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왔다.”
그 목소리는 어두운 하수도 벽에 부딪쳐 음산하게 메아리쳤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끼인 남자는 고개를 뒤로 꺾어 콘크리트 천장을 올려봤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이연우는 핸드폰을 세워, 끼인 남자에게 핸드폰 손전등을 비췄다.
“예? 뭐가 와요?”
하얀 조명을 정면에서 받은 끼인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손전등 빛을 하얗게 반사하는 눈동자가 이연우를 본다.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왼손을 들었다.
“저 같은 거요. 하나, 둘, 셋. 나까지 넷이네?”
엄지손가락부터 하나씩 접은 손은 약속하듯 새끼손가락만 펴져 있다.
“그게 무슨 말-”
이연우는 무심코 끼인 남자를 향해 다가서다가, 말을 멈췄다. 오른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단단히 뿌리내린 것처럼, 발이 못이 되어 박힌 것처럼.
꿀꺽
침을 삼킨 이연우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정면을 비추던 핸드폰 조명이 따라서 내려왔다. 그곳에는 발이 없었다. 오직 종아리뿐.
복숭아뼈 아래로, 콘크리트를 뚫고 박혀 있다.
“어, 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끼인 남자가 음울하게 말한다.
“괜찮아요. 세상이 나처럼 망가지는 거니까. 금방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지금. 당신 같은 것이 왔다는 말 맞습니까?”
이상한 사고 앞에서, 이연우는 침착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몇 번 겪은바, 침착을 잃으면 무조건 죽기 때문에.
‘NPC가 넷. 4레벨. 오류가 도시 크기로 확산-’
퉁-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돌연 몸이 천장을 향해 튕겨 나간다.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콘크리트 내부에 조명이 있을 리 없으니까.
콘크리트를 관통한 순간 보이는 것은 맨홀의 수직통로. 디딤대가 연달아 박혀 있는 벽.
이연우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 사다리를 붙잡았다. 하나뿐인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허공으로 날아가 빙글빙들 돌면서, 그림자가 요란하게 흔들린다.
“큭!”
한 손으로 매달린 몸이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더러운 벽에 강하게 부딪쳤다. 신음을 삼킨 이연우는 두 발을 마구 내저어, 사다리부터 찾아 디뎠다. 가까스로 사다리에 안착한 이연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더러움이나 차에 치이고 벽에 부딪힌 고통 따위보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이 있었다.
빙글빙글-
허공에 떠오른 핸드폰이 튕겨진 동전처럼 돌며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꼭 우주공간처럼.
사태가 명확하다.
이연우가 벽에 머리를 쿵 박았다.
‘좆됐다. 어떻게, 어떻게 하지? 올라가야 하나? 여기 있어야 하나?’
아래에 있다가 또 튕겨 나가면? 그래서 콘크리트 내부에서 멈춘다면? 꼼짝없이 죽는다.
‘올라가도 똑같이 위험해.’
지상에도 건물이나 자동차나 가로수나 많다. 하다못해 하늘로 날아갔다가 뚝 떨어져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
잠깐, 사다리 중간에서 이연우는 위와 아래를 훑어보았다. 핸드폰의 회전을 따라, 물러났다가 몰려오기를 반복하는 어둠.
이연우는 결정했다.
‘차선책. 끼인 남자라도 죽이면 오류가 줄어들 거야.’
그때였다. 발아래에서 척척척, 끼인 남자가 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연우는 아래를 내려보았다.
끼인 남자가 한 손에 언제 떨어뜨렸는지 모를 나이프를 쥐고 올라온다.
“씹.”
주르륵, 땀이 흘렀다.
‘끼인 남자가 죽어줄까?’
나쁜 자세로 문짝에 끼어 있었다고 허리 통증을 호소하던 끼인 남자다. 리스폰한다지만, 고통까지 없지는 않을 터. 심지어 나이프까지 들었는데?
뚝, 땀방울이 아래로 떨어진다.
땀방울을 이마에 맞은 끼인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많이 놀라셨어요? 저는 일상인데.”
“아니, 그게.”
“하긴, 이런 걸 겪으면 그렇겠죠. 다른 사람들도요. 우리야 죽어도 살아난다지만, 다른 사람은 안 그렇잖아요.”
“그, 그렇죠. 죽으면 끝이니까.”
대화하는 동안 이연우는 나이프로 가는 눈길을 가까스로 멈춰 세웠다. 괜히 너를 죽이려고 한다는 뜻을 보일 수가 없으니까.
‘어떻게 빼앗지? 어떻게 해야, 죽일 수 있지?’
이연우가 그런 생각에 골몰하는 동안, 끼인 남자는 넋두리처럼 말을 뱉었다.
“사실 저도 이런 제가 싫어요. 왜 세상을 망가뜨리게 만들어진 걸까요? 회사에서 저희를 핵폭탄처럼 가둬두는 것도 이해해요. 그런데 말이에요.”
끼인 남자가 나이프를 고쳐 잡는다. 핸드폰이 위로 돌아가며 끼인 남자가 어둠 속에 잠겼다.
“그렇다고 저희를 함부로 막 대하면 안 되잖아요? 밥도 안 주고, 이상한 실험만 하고. 나도 사람인데. 그러니까.”
핸드폰이 반 바퀴 돌아, 하얀 조명이 다시 끼인 남자를 내리쬔다.
“이름도 모르는 회사 직원님. 살아남아서 증언해주세요. 끼인 남자가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고. 그러니까 다음에 만나면 사람으로 대해달라고요.”
푹-!
나이프가 목을 찔렀다. 끼인 남자의 동공이 탁하게 풀렸다.
다음 순간, 핸드폰이 한 바퀴 돌았고, 한차례 어두워졌다가 밝아진 사다리는 사람 없이 텅 비었다. 그저 댕그렁 떨어진 나이프의 소리만 메아리쳤다.
“….”
이연우는 말을 잃고, 석상처럼 우두커니 아래를 내려보았다. 끼인 남자가 있던 자리를.
‘…이게 저 사람한테도 이득이야. 어차피 죽었다 살아나. 한 번 죽어서 회사에 처우 개선을 요구….’
아무리 그래도 죽는 게 안 무서울까. 목을 칼로 쑤시는데 아프지 않을 리가 없지 않나.
‘나였다면 안 그랬어. 오류가 번지든 말든 나는 안 죽으니까. 사서 아플 이유가 없어.’
사다리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연우는 저도 모르게 위를 보았다. 다른 NPC가, 오류를 품은 사람이 있을 지상을.
‘…한 명 없어진 걸로는 부족해. 더 줄여야 해. 내가 살려면. 이게 맞아.’
지금도 허공을 부유하는 핸드폰이 증거다. 아직 오류의 범위다. 이연우는 혼자 중얼거리며,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척, 척, 척
이연우는 사다리 끝에 도달해, 맨홀 뚜껑을 이마로 밀었다. 툭 쳤을 뿐인데, 맨홀 뚜껑이 붕 떠오른다.
이연우는 지상으로 올라왔다.
***
난장판이다.
물리엔진이 고장 난 게임이다.
지면에 발을 디딘 이연우의 첫인상은 그랬다. 꼭 망겜에 들어온 느낌이라고.
자동차가 붕붕 날아다닌다. 때로는 순간이동하듯 위치가 순식간에 변했고, 고속으로 위이잉 돌기도 했다. 그러다가 건물이나 사람한테 부딪쳐 사고를 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또한 곳곳에 보이는 것들은, 깨진 그래픽처럼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거기에 그림자 없이 움직이는 것들까지.
두둥실-
이연우의 몸도 천천히 떠오른다. 그는 자동차를 뚫고 자란 가로수를 붙잡아 몸을 고정한 후, 멍한 눈으로 거리를 둘러보았다.
‘저 넷, 아니, 다섯.’
난장판 속에서도 이질적인 존재. 한눈에 보인다.
손발이 기괴하게 확대되고 축소되며, 이목구비도 괴물처럼 계속 변하는 여자.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뛰는 남자.
하늘에서 떨어져 지면을 뚫고 추락하다가, 다시 하늘에서 떨어지는 남자.
그리고, 수배자.
“이런 말은 없었잖아! 우리까지 휘말렸어! 어쩔 거야!”
“나도 몰랐다! 이렇게 빨리 확대될 줄은!”
게임기 컨트롤러를 든 꼬마가 열심히 허공을 헤엄쳤다. 머지않은 거리에서 장난감 총을 든 남자도 부지런히 달렸다.
그들의 시선 끝에 있는 것은 도로 중앙에 뚫려 있는 푸른 구멍.
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다.
“악! 또 돌아갔어!”
“빌어먹을!”
처음 위치로 돌아가는가 하면, 돌연 튕겨 나가 구멍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처럼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둘을 이연우는 당황한 눈으로 보았다.
‘자폭 테러리스트야?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이연우의 근처로 날아온 탈취자는 주변을 살피지도 않았다. 미친 사람처럼 악을 쓰며, 총을 사방으로 휘둘러대며 방아쇠를 당겼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러다가 전담부대가 온단 말이다!”
찰칵찰칵찰칵찰칵-
난사에 가까운 사격. 이연우가 움찔 물러섰지만, 총구가 향한 방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정확히는, 구멍이 제대로 뚫리지 않았다.
총이 겨눈 곳과는 완전히 다른 허공. 그것도 몇 초가 지난 뒤에야 뚫렸으며, 그마저도 이상하게 깨져나간 모양이다.
그들이 지닌 이상異常마저 오류에 침식당했다. 운전자도 마찬가지. 뭔가 운전을 시도해도, 자동차가 멋대로 날아가고, 지면이나 건물 따위에 처박힌다.
악명 높은 수배자마저 속수무책인 상황.
“….”
이연우는 힘 빠진 눈으로 거리를 둘러보았다. 오류에 완전히 침식된 거리. 한껏 폈던 어깨와 등이 구부러졌고, 근육이 느슨하게 풀렸다.
기세 좋게, 뭐든 하겠다고 올라온 건 좋다. 다 좋은데.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애초에 이상개체에게 접근할 수가 없다. 저 수배자마저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데.
‘그냥 맨홀 아래로 돌아갈까?’
자동차나 가로수 따위가 날아다니는 도로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이연우는 맨홀을 내려보았다. 어두컴컴한 수직통로와 사다리.
고작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끼인 남자가,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목소리….’
탈취자가 욕설을 뱉고, 운전자가 앳된 목소리로 투덜대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
물리 법칙이 고장 난 세상에서도 목소리는 문제없이 서로에게 전달된다. 이연우는 눈을 딱 감고, 숨을 들이마셨다.
‘오류 NPC 처리. 그들이 스스로 끼인 남자처럼 행동하게 만들면 돼.’
이연우는 그들을 설득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