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33화 (33/194)

‘…중성화? 뭐? 안 돼!’

이연우가 기겁을 하며 주사위부터 찾으려고 할 때였다. 이연우만큼이나 놀란 판매자 거인이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목소리도 커졌다.

“설마요! 귀한 정품 인간 아닙니까. 번식시켜야 하는데, 중성화는 말도 안 되죠.”

“그래서 물어본 겁니다. 품종보증서를 가진 인간의 새끼가 비싸게 팔린다고 들어서요.”

아빠 거인은 투자 상품을 보듯 냉정한 눈으로 제임스와 이연우를 가늠한다. 엄마 거인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우리가 인간 암컷 한 마리를 키우는데, 둘 사이에서 나온 새끼면 얼마에 팔릴까요?”

“혈통서가 따로 있습니까?”

“없어요. 혹시 그러면 가격이 많이 떨어-”

돈이 오가는 대화가 이어진다.

판매자는 이왕이면 품종서 있는 인간을 사서 번식시키라고, 새끼 낳으면 자신이 혈통서를 써주겠다고,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말을 했고.

아빠 거인과 엄마 거인은 판매자의 말을 귀담아들으면서도, 적은 투자로 적당한 돈을 회수할 방법을 찾아 말한다.

신경이 곤두선 이연우가 그들의 대화를 조금도 놓치지 않고 주워들을 때였다.

“헤어질 때가 왔다. 우리 중 한 명은 팔린다.”

제임스가 이연우 방향의 쇠창살에 매달리며 말을 걸었다. 이연우가 눈동자만 돌려 제임스를 봤다. 상황을 보아하니, 이연우가 생각해도 둘 중 한 명은 확실히 팔릴 듯하다.

기분이나 느낌이 썩 좋지가 않다. 중성화 같은 소리를 들어서 더.

“…탈출할 생각은 없습니까?”

“돌아갈 길을 찾거나, 회사에서 연락하기 전까지는 없다. 그보다 너도 회사의 조사원이라고 했다. 맞나?”

일전에 자기소개를 하면서 밝힌 신분. 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지사에서 일하는 조사원입니다.”

“잘됐다. 혹시 돌아가거나, 회사와 연락이 닿으면 너도 말을 전해달라.”

“뭐라고요?”

나란히 꽂힌 쇠창살 사이로 제임스를 바라본다. 제임스는 매달린 쇠창살에서 뛰어내렸다. 흘러가듯 가볍게, 하지만 사무적이고 단조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사원 제임스 콩이 보고함. 이곳은 사람 살 곳이 아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이연우는 전하고 싶은 다른 말이 있으면 편하게 말하라고, 귀를 툭툭 치는 시늉을 했다.

주사위가 있다. 살아만 있으면 돌아갈 수 있다. 그 사실을 밝히기는 꺼려져도, 말 정도는 얼마든지 전해줄 의향이 있다.

하지만 제임스는 높게 뛰어 한 손으로 쇠창살에 매달린 후, 다른 손으로 턱을 북북 긁었다.

“없다. 이 세상에 대해서는 어차피 너도 보고하지 않나.”

이상한 세상에 떨어졌으니, 조사원으로서 보고할 내용은 비슷하지 않겠냐는 말.

이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업무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사람한테 전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어쩌면 영원히 못 돌아갈 수 있는데.”

“…없다.”

머뭇거린 끝에 단호한 대답. 대화가 끊어진다. 이연우는 묵묵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연우와 제임스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보는 두 아이 거인을 보았다. 아들 거인과 딸 거인이 입을 벌리고 감탄한다.

“와아! 얘네들 서로 대화하나 봐!”

“잉잉잉 우는 거 너무 귀여워!”

“아빠! 얘네 둘 다 키우면 안 돼? 둘이 친한가 봐!”

아빠 거인이 두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은근슬쩍 아이들을 뒤로 끌어당겼다.

“이미 집에 한 마리 있지 않니? 하나만 살 거야. 이봐요, 다른 건 안 살 건데, 둘 중 누가 더 낫습니까?”

아빠 거인이 판매자를 보며 말하자, 판매자가 아이들만큼이나 아쉬워하면서 제임스의 우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

“둘 다 건강하고 문제 없지만 성격이 다릅니다. 이 아이는 활발하고.”

이번에는 이연우의 우리를 올린다.

“이 아이는 얌전합니다.”

“그 아이로 합시다. 우리 집에 있는 애는 성격이 너무 활발해서….”

“탁월한 선택입니다! 그러면 가격은-.”

이연우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이야기. 팔려버린 이연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제임스가 대충 손을 휘휘 저어 작별인사를 마친다.

그리고, 판매자가 검은 천을 꺼내 우리를 덮었다. 흔들리는 우리와 천으로 가렸는데도 크게 들려오는 목소리.

그렇게 이연우는 오두막에서, 거인 가족이 사는 집으로 갔다.

***

“자! 여기가 우리가 사는 집이야!”

휘익-!

우리를 덮은 수건이 한순간에 걷어졌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이연우는 한 손으로 눈가를 가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인의 집.

붉은 벽돌로 쌓은 담벼락과 관리가 잘 된 정원. 그리고 2층 저택. 그 크기가 거대하여 성벽에 둘러싸인 성 같다.

후다닥-!

딸 거인이 이연우의 우리를 앞뒤로 마구 흔들며 현관문으로 달렸다. 간신히 창살에 매달려 흔들리는 이연우. 뒤로 엄마 거인의 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뛰지 말고!”

“알았어!”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 2층의 촘촘한 철조망으로 막아둔 방까지 한 번에 내달린다. 철조망 문을 밀며, 딸 거인이 말했다.

“여기가 네가 살 방이야!”

이연우는 어지러움과 창살에 매달리며 쭉 빠진 체력 때문에, 머리를 휘청이면서도 방을 둘러봤다.

널찍한 방.

인간을 키우는 방으로 삼았는지, 거인이 쓰는 가구는 없다. 대신 인간용으로 쓰는 자그마한 집 모형과, 화장실, 식탁이며 접시, 물그릇 따위의 미니어처 모형이 산만하게 놓여 있다.

철컥-

우리가 방 중앙에 놓인다. 우리의 자물쇠가 풀렸다. 자물쇠와 열쇠를 대충 바닥에 내던진 딸 거인이 방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노랑이가 어디 숨었지? 노랑아-! 나와봐! 네 친구 왔어!”

대답도, 행동도 돌아오지 않는다. 거인이 쿵쿵 방 안을 돌아다니다가 포기하고는 이연우에게 돌아왔다.

“노랑이는 자나 봐. 내가 방 소개해줄게.”

조심스럽게 우리 밖으로 한 발을 내밀던 이연우가 재빨리 우리 속으로 돌아갔다.

‘어린애야.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이연우는 신경도 쓰지 않고 우리를 아무렇게나 휘두르지 않았나. 쓰다듬겠다고 쥐어서 뼈를 부러뜨릴지도 모를 일.

“빨리 나와! 여기가 네 방이라니까?”

입구 반대쪽 구석으로 몸을 빼는 이연우를 쫓아, 딸 거인이 우리의 입구에 손을 쑤셔 넣었다. 오므린 주먹이 입구를 잔뜩 벌리며 들어오다가 막혔다. 쇠창살이 비명을 지른다.

끼이익- 끼익-

그 상태에서 손가락을 뻗어, 어떻게든 이연우를 잡기 위해 손가락을 까딱인다. 가로수 같은 손가락이 코앞을 스치고, 우리 바닥을 긁었다. 손톱이 바닥에 흉터를 남겼다.

끼이이익-

동공을 가득 채우는 손가락. 등에 닿은 쇠창살이 차갑다. 이연우가 식은땀을 흘렸다.

‘손대중을 모르나?’

제대로 잡히면 내장이 터질 것 같다. 하다못해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다. 아니면 살가죽이 찢어지거나.

그때, 쿵쿵 거대한 기척과 함께 아빠 거인이 올라왔다. 그가 철조망 문 너머에서 말했다.

“얘야. 애 겁먹겠다. 그만하고 내려오렴.”

“아빠! 집에서 안 나와!”

“네가 막으니까 못 나오겠지. 자, 얼른.”

철조망 문을 열며, 딸에게 손짓한다. 딸 거인은 아쉬움이 역력한 기색으로 손을 빼고, 터덜터덜 아빠에게 갔다.

“내가 소개해주려고 했는데….”

“그건 다음에 해도 되지 않겠니. 아이들은 쉬게 두고, 가자.”

탁-!

철조망 문이 닫혔다. 거인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음과 진동이 멀어졌다. 적막이 내려앉은 방.

이연우는 한숨 돌리고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우리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넓은 방. 높은 벽 위로 창문이 달려 있다. 이연우는 방에 널린 무수한 미니어처, 인간용 가구와 장난감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진짜 사 왔네, 미친놈들. 새끼 낳으라고 하면 누가 낳아준대?”

이연우가 몸을 돌렸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금발에 인종을 특정하기 힘든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여자가 건들건들 걸어왔다.

그녀는 이연우를 흘깃 흘겨보고는, 양동이 크기의 컵 모형을 들고 물그릇으로 향했다. 한 아름 안아 든 양동이로 물을 퍼 올린다. 등을 보인 채로 그녀가 말했다.

“야. 네가 어디서 온 뭐 하는 인간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애완인간으로 살 생각 없어.”

“…나도 그런데.”

낯선 세상에서 만난 낯선 인간.

무턱대고 친해지거나, 편을 들 생각은 없다. 같은 회사원이면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아닌가.

물론 쓸데없이 적대할 생각도 없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서로 무시하는 관계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그래? 잘됐네. 그럼 도와.”

찰랑찰랑 차오른 양동이를 끌어안은 여자가 이연우를 지나치다가, 딸 거인이 내동댕이친 열쇠를 발끝으로 툭 찼다.

“탈출할 거니까.”

“탈출?”

이연우가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했을까.

여자는 철조망 문으로 가, 철조망 구석에 물을 조금씩 뿌렸다. 이연우가 보니, 하루 이틀 해왔던 작업이 아니다.

곰팡이처럼 조그만 철조망 구석만 녹슬어 있었다. 녹슨 철조망만 끊어내면 인간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크기.

“그거 열쇠 끌고 와. 그걸로 내리치고, 톱질할 거니까.”

툭, 툭

물방울이 이슬처럼 철조망에 맺힌다. 벌겋게 녹슨 철조망. 많이 삭았다. 쉽게 끊을 수 있어 보인다. 열쇠의 울퉁불퉁한 부분으로도 끊어낼 수 있을 만큼.

이연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탈출? 굳이?’

몸 멀쩡하게 버티다가, 주사위가 대성공을 띄우는 날이 오면 귀환이다.

물론 아이 거인의 거친 손짓은 위험하지만, 바깥이 더 위험하다.

굳이 위험한 세상으로, 저택이라는 안전한 공간을 벗어나 온갖 벌레와 짐승과 미지의 위험이 가득한 거대한 세상으로 나아갈 이유가 없다. 괜히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이연우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야. 왜 대답을-”

물을 뿌리다 말고 고개를 돌린 여자의 표정이 무섭게 굳는다. 그녀는 이연우를 노려보며 작게 뇌까렸다.

“너, 탈출할 생각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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