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28화 (28/194)

학교에서의 시간은 금방 지났다.

사람을 재우는 이상異常이 아닐까, 의심되는 선생님의 수업 동안에도 한 번을 졸지를 않았는데도, 백아윤만 힐끔대다 보니 하교 시간이 왔다.

핸드폰을 돌려준 선생님이 짧게 말했다.

“뭐 없다. 끝. 가라.”

우르르-

학생들이 한 번에 일어나며, 요란한 소음이 교실을 가득 채운다. 의자가 동시에 밀려나는 소리, 급하게 뛰어나가는 학생의 발소리, 삼삼오오 모인 학생이 떠드는 소리….

최재민은 끝까지 앉아서 백아윤을 관찰했다.

“….”

자리에서 일어난 백아윤이 가방을 등에 메고는, 최재민을 보았다. 최재민이 놀라 움찔 시선을 돌렸지만, 늦었다. 백아윤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잼민이 오늘 이상하네?”

“내, 내가? 아닌데?”

‘진짜 이상한 건….’

네 머리 위라고, 뒷말을 꿀꺽 삼킨 최재민이 뒤늦게 어색한 손짓으로 노트와 볼펜 따위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백아윤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경쾌하게 발을 내디뎠다.

“그럼 내일 봐!”

“어, 어. 내일.”

친구들과 떠들며 교실 문을 나서는 백아윤. 그 뒤통수를 멍하니 본다.

여전히 머리 위에 떠 있는 글자.

[부 : ]

[모 : ]

‘하지만….’

으으-

최재민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의문이 들었다. 수업하는 내내 지켜봤지만 이상한 점을 못 느꼈다. 평소와 같은 백아윤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몸짓이나, 졸 때 머리를 꾸벅거리는 리듬감이나. 때때로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나, 전부 똑같다.

이쯤 되면 의심이 들었다.

‘아윤이가 이상異常이 아닌가? 아윤이네 부모님이 이상異常에 당한 건가?’

존재를 지우는 지우개 같은 것이 있어, 부모님의 존재를 지웠다면 충분히 이렇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아윤이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스윽, 누군가 머리에 손을 얹는다.

“잼민이, 뭐하냐?”

친구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최재민은 재빠르게 가방을 한쪽 어깨에만 걸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고.”

“피방 고?”

“아냐, 빨리 들어가야 해.”

“한 판만 돌리고 가-”

친구가 뭐라 말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최재민은 달렸다. 학교 복도를, 계단을, 운동장을. 버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도로를.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확실한 도움을 받을 곳을 향해.

‘빨리 조사반으로!’

***

“이렇게 된 거예요. 어떻게 하면 돼요? 뭘 해야 해요? 아윤이는 문제없는 거죠?”

최재민이 숨도 쉬지 않고 질문을 쏟아내며, 반장을 바라보았다. 희망을 원하는 눈빛.

이연우와 유지유도 최재민처럼 반장을 보았다. 듣는 것만으로는 그들도 알 수가 없었다. 긴 경력의 반장님이라면 뭔가 알까.

기대에 응하듯, 반장은 턱을 긁다가, 상세하게 물었다.

“뭔지 알 거 같은데…. 네 친구,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냐? 지금 그 이상개체 말고.”

“금요일이요. 주말 못 봤으니까 3일 정도 지났어요.”

“3일 정도면 큰 문제 없겠구만.”

“아.”

그 말에 최재민은 긴장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사무실 바닥에 앉아, 아무 데스크에 등을 기댄다. 고르게 가라앉는 호흡.

그리고는 땀 범벅인 얼굴로 뒤늦게 반장을 올려봤다.

“아윤이, 뭐에 당한 거예요? 아니면 부모님이 당한 건가요?”

“네 친구가 이상異常을 소환한 거 같은데.”

“소환요?”

최재민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반장은 핸드폰과 차 키를 챙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태의 악마라고, 여기 내 컴퓨터에서 찾아 읽어봐라.”

최재민이 빠르게 일어나, 구부린 자세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곧, 보고서가 모니터를 채웠다.

[나태의 악마]

- 적대수준 : 옐로우

- 위험레벨 : 2

- 중요등급 : D

- 상세 : 소환자의 복제인간으로, 소환자와 동일하게 행동하는 이상異常. 소환된 지 13일이 지나면, 소환자는 지구에서 사라진다.

- 대책 : 문자, 전화, 메일 등, 통신의 형식으로 소환법이 유포되기 때문에, AI를 통해 통신망을 염탐하여 중간에 통신을 납치한다.

반장은 설명을 덧붙였다.

“도플갱어 같은 건데, 네 친구가 대역으로 세운 것 같다. 해결이 어렵지는 않아. 문제는 이런 걸 시도한 네 친구지.”

“걔가 왜 그런 걸 어떻게….”

읽는 동안 나갈 채비를 마쳤다.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최재민을, 반장이 발끝으로 툭 찼다.

“가자. 이왕이면 빨리 해결해야지.”

“아, 네. 빨리 가요.”

최재민이 몸을 바로 세운다. 반장은 앞서 걸으며, 이연우와 유지유에게 말했다.

“나는 얘랑 일 하나 해야겠다. 지유는 적당히 시간 때우다 퇴근하고, 신입이는 따라오고.”

“저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난데없이 불린 이연우는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슬리퍼를 벗고,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신입한테 일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철컥-

반장이 사무실의 문고리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등을 보인 채 서 있기에,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시선.

“별거 아니고, 사람 한 명 더 있으면 편하지 않겠냐. 설마 또 무슨 사고가 터지려고. 또 사고가 터지면 네가 이상異常인지 의심해야지. 하하.”

농담처럼 말하고는 크게 웃으며, 먼저 사무실을 나간다. 그 뒤로 최재민이 달렸다. 이연우는 운동화를 신다 말고 급하게 최재민과 반장을 쫓아갔다.

유지유는 몰려 나가는 그들을 보다가 의자를 바짝 당겨, 데스크에 붙었다.

“저는 사무실 열심히 지키고 있을게요.”

“오냐. 너무 일찍 퇴근하지는 말고! 위에서 연락올 수도 있으니까.”

닫힌 문을 뚫고 들어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예, 예.”

유지유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찾으면서였다. 곧 세 명이 떠나 텅 빈 사무실, 유지유가 재생한 동영상의 소리가 사무실을 채운다.

***

그들은 반장의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조수석에는 종이 박스가, 그것도 온갖 잡동사니가 수북하게 쌓인 종이 박스가 있었기에, 이연우와 최재민은 뒤에 앉았다.

시동만 걸어둔 차.

운전석에 앉은 반장은 몸을 돌려, 종이 박스에 손을 깊이 넣어, 잡동사니를 이리저리 뒤적였다. 쓰레기와 수건과 공구 따위가 들썩인다.

“어디 보자…. 악마를 잡아 죽이려면…. 학생아, 받아라.”

반장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먹다 남은 소주와 권총처럼 생긴 전동드릴이 들려 있었다.

최재민이 냉큼 전동드릴을 쥐며, 눈을 반짝였다. 얼굴 앞까지 가져와서는 앞뒤로 돌려보았다.

“드릴이에요? 와, 처음 봐.”

권총처럼 조수석의 목 받침대를 겨누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창밖을 겨누기도 한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드릴을 보던 이연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총을 못 들면 공구라도 대신….

그 현실이 새삼 어처구니없는지, 반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이딴 걸 무기로 들고…. 됐다. 이거나 받아.”

좌우로 흔드는 소주병. 안에 든 액체가 흔들린다. 이연우는 얌전히 소주병을 받아 들었다.

그 순간, 들뜬 것처럼 움직이던 전동드릴이 얌전히 최재민의 무릎 위에 올라갔다. 최재민은 망설이다가, 꺼림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걸로 아윤이. 아니, 아윤이처럼 생긴 그거 죽이는 거예요?”

“그렇지. 이마에 들이밀면 끝이야.”

무덤덤한 말.

최재민은 가만히 전동드릴을 내려봤다. 대못같이 길고 뾰족한 드릴. 드릴로 이마를 뚫리는 백아윤의 얼굴이 선명하게 상상된다.

‘혹시, 아윤이가 이상異常이 아니면 어쩌지? 부모님이 이상異常에 당한 거면?’

망설이는 생각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났다. 앙다문 입술, 축 처진 눈매와 흔들리는 눈동자.

반장은 백미러로 최재민을 흘깃 보고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망설이지 마. 네 눈에 부모가 없었다며. 그거 이상異常이야.”

“하지만-”

“네 친구 지구에서 사라지는 꼴 보고 싶냐? 그 자리는 저 이상개체가 차지하고?”

“아뇨….”

최재민이 힘없이 말하고는, 전동드릴을 옆으로 치웠다. 가운데 자리에 놓인 전동드릴.

반장이 내비게이션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 친구, 평소대로 생활했다면 지금쯤 있을 곳이나 말해.”

“아마 집에 있을걸요.”

“주소.”

“저랑 같은 아파트인데-”

최재민이 말하기 무섭게. 반장은 내비게이션을 두드리다 말고 운전대를 잡았다. 굳이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다. 최재민의 집은 그도 알았으니까.

자동차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를 달렸다.

최재민은 창밖을 보았으나, 복잡한 머리 때문에 저녁노을에 붉게 물드는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장님이 맞겠지? 그래도 아윤이가 왜 그런 걸-’

의심을 떨쳐 낼 수가 없다.

최재민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속으로 몇 번이고 생각을 뒤바꾸는 동안, 그들이 탄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

“학생아. 가서 데려와.”

“네….”

최재민은 느릿하게 차 문을 열고, 천천히 걸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탓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다 보니,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어느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백아윤의 집 문 앞이다. 무의식적으로 초인종까지 눌렀다.

띵동띵동-

- 네, 누구세요?

“어, 어. 나 재민인데.”

결국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백아윤을 맞이한다.

삑-

열린 문 너머, 편안한 잠옷을 입은 백아윤이 의아한 눈으로 최재민을 맞이했다.

“잼민이? 우리 집에는 왜?”

“아니, 그게. 어. 그, 숙제! 숙제 있잖아! 같이 하자고.”

“우리 집에서?”

“카페에서!”

어색하고 의심스러운 언행이 계속되지만, 백아윤은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옷만 갈아입고.”

방으로 쏙 들어간 백아윤. 차마 현관문 너머로 발을 디디지 못한 최재민은 문 앞에 서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인기척이라고는 아윤이 하나뿐인 집.

‘얘네 부모님 어디 가셨지…? 왜 집에 아윤이뿐이지…?’

이제 막 퇴근 시간이라 아버지는 늦을 수 있다지만, 어머니는 항상 있었는데.

최재민이 무심코 문가로 발을 디디려는 순간, 옷을 갈아입은 백아윤이 나왔다. 가방을 등에 짊어진 백아윤은 슬리퍼를 신고 나와, 현관문을 닫았다.

“가자! …그런데 너 가방은?”

“아래에 두고 왔는데. 그러는 너는 부모님 어디 가셨어? 집에 혼자 있는 거 같던데?”

“두 분이 놀러 갔는데? 재밌나 봐. 전화도 없네.”

투덜거리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최재민의 머릿속에서는 의심이 더 깊어졌다.

‘역시 아윤이네 부모님이…?’

좁은 엘리베이터를  둘이 타고 내려가는 동안, 의심은 절정에 달했다.

“음-, 음음-, 음-”

혼자 흥얼거리며 고개를 까딱인다. 최재민이 자주 보아온 모습. 그는 백아윤을 보다가, 침을 삼킨 후 질문했다.

“그 노래, 네가 좋아하는 인디밴드라고 했었지? 밴드 이름 뭐였지?”

“야! 내가 전에도 말해줬잖아! 아직도 안 들었어?”

“아니,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뭐였지?”

“레고맛 아이스크림. 노래가 엄청엄청-”

좋아하는 밴드를 말하며, 눈을 반짝인다. 목소리와 몸짓에 진심이 가득 담겼다.

최재민은 멍하니 보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아윤이가 맞아. 나태의 악마가 아무리 똑같이 행동한다지만 이런 감정까지 따라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한다.

1층 현관 앞에서, 최재민은 백아윤을 붙잡았다. 백아윤이 힘차게 걷다가, 멈춰 섰다.

“왜?”

“잠깐만. 나 가방 가져올게.”

***

반장과 이연우는 차에서 기다리다가, 최재민이 백아윤을 현관에 두고 혼자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얼굴에 뻔히 드러나는 감정.

반장이 혀를 찬다.

“저저, 답답해 뒤지겠네. 내가 확인도 안 하고 죽이기부터 할까 봐 저러나?”

‘글쎄. 두 명 다 따로 생각하는 게 있는데 말을 안 해서 그런 거 같은데.’

이연우가 따로 대답하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동안, 반장이 뭐라 더 말하려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신입아. 그거 소주병이랑 드릴이나 이리 줘봐라.”

이연우는 곧장 두 손으로 두 물건을 건네면서, 소주병에 시선을 두었다.

“이건 뭡니까?”

“특정 이상개체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액체형 이상개체. 줄여서 성수.”

“성수요?”

“옛날에 내가 구마사제한테 뜯어온 건데. 이럴 때가 아니지. 신입아, 너도 따라 나와. 재민이가 허튼짓하면 말리고.”

벌컥-

차 문을 열고 나온 반장이 성큼성큼 걸어, 백아윤을 향해 다가간다.

“반장님, 들어보세요, 아윤이 아무래도-”

최재민이 반장을 붙잡으려 손을 뻗지만, 이연우가 끼어들어 대신 잡혔다. 반장은 거침없이 걸어 백아윤 앞에서 멈춰 섰다.

백아윤이 몸을 살짝 움츠렸다. 한 손에는 소주병, 한 손에는 전동드릴을 든 남자. 겁먹은 목소리가 나온다.

“누구세요?”

반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주병을 백아윤의 머리 위에서 기울여, 성수를 그대로 쏟았다.

치이익-

다음 순간, 백아윤의 얼굴 위로 붉은 물집이 더덕더덕 올라왔다. 징그러운 피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퉁퉁 부은 입술이 벌어지면 비명이 터지려는 찰나.

전동드릴이 이마를 겨눴고, 드릴이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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