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
요원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폭탄을 터트릴 사람처럼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시야를 넓게 두었다.
천장에서 늘어진 백열등 아래로 보이는 낡은 지하실.
잘 자고 있는 신입요원 이서연과, 곤란한 듯 발을 동동 구르는 남자와, 주머니에서 금괴가 삐죽 튀어나온 이연우.
상황파악이 끝났다. 요원이 의족으로 황금을 가리켰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금괴부터 가져가! 딴소리하면 바로 터트린다!”
“하…. 이연우 씨, 금괴 돌려주세요.”
이연우는 주머니에서 금괴를 꺼내고는 잠깐 멈칫했다가, 전력을 다해 남자에게 던졌다. 어떻게 돌려주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금괴가 황금빛을 뿌리며 날아가, 남자의 손에 척 잡혔다.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안 좋은데.”
대가를 강제하는 황금이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이연우를 구속하던 강제력이 사라졌다.
‘좋은데.’
이연우가 느릿하게 손발을 뻗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으면서 피가 안 통한 사지가 시원하게 풀렸다.
‘주사위 굴릴까? 아냐, 참아.’
보아하니 상황이 썩 괜찮다. 위험을 감수하고 주사위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그가 굳이 무얼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남자는 폭탄이 박힌 의족과 이연우를 번갈아보다가, 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좋아요. 허튼짓 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진정부터 하세요. 그거 터지면 나나 당신들이나 다 죽습니다.”
“죽을 각오도 안 한 요원이 있을까?”
“특전대원이라고 안 했겠습니까? 다 똑같은 사람들이니까. 아니, 조사원은 다른가.”
남자와 요원의 시선이 이연우에게 향했다.
죽어서라도 목적을 이루는 특전대원이나 요원과는 달리,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정보를 전달하는 조사원. 근본적인 목적과 행동양식에 차이가 있다.
남자가 은근히 회유하듯 시선을 보내고, 요원은 경계하듯 슬금슬금 멀어졌다.
하지만 이연우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터트리세요.”
거꾸로 남자를 협박하는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다. 진짜로 터트릴 지경까지 가지도 않을 듯하고.
“이연우 씨, 그러면 우리 다 죽는다니까?”
“저는 살 수 있을걸요?”
이연우가 입으로 데구르르, 주사위 굴리는 소리를 냈다.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거 보니까 실패만 하던데-”
“그만큼 실패했으니까, 이제 성공 뜨겠죠. 요원님, 계속하시죠.”
하지만 요원은 계속 뒷걸음질을 쳐서, 유치장 구석에 가서야 멈췄다. 요원이 이연우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가 중얼거렸다.
“이연우…. 조사받기로 했었지. 너도 꼼짝 마! 움직이면 터트린다!”
“아니….”
이연우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후, 남자처럼 두 손을 들고 아예 털푸덕 주저앉았다. 그가 요원을 올려보았다.
“가만히 있을 테니까, 요원님이 알아서 하십쇼.”
요원이 이연우를 잠깐 주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그사이에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고 있었다. 손가락 앞에는 요원의 신분증이 있다.
“이름이…. 김갑동? 이거 진짜 이름 맞아요? 가명 같은데?”
“내가 꼼짝 말라고 했지!”
“터트리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갈 상황은 아니지 않나? 대화로 해결하자고요.”
김갑동 요원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화하고 싶으면 외장 하드랑 문서부터 내놔!”
“아, 그거…. 여기 없는데.”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손을 펼쳐 보란 듯이 지하실을 쭉 가리킨다.
다 열린 캐비닛. 숨길 곳도 없는 지하실이 휑하니 비었다.
순간, 김갑동의 얼굴이 헬쑥하게 변했다. 피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이연우를 보았다. 저 말이 진짜냐는 듯.
이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있던 여자가 들고 올라갔어요.”
“그러면! 가지고 돌아오라고 해! 빨리!”
남자는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늦었지. 내가 있는 부대 수칙이 그래요. 떨어진 상황에서 5분 이상 연락 없으면 사망으로 간주하거든. 문제 생긴 거 짐작하고 진작 출발했을걸?”
“아, 씹. 좆됐네.”
김갑동이 의족을 축 늘어뜨렸다. 허벅지 모서리가 유치장 바닥을 딱 쳤다.
이연우는 앉은 자세로 슬그머니 의족으로부터 물러섰고, 남자는 박수를 짝 쳤다.
“자, 나는 금괴 도로 가져갔고 총도 안 꺼냈고. 김갑동 요원은 진정하셨고. 대화합시다.”
“배신자와는 대화하지 않는다….”
“그러지 말고.”
김갑동은 세상이 무너진 얼굴로 허망하게 남자를 보았지만, 남자는 여유롭게 웃으며 의족과 김갑동을 가리켰다.
“사람 몸에 폭탄 박아넣는 정보부. 계속 일하고 싶어요? 이 기회에 골드버그 클럽에 가입하시죠?”
이어, 남자의 눈은 이연우에게 향했다.
“당신이 도우면 주사위 회수할 시간도 벌고. 현장도 깔끔하게 조작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김갑동 요원이 문제없다고 보고하여 시간을 번 뒤, 이연우를 죽여 주사위를 회수한다.
***
이연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주사위 굴립니다. 저거 폭탄 터지라고.”
이제 와서 이연우만 죽이기에는 이연우가 자유로웠다. 거기에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 뒤가 없는데 뭘 더 가릴 생각도 없다.
“폭탄도 돌리고, 지하실 붕괴도 돌리고, 심장마비도 돌리고, 총기 폭발도 돌리고, 다 돌려요. 하나는 성공하겠지.”
그리고는 김갑동 요원을 따라 하여, 남자를 노려봤다.
“금괴든 총이든, 뭐 꺼내려는 낌새만 보여도 돌릴 겁니다.”
“잘못하면 당신도-”
“나 혼자 죽어서 이상개체 적출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남자는 이연우의 눈동자를 유심히 보았다. 냉정하고 침착하다. 허세나 가짜 광기가 아니다. 상황도 그렇다.
이연우는 옆에 서 있는 요원에게도 말했다.
“요원님도 똑같아요. 이상한 짓 하지 마세요. 할 일만 하세요.”
“그, 알겠습니다.”
김갑동 요원이 손을 파르르 떨며 유치장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 의족이 질질 끌린다.
그 후로 세 명은 잠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렇게 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합시다. 여기서 깔끔하게 헤어지자고요. 나는 도망치고, 당신들은 남아서 할 일 하고.”
“안 돼!”
김갑동 요원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텅 빈 지하실을 의족으로 가리킨 후, 남자를 노려봤다.
“정보 탈취당한 것만 해도 징계가 얼마나 큰데! 너라도 붙잡아야지!”
“내가 잡혀줄 것 같아요? 김갑동 씨,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보세요.”
답답한 표정으로 가슴을 쿵쿵 치다가, 자연스럽고 재빠른 손길로 품 안의 권총을 꺼내 의족을 겨눈다.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은 권총.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감정하게 말했다.
“잡히면 형벌부대로 갈 텐데. 차라리 여기서 죽고 말지.”
폭탄은 하나지만, 세 명 모두 폭탄을 터트릴 수 있다. 그리고 터트려야 할 상황이라면 망설임 없이 터트릴 준비도 마친 사람들이다.
긴장이 흐르는 그 순간이었다.
데구르르-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남자의 눈동자가 총기를 보는 순간. 총기가 폭발했다. 장전된 총탄부터 탄창의 총탄까지 일제히 폭발하며, 총기 파편을 흩뿌렸다.
붉은 불꽃이 확 일어났다가 사라진 자리.
너덜너덜해진 손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보던 남자가 이연우를 보았다.
“너!”
이연우는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으로 허공을 보다가, 시선을 내려 남자를 보았다.
“내가 말했지 않나. 총 뽑으면 돌린다고.”
총기 폭발을 굴린 주사위가 성공했다.
***
남자의 무장이 사라졌다.
다음 순간 김갑동 요원이 튀어 나갔다. 검처럼 치켜든 의족이 백열등을 치고 강하게 내려 찍힌다.
부웅-!
흔들리는 백열등 아래, 남자는 머리를 가리고 낮은 자세로 요원에게 몸을 들이박았다.
퍼억-!
등을 내리친 의족이 바닥을 구른다. 요원은 팔꿈치로 남자의 등을 내리치고 무릎을 올려 찼지만, 남자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나 유치장의 창살에 쾅 부딪쳤다.
김갑동 요원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연우! 돕지 않고 뭐해!”
이연우가 어떻게 반응하기 전에, 남자가 김갑동의 주머니에 피 묻은 금괴를 쑤셔 넣었다.
김감동이 금괴를 받았다.
“김갑동 요원. 이연우가 추적하지 못하게 막으세요! 계속!”
금괴에 구속된 김갑동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유치장으로 들어와, 이연우를 제압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몸을 편 남자가 웃는다.
“그럼 고생하십쇼! 징계 잘 받고!”
망가진 손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계단을 오르는 남자.
김갑동은 이연우를 향해 손을 뻗다가 멈췄다. 이연우가 쫓을 생각이 없다는 듯, 두 손을 만세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까.
***
“저는 쫓아갈 생각 없습니다. 저 혼자 쫓아간다고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막을 필요 없고?”
“당연하죠. 저 혼자 추적해서 뭐 합니까.”
금괴의 명령이 수행되었다. 자유를 찾은 김갑동과 싸울 생각 없는 이연우는 서로를 어색하게 보다가, 같은 일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이서연 견습요원, 잘 시간 아니야.”
“서연 씨, 일어나세요.”
어깨를 잡고 흔들고, 뺨을 찰싹 친다. 이서연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자다가 눈을 떴다.
“으…? 아!”
상체만 벌떡 일으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서연이 이연우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연우 씨! 언제, 아니, 뭐지. …아!”
잠기운에 취해 흐렸던 눈동자가 또렷해지며, 과거를 떠올렸다.
골드버그 클럽으로 의심되는 두 사람의 무장을 해제하다가 금괴를 소매넣기 당한 김갑동 선임요원과, 금괴에 당해 잠들어버린 김갑동을 구하기 위해 대신 금괴를 들었던 자신을.
“골드버그 클럽! 어떻게 됐나요!”
“이서연 견습요원. 우선 나부터 구속해. 내가 금괴에 당해서.”
“앗, 예. 잠깐만요.”
이서연이 허리띠를 푼 뒤, 외발로 콩콩 뛰어 김갑동의 손과 철제 책상의 다리를 엮어 묶는다.
김갑동 요원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 상부에 보고하자. 의심되던 두 사람은 골드버그 클럽이 맞고, 정보를 탈취하였으며, 우리는 조사원 이연우의 심문을 시작하겠다고.”
두 정보부 요원이 이연우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