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46)화 (46/194)

테러

반장의 눈에서 졸음기가 확 사라졌다. 졸음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짜증이 서렸다.

“이 새끼들은 조사원이 무료나눔인 줄 아나. 달라고 하면 줘야 하나? 너 어디 과 소속이야? 상사 누구야?”

“그, 저희는 감사과인데….”

김갑동 요원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조사반의 반장이 얼마나 성질이 더러운 사람인지 잘 안다.

‘말 잘못하면 좆된다.’

혓바닥이 돌처럼 굳었다. 위협하듯 감사과의 이름은 꺼낼 수도 없었다.

조사반장은 감사과와 비슷한 권한이 있었다.

이 새끼들 이상異常 같은데? 조사 좀 합시다. 어? 막아? 너 이상異常이지? 이상개체한테 지배당하고 있지? 특전대 불러라!

당장 최근만 해도 부모감별사 최재민과 이연우를 보호하겠다며, 둘에게 관심을 보인 부서 몇 곳을 뒤집어엎었던가.

잘못하면 감사과도 그 꼴이 난다.

“절대 강제 아닙니다! 이연우 씨 도움이 절실해서 여쭤보러 왔습니다!”

어느새 군인처럼 각진 자세로 선 김갑동이 크게 외쳤다. 그 말에 반장의 눈매가 조금은 풀어졌다.

“…뭔 일인데? 감사과 일에 조사원이 왜 필요해?”

“조사원이 아니라, 이연우 씨가 필요합니다. 정확히는 사고를 부르는 특성이 필요합니다.”

네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이연우에게 향했다. 이연우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데스크 칸막이 안으로 몸을 숨겼다.

“일단 무슨 일인지 설명부터 해주세요.”

“연우 씨, 별일 아니라, 사실, 별일이긴 한데요.”

이서연이 나선다. 그녀는 말을 고르듯 의족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다가, 잠깐 김갑동을 보았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나 묻는 시선.

“다 말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야.”

“으흠. 그럼 말할게요. 요즘 이상하게 회사의 이념을 왜곡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거든요. 왜곡하는 방식도 다양해서 파벌이 지금 엄청 나뉘었어요. 피만 안 봤지 거의 내전 상태라.”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김갑동은 끼어들지 않았다. 반장의 시선이 무서워서.

“그런데 그중 한 파벌이 이번에 행동에 나섰다고 하더라고요.”

“…그 파벌이 정확히 뭡니까?”

이연우는 침착하게 질문했다.

파벌이 나뉜 이유는 짐작이 갔다. 이상기후와 보존계획. 그에 따른 반응. 자신도 파벌의 일종인 시계수리공의 일원이지 않나.

이서연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인류관리회사. 보호를 넘어 인류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요.”

이연우가 숨을 멈추고, 동시에 반장과 유지유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지랄염병하네.”

“우리가 적대집단도 아니고. 그 사람들 회사원 맞아요? 스파이 아니에요?”

인류를 보호하겠다는 사명과 이념만을 등대 삼아 살아온 직원들에게는 이만한 모욕이 없다. 그들의 열정과 희생을 모두 짓밟는 말이었으니까.

이서연도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스파이 아니고, 다들 착실한 회사원이에요. 그런데 요즘 갑자기….”

이연우는 그 이유를 안다. 그렇기에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한다고 합니까? 정부 주요인사를 세뇌라도 한답니까?”

“어떻게 알았어요?”

이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장의 눈치를 살피던 김갑동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연우를 노려봤다.

이연우는 대충 손을 내저었다.

“인류관리회사라면서요. 회사원이 몇이나 있다고 인류를 관리합니까. 정부를 세뇌해야지.”

조사원으로서 이 정도 직관은 당연하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연우는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세계 각국의 입법기관이나 행정기관을 장악해, 이상기후를 대처할 생각인가.’

그 또한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하지만 반장과 유지유는 벌컥 성을 냈다.

“정신 나간 새끼들. 그게 적대집단이랑 뭐라 달라? 그걸 회사원이라고 왜 데리고 있어? 기억소거제, 아니지, 죽여버려야지!”

“정보부는 뭘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인간들 처리하는 게 당신들 일이잖아요.”

“그게…. 정보부도 파벌이 나뉘어서….”

김갑동이 눈을 내리깔며 말을 흐렸다. 현장요원에 불과한 김갑동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정보부도 파벌 싸움이 한창이었으니까.

원리원칙에 맞게 일하는 상관의 명령에 따라, 본래 할 일을 할 뿐.

김갑동이 피곤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 후, 반장을 보았다.

“그들은 이상異常을 동원해, 국무회의에 참석한 인원을 싹 다 세뇌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국무회의.

대통령부터 행정 각부의 장관이 참여하는 회의. 그들을 세뇌한다면 정부의 중추를 장악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회사가 의지만 가진다면 이 정도 일쯤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 비록 한국지사의 파벌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툭툭툭-

책상을 두들기다가 묻는다.

“그거 막을 수 있나? 보니까, 너희만 나서는 거 같은데?”

“지금 그나마 멀쩡한 게 감사과뿐이라. 저희라도 나서야죠.”

“특전대는? 그쪽에 지원은 안 받고?”

“그쪽도 지금 상태가….”

침묵이 내려앉는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이연우가 손을 들었다.

“돕겠습니다.”

김갑동과 이서연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이연우의 도움이 정말 절실했으니까. 이연우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연우 씨, 위험한 일은 없을 거예요! 그냥, 청와대 근처만 돌아다니면 끝이에요!”

사고와 이상異常을 끌어들이는 이연우를 미끼 삼아, 인류관리회사 파벌의 일원을 잡겠다는 계획을 짧게 설명한다.

어느새 이연우의 데스크 앞에 몸을 기댄 김갑동이 안심시키듯 말을 이었다.

“아무리 파벌 싸움 중이어도 한 가족이라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싸우지는 않습니다.”

“예, 그래서 언제 지원 나가면 됩니까?”

“내일 오전 10시에 청와대에서 정기 국무회의가 열립니다. 혹시 모르니 6시까지 와주세요.”

이연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무엇을 들고 갈지, 인류관리회사 파벌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면서.

***

어슴푸레한 새벽.

에코백을 느슨하게 걸친 이연우는 핸드폰을 두들기며 경복궁 외곽 도로를 따라 걸었다. 우선 김갑동과 이서연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연우는 시계수리공의 채팅방에서 정보를 얻고 있었다.

- TPL : 회사가 파벌이 나뉘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네. 이상기후에 대처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니까.

- CHS : 모르십니까?

- TPL : 나는 천생 연구원이라…. 친구도 몇 없네.

- ACTR : 저도 잘…. 시계탑에는 시간만 연구하는 괴짜들이 모여 있어서요.

도움이 안 된다.

이연우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약속 장소에 다 왔다.

멀지 않은 거리의 편의점.

플라스틱 테이블 위, 이슬이 맺힌 얼음 커피가 놓여있다. 그 앞의 김갑동과 이서연은 자잘한 전자기기를 손보고 있었다.

평상복을 입고 변장 같은 화장을 한 그들은 단순한 시민 같았지만, 대화가 남달랐다.

“베터리 충전 다 했지?”

“네. 예비용으로 들고 온 것도 몇 개 있어요. 선배님은요?”

“형광조끼, 협력증명문서, 테이저 건, 다 챙겨 왔지.”

이연우는 터벅터벅 발소리를 크게 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순간 긴장한 그들은 눈동자만 움직여 이연우를 보고는, 몸에 힘을 뺐다.

“연우 씨, 왔어요?”

“일찍 왔네.”

“잠이 일찍 깨서. 그건 다 뭡니까?”

이연우는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아, 그들이 매만지던 무선 이어폰을 보았다.

“통신장비. 보디가드가 끼는 인이어 같은 거지. 받아.”

김갑동은 자그마한 이어폰 하나를 이연우를 향해 밀었다.

“네가 청와대 주변을 돌아다니면, 우리는 근처에서 따라다닐 거야. 필요한 지시는 이걸로 전할 거고, 일 터지면 바로 합류한다.”

“그게 끝입니까? 몽타주 같은 거 없어요?”

이어폰을 손에 쥔 이연우가 김갑동과 이서연을 번갈아 봤다. 그들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우리도 누가 올지 몰라서…. 의심 가는 사람도 엄청 많고. 그래서 네가 끌어들이길 기다려야 해.”

이연우는 이어폰을 툭 내려놓으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정보는 어떻게 얻었습니까? 뭐 내부자나 해킹으로 얻은 거 아닙니까?”

“아냐. 감사과장님이 담배 피다가 그놈들이 떠들던 소리를 엿들었다고 하던데….”

이런 게 정보부? 이연우가 입을 헤 벌리고 있자, 이서연이 서둘러 핸드폰을 켜, 이연우에게 넘겼다.

“그래도 짐작 가는 이상개체는 있어요. 여기 목록이에요.”

이연우는 본능적으로 이서연의 핸드폰을 보았다. 회사 앱에 접속한 화면에는 이서연이 작성한 문서가 있었다.

인류관리회사 파벌이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이상개체.

분홍빛을 내뿜는 최면 어플, 병원에서 받을 법한 공포증 처방서, 아이들이 만든 포스터 같은 지구가 멸망한다! 등등…. 사람의 심리를 조작하는 이상異常.

이연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겉으로 보이는 게 아닌데. 만나도 못 알아보겠는데요.”

“그래서 네가 제일 중요해. 분명히 너한테 끌려올 거야. 알아보는 일은 우리가 할게.”

“일단, 알겠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산책하듯 돌아다니기만 하면 끝. 목숨까지 위험하지는 않은 일.

이연우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서연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통화하듯 말했다.

“들리죠?”

- 들리죠?

목소리와 이어폰 소리가 겹친다. 이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들립니다.”

“그러면 이것도 받고.”

김갑동이 가방에서 A4 문서를 꺼내 건넨다. 이연우는 그걸 손에 쥐고 쭉 훑었다.

이상관리청 협력자 증명 문서.

경찰이나 군인의 검문을 막아주는 문서.

“한국정부 비밀기관인 이상관리청에서 받은 건데, 저기 올라가다 보면 검문받잖아? 그거 막아줄 거야.”

경복궁 돌담길을 오르다 보면 검문소가 하나 나온다.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경찰이 검문하는데, 그걸 피할 수 있다.

이연우의 시선이 에코백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사제 권총이 있었으니까. 시간이 멈춘 동안 골드버그 클럽의 총기제작장에서 훔쳐 온 권총이.

권총 옆으로 문서를 밀어 넣은 이연우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지금부터 걷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이연우가 경복궁 돌담길을 걷기 시작하고, 두 정보요원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관광객처럼 사진을 찍어가며 이연우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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