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41)화 (41/194)

시간

이연우는 조사원으로 복귀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퇴근하면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하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하루, 이틀, 1주, 2주…. 평화로운 하루가 계속된다.

조사업무도 없고, 사무작업도 따로 없이, 월급만 받아 가는 생활.

하지만 일상을 즐기던 이연우는 어느 순간부터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달달달달-

슬리퍼가 쉴 새 없이 흔들리며 바닥을 때린다. 이연우는 볼펜 꼭지를 까득까득 씹으며, 멍하니 모니터를 보았다.

옆자리의 유지유가 이연우의 어깨를 툭 쳤다. 그녀는 또 그러냐는 얼굴로 이연우를 보았다.

“어휴. 그렇게 불안해요? 아무 일도 없으면 좋잖아요.”

“그게 맞는데….”

이연우는 이빨 자국이 남은 볼펜을 데스크에 올리고는, 의자에 기대 천장을 올려봤다.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나 싶어서요….”

이상異常을 마주치지 않은 지 2주가 지났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이제는 불안하다. 괜히 한 번에 몰려와서 큰 사고가 터질 것도 같고, 뜬금없이 적대집단이 습격할 것도 같다. 아니면 갑자기 주사위가 대실패를 띄우거나.

유지유는 이연우의 처진 어깨를 토닥였다.

“특별히 평화로운 게 아니라, 원래 이런 거예요. 이연우 씨가 그동안 운이 너무 없었던 거고요.”

“지유야. 그건 모른다. 쟤 또 조사 나가면 귀신같이 이상개체 만날지도 몰라.”

반장이 데스크 너머에서 끼어들었다가, 유지유의 눈총을 받았다.

“반장님! 후배를 위로해줘야죠. 왜 못된 소리를 하세요.”

“나쁜 소리가 아니라, 방심하지 말라고.”

“반장님.”

이연우의 목소리다. 무겁고 각오를 품은 목소리. 반장은 데스크 위로 눈을 빼꼼 내밀었다. 어딘가 난처한 듯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니, 신입아. 일부러 나쁜 말 한 게 아니라-”

“혹시 조사업무 들어온 거 없습니까? 일을 해봐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

진짜로 그동안 운이 없었던 건지. 이제 원래대로 돌아온 건지. 확신을 가질 기회가 필요하다. 그 기회가 혹여 위험한 조사업무더라도.

이연우의 눈을 보던 반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없는데.”

“지금 2주가 넘게 지났는데 일이 하나도 없습니까?”

“한 달에 보통 한 개에서 세 개 들어오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아….”

이연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지우지 못하는 불안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헤집는다.

다시 다리를 달달 떠는 그때였다. 다음 순간 이어진 반장의 말에 이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신입아. 그렇게 가만히 못 있겠으면 여기라도 다녀오는 게 어떠냐?”

“어디 말입니까?”

반장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 마우스를 몇 번 딸깍이더니, 이연우의 회사계정으로 알림이 하나 왔다. 바로 눌렀다.

회사에서 내려온 공문이 열린다. 반장이 말했다.

“가끔 회사에서 직원들 대상으로 강의하는데, 들을래?”

이연우는 행사 포스터 같은 공문을 보았다. 푸른 배경, 커다란 시계 아이콘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문자가 쓰여 있다.

[뉴턴의 실수 : 이상한 세상의 이상한 시간]

- 한국지사 시계초침제작소 연구원의 이상시간학 강연

장소는 상평시 옆 도시에 위치한 회사 건물의 강당이고, 시일은 일주일 후 오전 9시부터.

이연우의 다리 떨림이 딱 멎었다. 그는 전쟁에 임하는 군인 같은 눈으로 포스터를 노려보다가, 짧게 말했다.

“예. 가겠습니다.”

***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이연우는 조금의 불안도 느끼지 않았다.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며, 운명을 시험할 준비를 할 뿐.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의 길거리.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환경보호 피켓을 들고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정신 차리라는 구호를 외치는 환경 운동가.

“….”

소음 속에서 홀로 멈춰 선 이연우는 도시 중심에 위치한 고층 빌딩을 올려보았다. 오늘 강의가 열리는 건물이다. 그리고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현장.

꽈아악-

에코백을 꽉 쥔다.

전동드릴과 가스 토치, 나이프, 새총 등을 사서 넣어 울퉁불퉁한 에코백이 흔들렸다.

‘무슨 문제가 생겨도 상관없어. 사고가 터지는지, 확인해보자고.’

성큼, 걸음을 내디딘다.

그러나 이연우의 걸음은 얼마 못 가 멈췄다. 빌딩 입구를 지나는 순간, 보안요원에게 붙잡힌 것이다.

“사우님, 사원증 제시해 주시고, 몸수색 한 번만 하겠습니다.”

“아, 그게.”

이연우가 망설인다. 위험물품을 가져온 걸 걸리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이연우가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보안요원의 긴장은 높아져만 갔다. 슬그머니 테이저 건으로 가는 손.

“여깄습니다.”

이연우는 얼른 에코백을 건네고, 사원증을 꺼냈다. 보안요원은 사원증을 받지 않았다.

에코백을 열어서 들여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연우를 본다.

“사우님, 이거 다 왜 가져 오셨습니까? 대답 여하에 따라 대응이 심각해질 수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불안해서 가져왔습니다.”

이연우는 솔직하게 답했다. 말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회사일 뭐 한다 하면 사고가 계속 터져서요. 오늘도 무슨 일 크게 터질 것 같아서 챙겨왔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보안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이해한다는 표정.

강의와 세미나가 자주 열리는 건물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보면 온갖 부류의 회사원을 만난다. 이연우 같은 인물도 적지 않았다. 도무지 긴장을 놓지 못하는 사람.

이상異常을 상대하다 보니 평범한 물건을 보고 PTSD가 심각하게 터지는 사람도 있고, 작전을 수행하다 원한을 맺은 사람끼리 죽어라 싸우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보안요원은 이연우에게 따로 타박하지는 않았으나, 일은 일이었다.

“이건 저희가 잠시 맡아두겠습니다. 안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직원이 이렇게 모이는 건물이라, 보안 하나는 확실합니다.”

이 건물을 건드리려면 어설픈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어설프지 않은 위험은 미리 관측되었고.

보안요원의 설득은 계속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이연우에게 돌아가기를 권하기도 했다.

“그래도 정 불안하시면, 강의 포기하고 돌아가셔도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연우는 망설이다가, 사원증을 다시 내밀었다. 설령 무장을 포기하더라도, 불안을 덜어낼 기회는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강의 들을 겁니다. 그건 잠시 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나갈 때 돌려드리겠습니다.”

보안요원이 에코백을 데스크 아래에 넣고, 사원증을 스캔하여 이연우의 사원정보를 읽었다.

‘이연우, 조사원. 강의 신청자.’

문제가 없다. 검색대에 걸리는 것도 없다.

“확인되었습니다.”

이연우는 사원증을 주머니에 챙긴 뒤, 포스터에 적힌 지하 강당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보안요원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대기하던 자리로 돌아갔다. 같은 조의 보안요원이 물었다.

“누구야? 특전대원?”

“아냐. 조사원.”

“조사원…?”

이런 곳에서 일하다 보면 보는 사람도, 듣는 말도 많아지는 법. 질문한 보안요원은 머릿속으로 조사원을 떠올리다가, 눈을 크게 떴다.

‘남자 조사원. 그 반장님 아니고. 학생 아니고. 이거 그 사람 아니야?’

그가 다급하게 보안요원을 불렀다.

“야, 야. 저 사람, 그 사람 아니냐?”

“뭔 사람?”

“적대집단이랑 이상개체 몰고 다닌다는 사람. 이상검사과에서도 검사 포기했다고 소문난 사람. 뭔 일 터지는 거 아냐?”

“미신이겠지. 진짜면 이런 곳에 보내겠어.”

이연우를 대응한 보안요원은 심드렁하게 무시했으나, 말을 꺼낸 보안요원은 달랐다.

“너는 이쪽에서 일하면서 미신을 무시하냐. 난 보고한다.”

무전기를 쥐고 이연우의 입장을 알렸다. 그와 관련된 소문도. 그리고 보안요원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경계태세가 한 단계 올랐다.

***

지하 강당에는 이미 적지 않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영화관처럼 늘어선 자리를 듬성듬성 채운 사람들.

이연우는 빈자리를 찾을 겸 사람들을 한 번 쭉 둘러보았다.

‘연구원, 특전대원, 보안요원. 저 사람은 정보부 요원 같고. 봐서 모르겠는 사람도 있고.’

서로 다른 소속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같은 소속끼리 모여 있기도 하고, 다른 소속의 안면이 있는 사람끼리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오랜만이다, 야. 잘 지내냐?”

“집 지키는 일만 하는데, 잘 지내지. 넌 어떻게 살았냐? 사지는 멀쩡하게 달려 있긴 한데.”

“살아있으면 된 거지.”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서 이연우는 사람이 적고, 비상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로 갔다.

왼쪽 앞자리.

“후우.”

이연우는 자리에 앉아, 길게 숨을 뱉었다. 손도 쥐락펴락하고, 정신을 날카롭게 가다듬는다. 무슨 문제가 터지면 바로 움직일 수 있게.

‘만약 내 문제가 여전하면, 분명 사고가 터져. 적대집단이 습격하든, 이상異常이 튀어나오든.’

그리고 그 규모는 이전과는 다를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회사원이 모인 자리. 보안수준도 이전과 다른 건물. 이런 곳에서 터지는 사고라면….

‘아무 문제 없으면, 내일부터 편하게 살아도 돼. 지유 선배처럼 평화롭게, 어쩌다 가끔 이상異常을 마주치는 그런.’

둘 중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연우는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강당의 무대를 본다.

무대는 넓었고, 하얀 스크린이 내려와 있었다. 스크린 위로는 이상소유자진신고기간을 알리는 낡은 현수막이 붙어 있다.

9시가 되었는지 하얀 스크린 위로 빔프로젝터가 강의 PPT를 출력하고, 무선 마이크와 강의용 리모컨을 든 연구원이 구부정한 자세로 무대에 올랐다.

“아, 아.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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