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떻게 설득하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자신감 있게 숨을 잔뜩 들이마신 것이 무색하게, 이연우는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입은 꾹 다물렸고, 입 안에서 온갖 말이 맴돌다가 사라졌다.
‘죽어달라고? 세상을 위해 희생해달라고? 리스폰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나 같아도 안 할 거 같은데.’
애초에 말을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다. 평범한 인사치레나 사무적인 대화는 몰라도, 상대를 설득할 언변은 없다. 있더라도 공시생으로 살며 다 사라졌다.
하물며 중대한 상황에서, 죽어달라고 설득해야 하는데.
결국 말을 생각하는 것보다 숨이 차오르는 게 먼저였다. 이연우의 입술이 열리고,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요….”
아무도 듣지 않는 목소리다. NPC도, 수배자도 자기 할 일만 한다. 숨을 들이켠 이연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저기요! 저기요!”
“….”
탈취자가 반응했다. 이연우 옆으로 튕겨 나온 탈취자는 빠르게 이연우를 훑어보았다.
더러운 옷과 오수에 젖은 신발. 깁스한 손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식간에 지나간 시선.
“일반인?”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듯, 다시 푸른 구멍을 향해 달린다. 그 뒤통수를 이연우는 붙잡지 않았다. 지금은 수배자가 문제가 아니다.
“거기! NPC 여러분! 제 말 좀 들어주세요!”
NPC.
그 단어에 모두가 반응을 보였다.
이연우가 회사원임을 깨닫고는 뒤늦게 경계하는 수배자. 총구와 컨트롤러를 바짝 쥔다.
NPC는 고개를 돌려 이연우를 보았다. 깨진 여자의 툭 튀어나온 눈, 다른 곳을 보다 이연우를 보기를 반복하는 남자의 눈. 하늘에서 떨어지는 남자의 눈.
죽어달라고 설득해야 하는 사람의 눈이 셋.
이연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도무지 설득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머리가 새하얗게 질렸다. 그래서 솔직하게, 떠오르는 대로 말을 뱉기로 했다.
고함이 터져 나온다.
“끼인 남자는 자살했습니다! 여러분도 죽어주십시오!”
잠깐 침묵. 잠시 후 깨진 여자가 입을 쩍 벌렸다. 아귀처럼 찢어진 입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쏘아졌다.
“싫어!”
“그게,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이 회사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맞지.”
반복하는 남자가 손을 올려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손짓이 반복된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불 하나 없는 보호방에 가둬놓고, 굶어도 안 죽는다고 밥도 안 주고, 실험이나 하고. 뭘 말해도 이상異常이 말한다고 듣는 척도 안 하고.”
“아.”
이연우는 짧은 탄식을 뱉었다.
‘미친 회사 새끼들.’
회사의 말이라면 일단 악감정부터 가지는 게 당연한 처우. 끼인 남자가 남달랐다. 저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쐐기를 박듯, 깨진 여자가 비명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다 죽어버려! 회사는 더 죽어버려! 너도!”
깨진 여자가 촉수처럼 늘어난 팔을 휘둘러, 주변을 떠도는 자동차를 후려친다. 얻어맞은 풍선처럼, 자동차는 둥둥 날아오다가 멈춰서는 하늘로 올라갔다.
“죽어! 죽어!”
깨진 여자가 씩씩대며 몇 번 더 자동차와 가로수를 때리지만, 이연우까지 닿지 않는다.
이연우는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처우 개선하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이상사태를 막기 위해 희생한다면, 제가 회사에 보고하고 증언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위에-”
“네가 뭔데?”
떨어지는 남자가 짧게 묻고는 지면 아래로 사라진다.
이연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사라진 지면을 내려봤다. 조사원이라고 답하지 못했다. 조사원이 건의를 해봐야 듣는 척이라도 할까.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말, 속으로 웅얼거릴 뿐.
반복하는 남자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도 딱히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 그런데 내가 아프게 죽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오류 범위 밖으로만 나가면 다시 축소될 거야. 그러니까 나는 내버려 둬. 알아서 할 거니까.”
저기까지 달려가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는 남자. 무의미했다.
이어, 떨어지는 남자가 빠르게 말을 뱉었다.
“나는어차피못죽어물리적인상호작용이거의일어나지않아서-”
지면을 뚫고 떨어진다. 이연우는 잠시 그곳을 보다가, 마지막 남은 NPC를 보았다.
깨진 여자. 뾰족한 발끝으로 도로를 콩콩 찍다가, 보기도 싫다는 듯 훽 고개를 돌렸다.
‘진짜 망했다.’
한 명을 설득하지 못했다. 딱 한 명만 어떻게 설득해도, 위험레벨이 2로, 그 안개 속에서 본 괴물 수준으로 떨어질 텐데.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는 그때였다.
가만히 이연우를 바라보던 탈취자가 나섰다. 오류만 줄어들면 도주할 수 있다. 그가 눈을 빛내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다. 너희가 죽는 편이 너희에게도 좋아.”
“아픈 건 싫다니까.”
반복하는 남자가 대충 답하지만, 이연우를 대할 때보다는 호의가 섞인 목소리였다. 그만이 아니라 다른 둘도 훨씬 집중했다.
“내가 너희를 빼내 줬으니까, 일단 들어.”
탈취자가 총을 들어 주변을 한 번 쭉 가리켰다. 멀리서 봐도 알 정도로 망가진 세상.
“이 정도 규모 이상사태다. 회사에서 모를 리가 없지. 내 전담부대만이 아니라, 너희를 잡기 위한 부대가 올 거다. 그 끔찍한 방으로 바로 돌아가고 싶나?”
“그건 싫긴 한대.”
반복하는 남자가 뛰기를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깨진 여자도 탈취자를 힐끔 보았다.
모인 시선 앞에서 탈취자는 장난감 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는 시늉을 했다.
“차라리 죽어서 잠깐의 자유라도 더 얻는 편이 낫다. 어디 오지에서 리스폰하기라도 한다면? 아주 좋겠군.”
“음.”
반복하는 남자가 혹한 기색으로 고민한다. 이때다 싶어, 이연우가 냉큼 말을 더했다.
“아니죠. 잠깐의 자유를 얻기 위해 죽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희생했다가 덤으로 자유를 얻은 겁니다. 제 말이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상부에도 오류를 줄이기 위해 희생했다고 보고하겠습니다.”
수배자와 조사원의 연속된 설득에 반복하는 남자가 짙은 한숨을 뱉었다.
“…그래서 어떻게 죽으라고? 무기는 줘야지.”
됐다. 이연우는 빠르게 고개를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무기, 무기로 삼을 것.
때마침, 맨홀 위로 나이프가 둥실 떠 올랐다. 끼인 남자가 쓰고, 떨어뜨린 나이프. 이연우는 가로수를 박차 재빨리 맨홀로 날아가 나이프를 잡아채고는, 잠깐 멈칫했다.
‘이걸 어떻게 전달하지?’
반복하는 남자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할 자신이 없다. 이연우뿐만이 아니라, 다들 뭐라 말하지 못했다. 이동이 그렇게 쉬우면, 수배자부터 진작에 도망쳤다.
‘운에 맡긴다.’
이연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전력으로 나이프를 던졌다.
쐐애애액-
손을 떠난 나이프가 허공을 가른다. 이연우의 간절한 눈과 탈취자의 급박한 눈이 나이프의 궤적을 뒤쫓았다.
“제발, 아무 문제 없이. 제발.”
나이프는, 허공에서 배를 뒤집는 자동차를 스쳐 지나가고, 난데없이 나타난 콜라 캔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촉수괴물처럼 깨진 나무가 흔드는 촉수 다발 사이를 지나. 마침내 반복하는 남자의 손에 닿는다.
탁!
반복하는 남자가 나이프를 내려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필 나이프. 진짜 아플 텐데.”
그가 시선을 돌려, 이연우와 탈취자와 운전자, 끝으로 떨어지는 남자와 깨진 여자를 보았다. 그가 말했다.
“회사원. 약속은 지켜. 되든 안 되든 말하라고. 우리들, 사람으로 대해 달라고.”
“예. 꼭 말한 대로 보고하겠습니다.”
그 대답에 반복하는 남자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결의를 품은 눈동자. 꽉 쥔 나이프.
반복하는 남자가 목을 찔렀다. 반복하는 남자가 목을 찔렀다. 반복하는 남자가 목을 찔렀다. 반복하는 남자가 목을 찔렀다. 반복하는 남자가 목을 찔렀다. 반복하는 남자가 목을 찔렀다. 반복하는 남자가 목을 찔렀다.
푹- 푹- 푹- 푹- 푹-
칼질이 끝나지 않는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비명은 반복에 포함되지 않은 행동이라. 그저 잔뜩 확장된 동공으로, 그가 느끼는 끔찍한 고통을 그대로 내비칠 뿐.
“….”
그 눈을 마주했다. 핏발 선 흰자, 경련하듯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동공. 이연우는 약속은 꼭 지키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푹-!
다음 순간, 반복하는 남자가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졌다.
이제 남은 오류 NPC는 둘.
오류가 축소된다. 거리 범위에서, 자그마한 공터나 좁은 운동장 크기로.
오류의 강도 역시 약해졌다.
쾅! 콰아앙! 쾅!
하늘을 떠다니던 자동차와 가로수 따위가 소나기가 되어 쏟아져 내린다. 계단 몇 칸 높이에서 떨어져 내린 이연우는 몸을 웅크리고, 하늘을 올려봤다.
다행히 이연우의 머리 위에는 떨어질 만한 것이 없다. 럭비공처럼 튀어 다니는 콜라 캔이나 플라스틱 컵에 머리를 얻어맞는 게 전부. 이연우가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하, 하.”
위험레벨 2도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기껏해야 안개 괴물 수준이다. 훨씬 안전하지 않나.
***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두 수배자는 진작에 도망쳤다. 오류가 가라앉기 무섭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푸른 구멍을 뚫고는 몸을 내던졌다.
하지만 오류 NPC 둘이 모여 있기에, 아직 남은 오류.
통- 통- 통- 콱-
이연우는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거리를 보았다. 찌그러지고 박살이 난 차량과 가로수.
사방에 널린 쓰레기같이 자잘한 물건, 콜라 캔 따위가 럭비공처럼 튀어 다니다가, 가로수나 지면에 푹 박힌다. 잘못 당하면 크게 다치다 못해 여러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오류.
이를 해결해야 한다.
“….”
이연우는 남은 오류 NPC를 보았다.
느긋한 표정으로 끝도 없이 떨어지는 남자. 그리고, 잠깐 보았을 뿐이지만 성인 여성보다는 어린 여자아이 느낌인 깨진 여자.
‘깨진 여자를 설득해야 해. 떨어지는 남자는 뭐 상호작용이 안 된다니까.’
하필이면 가장 적대적인 NPC. 그나마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해주는 탈취자도 없다.
하지만 이연우는 편한 목소리로 깨진 여자에게 말했다.
“밥 먹으러 갈래?”
“…밥?”
“밥이 싫으면 빵도 좋고. 간식도 좋고.”
“….”
깨진 여자가 풍선처럼 부푼 두 눈으로 이연우를 본다. 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죽이지 않아도 돼. 죽으라고 설득하지 않아도 돼. 그냥, 이 오류의 범위 밖으로만 가면 끝이야.’
깨진 여자가 망설이다가, 떨어지는 남자를 보았다. 잠깐의 시선 교환. 떨어지는 남자는 빠르게 말했다.
“나는밥안먹어도돼어차피통과해서못먹-”
“…싫어. 거짓말이야.”
깨진 여자가 불신 가득한 목소리로, 사실 외형은 워낙 그로테스크하고 과장된 괴물의 형상이라 그 감정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연우에게 말했다.
“거짓말! 나를 다른 사람한테 못 보여주잖아!”
“아니야.”
이연우는 작게 웃으며 옷 안주머니에 든 기억소거제를 꺼냈다. 그 난리통 속에서도 깨지지 않은 기억소거제.
“여차하면 기억소거제 먹이면 되지. 나는 또 보급받으면 되니까 문제없어.”
“….”
믿어보기로 했을까. 망설이던 깨진 여자가 말없이 이연우의 곁으로 다가온다. 이연우는 깨진 여자를 이끌고, 거리 저편으로, 오류가 없는 세상으로 걸었다. 거리 너머로 사라지는 둘.
떨어지는 남자만이 혼자 남은 거리.
“아-. 나도 음식 먹어보고 싶-”
떨어지는 남자가 몇 번이나 지면을 관통했을까.
곧, 남아 있던 오류마저 가라앉았다. 퉁퉁 튀어 다니던 물건들이 거리에 내려앉고, 자잘하게 끼었던 것들이 현대예술처럼 곳곳에 박힌 채로 남는다.
그렇게 현실로 나온 오류가 고쳐졌다.
***
깨진 여자를 데리고 오류의 범위를 벗어난 순간이었다. 오류가 복구되는 하늘에서, 자그마한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떨어져, 이연우의 머리를 친다.
“…뭐야?”
이연우가 고개를 돌리자, 그의 앞에 떨어진 육면 주사위가 혼자 빙그르르 돌았다. 이연우가 멍하니 보는 동안, 춤을 추던 주사위가 멈추더니 한 면을 제일 위에 내보였다.
대성공!
“뭔데.”
그와 동시에 주사위가 현실에서 사라진다. 대신 이연우의 정신 한구석에 나타난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주사위. 이연우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건 또 뭔데.’
주사위가 떨어졌을 하늘을 보지만, 그곳에는 평소와 같은 하늘이 있을 뿐이다.
걸음을 멈춘 이연우를 깨진 여자가 옆에서 올려봤다.
“…왜? 오류 처리했으니까 죽이게? 역시 회사는-”
“아니, 그게 아니라. 잠깐만, 잠깐만.”
깨진 여자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정신으로 느껴지는 주사위. 느껴보니 여섯 개의 면에는 대성공과 대실패, 성공과 실패, 꽝과 꽝이 있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異常인 주사위.
‘다 끝났잖아!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왜!’
이연우가 머리를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