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37)화 (37/194)

심문

깨끗한 의자를 찾아 앉은 이연우를, 여자는 황당한 눈으로 보았다.

“그거 내 의자인데?”

이연우를 모른 척했다. 도리어 의자를 당겨 네모난 철제 책상에 적당히 붙은 뒤, 두 손을 편하게 올려놨다.

여자가 사제 권총을 꺼내 까딱였다.

“총 안 보여?”

“이미 내 정보 보지 않았습니까.”

이연우는 낡은 철제 책상에 널려 있는 서류들을 쓱 훑었다. 수많은 정보가 적힌 서류 더미. 제일 위에는 이연우의 이력서와 보고서가 있었다. 저들이 방금까지 읽은 것이다.

“총 무서워하면 경력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대화를 요청하였으니, 죽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이기도 했고. 물론 그래도 총은 총이라 말을 놓지는 못했다.

안경 쓴 남자가 파하 웃으며 이연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렇죠. 사람들이 총은 안 무서워하더라고. 총보다 무서운 걸 자주 봐서 그런가. 그런데 이연우 씨. 그 동화 알아요?”

“무슨 동화 말입니까?”

이연우는 반쯤 흘려들었다. 시선이 유치장을 보았다.

그곳에는 이서연과 누군지 모를 남자가 죽은 사람처럼 자고 있다. 가슴이 오르내리고, 핏물과 피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걸 보아 생명에 위험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계단을 보는 순간.

남자가 총구로 철제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

“채찍과 당근이었나? 그 동화 뭐였지. 태양 나오고 폭풍 나오고.”

“병신아. 태양과 북풍.”

“비슷하잖아. 좋은 게 좋다고. 하여튼, 총 따위는 개무시를 해도 이건 무시를 못하더라고.”

남자가 총을 내려놓고, 품에서 황금을 꺼냈다. 백열등 아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금괴.

주변을 탐색하던 이연우의 시선이 금괴로 빨려 들어갔다.

“…이건 뭡니까?”

“선물을 줄 테니 우리를 위해 조금의 정성을 보여라. 어때요? 아, 뭐 당신한테 큰 거 안 원해요.”

남자가 금괴를 조금 밀었다. 책상 중앙에 위치한 금괴. 손만 뻗으면 닿는다. 이연우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 뒤로, 남자의 목소리가 사근사근 들려왔다.

“조사원이잖아요? 이상異常 발견하면 회사에 보고하기 전에 우리한테 먼저 귀띔하는 정도? 안 어렵죠? 이상異常을 회사에 숨기라는 것도 아니잖아.”

이연우의 눈이 금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금괴에 선명하게 새겨진 1,000g. 1kg이면 그 값이 얼마나 클까.

남자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는 가까스로 눈을 감고, 아른거리는 황금빛을 떨쳐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또렷한 눈이 남자를 보았다.

“그 전에 당신들이 누구인지부터 말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 바로 덥썩 물었으면 의심했을 텐데.”

남자가 빙글빙글 웃었고, 대답은 계단에 쪼그려 앉은 여자에게서 돌아왔다.

“우리도 회사원이야.”

“며칠 전까지 잘 다녔긴 하지.”

여자와 남자의 시선이 유치장으로 향했다. 진짜 정보부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자는 유치장.

“그런데 조금 정성을 보이는 걸 저놈들한테 걸렸지 뭡니까. 그래서 뭐 조사받다가 제압했고. 도망치기 전에 직원 하나 포섭하는 중이고.”

남자가 몸을 숙여, 이연우와 시선을 마주했다. 안경 너머로 웃는 눈이 보인다.

“이해하죠? 회사에서 주는 돈, 적지는 않지만 우리가 고생한 만큼 받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남자가 의자에 등을 느긋하게 기댔다.

“우리가 뭐 멸망주의자도 아니고. 악마숭배자도 아니고. 인류에 해가 되는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회사원이 금품을 대가로 적대집단에 회사의 정보를 팔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발각되어서 아예 적대집단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

“…아직 대답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집단입니까?”

이연우는 묵묵히 남자를 보았다. 남자가 픽 웃었다.

“이쯤이면 예상하죠? 골드버그 클럽입니다. 들어봤죠?”

“…못 들어봤는데요.”

“예? 아니, 장난치지 말고. …진짜?”

남자가 당황하며 눈을 깜빡인다. 이연우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여자가 중얼거렸다.

“진짜 신입이네.”

“아니, 와. 나 병아리 데리고 뭐하냐.”

남자는 갑자기 힘이 빠졌는지, 안경을 벗어 정장 옷자락으로 쓱쓱 닦았다. 다시 안경을 쓴 남자는 긴장이 풀렸는지, 느슨한 자세로 이연우를 보았다. 다리는 꼬았고, 한 팔은 의자 등받이에 걸렸다.

“후배님. 정훈교육도 못 받았어요? 골드버그 클럽한테 뇌물 함부로 받지 마라, 예술가는 테이저 건부터 쏴라, 이런 거?”

“멍청아, 짧게 해. 우리 얘만 포섭하고 도망쳐야 해.”

“…아. 그렇지.”

이연우는 그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느슨하게 벌렸다.

이유야 어쨌든 저들이 경계를 풀면 좋다. 이연우는 일부러 더 어리숙하게 굴었다.

“저 진짜 처음 듣는데…. 알아야 합니까?”

“아니, 기본교육인데…. 아. 조사원이지. 적대집단은 모를만도 하네.”

남자는 혼자 납득했다. 조사원이면 규모가 작은, 이상異常인지 아닌지 의심되는 현장에만 투입되니까.

‘적대집단을 상대할 일은 없으니까, 모를만도 하지.’

그가 한숨을 내쉬고는 긴장을 많이 풀었다.

그때 여자가 권총을 고쳐 잡았다. 여차하면 쏠 수 있게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

“방심하지 마. 저거 온갖 놈들 다 겪은 새끼야. 정보 읽은 거 떠올려.”

“…맞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조사원이 왜? 생각해보니까 지금 우리까지 상대하고 있네? 진짜 이상異常인가? 이연우 씨 진짜 이상개체에요?”

자세를 고치며 권총을 슬쩍 다시 챙긴 남자. 너스레를 떨어도, 총구는 이연우를 겨눈다.

이연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말은 그만합시다. 골드버그 클럽이나 설명해주시죠.”

“단순합니다. 잘 먹고 잘살자. 이상異常으로 돈을 벌자. 많이 벌자. 진짜 많이 벌자. 어때요, 함께 할래요?”

이연우는 철제 책상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조금 늦게 말했다.

“들어가겠습니다.”

***

진짜로 들어갈 생각은 없다. 지금 상황만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저 사람들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어.’

이연우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속에 다른 생각을 품었다.

‘말은 좋지. 그런데 당장 저 사람들도 걸려서 조사받으러 왔잖아.’

어떻게 정보부 요원을 제압해서 유치장에 처박았지만, 결국 들통나서 도망쳐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물며 이연우는 회사의 의심을 받는 몸이고, 의심을 풀기 위해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 적대집단에 가입한다? 말이 안 된다.

이연우는 그를 겨눈 채로 움직이지 않는 두 개의 사제 권총을 보았다.

‘돌아가자마자 반장님한테 보고해야겠어. 골드버그 클럽이 총 들고 협박했다고.’

안경 쓴 남자는 총구를 느슨하게 내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 같이 골드버그 클럽에 발을 걸친 사람이 많거든요. 꺼림칙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힘든 일 하면서 돈이라도 더 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이제 뭐 하면 됩니까? 가입식? 입단식? 아니면 나중에 연락합니까?”

남자는 총으로 금괴를 가리킨다.

“거창한 거 없고. 사소한 신뢰의 증거나 챙겨가세요.”

금괴를 챙기라는 손짓. 이연우는 가만히 금괴를 내려봤다. 빛나는 황금이 손이 닿을 거리에 있는데도, 가지고 싶지가 않다.

“뇌물을 받아 챙겼다는 증거 같은 겁니까? 약점을 남겨라?”

“뭐, 비슷합니다. 현금을 계좌로 보내주면 바로 걸릴 거 아닙니까. 현물이 최고죠.”

금괴를 주머니에 넣기만 하면 끝나는 일.

하지만 이연우는 좀처럼 손을 뻗지 못했다. 본능이 경종을 땡땡 울린다.

‘…굳이 금괴를?’

무엇보다 남자가 흘리듯 내뱉은 말이 기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함부로 뇌물을 받지 마라. 회사가 적대집단을 교육하며 한 말일 텐데.

본능과 경험이 말한다. 평범한 금괴가 아니라고. 의심하라고.

백열등의 하얀 빛 아래, 이연우는 석상처럼 멈췄고, 남자는 그런 이연우를 기다리다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좁은 지하실을 격발음이 가득 채운다. 귀가 아플 정도로. 이연우가 깜짝 놀라 몸을 비틀었지만, 총탄은 이연우 뒤의 벽면을 때렸다.

화약 냄새가 감도는 공기. 남자는 손목만 틀어 총구로 이연우를 겨눴다.

“이연우 씨. 어려운 거 부탁하지 않았잖아? 총 맞기, 금괴 받기. 이게 어렵나?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이연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어느새 식은땀으로 젖은 손이 백열등 빛을 반사하며 가늘게 떨린다.

‘이렇게까지 한다고? 그냥 금괴가 아니야. 도대체 뭐지? 어떻게 하지? 주사위? 대실패 뜨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연우가 눈을 질끈 감고, 금괴를 덥썩 잡았다. 어쨌든 포섭당한 몸이다. 생명이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후의 수단인 주사위도 있다.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 한 번을 깜빡이지 않고 있다가, 금괴가 주머니로 들어가자 총을 내려놓았다.

“하하. 진작에 이러면 좋지 않습니까. 총알만 아깝게.”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받았습니다. 끝입니까? 아니면 뭐가 더 있습니까?”

이연우는 신체나 정신에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하다가 딱히 이상이 느껴지지 않자, 계단을 보았다.

계단을 막은 여자는 비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총은 안주머니에 넣었지만, 계단 가운데에 서 있다.

남자가 웃었다.

“있죠. 황금을 받았으니까 그 대가를 치러야죠. 이연우 씨, 솔직하게 대답하세요.”

이연우의 몸이 굳었다. 머리가 저절로 돌아가 남자의 입을 보며, 질문만을 기다린다.

“골드버그 클럽에 가입할 생각입니까? 진심으로? 거짓 없이?”

이연우는 대답했다.

“아뇨.”

“아, 그래요? 그럼 돌아가서 보고할 생각?”

“예.”

이연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입이 통제를 벗어나 혼자 움직인다. 입을 막으려 해도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한테 거짓말을 했던 거네?”

“예.”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연우를 노려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