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이잉-
드릴이 이마 정중앙을 뚫고 들어간다. 드릴이 박힌 이마에서 핏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안 돼-!”
최재민이 절규하듯 입을 벌리고, 반장 대신 꽉 붙잡고 있던 이연우를 밀어냈다. 이연우가 비틀거리며 밀려난 자리로, 최재민이 내달리다가, 멈칫, 걸음을 멈췄다.
흐물흐물-
숨이 끊어진 백아윤이, 액체괴물처럼 흘러내렸다. 이목구비도 찰흙처럼 뭉개지다가, 회색 점토가 되어 뚝뚝 1층 현관 바닥으로 떨어진다.
점토를 잔뜩 묻히고 회전하던 드릴이 멈춘다.
최재민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백아윤이었던 것을 보았다.
붉었던 피가 투명한 물로 변하고, 회색 점토도 증발하듯 조금씩 사라진다. 어떻게 봐도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는 흔적.
“아윤이가 아니었다고…? 이게, 이게.”
최재민이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반장은 소주병을 얼굴 앞까지 들고는, 혀를 짧게 찼다.
“너무 많이 썼어. 아깝게.”
소주 두 잔 정도 나올까. 손가락 한 마디쯤 차 있는 소주병. 찔끔 몇 방울만 뿌려도 되는데, 성질 때문에 확 부어버리는 바람에….
소주병 너머로 이연우가 다가왔다. 최재민이 긴장하여 지나치게 세게 붙잡은 팔이 아파, 주물럭거리면서.
“반장님. 끝난 겁니까?”
“나태의 악마는 끝났지. 남은 건 이런 걸 소환한 그 친구지.”
반장은 이연우를 힐끔 보았다.
이연우는 어딘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일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이상하다는 듯, 사라져가는 회색 점토를 주시했다. 그러다가는 말하는 것이다.
“소환한 장본인이 남긴 했죠…. 아, 제발.”
“왜, 또 뭐 사고 터질 거 같나?”
“지금까지 겪은 게 다 그래서, 조금 그렇네요. 쓸데없는 걱정이면 좋겠는데….”
이연우가 한숨을 푹푹 내쉰다.
반장은 이연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최재민을 불렀다.
“학생아! 그건 그만 보고 이리로 와봐라.”
“네? 아, 네.”
슬금슬금 다가온 최재민이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하고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반장은 현관 난간에 걸터앉으며, 드릴을 까딱였다.
“그 친구 가정사정이나, 뭐 문제될 거리 알고 있나?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다거나.”
보통, 나태의 악마를 소환하는 법은 문자로 오고, 그 내용도 평범한 사람은 코웃음 치며 무시할 만큼 허황된 것이다.
그런 걸 눌러보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몰린 사람인 편이다.
그러니까 백아윤이라는 친구도 어딘가 고통을 품고 있나 묻는 것이다.
“그게요….”
최재민은 좀처럼 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대답이 주르륵 떠올랐으나, 의심에 휩싸여 가라앉고 말았다.
‘공부는 나보다는 잘하지만,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야. 하지만 집이 딱히 공부하라고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두 분 다 좋은 분 같았는데….’
거의 소꿉친구 느낌으로, 같은 아파트에 살며, 같은 학교, 같은 학년, 같은 반을 다닌 지, 꽤 되었다. 시간을 연수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을 넘을 정도.
하지만 최재민은 끝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나태의 악마를 진짜 백아윤으로 착각한 순간부터, 최재민은 자신감을 잃었다. 부모를 감별하는 눈으로 똑똑히 보았음에도 속아 넘어갔으니까.
자신이 진짜 백아윤을 아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반장은 드릴 손잡이로 최재민의 축 처진 어깨를 강하게 두들겼다.
“그게 왜 네 잘못이냐. 하여튼 겉으로 보기에는 별문제 없다는-”
“반장님.”
이연우의 부름. 반장의 머리가 순식간에 돌아가며 이연우를 보았다. 어느새 드릴을 꽉 쥔 손.
“뭐? 왜?”
“저기 오는데요?”
“어?”
얼마 전에 깁스를 풀고 자유를 찾은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노을이 가라앉고 남색으로 물든 하늘. 가로등이 켜진 인도를 부지런히 걸어오는 사람이 하나. 백아윤이다.
캐쥬얼한 옷을 입고, 잔뜩 부푼 에코백을 흔들면서 걸어오던 백아윤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시선이 최재민과 반장과 이연우를 번갈아 돌아다니다가, 다시 최재민에게 돌아갔다.
“잼민이?”
의문과, 조금의 불안이 섞인 목소리.
최재민은 백아윤의 머리 위에 평소 보던 문자가 있음을 확인하고는, 빽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뭘 한 거야!”
하루 종일 걱정하고, 의심하고, 망설이던 감정이 모조리 고함이 되어 쏟아진다. 목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메아리쳤다.
***
“너는 진정하고. 거기 학생. 악마 소환했지?”
갑자기 흥분한 최재민보다, 반장이 먼저 앞서 나가며 물었다. 백아윤은 주춤 물러서면서 일단 고개를 젓고 봤다.
“아, 아, 아뇨? 악마를 어떻게 소환해요?”
“거짓말하지 말고. 다 알고 왔어. 잘못한 거 알지? 솔직하게 말해.”
“그게요…. 네에.”
고개를 숙이며 발끝을 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못을 안다. 최재민이 서둘러 다가와, 빠르게 질문하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야! 너 하마터면-”
“…공연 보고 싶었단 말이야! 레고맛 아이스크림 한 번도 못 봤는데, 딱 오늘이었다고!”
최재민이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어딘가 안도가 섞인 숨을 길게 뱉었다.
“너답긴 하다….”
“이거 봐! 이번 공연에서만 파는 굿즈야!”
에코백에서 레고로 만든 아이스크림 모형을 꺼내 리듬감 있게 흔든다. 백아윤의 얼굴에는 아직도 공연에서 느꼈던 감동과 흥분이 남아, 노을처럼 붉은빛이 감돌았다.
“공연도 얼마나 좋았는데! 역시-”
“….”
“와.”
반장과 이연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잠깐 말을 잃고 있었다. 공연 하나 보자고 수상한 악마 소환 같은 걸 한다고? 이상異常 무서운 줄 모르고….
반장이 드릴 끝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말한다.
“학생. 그런 거 함부로 건들면 죽어. 학생만 해도 조금만 늦었으면 지옥 갔어.”
“지, 지옥요? 그런 말은 없었는데.”
“그걸 다 알려주면 악마가 아니겠지.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백아윤은 몸을 움츠리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뒤늦게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려는 순간, 반장이 한 손으로 드릴과 소주병을 한꺼번에 쥐고는, 빈손을 내밀었다.
“핸드폰 줘봐. 악마 소환법 온 거 띄워서.”
“네…. 문자로 왔는데…. 잠깐만요.”
얼른 레고 아이스크림을 에코백에 넣고, 핸드폰을 꺼내 두드린다. 잠시 후, 백아윤이 핸드폰을 건넸다.
최재민과 이연우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반장의 좌우에서 조그만 핸드폰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장문의 문자가 있었다.
[학교가 싫으신가요? 누군가 내 숙제를 대신했으면 좋겠나요? 학교를 당신 대신 나가고,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당신 대신 들었으면 좋겠나요?
아니면 출근하기 싫으신가요? 누군가 당신을 대신해 일을 하고, 당신 대신 상사에게 혼나며, 당신 대신 돈을 벌어주었으면 좋겠나요?
그런 당신을 위한 악마 소환 시스템!
당신을 대신해, 당신의 싫은 순간을 대신해주는 도플갱어를 소환하는 법!
링크를 누르기만 하면 도플갱어가 소환되어, 당신의 고통을 대신해 줄 것입니다!
걱정은 하지 마세요! 아무 대가도 치를 필요 없으니까요! 당신은 짧은 인생 중 달콤한 순간만 즐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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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이런 걸 누른 백아윤이 이해되지 않는, 수상한 문자.
반장이 요즘 애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최재민이 백아윤을 흘겨보는 그때.
이연우는 핸드폰에서 본능적으로 시선을 떼고, 백아윤이 걸어온 길을 보았다. 그곳에는 두 명이 있었다. 수상한 느낌을 물씬 풍기며 걸어오는 두 명이.
“여기 어디일 텐데….”
혼자 중얼거리는, 왜소한 체격의 남자. 무기력한 느낌이 얼굴을 가득 채웠는데, 창백하다.
그리고.
낄낄낄-
큰 키에 구릿빛 피부. 트레이닝 복에 군복 상의를 걸친 남자. 핸드폰을 보며 낄낄 웃는다.
다음 순간, 왜소한 남자가 백아윤을 보며 말했다.
“아. 찾았다.”
***
반장이 슬그머니 핸드폰을 내린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왜소한 남자와 키 큰 남자를 보았다.
“…누구쇼?”
“아아. 회사 사람인가…. 내가 늦었네…. 엄청 빨리 움직였는데….”
왜소한 남자가 침울하게 중얼거리며, 백아윤에게서 반장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생선 눈알처럼 무기질적이고 탁한 눈과 눈만큼이나 죽은 목소리.
“악마숭배자인데…. 악마 소환한 사람 데리러 왔어요. 괜찮으면, 그 소녀만 데려가도 될까요…?”
“하하, 될 리가 있나.”
“제물로 쓰겠다고 데려가는 게 아닌데요. 악마숭배자로 교육만 하려는 건데…. 저랑 다툴 일이 아니지 않을까요…?”
탁한 눈이 다시 백아윤에게 향한다. 소녀를 원하는 눈.
최재민이 대각선으로 한 걸음 나아가, 그 시선으로부터 겁먹은 백아윤을 가렸다. 최재민의 시선은 왜소한 남자의 머리 위를 보았다.
“느그 부모님이-”
“아, 패륜적인 욕설은 너무한데…. 그런데 제 부모님도 악마숭배자 맞아요. 저도 배운 대로 하는 거 맞고요.”
“어….”
담담한 말. 최재민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목표를 바꿔 키 큰 남자를 보았다. 여전히 핸드폰을 보며 낄낄 웃는 남자의 머리 위는, 공란. 비었다.
최재민이 작게 중얼거렸다.
“저, 군복 상의 입은 거 이상異常이에요. 부모가 없어요.”
“악마겠지. 무슨 악마인지가 문제인데.”
반장은 한 손에 든 성수와 드릴을 힐끔 내려보았다. 나태의 악마는 이미 특성을 알았다. 그에 맞춰 최소한의 무장만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개체를 상대하기에는….
그렇게 느슨한 긴장이 그들 사이를 흐르는 때.
왜소한 악마숭배자가 말했다.
“싸우기는 싫은데 어쩔 수 없죠…. 악마님. 부탁드려요.”
“안 되지.”
“아, 또 왜요…. 핸드폰도 드렸잖아요.”
악마라 불린 남자가 핸드폰을 보며 건성건성 대답했다.
“악마에게 명령하려면 뭘 해야 한다? 진명부터 외쳐야 한다.”
“아, 진짜…. 이름에 별 의미도 없으면서….”
이름.
그 이름을 알면 어떤 악마인지,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짐작하면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다. 반장과 이연우가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악마숭배자는 그들을 보고, 부끄럽다는 듯 민망하게 얼굴을 붉혔다.
“싫은데…. 아. 불러드릴게요. 이….”
그리고는 눈을 딱 감고 작게 중얼거렸다.
“이름을바꾸는건너무재미있어 악마님…. 빨리 해치워주세요.”
낄낄낄-
악마가 웃는다. 악마가 손가락으로 반장을 가리킨다.
“새끼…. 사고!”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화분이 떨어졌다. 화분은 갑자기 불어온 강풍을 타고 완만한 곡선을 그렸고, 그대로 반장의 머리를 강타했다.
부조리한 현실이 그들을 덮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