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34화 (34/194)

노려보는 시선이 매섭다. 아이 거인이 입혔는지 공주 인형이 입을 법한 드레스를 입었는데도, 우스꽝스럽지가 않고 기세가 살벌했다.

이연우가 움찔 물러서며 두 손을 앞으로 들어 내저었다.

“탈출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 방금 만나지 않았습니까? 인사나 자기소개가 먼저-”

“됐어, 저리 꺼져. 애완인간으로 평생 살아.”

여자는 이연우를 노려보다가, 바닥에 나뒹구는 열쇠를 향해 걸었다. 열쇠 근처에 서 있던 이연우와 가까워진다. 여자는 이연우의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갑자기 두 손을 뻗어 이연우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긴다. 맥없이 끌려오는 이연우. 눈이 바짝 가깝게 붙었다. 서로의 눈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여자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네가 어떻게 살든 내가 알 바 아닌데, 탈출 방해하면 물어버릴 거야. 이해했어?”

“알았으니까, 멱살은 좀 놓지.”

이연우는 침착하게 멱살 잡은 손을 톡톡 쳤다. 이런 협박으로 겁먹기에는 지금까지 겪은 일이 많다. 진짜 위험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손을 놓았다. 그녀는 몸을 숙여 열쇠를 주워들었다. 거인의 열쇠는 사람 팔처럼 길고 컸다. 공구로 써도 될 정도.

열쇠를 어깨에 걸치고 철망 문으로 가는 그녀를, 이연우가 뒤쫓았다.

“혹시 인류보호회사에 대해서 들어봤습니까?”

“몰라.”

회사원은 아니고.

“어디서 오셨습니까? 지구?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뭐라는 거야. 야! 방해할 거면 저리 꺼져! 헛소리하지 말고!”

지구 출신도 아니다.

빽 소리를 지른 여자는 열쇠 끝을 창끝처럼 앞세워, 녹슨 철망 틈새로 열쇠를 밀어 넣었다. 녹슨 철망이 쉽게 벌어지며, 열쇠가 철망 사이에 턱 걸렸다.

“흐읍-!”

여자는 땀을 뻘뻘 흘렸다. 이를 악물고,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힘을 주어 열쇠를 움직였다.

끼이익-

지렛대처럼 위아래로 흔들기도 하고, 톱처럼 앞뒤로 밀고 당기기도 한다. 철망의 구멍이 조금씩 벌어지고, 녹슨 철이 조금씩 닳아서 떨어진다.

하지만 철망이 끊어지는 것보다 체력이 다하는 게 빨랐다. 땀으로 흠뻑 젖은 여자가 컵 모형에 남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벽에 기대앉았다. 숨을 몰아쉬는 여자의 시선이 이연우에게 향했다.

그녀가 탈출하겠다고 열심히 일하는 동안, 이연우는 느긋하게 방 안을 돌아다니며 인간용 미니어처 가구를 구경하고 있다.

눈썹이 삐죽 기울었다.

“야. 진짜 탈출 안 해? 여기서 애완인간으로 살 거야?”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쓰지-.”

“거짓말하지 말고.”

이연우가 의자 모형을 돌린 후, 그 위에 앉았다. 이연우와 여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여자의 짜증이 담긴 눈. 이연우도 눈살을 찌푸렸다. 계속된 반말이 기분이 나빠서. 그래서 이연우도 완전히 말을 놓기로 했다.

“집을 벗어날 생각이 없긴 하지. 굳이 나가서 뭐 하게? 위험하기만 하잖아.”

“그래서 여기서 짐승처럼 살겠다고? 던져주는 음식물 찌꺼기나 먹고, 억지로 입힌 옷이나 입고, 새끼 낳으라면 낳고, 그 새끼는 팔리고. 이렇게 살겠다고?”

“그건 아니지.”

이연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살 생각은 없다. 그리고 주사위라는 탈출수단도 있다.

그렇기에 이연우는 조금쯤은 낯선 나라를 구경하는 여행객의 마음으로 가볍게 질문했다.

“그런데 탈출한 다음은 어쩌려고? 솔직히 집 밖으로 나갔다가 고양이나 개나, 아무튼 짐승이라도 잘못 만나면 죽잖아.”

거인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거대한 세상이다. 인간은 햄스터 크기고, 그만한 인간쯤은 손쉽게 사냥하는 벌레와 들짐승과 날짐승이 한둘이 아니다. 하다못해 개미 무리조차 두려운데.

탈출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여자는 프릴이 달린 옷자락으로 땀을 닦아낸 후, 창밖을 보았다. 뉘엿뉘엿 저무는 태양이 노을빛을 흩뿌리는 창가. 여자가 말했다.

“…전에 들었어. 인간의 도시가 있다고. 인간의 생존을 위해 모여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도시가 있다고.”

끼익-!

이연우가 벌떡 일어서며 의자가 바닥을 긁었다. 여자가 의아한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지만, 이연우는 여자를 향해 빠르게 말했다.

“그 말, 자세히 말해봐.”

인류보호회사의 흔적일까?

아니더라도 지구의 흔적은 맞아 보인다. 저 말은 지구에서 들어본 말이었으니까.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비슷한 느낌이다.

여자는 이연우를 보다가, 턱을 까딱였다. 철망을 향한 턱짓.

“말해줄 테니까, 나 쉬는 동안 저거 톱질해봐.”

“….”

이연우는 말없이 철망으로 가서, 열쇠의 손잡이 부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주사위가 있더라도 회사로 추측되는 집단의 정보는 들어두는 게 나아.’

주사위가 언제 대성공을 띄울지 모르지 않나. 차선책을 준비해둔다는 느낌으로, 이연우는 열쇠로 톱질을 시작했다.

***

흐어억- 허어억-

이연우가 다 죽어가는 얼굴로 천장을 올려봤다. 천장이 빙빙 돌았다. 눈을 감으면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귀까지 들려온다.

이연우는 파들거리는 손을 가슴 위에 얹었다. 손만큼이나 떨리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제, 말을, 해주지?”

여자는 그런 이연우를 황당한 눈으로 보았다. 아니, 뭐 얼마나 움직였다고.

“어떻게 이렇게 약해빠졌지…? 야, 너 어떻게 살아남았냐? 길에서 살아남을 몸이 아닌데.”

나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야생에 던져 놓으면 며칠이나 살아남을지 의심되는 체력과 근력.

여자는 한숨을 쉬며, 이연우에게 다가가 머리를 토닥였다.

“너는 탈출하면 안 되겠다. 집 나가면 바로 죽겠어. 너는 애완인간이 맞겠다.”

한 번 토닥일 때마다 머리가 흔들리며 어지러움이 심해진다. 이연우가 경련하는 손을 들어 여자의 손을 쳐내려고 했지만, 허우적거리며 허공만 휘저었다.

“말이나, 해.”

“그래, 그래.”

털썩-

여자는 이연우의 머리맡에 앉아, 잠시 말을 골랐다. 그리고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과 신화를 말하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같은 인간이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아. 길을 떠돌다 보면 가끔씩 다른 인간을 만나기도 해.”

“….”

이연우는 숨을 고르면서 얌전히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였나, 골목 구석에서 늙은 인간을 만났거든. 그 할아범이 말해줬어.”

여자는 창가를 보았다. 창문 밖에 있는 높은 벽돌담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보는 눈으로.

“우리는 본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거대한 세상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아서 남긴 후손이라고.”

그녀는 말했고, 이연우는 이해했다.

‘본래 인간이 없는 세상이었나…. 우연히 이 세상에 떨어진 인간들이 생존하고, 때때로 유입된 결과가 지금인가….’

거인과 대화가 안 통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차원의 존재끼리 특별한 번역 없이 소통이 힘든 느낌으로.

여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 세상의 인간이, 우리를 구원하러 올 거라고. 언젠가 올 그날을 위해, 인간이 모인 도시가 있다고. 오직 인간만을 위한 도시가.”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자기 눈에만 보이는 환상을 지우듯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이제는 인간을 사육하는 방과, 오가지도 못하게 막는 철망과, 창가 너머의 높은 돌담이 보인다.

여자는 벌떡 일어서며 피식 웃었다.

“나는 그곳으로 갈 거야.”

“…어딘지는 알고?”

이연우가 여자를 올려보았다. 여자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몰라! 하지만 이대로 사육되다 죽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부지런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그리고, 도시를 찾으면.”

여자가 몸을 돌려 열쇠를 다시 붙잡았다. 우선 철망부터 끊기 위해 온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구하러 와줄게.”

이연우가 눈을 감았다가 뜬다.

“됐어. 나는 알아서 탈출할 거야.”

“뭐라는 거야. 너 그 몸으로 혼자 거리 나가지? 바로 죽어. 그냥 고맙다고 말해.”

“됐다니까.”

여자가 헛웃음을 뱉었다.

“알아서 잘살아 보던가. 내가 다른 인간들 다 구해서 인간 도시로 데려가도 혼자 살아.”

그때였다.

쿵쿵, 계단을 오르는 거대한 기척이 느껴진다. 여자는 얼른 열쇠를 뽑아, 멀리 던지고는 장난감이 쌓여 있는 산으로 우다다 달렸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여자.

이연우가 눈만 깜빡이는 동안, 엄마 거인이 접시를 들지 않은 손으로 철망 문을 열었다.

“저녁 먹자-. 응?”

엄마 거인이 이연우를 내려봤다. 톱질이라는 중노동을 하느라 잔뜩 지친 이연우. 땀으로 목욕한 꼴과 피로가 가득한 얼굴. 큰일을 마친 듯한 몰골이다.

엄마 거인이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벌써 했나? 옳지, 잘했다. 얼른 새끼를 낳으렴.”

이연우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도, 엄마 거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접시에 담긴 식사를 인간용 그릇에 쓸어내렸다.

계란 후라이와 베이컨과 식빵. 인간용으로 잘게 잘린 음식물이 그릇에 담긴다.

엄마 거인이 말했다.

“체력이 많이 약한 거 같은데…. 몸에 좋을 걸 먹여야 하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물그릇이며 화장실을 확인한 뒤 방을 떠났다. 닫힌 문과 고요한 방.

여자가 슬금슬금 기어나와 빵을 들고 입에 욱여넣다가, 이연우의 시선을 피하며 슬쩍 빵을 들어 올렸다.

“뭐해? 먹어.”

이연우는 힘겹게 일어나 밥그릇으로 갔다. 떨리는 손으로 어렵게 음식을 입에 쑤셔 넣으면서, 여자의 안쓰러운 눈초리를 받으면서.

***

밤이 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

부드러운 손수건 위에 누운 이연우는 눈을 깜빡이다가 생각했다.

‘복귀. 귀환. 아무튼 돌아가기.’

데구르르-

꽝!

변화가 없다. 이연우는 눈을 감고, 한숨을 푹 쉬었다. 슬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성공 언제 뜨냐…. 안 뜨는 건 아니겠지? 막 로또나 번개 맞을 확률이면….’

만약, 대성공이나 대실패가 극악한 확률이면 주사위만 믿고 있을 수가 없다. 대실패가 뜨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여자를 따라서 탈출하기도 애매했다.

‘그 도시, 회사와 연관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아. 위치도 모르고. 진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어. 있다 치더라도 인간 도시에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는지도 몰라.’

확고했던 귀환에 대한 확신이 흐려진다.

깊은 밤의 정적이 돌연 두렵게 다가왔다. 이연우는 손수건 이불을 끌어당기며 몸을 웅크렸다. 창가에서 비추는 달빛이 서늘하다.

망망대해에 버려진 느낌,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홀로 떨어진 느낌.

‘확실하게 돌아갈 방법을 모르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지금까지 마주했던 이상異常과 다르다.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니다. 무조건 주사위를 믿을 수도 없고, 회사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연락도 닿지 않는다. 어쩌면, 평생을 이곳에서 애완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뇌를 좀먹을 때였다.

돌연 이연우를 툭 치는 손길이 있었다. 이연우가 눈을 번쩍 떴다. 코앞에 노랑이라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눈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야. 나 간다.”

“지금 바로?”

이연우가 몸을 일으키자, 여자는 장난감 가방과 끈 따위를 엮어 만든 가방을 내밀었다. 빵이나 엉성하게 만든 도구 따위가 삐죽 나왔다.

이미 떠날 준비가 끝났다는 증거.

“철망도 다 잘랐고, 빠져나갈 경로도 확인했어. 그 새끼들 다 자는 지금 탈출해야지.”

“…도와줄게.”

이연우는 망설이다가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다.

‘잠도 안 오고. 가만히 있어봤자 나쁜 생각만 떠올라. 차라리 몸이라도 움직이자. 탈출은….’

거인 가족의 집에 남느냐, 여자를 쫓아가느냐.

주사위만 믿고 버티냐.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존재가 확실하지 않은, 존재하더라도 회사와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도시를 찾아 떠나냐.

그 답은 내리지 못했다.

“네가?”

여자가 믿지 못하겠다는 어투로 이연우를 보았다. 비웃는다기보다는 그 신체능력으로 뭘 어떻게 돕느냐는 의문에 가까운 눈.

이연우는 무시하며 철망으로 다가갔다.

저녁을 먹은 뒤에도 계속해서 잘라낸 철망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기 충분한 구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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