가 푸른 구멍을 통과하여 도로로 튀어나와, 감속 없이 내달렸다.

남자는 생각했다.

‘이번 공격목적은 탈취, 불가능하면 NPC 살해, 그조차 불가능하면…. …세 번째까지 갈 일은 없을 것 같군.’

찰칵찰칵-

생각을 하면서도 쉴 새 없이 공간에 푸른 구멍을 뚫었다. 직선도로에서는 거리를 단축했고, 때로는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치웠다. 저 하늘 위로.

그렇게 두 레드 등급 수배자는 회사의 트럭을 향해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들이 지나간 도로, 하늘로 날아간 장애물들이 강철과 살점의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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