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 NPC의 처우 개선에 관하여.]
우리가 오류 NPC의 목에 폭탄 목걸이를 채우지 않은 이유는, 혹여나 그것들이 폭탄 목걸이를 악용하여, 탈출의 수단으로 삼을까 우려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오류 확산 사태에서 보았듯이, 그것들이 회사에 협조할 의향이 있다면, 실행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 대가로 그것들을 사람처럼 대해주어야겠지만요.
물론, 오류 NPC는 이상異常입니다.
지금 그 모습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나타난 존재가 어찌 사람이겠습니까.
회사의 철칙, 이상異常이 아무리 사람답게 행동해도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원칙적으로, 기존의 처우가 틀리지는 않았죠.
하지만 예외적으로, 사람다운 대우가 이상異常의 관리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 또한 회사의 방침입니다.
오류 NPC의 처우를 개선하겠습니다.
자해 수단이 없는 푹신한 보호실에서 사람이 사는 방으로 옮기겠습니다. 회사원이 먹는 식사를 제공하고, 다소의 취미생활도 용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끼인 남자와 반복하는 남자는 찾기부터 해야겠죠.
***
반장의 계정을 빌려 열람한 보고서.
‘다행이다. 잘 됐어.’
이연우는 보고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은 후, 나직한 숨을 뱉었다. 끼인 남자의 희생은 보답을 받았다. 회사가 방침을 바꿀까, 더 구속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해소된다.
회사와 끼인 남자가 다시 대면하는 날이 온다면, 그가 바라던 대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것이다.
이연우가 의자 등받이에 천천히 등을 기댔다. 오래된 의자가 삐걱이는 소리.
끼이익-
그때, 데스크 옆자리에 있던 유지유가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슬쩍 이연우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거, 연우 씨가 이번에 겪은 일이죠?”
“예? 아.”
이연우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핸드폰에 두 눈을 고정했다. 자그마한 화면 안에서는 기자가 말을 하고 있었는데, 장소가 얼마 전 이연우가 서 있던 오류의 중심지였다.
기자가 손으로 난장판이 된 거리를 가리키며 걷고, 카메라가 거리를 넓게 잡는다.
[저는 지금 청해시에서 일어난 연쇄폭발사고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입니다.]
“아니, 이게 뉴스가.”
심지어 공중파다. 회사에서 알아서 막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뉴스까지 나오다니.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은 이연우가 당황하여 유지유를 보았지만, 유지유는 계속 보라고 턱짓을 할 뿐이었다.
[유조차와 LPG 가스통을 배달하던 차량 다섯 대가 연쇄추돌로 동시에 폭발하며, 가스 배관까지 건드려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한편 사고의 원인은 촉법소년의 무면허운전과 흡연으로 밝혀져-]
이연우가 입을 쩍 벌렸다. 눈까지 크게 떠졌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유조차, 그럴 수 있다. 가스 폭발도 그럴 수 있다. 촉법소년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걸 전부 섞는다고?
“이걸 사람들이 믿습니까? 이건 너무 말이 안 되잖아요.”
“대부분은 그러려니 넘어가죠. 못 믿는 사람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어요.”
유지유는 동영상을 멈춘 뒤, 관련된 동영상에서 다른 뉴스를 찾아 재생했다.
노인을 인터뷰하는 뉴스.
[김춘덕 : 아무것도 기억나지가 않어. 머리 속이, 어, 깜깜하다니까.]
[참사를 보았을 청해시의 시민들은 충격성 기억상실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충격성 기억상실.
이연우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이전부터 뉴스에서 충격성 기억상실이란 단어를 자주 보았다.
연쇄추돌사고, 묻지마 살인, 폭발사고, 건물붕괴사고, 사고, 사고, 수많은 사고에서.
깨달음이 스친다. 이연우가 말했다.
“충격성 기억상실이 무슨 정신적 충격 그런 게 아니라 기억소거제입니까?”
“그쵸. 안개 형태로 뿌리고, 상수도에 뿌리고, 하여튼 이상사건 크게 터지면 잔뜩 쏟아붓는다고 들었어요.”
유지유가 덤덤하게 핸드폰을 도로 가져갔다. 그녀의 손톱이 화면을 리듬감 있게 톡톡 쳤다.
“그리고, 정보공작도 뭐 엄청 한다는데. 아니, 이걸 말하려고 한 게 아닌데.”
핸드폰을 데스크에 놓은 유지유가, 슬그머니 의자를 뒤로 빼며 이연우에게서 멀어졌다. 이연우가 멀뚱히 바라보니, 유지유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연우를 훑어보았다.
“정말 안 다치고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이연우 씨 정말 저주라도 받은 거 아니에요? 어떻게 사람이 나갔다 하면.”
더 말하면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유지유가 말을 끊었지만, 이연우도 뒷말을 뻔히 알았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다.
이연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뒤통수를 콩 찍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자격시험을 시작으로 뭔가가 아주 크게 잘못된 느낌이다.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인 느낌.
‘진짜 무당이라도….’
문득 이연우가 고개를 데스크 위로 쑥 빼며, 크게 말했다.
“반장님. 혹시 아는 사람 중에 용한 무당 없으십니까?”
“신입아.”
반장은 머리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그는 다소 어이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런 무당이 있으면 이상개체다. 다 회사에서 포획했겠지. 그러니까 엄한 데 혹해서 돈 버리는 짓은 하지 마라. 부적 사고, 굿하고 그런 거.”
“…그럼 신부님이나 스님은 없습니까? 효과 없어도 심리적으로 뭔가 위안될만한 사람이요.”
반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이연우와 시선을 마주했다. 눈이 탁한 게 아주 지쳐 보인다.
하긴 짧은 시간에 마주한 이상異常의 숫자만 해도…. 오류만 해도 위험레벨 4였다는데….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게 용하지.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이연우의 퀭한 눈을, 반장은 피했다.
“내가 아는 신부가 한 명 있긴 해. 그런데 네가 기대하는 그런 신부가 아니야.”
이연우가 실망하여 데스크 안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직 요청사항이 남았다.
“그럼 반장님. 무장이라도 어떻게 보급 못 받습니까? 권총이라도.”
사실 무당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제대로 된 무기라도 하나 들면 마음이 아주 편해질 것이다. 같은 생각인지 유지유까지 합세하여, 반장을 바라보았다.
“반장님, 나이프만 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권총이라도 있었으면 안개 괴물도 안 다치고-”
이번에도 반장은 고개를 저었다.
“신입아. 지유야. 우리나라가 무슨 나라냐.”
“예?”
“민간인은 총기 못 가지는 나라다. 우리는 민간인이고. 저기 특전대에서도 총 든 놈들은, 서류상은 국방부 소속이야. 진짜 군인이라고.”
말하던 반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는 무슨 일을 떠올렸는지, 혼자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보안 근무 서는 애들이 왜 그딴 테이저 건을 쓰는데? 외국 애들은 다 총 들어! 그그, 염병할 뱀 새끼! 한 번 쏘면 끝이야! 그딴 걸 총이라고, 지랄!”
이연우와 유지유는 잠깐 서로를 마주 봤다가, 고개를 숙이고 자기 할 일에 집중했다.
아무리 답답하고 화가 나도, 상대가 더 극렬하게 반응하면 힘이 빠지는 법이다. 그저 속으로 한숨만 푹푹 쉴 뿐.
이제는 아주 발까지 쾅쾅 구르는 반장을 뒤로하고, 이연우는 데스크를 둘러봤다.
‘…내가 핸드폰을 어디에 뒀지?’
분명히 책상 어디에 뒀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이연우는 데스크 이곳저곳을 뒤적이다가, 찾기를 그만두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주사위의 형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핸드폰이 어딨을까?’
데구르르-
의지를 품고 강하게 생각하기 무섭게, 정신 속에서 혼자 구르는 주사위. 곧 주사위가 멈춘다.
꽝!
아무 변화도 없다. 이연우는 다시 생각했다.
‘다시. 핸드폰.’
데구르르-
성공!
자연스럽게, 핸드폰이 보였다. 모니터 밑으로 깊게 들어간 핸드폰. 이연우는 핸드폰을 꺼내며,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주사위. 나쁘지는 않은데.’
몇 번 실험해본 결과, 나름 쓸모가 있다.
대부분은 꽝, 가끔 성공과 실패.
양날의 검이지만, 소소하게 쓴다면 유용했다. 이를테면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나 까먹은 비밀번호를 떠올릴 때.
‘대성공과 대실패는 아직 겪어본 적이 없지만, 거의 안 나오니까 막 걱정할 필요는-’
쾅-!
문짝이 부서져라 이상조사반의 문이 거칠게 열려, 벽에 부딪쳤다. 이연우도, 유지유도, 아직도 화를 내고 있는 반장도 말을 멈추고, 문을 보았다.
허억- 허억-
그곳에는 땀으로 흠뻑 젖어, 숨을 몰아쉬는 최재민이 있었다. 최재민은 호흡도 고르지 못하고,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제 친구, 친구가!”
“학생아. 진정부터 하고.”
반장이 언제 흥분했냐는 듯 말하지만, 최재민은 마지막 숨을 짜내듯, 처절하게 소리쳤다.
“친구의 부모가 없어졌어요!”
“…뭐? 그, 뭐야. 실종?”
“아뇨! 아예 없어요! 부모가 없어요!”
최재민이 달려와, 반장 앞에 섰다. 최재민은 땀을 식힐 겨를도 없이, 횡설수설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
최재민이 보는 세상은 남과 다르다.
부모 있는 것을 보면, 머리 위로 글씨가 보였다.
[부 : 최동현(상태 : 사망)]
[모 : 이진(상태 : 건강)]
이런 식으로.
그렇기에, 주말이 지나고 찾아온 월요일,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알아볼 수 있었다.
“잼민이! 안녕!”
“어…. 어, 안녕.”
그의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 백아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재민을 올려본다. 백아윤이 눈을 깜빡였다.
“밤 샜어? 왜 그렇게 힘이 없어?”
“그게, 일찍, 잤는데….”
최재민은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뻣뻣하게 서서, 시선을 조금 위로 올렸다. 백아윤의 머리 위.
[부 : ]
[모 : ]
공란이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사람이면, 이럴 수가 없다.
에어컨도 켜지 않은 교실. 창밖에서 뜨거운 여름날의 바람이 불어오지만, 등골을 타고 한기가 기어오른다.
최재민은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어, 핸드폰부터 잡았다.
‘이상異常이야. 이상異常이라고.’
백아윤처럼 생겨서 백아윤처럼 행동하지만, 그의 눈에는 보인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지유 누나, 연우 형, 반장님. 아무나 전화해서-’
핸드폰을 꺼내는 순간.
드르륵-
교실 문이 열렸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온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핸드폰 제출하자. 전원 끄고, 공기계 내지 말고, 안 가져왔다고 거짓말하지 말고. 특히 너 재민이. 핸드폰 들고 있는 거 다 봤어.”
“선생님, 저, 전화 한 번만-”
“어, 안 돼. 지금까지 뭐하고 인제 와서.”
“선생님! 저는 오늘 진짜 놓고 왔어요!”
백아윤이 냉큼 말한다. 최재민은 전화할 방법을 생각하다 말고, 백아윤을 내려봤다. 이제서야 닿는 생각이 있다.
‘아윤이. 진짜 아윤이는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어어, 하는 사이 핸드폰은 수거되었고, 수업이 시작됐다. 최재민은 수업에 조금도 집중하지 못하고, 백아윤만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