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40)화 (40/194)

심문

심문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김갑동 요원은 허리띠에 묶인 채로 통신장치를 귀에 꽂고 뭐라뭐라 통신하였고, 의족을 착용한 이서연이 씩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연우 씨, 오랜만이죠?”

“그러게요.”

신입사원연수 이후 처음 만났다. 그동안 딱히 따로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조사받는 사람과 조사하는 사람으로 만났고.

이연우가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이서연의 다리로 시선을 옮겼다.

“의족 다셨네요.”

“정보부에서 지원한 장비죠. 멋지지 않아요? 이거 보세요.”

척, 다리 뻗듯 의족을 책상에 올린 이서연이 정장 바지를 쭉 걷어 올린다. 살색 의족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이서연의 손짓 몇 번에 허벅지가 열렸다.

찰칵-

허벅지 내부의 빈 공간에는 네모난 폭발물이 있었다. 뼈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제가 요청해서 넣었어요. 비밀요원 느낌 장난 아니지 않아요?”

이연우는 눈썹을 파르르 떨다가 김갑동을 보았다. 이 사람은 폭탄이 어디 있나 묻는 눈으로. 마침 통신을 마친 김갑동은 식은땀을 닦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저런 거 없어.”

“아까 몸에 폭탄 심어져 있다고.”

“거짓말이고 허세였지. 아무리 정보부 요원이어도 몸에 폭탄 박는 인간은….”

김갑동과 이연우의 시선이 이서연에게 향했다. 이서연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재빨리 허벅지를 닫고는, 바짓단을 내렸다.

“으흠! 아무튼 연우 씨는 적대집단의 스파이로 의심되어 조사받으러 왔습니다. 맞죠?”

“…맞습니다.”

이연우가 대답하자, 이서연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책상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보고서 있지 않았어요? 어디 갔지? 그것도 다 털렸어요?”

“싹 다 털렸어. 놈들도 놓쳤고.”

“아…. 안 되는데….”

이서연이 발을 동동 굴렀다. 김갑동은 지친 얼굴로 이연우를 보았다.

“이 사람이나 심문해. 이거라도 잘 끝내야 그나마 덜 혼나지.”

“그런데, 연우 씨는 스파이 아닌 걸로 잠정 결론 났잖아요.”

징계를 두려워하는 두 사람과 달리, 이연우의 표정이 편안하게 풀렸다. 알고 보니 이미 의심은 풀린 상태였다.

김갑동이 얼굴을 찡그렸다.

“나도 원래는 대충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대충 하면 트집 잡힌다. FM대로 해.”

“FM이라고 하셔도….”

이서연은 이연우를 보았다. 편안하게 앉아 눈을 깜빡이는 이연우. 조사를 거부하거나 저항하거나 속일 낌새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물어보면 다 답해줄 것 같은데.”

“그럼요. 뭐든 물어보세요. 뭐가 궁금하십니까? 주사위? 차원이동? 아니면 당신들이 자는 동안 있었던 일?”

이연우가 얼른 입을 열었다. 굳이 비협조적으로 굴 이유가 없다.

김갑동이 한숨을 푹 쉬며, 책상다리에 몸을 기댔다.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난 모르겠다. 이미 망했는데. 이서연 견습요원 마음대로 해.”

“그럼 심문 실습한다고 생각할게요!”

김갑동은 아예 고개를 돌리고, 핸드폰을 꺼내 툭툭 치기 시작했다. 습관처럼 퇴사 후 창업이나, 치킨집 따위를 검색한다.

이서연은 노트북으로 회사정보망에 접속해, 이연우를 조사한 보고서를 화면에 띄웠다.

이서연이 말했다.

“그러면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걱정은 하지 말고요. 그동안 연우 씨가, 와, 실적이 어마어마하네요?”

감독을 생포한 거야 당시에 들었지만, 그 후로도 오류 확산 해결에 기여, 대악마와 계약한 악마숭배자와 조우, 이차원으로 이동하여 제임스 콩 조사원의 보고를 전달 등등….

“이상異常을 이렇게 많이…!”

이서연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목소리도 흥분을 품고 높아졌다. 반대로 이연우의 표정을 썩어들어갔다.

“내가 원한 게 아닌데…. 그리고 좋은 거 아닙니다. 다 죽을 뻔했습니다.”

“그래도 그 덕에 정보부에서도 연우 씨를 스파이로 크게 의심하지는 않아요. 충실한 조사원이라고 판단했어요. 대신.”

스으윽-

노트북을 옆으로 치운다. 흥분을 가라앉힌 이서연이 이연우와 눈동자를 마주했다.

“이상개체는 아닐까, 의심하고 있어요. 그것도 이상異常을 끌어모으는 개체로요.”

“아.”

이연우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이상異常과 조우하는 빈도가 지나치게 잦았으니까.

오늘만 해도 대충 조사 받고 끝날 일이었는데, 골드버그 클럽인지 뭔지와 다투지 않았나.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저도 모르겠네요. 혹시 조사 받으면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이상개체인지, 아니면 이상異常의 영향을 받았는지.”

저주라거나, 운명을 뒤틀거나, 전설이나 동화에 나올 법한 이상현상에 당했는지.

“그건 정보부 업무가 아니라, 이상검사과로 가야할걸요? 아무튼! 질문할게요!”

이연우가 고개를 들고, 이서연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주사위 언제 얻었어요?”

“보고서에 쓴 대로, 오류 확산이 진정될 때 얻었습니다.”

“인간자격시험 전후로 얻은 거 아니고요? 솔직히 말하셔도 돼요. 어차피 지금 이상소유자진신고기간이라 사소한 거짓말은 문제없을 거예요.”

“아니, 거짓말 아닌데.”

이서연이 다시 노트북을 끌어와 이연우의 기록을 훑었다. 이연우의 일생을 조사한 문서를 지나, 이연우가 주사위를 보고한 문단에서 커서가 멈췄다.

“주사위의 결과가 다섯 개죠. 대성공, 성공, 꽝, 실패, 대실패. 그동안 주사위를 굴렸다가 안 좋은 결과가 나와서 이상異常과 조우한 게 아닌가요?”

주사위가 실패해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의 격리실패를 야기하고, 예술가협회의 습격을 부르고, 악마숭배자와 조우한 게 아니냐는 질문.

이연우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상개체일 확률이 더 올라가는데…. 연우 씨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막 만난 거잖아요.”

“그게, 그렇죠.”

타닥타닥-

이서연은 노트북 화면을 보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입술을 달싹이면서 써 내려가는 문장을 작게 중얼거린다. 이연우는 긴장하여 중얼거림에 집중했다.

“심문 완료…. 스파이 혐의 없음…. 이상異常을 끌어모으는 이상개체로 의심됨….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됨….”

이연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상개체로 의심.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실험실? 구속? 감금?’

탁!

선고하듯 힘차게 엔터를 내리친다. 이서연이 기지개를 쭉 켰다.

“네, 조사 끝났어요! 이제 이연우 씨는 조사원 업무에 복귀하면 돼요!”

“…예? 이게 끝이라고요? 실험실로 끌고 간다든지, 부서 이동한다든지 그런 거 없습니까?”

이연우가 안심하다 못해 당황한 눈으로 보았지만, 이서연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할 일이 아닌데요. 이상개체 증명하고 관리하는 건 우리 담당이 아니라, 다른 부서라서요. 그래서 후속조치는.”

이연우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이서연은 고개를 기울였다.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비슷한 사례나, 예상 같은 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견습요원이라…. 선임요원님. 어떻게 될 거 같아요?”

김갑동이 핸드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은행 앱으로 통장잔고와 적금을 보던 김갑동은 우울한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후속조치 없을걸.”

“없다고요?”

“조사반 반장님이 엄청 커버 쳤어. 그리고 당신 특성, 조사원 일에 딱 맞잖아. 굳이 다른 곳으로 인사이동할 이유가 없지.”

가만히 있어도 이상개체가 모여든다. 그것도 회사의 조사원을 중심으로.

김갑동 요원이 보기에, 이연우는 조사반의 부모감별사처럼 조사원으로 계속 일할 터였다.

“이상검사도 안 받습니까?”

“이제는 이상검사과에서 안 받아주지. 통제 안 되는 주사위까지 있다며. 검사하겠다고 데려왔다가 사고 터지면 어쩌게.”

이연우는 순수하게 좋아하지 못하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검사를 피한 건 좋긴 한데. 말을 들어보니, 회사는 이미 이연우를 반쯤 이상異常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이미 회사원 사이에 은근히 소문 퍼졌어. 조사반에 같이 일하면 안 될 사람이 하나, 아니다.”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던 김갑동이 말을 끊었다. 당사자 앞에서 할 말이 아니다.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이연우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정신 한편에 선명하게 느껴지는 주사위를 보았다.

“…주사위는 어떻게 합니까? 이건 확실한 이상개체인데.”

“아! 그건 제가 알아요! 이연우 씨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상목록에 기록했고, 자진신고기간이라 따로 징계는 없어요.”

“회수도 안 할 거야. 조사업무에 사용하는 장비로 취급할걸.”

조사원의 생존을 돕는 장비. 회사에 충실한 직원이 직접 얻은 장비까지 빼앗지는 않는다.

귀찮은 실험도 반장이 막았다. 이연우나 주사위나 함부로 손 댈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아주 으름장을 놓았다던데.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 하나 이상異常 하나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기에는 회사의 상태가 좋지 않다.

김갑동은 제법 경력이 되는 정보부 요원으로서, 회사의 운영이 많이 이상해졌다는 걸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본사에서 고급인력부터 핵심인력까지 다 빼가고, 예산은 줄이고, 중요자원은 알 수 없는 곳으로 옮기고, 적대집단 대응은 거의 손 놓고. 도대체 회사에 무슨 일이-’

드르륵-

의자가 밀리는 소리. 가라앉은 눈으로 생각을 이어가던 김갑동이 고개를 들었다.

이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문 끝난 거 맞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물론 골드버그 클럽은 안 쫓아가요.”

“나는 막을 필요 없고.”

여전한 금괴의 구속을 회피하기 위한 말.

이서연이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강열 씨까지 해서 밥 한번 먹어요! 동기끼리!”

“좋죠. 그런데 강열 씨는 뭐하고 있습니까?”

“아직 기초훈련 중일걸요? 특전대 입대하면 몇 달 동안 훈련받는다던데.”

“그러면 나중에 봅시다.”

이연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계단을 올라갔다. 이곳에 더 있기 싫다는 듯 재빠른 걸음 소리가 멀어지다가, 아예 사라졌다.

계단을 보던 김갑동이 허리띠로 책상다리에 묶인 손을 흔들었다. 덜컹거리는 책상.

“이제 풀어줘.”

“옙.”

꽁꽁 묶은 허리띠가 풀려나고, 얼마나 꽉 조였는지 하얗게 질린 손목을 몇 번 돌린다. 김갑동 요원은 저린 손을 뻗어 의자 아래 붙은 녹음기를 꺼냈다.

“다른 관측장치도 회수해. 잠든 동안 무슨 일 있었나 확인하자.”

혹시, 자는 동안 이연우가 포섭되었고, 골드버그 클럽과 짜고 연극을 했을지도 모르지 않나.

이서연과 김갑동은 지하실 구석구석에서 카메라와 녹음기를 꺼내 내용을 확인한 뒤, 이연우를 회사에 충성하는 직원으로 상부에 보고했다.

그렇게 이연우는 조사원으로 복귀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