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쾅! 끼익! 콰아앙!
요란한 소음이 연달아 들려온다.
이연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금이 간 유리창과 아픈 몸. 잠에 취한 듯 몽롱했던 눈이, 순식간에 찢어질 듯 커졌다.
‘사람 없는 자동차, 사고! 습격!’
연달아 치는 번개처럼 떠오르는 기억.
벌컥!
냅다 트럭 문부터 열고 몸을 던졌으나, 안전벨트에 묶인 몸은 좌석을 벗어나지 못했다. 안전벨트에 매달려 손발을 퍼덕이던 이연우가 머리와 멀쩡한 손을 등 뒤로 돌렸다.
다급하게 빨간 PRESS 버튼을 찾아 누르기 무섭게, 풀리는 안전벨트와 뚝 떨어지는 몸.
“윽!”
맨홀 뚜껑 위로 불안정하게 착지했다. 몸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이연우는 주변부터 둘러보았다.
“뭐야?”
쾅! 쾅!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충돌음. 사람 없는 자동차가 달려와, 트럭의 전후좌우를 빼곡하게 막았다.
연쇄추돌사고 현장처럼, 혹은 명절 고속도로처럼 도로가 꽉꽉 틀어막혔다.
그때, 탁, 발소리가 들렸다.
“…!”
트럭 반대편에서 들린 소리. 이연우는 몸을 낮추고, 트럭에 몸을 바짝 기댔다. 그리고, 말소리를 들은 후 트럭을 돌아갔다.
“예! 지금 더는 이동 불가능합니다! …싸우던 부대가 전멸했다고요? 그러면, 아, 지금 지원 오고 있다고요? 얼마나 걸립니까? …한참 남았지 않습니까! 이러다 빼앗깁니다! …아뇨! 뒷수습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습격자가 누구인지만이라도, 뭐요? 누구요? …어떻게든 해보라는 게 도대체가! 젠장! 알아서 하겠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핸드폰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머리가 깨졌는지 피가 줄줄 흐르는 이마를 닦아내고는, 핸드폰을 거칠게 던진다.
핸드폰이 아스팔트 위를 몇 번 튕긴 후 미끄러져, 이연우의 발 앞에서 멈췄다.
남자와 이연우가 눈을 마주쳤다. 이연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황이 뭐 어떻게 된 겁니까? 도망치면 됩니까?”
“아뇨…. 포기하는 건 차악입니다. 어떻게든 끼인 남자를 지켜야 합니다. 그게 최선입니다.”
그 말에 이연우는 우중충한 표정으로 도로를 둘러봤다. 답답한 심정처럼 꽉 막힌 도로.
“말이 되는 소리를. 여기서 뭘 어떻게 지킵니까? 전투원도 전멸했다면서요.”
“차선책이 있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남자가, 정장 안주머니에서 짤막한 나이프를 꺼냈다. 이연우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질문했다.
“설마 그걸로 싸우자고요? 습격자를 물리치는 게 차선이란 말은 아니죠?”
“아닙니다. …끼인 남자를 죽이는 겁니다.”
어느 순간 사고가 멈춘 도로가 조용하다.
시간이 없다. 남자는 입술을 깨물고는, 트럭 뒤로 걸었다.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듯, 말을 멈추지 않았다.
“끼인 남자는 이상개체입니다. 그리고, 죽이더라도 죽지 않습니다. 지구 어딘가에서 리스폰할뿐이죠. 멸망주의자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멀리 보내는 편이….”
멸망주의자는 점조직에 가깝다. 회사의 정보자원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니, 썩 나쁘지 않은 결과다. 먼저 찾아 회수할 테니까.
‘대충 끝인가? 그럼 이제 내 살길만 찾으면 되는데. 도망치거나 숨는 편이 낫겠지?’
이연우는 혹시 모를 테러리스트의 화풀이로부터 안전할 방법을 생각했다.
남자의 뒤를 쫒아 걷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가 내렸던 장소로 돌아가자, 둥근 맨홀 뚜껑이 보였다.
‘이거….’
이연우가 말했다.
“저기요, 그 습격자는 몇 명이고, 무슨 이상異常입니까?”
“습격자는 사람입니다. 이상개체를 무기처럼 쓰는 수배자, 탈취자와 운전자입니다. 짧게 설명하자면.”
탈취자.
공간에 푸른 구멍을 뚫는 총을 이용해 회사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
운전자.
생명 없는 탈것을 조종하는 컨트롤러로,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비행기를 떨어뜨리고, 기차를 탈선시키고, 탱크와 전투기를 사용하는, 테러리스트.
이연우는 잠깐 생각하다가, 맨홀 뚜껑을 툭, 찼다.
“관측이나 추적 같은 건 못한다는 말이죠?”
“예. 운전자는 어느 정도는 하겠지만, 지금은 이곳으로 오는 중이라 아마 못할-”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대답. 하지만 이연우는 냉큼 말했다.
“그럼 숨기기만 해도 되겠네요?”
“예?”
남자는 짐칸의 천막에 손을 올리다가, 이연우를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이연우는 맨홀 뚜껑을 가리켰다.
“그 이상개체랑 맨홀 아래에 숨죠? 어때요?”
“…나쁘지 않습니다. 뚜껑은 제가 열겠습니다.”
***
촤악!
이연우와 남자가 짐칸의 천막을 옆으로 치웠다. 어둑한 짐칸 내부가 어스름하게 보였다.
똑바로 서 있는 문짝과, 문짝에서 튀어나온 남자의 상반신. 갑자기 쏟아진 햇빛에 끼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저기요. 저 허리가 너무 아픈데, 자세라도 바꾸게 해주세요. 잘 비벼주면 나올 수 있거든요. 안 도망칠 게요.”
이연우와 남자는 서로 눈을 마주친 후,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합시다.”
“아, 고마워요. 진짜 허리가 너무 아파서-”
남자가 짐칸으로 올라가 문을 앞뒤로 마구 흔들자, 끼인 남자가 조금씩 흔들리더니, 어느 순간 유령처럼 문짝에서 벗어났다. 남자는 기지개를 켜며, 숨을 깊게 뱉었다.
“아, 좋다.”
“이럴 시간 없습니다. 빨리 나오세요.”
“아, 네네. 가요.”
끌어당기는 남자의 손을 붙잡고, 짐칸에서 내린다. 끼인 남자는 햇볕에 눈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사고가 크게 났네요. 그래서 저는 어디로 가나요?”
“여기로 들어가십시오.”
맨홀 뚜껑을 따는 것은 현장요원의 기본소양이라며, 남자가 트럭에서 도구를 꺼내 연 맨홀. 녹슨 손잡이 같은 것이 사다리처럼 벽면에 박혀 있다. 언뜻 악취가 올라왔다.
“여길요?”
머뭇거리는 끼인 남자의 등을, 이연우가 꾹 밀었다.
“시간 없습니다. 빨리요.”
“아, 싫은데. …알았어요. 회사 말은 잘 들어야죠.”
척, 척, 척
다행히 중간에 끼는 사고 없이, 끼인 남자가 내려갔다. 다음으로 이연우가 맨홀로 몸을 집어넣었다. 두 발로 사다리를 밟고, 한 손으로 지면을 붙잡는다.
척, 척, 척
하수도에 발을 디딘 이연우가 고개를 꺾어 외쳤다.
“내려오십시오!”
“아닙니다.”
“예?”
태양처럼 둥그런 빛이 내려오는 맨홀 입구. 동그란 머리가 쓱 그림자를 드리웠다. 남자가 말했다.
“저는 미끼가 되겠습니다. 혹시라도 못 찾게, 다른 곳으로 유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뚜껑을 닫는다. 초승달 모양처럼 닫히는 입구. 이연우가 빨리 외쳤다.
“잠깐, 잠깐만요! 나이프 주세요!”
멈칫, 닫히다 만 입구. 이연우의 목소리가 틈으로 새어나갔다.
“혹시 걸리면 차선책이라도 하게요!”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나이프가 뚝 떨어졌다. 더러운 물을 튀기면서, 철퍽. 추락한 나이프.
오수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이프를 주운 이연우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됐다. 혹시라도 놈들한테 걸리면 협박하면 돼.’
날붙이에 불과하지만 무기가 있다. 끼인 남자를 인질로 삼을 수 있다.
인질극을 벌여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도 있었고, 여차하면 인질을 담보로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이연우가 나이프를 깁스 위에 올려놓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손전등을 켰다. 어두컴컴한 하수도를 새하얀 불빛이 비춘다.
축축한 습기, 끔찍한 악취, 오물과 이끼. 소름 끼치는 어둠.
하지만 안전하다.
그때 끼인 남자가 이연우를 불렀다.
“저기요….”
“아, 예?”
핸드폰을 돌리니, 끼인 남자가 이연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저 발 끼었는데, 빼주세요. 이거 축축해서 기분이 나빠요….”
하수가 흐르는 골에 발 한쪽이 깊이 박혀 있다. 이연우는 하수를 피해 끼인 남자에게 다가가, 아무렇게나 남자를 흔들었다.
지면 아래에서 이연우와 끼인 남자는 일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
***
그들은 안이했다.
테러리스트의 생각을,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는 광인의 생각을 평범한 사람의 그것으로 예단했다.
빼앗지 못한다면 얌전히 돌아갈 것이라고.
“저거 안 쫓아가?”
“….”
탈취자는 트럭 옆에 서서, 머지않은 거리의 정장 입은 남자를 보았다.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들이 나타나자마자 도망치는 남자. 그는 나 도망치고 있다는 태도를 과장되게 보이면서 인도를 열심히 달렸다.
탈취자는 속지 않았다.
“미끼다.”
“저게?”
“NPC가 없어. 쫓아갈 필요 없어.”
끼인 남자도 없이 혼자 도망치는 꼴이, 딱 봐도 미끼다.
진짜는 근처에 숨겨 뒀거나, 도망을 쳤겠지.
“그럼 내 맘대로 한다?”
운전자가 컨트롤러를 쥐었다. 길을 꽉 막은 자동차 중 가장 외곽의 자동차가 급가속하며 남자를 쳤다. 짤막한 비명. 자동차는 남자의 위를 몇 번이고 앞뒤로 오갔다.
“아하하!”
운전자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탈취자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탈취자 전담부대가 이곳에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얼마 안 남았다.
그리고 이송트럭을 막았을 때부터의 시간.
결정을 내렸다. 탈취자가 눈을 떴다.
“숨겼다면 가까운 곳에. 도망쳤다면 멀리 가지 못했겠지.”
“찾을 거야? 차 근처에는 없던데?”
“아니. 찾을 시간은 없어.”
레드 등급의 의미가, 전담부대의 의미가 그렇다. 오직 파괴와 살해가 최우선. 그를 위해 오직 해당 개체와 수배자만을 대응하는 무장, 훈련, 인원.
탈취자의 전담부대는, 전 지구를 무대로 활동하는 탈취자를 쫓기 위해 비행기보다 빠르게 이동한다.
그의 출현을 보고했으니, 곧 찾아올 터.
“뭐야, 그럼 이대로 돌아가?”
“아니. 세 번째가 있다.”
탈취자는 장난감 총을 들어 올렸다.
빼앗지도, 죽이지도 못했을 때의 목표.
실험. 다른 말로 테러.
끼리릭-
탈취자는 장난감 총의 옆에 있는 회전판을 돌렸다. 미리 열어둔 구멍과 연결되도록 지정된 번호가 12개.
찰칵, 찰칵, 찰칵.
1번, 2번, 3번.
세 개의 푸른 구멍이 뚫렸고, 구멍마다 하나씩 NPC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오류가 현실을 침식한다.
깨진 여자와 반복하는 남자가 접촉했다. 주변의 도로가 고장난 그래픽처럼 깨졌다.
깨진 보도블록을 떨어지는 남자가 관통했다. 멀리 있는 사물이 무중력공간에 던져진 것처럼 떠올랐다.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는 오류가, 지면 아래로, 끼인 남자가 있는 장소까지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